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왕 예수님 막10:41-45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 이 두제자가 주님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말의 실수를 한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는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에 야고보는 우(右)정승! 요한은 좌(左)정승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하는 부탁이었습니다.(37절)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38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은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따라 오는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내 좌우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요,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아홉 제자들은 그들을 괘심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예수님은 마음 아파하시면서 오늘 본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Ⅰ. 섬기는 자의 자세!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려 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신앙인은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치관의 일대 혁명입니다. 이는 세상을 뒤집어 놓은 가치관이요, 역사상 가장 큰 혁명입니다. 인간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으뜸이 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위대해지고자 하는 꿈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을 섬기기 위해 으뜸이 되고, 섬기는 일로 위대해지라고 하셨습니다. 군림하기 위해서 으뜸이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역사에는 지배적 소수와 창조적 소수가 있는데 지배적 소수가 있을 때 역사는 퇴보하였고, 창조적 소수가 역사를 발전시켰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대선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부흥하고 귀하게 쓰임 받으려고 하면 섬기려고 하는 창조적인 소수들이 있을 때! 아름다운 예수 향기 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진 성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지금 교회마다 많은 사람들이 좌우편의 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고 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섬기는 종의 자리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주님 좌우 편에 앉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좌우 편은 섬기는 자만이 앉을 자리이다\\\"
성도의 섬김은 그 대상과 범위가 넓고 깊은 사람입니다. 섬김의 범위가 넓다는 것은 섬김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섬김에는 높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듯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의 길이가 길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잔치를 잡수심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잔치가 끝나고 그는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나아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진액을 THE는 기도를 하시다가 대제사장의 관헌들에게 체포당하시고 곤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섬김은 죽음이 내 앞에다가 올 그 때까지였습니다. 어떤 이는 처음에는 겸손히 잘 섬깁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군림하는 자리에 서있습니다. 잘 못된 것입니다. 끝까지 섬김이었고! 섬김으로 우리 인생을 마감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위대한 섬김의 왕 예수님을 본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는 자를 섬기는 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민족을 섬기는 심정으로 평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정신과 섬기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영향력이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테레사 수녀를 가까이하는 사람마다 그녀의 순결한 인격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기심이나 질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경이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루는 수녀님과 함께 일을 하던 사람이 한 어린이의 상처에 난 고름을 짜고 있던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높은 자리에서 편안히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질문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섬김의 지혜를 터득한, 섬김이 삶의 자세가 된 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의 백성 된 우리에게 \\\"섬기는 자\\\"의 모습은 진정한 위대함의 표상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7) 우리가 \\\"주의 나라\\\"를 갈망하며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허울좋은 자존심, 교만 명예욕 등을 벗어버리고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 하나라도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마23:11,12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Ⅱ. 섬김의 삶은 죽음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로 주려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원한 지도자로 받들고 따르는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앞두고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죽음! 자기 희생에서 영광을 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분명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를 죽인 자만이 섬김의 주님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죽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좌우 편은 죽음으로써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순교자는 분명한 신앙 철학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는 죽는다.\\\"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정신을 초월하는 자세입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예수님은 죽으러 왔는데 왜 오늘날 우리는 죽음으로 따르지 않고 있습니까?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냈다 말하지만 도무지 내가 모르겠다.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섬기고 죽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들입니다. 성도의 최대의 영광은 순교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의 사건을 자기 몸으로 증언하는 것이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가면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있습니다. 강재구 소령은 월남파병을 위해 부하들을 훈련시키는 도중 한 사병의 수류탄이 오발되자 몸으로 그것을 덮쳐 죽음으로 많은 부하를 살렸습니다. 강재구는 군인들의 가슴속에 몸으로 섬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하시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사랑하면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왕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섬김의 삶을 살 것을 권하고 계십니다.
