교회봉사 자세

교회의 봉사 자세/막10:13-16

교회의 봉사 자세
막10:13-16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본질적으로 봉사의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세상을 주의 이름으로 섬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현대교회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성도들은 어느 세기에 살던 그들 자신의 신앙자세나 표현의 방법을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방법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역사에서 배우는 산 교훈이요 특히 사도행전과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세지입니다. 섬기는 종의 의식은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에 의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예수님은 종이나 노예의 모습을 당신의 임무와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관된 자의식은 종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빌 2:5-8에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예수님은 이 표준을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받아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마 9:35-36에 보면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세상 사람은 권력자와 대인에게 아부하며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속지 마세요. 그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섬기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기억력도 없는 어린아이, 소인, 힘 없는 자를 섬깁니다.

1세기 유대인들은 노예나 종(Slave & Servant)에 대한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종을 거느려 보았는가 하면, 또한 자신들이 지배국의 노예 노릇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종이나 노예는 주인을 대리하였으므로 주인이 갈 수 없을 때는 종을 대신 보냈습니다. 종이 가면 마치 주인인양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요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종이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아니 하시고 가난한 자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소외 당하는 자를 동정하시고 고독한 사람을 이해하셨습니다. 고통 당하는 자에게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고민에 공감했습니다. 압박받는 자의 짐을 져주시고 그들의 곤경에 동참했습니다. 그 다음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의 사업을 이 세기에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야 말로 이 세기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대리자요 섬기는 종이요 노예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을 주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사명에 게으르다면 세상은 말라죽을 것이요 교회는 맛잃은 소금으로 버림받을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진리의 명령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라. 그리스도가 행하실 그 일을 주인이 되어 그 이름으로 행하라\\\"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부담없이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치유에 대하여 말이나 하는 것입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봉사하면서 구속의 역활을 변두리에서 연출하는 무기력한 접근입니까? 세상에서 교회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적극적인 측면에서 첫째로,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 압박받는 자의 현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빌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현실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 이것이 이 세기를 사는 저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이요 교회의 고난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 써늘하고 좋지 못한 현실에 직면합시다.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수용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건너 띄거나 빙빙 돌지말고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갑시다.

둘째로, 교회가 자진해서 타인의 짐을 져주는 것입니다. 갈 6:2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모양으로 죄인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짐을 지셨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아무것도 모르고 힘도 없고 약한, 길 잃어버린 양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잘난 사람의 비위만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어린 소자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곧 우리의 짐이 되고, 그들의 상처가 그대로 교회의 상처가 되고, 그들의 고민이 우리 교회의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우는 유일한 구속의 대리자입니다. 이것이 진정 교회의 모습이요 교회의 올바른 봉사자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어야 합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것, 대신 짐을 져주는 것 이것은 인간성이 꺼리는 것입니다. 마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는 바로 이것을 지적합니다. \\\"네가 사는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게 응답하였는가? 그들의 요구에 자신을 내어주었는가?\\\" 예수님은 Giving Self의 정도로써 교회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4-40절을 보세요. 질문과 답변이 교차됩니다. \\\"어느 때에 하였는가?\\\"로 연속되고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로 반복됩니다. 이것은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심판의 조목입니다. 성도의 심판은 실제로 얼마나 종의 역할을 담당했는가에 달려있다는 계시입니다. 종의 자세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입니다. 종이 꾸며 보았자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거들먹거리면 뭣합니까? 실질이 중요한 것입니다. 종은 이름도 없고 사례도 없고 상도 없습니다. 실질!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돕고 있는가? 특수하게 몇 번이나 이웃의 고통에 동참했으며 그들의 짐을 대신 져주었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특수하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할 때, 기독교회의 빛은 밝게 드러납니다.

