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있는 봉사를 실천하라 마22:39-40
말씀을 나누기에 앞서, 우리 교회의 목적 다섯 가지를 다함께 외워봅시다. 첫째, 예배로 하나님을 드높이고, 둘째, 봉사로 이웃을 섬기고, 셋째, 전도로 세상을 구원하고, 넷째, 훈련으로 자신을 온전케 하고, 다섯째, 교제로 서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목회비전 두 번째 시간으로 봉사와 전도에 관한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제가 왜 봉사와 전도를 함께 묶어서 말씀드리는지 아십니까? 오늘 설교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성도는 봉사를 하더라도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입니다. “너무 의도적인 것 아니냐?”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있겠지만, 이왕 봉사하려고 한다면, 영혼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다함께 따라해 봅시다. “봉사에도 목적이 있다!” 그렇습니다. “봉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함께 오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론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2장 1절로 12절 말씀을 보면, 봉사를 통해서 한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있는 어느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집 밖에까지 줄을 서야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게 해서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관계로 도저히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의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그곳에서 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려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봉사와 전도에 대한 중요한 원칙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봉사와 전도는) 좋은 소문이 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 말씀입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그렇습니다. 소문을 듣고 몰려왔습니다. 무슨 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소문. 예수님에 대한 어떠한 소문을 들었을까요? 성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떠한 소문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마가복음 1장 말씀을 통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어떠한 소문을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은 다른 복음서의 1장과는 많이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과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가복음만은 1장부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는 일,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는 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마가복음 1장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초반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의 내용을 듣고 몰려든 것입니다.
보스턴 주변에 있는 위성 도시인 알링턴에는 밥이라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주유소가 있습니다. 척 스윈돌 목사님은 이 주유소를 가리켜 “보스턴에 있는 최고의 선교 센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밥이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직업과 소명이 함께 잘 밀착되어 사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그 주유소는 개소린(Gasoline)주입, 새 타이어 교체, 혹은 차에 관한 다른 서비스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예닐곱 대의 차가 두 개의 개소린 펌프 옆에 줄을 서 기다리면서 그 사람의 정비를 기다릴 정도로 그 주유소는 장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밥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주님과 함께 동업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밥은 정성을 다하여 손님을 맞이하였고 늘 정성을 다해 정비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척 스윈돌의 설교 예화 1500선, p.684)
성도 여러분, 이 밥이라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유소 앞에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깃발을 내걸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고기”마크를 붙여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밥이라는 사람이 일하는 모습만을 보고도 그가 그리스도인임을 저절로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고자 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군가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봉사가 아닙니다. 전도가 아닙니다. 선한 일을 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야 합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마세요. 봉사할 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전도할 때, 자신을 증거하는 사람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문이 퍼져나갈 때,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2.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3-4절).
3절, 4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여러분 몇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네 명. 보통, 우리는 네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이들이 협력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3절 말씀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3절 말씀의 주어는 누구입니까? “네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입니까?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네 사람으로 하여금 이 중풍병자를 메게 해서 예수님께 가도록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네 사람이 자발적으로 중풍병자를 메고 왔는지, 아니면 억지로 한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이들이 억지로 했다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참된 협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한 일이 분명한데도 때로 우리의 마음은 하기 싫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은 하기 싫은데, 그래도 참여하는 것, 이것이 참된 협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뜻에 맞는 일에만 협조하는 것을 보고 협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어떠한 것도 희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결코 협력이 아닙니다. 비록, 선한 일을 하는 가운데 불이익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힘을 모으는 것, 그것이 협력입니다.