유명한 오르간 연주가이며, 신학교수였던 시바이쪄가 어느날여행을 하다가 벌거벗은 흑인의 像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은 침략주의자들의 침략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비인간성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어서 시바이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날밤 그는 남은 생애를 밀림의 불쌍한 야만인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그래서 백인들이 그들에게 범한 죄를 속죄하겠다고 서원 하였습니다. 그는 그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그의 아내 헬레네와 함께 아프리카 람바레나의 밀림에서 불쌍한 흑인들을 돌보며 헌신하였습니다. 그를 가리켜 20세기의 태양이라고 불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신을 희생해 남의 영혼을 돌본 것입니다. 마25:40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시스의 프란시스(1182-1226)는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다가 길가에서 돈을 구걸하는 한 문둥병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동전을 주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프란시스는 말을 타고 떠나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 순간 걸인이 서 있었던 그 자리에 예수님 자신이 서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성경이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지극히 작은 자!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있는데 그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복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 때 오른 편에 있던 의로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주여 우리가 언제....그렇게 하였나이까?\\\"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예수님 자신께서 그곳에 계시고, 도움 받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설 때 예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 우리의 사랑의 행위를 기억하실 것이며 \\\"잘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Ⅲ. 우리의 소명은 섬김입니다.
45절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소명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았기에 보내신 분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분명한 소명 의식! 자기 의식이 있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자기를 보냈다는 말입니다. 또한 왜 보내셨는가! 그것은 \\\"섬기러 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생동안 섬길 자를 찾으시는 종의 의식을 가지고 사셨음을 말합니다. 또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에서 자기 죽음과 희생으로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의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의식이 우리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는 자로 부르셨다!\\\"라고 하는 의식이 바로 \\\"으뜸\\\"이 되는 길입니다. 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면 일이 쉽고 즐겁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요한 웨슬레는 어린 시절부터 자아의식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명 의식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는 어린 시절 웨슬레 형제들에게 분명한 소명 의식을 심어 주었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 \\\"하나님이 위대하다 하셨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 군인들이 점호하듯이 아침저녁으로 마음에 깊이 박히도록 외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깁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심지어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주님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의 목숨가지 주시면서 우리를 섬겨 주셨기에 그는 섬김의 왕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섬김의 왕이신 그분의 종이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을 따라서 우리의 발자취가 섬김의 발자취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온누리 교회에서는 자신의 전 생애 중에서 최소한 삼년은 자비량으로 헌신하는 청년들이 되자는 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생 중에 가장 소중한 청년의 때에 3년 정도를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1년은 섬기는 교회에서 헌신합니다. 직장인처럼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합니다. 일이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교회의 일을 직원처럼 하는 것입니다. 쓰레기도 줍고, 교회 청소도 하고, 골목도 쓸고, 사무실에서 전화도 받고, 사랑의 편지도 쓰고, 어린이들도 돌보고, 전도도 하고, 교인들 심방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으로 1년을 자비량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1년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곳이나, 복지 기관이나, 양로원이나, 고아원이나 농어촌에 가서 그들을 돕습니다. 농어촌에 가서는 힘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과 기관이 있습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목말라하는 곳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년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언어를 넘어서 미전도 종족이나, 아직도 미개하여 도움이 필요한 세계를 섬기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12,000여 미전도 종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민족 속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섬기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평화의 봉사단처럼! 단기 선교사처럼!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길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가능하면 3년을 다 사용해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3년 가운데 1년만이라도 택하여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일년 이상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자는 운동입니다. 이것은 섬김의 왕이신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렇게 결단하고 자비량으로 그런 삶을 산다고 가정해 볼 때에 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겠으며, 하나님의 교회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부흥되겠습니까! 섬김의 왕이신 주님께서 지금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바울은 이렇게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모세는 한 경점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안개요, 이슬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가니 날아가는 인생입니다. 이런 나의 인생을 직시할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자신만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모쪼록 우리도 예수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신 것처럼! 우리에게 있는 자존심! 이기주의! 명예! 탐욕! 권위의식! 시기심을 다 벗어버리고 허리를 굽혀 주님의 몸을 섬기는 심정으로 교회를 섬기고, 불우한 이웃을 섬기며, 기관들을 섬기는 자 되어 주님 앞에 설 때에 \\\"내가 주릴 때에 네가 먹을 것을 주었구나! 내가 괴로워 할 때에 네가 찾아와 위로해 주었구나! 내가 춥고 헐벗었을 때에 네가 옷을 주었구나! 네가 나의 몸을 이렇게 깨끗하게 씻어주고, 정돈하고 돌보아 주었구나!.....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라...그리고 영생에 들어가라!\\\"(마25:34-46) 환영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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