요 12장을 보십시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순수한 나드로 만들어진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향유를 다른 사람의 다리에 붓는다는 것은 당시의 풍습에서 볼 때 예외적인 것입니다. 오직 노예만이 이런 행동을 대신했습니다(삼상 25:41).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행위로서의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보은의 표시였고 나사로를 살려주신데 대한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으로 인해 그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아름다운 향기가 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등극식을 예비한 이 사건은 다름 아닌 예수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기쁨의 소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에 근거한 성도의 구체적 행동은 어느 순간보다 매력적으로, 거룩한 아름다움을 힘차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 섬기는 공동체인 교회를 변질시키는 교묘한 침투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성과 각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첫째, 지구상의 교회들이 자신들의 제도를 숭배하거나 예배하게 될 때 믿음의 공동체는 빈사상태의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교회는 제도자체의 교회에 대한 충성을 하는 일과 그 제도의 목적인 이념에 대해 충성하는 일을 올바로 구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전통자체에 대하여 충성할 것이 아니라 전통의 내용에 충성해야 합니다. 문자적인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에 충성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곤경에 빠졌습니다. 제도와 전통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에 정력을 다 빼앗기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목적에 무관심하자 이스라엘이란 옛 교회는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이 내향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만을 섬기는 일종의 소수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도와 전통은 좋은 것입니다. 제도와 전통이란 그릇이 있어야 위대한 이념과 고상한 동기를 보존하고 영속시킬 수가 있습니다.

Catholic Church, 장로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와 그 정치 다 좋습니다. 주일학교, 찬양대, 부속회, 총회, 노회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와 전통에 영광을 돌리고 앉아 있어선 안됩니다. 한 마디로, 수단이 목적이 되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교회는 내부를 향한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집단이 되고 맙니다. 모든 제도와 전통은 오로지 교회의 사명을 외부세계로 지향케 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모든 전통과 제도는 세상에서 교회가 종의 역할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은 맹목적인 제도만을 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섬기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요?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교단과 교파가 왜 있습니까? 교회의 전통을 보수하기 위해서입니까? 교회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까? 껍데기입니까? 내용입니까? 형식입니까? 본질입니까?

둘째, 교회의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세속적 정신에 의하여 종의 형태인 교회의 모습이 변형되고 교회의 봉사자세는 위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와 인간 속에 도도히 흐르는 것들이 연합하여 우리를 사로잡아 세속적 정신의 노예로 사로잡아 갑니다. 요한 사도는 이 점을 경고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만일 섬기는 공동체인 교회가 세속정신에 물들어 여러가지 형태로 다가오는 자기만족과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꾸며서라도 위대해 보이는 교회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가 건물이나 교인의 숫자나 재정을 자랑하고 들뜨며, 자기 명예에 집착하며, 자기 권위에 만족한다면, 교회는 바로 세속정치에 물들고, 권력구조에 굴복하며 교권주의에 몰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렘 5:30-31의 탄식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경계가 없어지고 야합하며 똑같이 되면 어디서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게 되겠습니까? 교회가 권력의지와 지위를 독점하려 하고 자기 영광과 이름을 추구하면 마침내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집단(약 3:15)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마가가 전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교회는 오늘도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막 10:13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님이 분히 여기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구원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작은 자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큰 소리치고 불평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를 큰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큰 자가 너무 많아 괴롭고 골치가 아픕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은 작은 자 때문에 평안하고 복을 받습니다. 작은 자는 소리없이 새벽을 깨웁니다. 어린 영혼을 가르치고 기다립니다. 새신자와 새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서 들이며 돌보고 세웁니다. 차를 운전하고 기계를 조작합니다. 말없이 식당에서 봉사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여,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답습니까? 교회의 본질은 섬기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고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겠습니까? 자기를 주 앞에서 작은 자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이요 주님의 뜻대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과 사랑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작은 자로 여기고 섬기는 교회만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옥중서간을 쓴 독일의 Dietrich Vonhoeffer 목사는 그 책의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할 일은 사람을 섬기는 일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