지난 해 연말, 뉴스를 통해서 이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주에 어느 목사님께서 어렵게 혼자 사는 분들을 위해 “연탄은행”이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느 후원자에 의해 시작된 이 “연탄은행”은 독거노인들이 아무 때든지 와서 연탄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들으면서 “혹시나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이 이것을 역이용해 연탄을 가지고 갈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이 있는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일은 꾸준히 해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역이용하려는 사람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있을까봐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것저것 따져가면서는 결코 봉사할 수 없습니다. 혹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의 선행을 가로채지나 않을까 생각한다면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이렇게 생각할 때, 봉사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협력할 때, 비로써 예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사람들은 예수님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자, 지붕을 뜯고 그리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기로 결심합니다. 성도 여러분, 비록 자신들이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할 때, 그 일을 위해 힘을 모을 때,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장로님을 중심해서 지역별 전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직분자라면 지역 전도에 모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에는 은사가 없다고 말하기에 앞서, “전도할 힘을 주옵소서”-기도하고 힘을 모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4절, 6절)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 나오는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받는 과정 속에서 세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중풍병”이었고,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었으며, 셋째는 중풍병자를 고쳐주는 예수님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인 서기관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봉사 대상자-전도 대상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장애물들은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질병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걱정, 근심, 괴로움, 이와 같은 것들이 대상자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질병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당하는 질병의 아픔을 내가 경험해봤다면, 함께 곁에 있어 주면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며, 희망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 괴로움 등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걱정과 근심을 없앴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 내 삶을 통해서 걱정과 근심이 없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소망을 품게 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잘 살펴보면,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소리-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봐! 종교를 바꾸니까 문제가 생긴거야!”, “왜 종교를 바꿔가지고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기게 해!” 특히, 이 “자식 문제”를 걸고 넘어가면 교회 안 나옵니다. 아무리 목사가 괜찮다고 해도, 사람들로부터 종교를 바꾸면 문제가 생긴다는 소리를 들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럴 때는 사람이 큰 장애물이 됩니다. 그럼으로, 성도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사람이 장애물이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게 주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 생활에서 하나님 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두려워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윌리엄 텔을 잘 아시죠? 뭐가 생각나십니까? 아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화살로 맞추는 장면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이 윌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맞추기 위해서 몇 개의 화살을 준비했었는지 아십니까? 두 개. 왜 두 개를 준비했었을까요? 게슬러가 윌리엄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대는 두 개의 화살을 준비했느냐?” 그러자, 윌리엄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한 개의 화살로 사과를 맞추지 못하면-이 말은 잘못되어 내 아들이 화살에 맞게 되면(그래서 죽게 되면) 나머지 화살 하나로, 그대를 죽이려고 했다.” 게슬러가 말합니다. “너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이때 윌리엄이 멋진 고백을 합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사람을 두려워해 본적이 없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두려워서는 안 됩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 눈치 보느라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문제 있는 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셋째는 봉사를 하거나 전도를 할 때에 반드시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악한 세력들은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세요.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저가 누구이기에 죄를 사하느냐?”라고 말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듭니다. 여러분, 봉사할 때 봉사의 목적을 흐리게 만드는 세력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봉사는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데, “이왕 봉사할 거-다른 사람도 알게 해서 함께 하도록 합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의도는 좋지만, 때로 봉사의 참된 목적이 퇴색될 수 있습니다. 봉사할 때만 그렇습니까? 전도할 때도 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 “뭐 그리 애써서 전도합니까? 가만히 있어도 올 사람은 오는데” 이런 사람은 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세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게 만드는 것도 전도일 수 있겠지만, 전도는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빌립을 보세요. 광야로 나갔습니다. 주님 음성도 듣고 나갔어요. 그뿐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대상자들로 하여금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봉사를 방해하고 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한 군대, 그래서 장애물을 극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찬양받도록 해야 합니다.(12절)
12절 말씀입니다.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중풍병자 역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어떠한 능력을 소유한 분이신지, 이런 소문을 듣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막연한 소문이 아니라 사실임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봉사와 전도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봉사와 전도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수님을 체험케 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더 큰 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나 혼자 좋은 경험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나 혼자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찬양받는 일들이 나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의 삶이 “구원받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허망한 것들을 쫓아 살던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금 하나님을 찾게 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우리의 삶 자체가 전도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봉사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나치 독일의 박해 하에 놓였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목격하고 그것을 기록했던 프랭클(Frankle) 박사는 그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상관없이 자신은 물론 절망에 허덕이는 다른 사람들까지 격려하며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져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성도 여러분,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성도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누가 희망을 줄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성도입니다. 비록, 전 세계 인구에 비례해 볼 때, 성도의 수는 적지만,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뿐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몇 명 안 되는 성도가 이 사회를 변화시킬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닷물 속에 있는 소금은 불과 3%도 채 안됩니다.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두 번 권유하는 사람은 25%였습니다. 세 번 권유하는 세일즈맨은 15%였습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봉사 잠깐 해보고, 힘들다고 합니다. 치사해서 ‘못 하겠다’ 합니다. 전도 서너 번 해보고서는 “안 믿으면 저만 손해지, 뭐!”라고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이런 성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프로 세일즈맨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프로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올해에는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봅시다. 속회는 일년에 4가정을 전도합시다. 4가정을 목표로 기도하며 준비합시다. 그리고 꼭 열매를 맺읍시다. 속회뿐만 아니라, 개인별로도 목표를 세웁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목표를 세운다음, 주님께 기도하세요. “주님, 이 영혼을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습니다. 열매 맺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정 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목회비전 두 번째 시간으로 봉사와 전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봉사와 전도는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적 있는 봉사를 하십시오. 성도의 봉사는 영혼 구원을 위해 행해져야 합니다. 이왕 봉사할 거-우리의 봉사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소문이 들리게 하십시오.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할 좋은 소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입니다. 서로 협력하시길 바랍니다. 봉사나 전도나 함께 할 때, 더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자들로 하여금 장애물을 극복하여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그들의 힘이 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할 때 나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통해서,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헛된 것을 찬양하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찬양케 하는 것-그것이 성도가 감당해야 할 사명임을 깨닫는 축복된 성도, 사명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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