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를 찾습니다 막10:35-45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한 사람이 달려와 꿇어 엎드려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영생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만으로도 영생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네게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재물이 많음으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하였습니다. 부를 축적하고 있었기에 나누어 줄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책망받지 않을 정도로 하였으나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웃을 섬기고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위의 젊은이와 현대인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예수님께 자기의 삶을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개념적으로 하였습니다. 등록교인이면, 그리고 적당하게 즐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믿음을 가졌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부와 안락과 소유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부를 따라 편안하게 사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영생의 소망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보시고 문제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여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잠재력이 많은 아까운 청년이 부와 편안함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와 편안함은 끌어당기는 유혹과 매력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돈으로 살수 없는 것이 있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영혼은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면 물질은 그 다음에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부와 편안함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눅1:37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청년이 떠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예수님으로 부터 재물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예수님께 궁금한 바를 물어 보았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을 것을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목회자는 생애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가족과 친구 세상에 필요를 채우기 위한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모두를 섬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기가 포기하고 희생한 것의 백 배나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집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사역을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 할 수 있도록 채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진자는 세상 구석을 돕고도 남을 만큼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자로 삼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말을 듣고 있던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합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하였습니다.
1. 섬김의 가치
사람은 본능적으로 지닌 요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대접을 받으며, 섬김을 받으려는 야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으뜸이 되고자 하거나 크고자 하는 욕망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섬기기 위하여 으뜸이 되고 첫째가 되는 자는 선한자 이지만 섬김을 받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첫째가 되려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섬김을 받으려고 첫째가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결국 역사에 악을 남기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살고, 버림으로 얻고, 섬김으로 보람을 삼는 투철한 정신으로 산 것입니다.그리고 일생을 섬기는 종의 삶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생활은 영광스런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으로 살려고 하면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으뜸이 된다든지 제일이 되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으뜸이 될 때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섬기려는데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의 본을 다락방에서 친히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인 후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을 씻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섬기는 본을 받아야 합니다.
섬기는 자의 권위는 하늘이 준 것입니다. 남을 지배하는 권위는 인간정욕의 산물이요, 교만입니다. 이것은 무너지는 날이옵니다. 수치를 당하는 날이 있습니다. 섬기는 종의 권위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제자의 영광입니다. 섬김으로 인생은 행복하여 집니다. 섬기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교만 한자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겸손 한자는 남을 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섬김을 통하여 위대한 자아가 실현됩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순간 마음은 빈곤해지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가장 비참한 사회는 섬김의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입니다. 섬기는 자가 결핍된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 이 역사의 모든 위대함이란 남을 섬기고 간 사람들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자기 소득을 생각지 않고 남을 위해 살기로 하면 이 사회는 낙원이 될 것이며, 그 섬김의 깊이가 진실할수록 인생은 행복이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섬김으로 귀히 여김 받읍시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남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돈만 아는 사람이 부유하게 살수는 있으나 남의 존경이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에 \"섬기는 자\"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집사)입니다. 교회에서 제직이 된 것은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지위는 섬기는 자가 얻은 것이요, 죽은 후에도 길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인물은 집사들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존귀한 자로 그 지위가 보존되는 것은 그의 철저한 희생을 통한 섬기는 자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2. 좋은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인간이 일생 동안 싸우는 생존 경쟁의 최후의 목표는 이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데 있습니다. 죽어서까지 명당 자리 좋은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사회,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자리다툼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자리를 주시고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진노에서 은혜의 자리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야보고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좌우편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내 좌우편에 앉는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세상 지위는 남을 죽이므로 얻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국의 좋은 지위는 자기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죽을 십자가를 최고의 자리로 본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
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영광을 십자가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죽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알고 그 자리에 앉아서 자기를 희생시킬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의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섬기는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의 집권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으로 누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섬기기 위해 으뜸이 되려는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예수님은 언제나 섬길 곳을 찾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지위는 섬기는 자가 얻은 것이요
죽은 후에도 길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인물을 섬기며 산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을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남을 지배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자리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자리다툼으로 시기와 중상, 살인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영광스런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범을 보이셨고 하늘로 올라가 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의 뒤를 따르며 그가 계셨던 섬김의 자리와 자기 희생의 십자가를 질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빌2:5-11) 예수님의 일생은 겸손의 일생이요 그 겸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광스런 자에게 앉을 자를 찾고 있습니다. 누가 그 자리에 앉으시렵니까?
3. 하나님의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교회의 일군은 목회자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일군은 온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자 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높은데 두지 말고 가가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문벌이나 학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그 시대의 보통 사람에도 못 미치는 비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길이 남는 지도자가 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으로 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도자\'와 \'지배자\'의 개념을 구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사회에는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라의 정권을 잡은 자, 회장이나 사장 기관장, 교권을 잡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회나 단체의 통솔자입니다. 정권을 잡아 권좌에 앉은 지배자들입니다 지도자는 정신을 지배하는 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따르게 하는 자입니다. 지도자란 먼저 실천하는 자요, 먼저 섬기는 자요, 인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와 지배자는 다릅니다. 지배자는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죽이고, 싸워 이김으로써 자리를 얻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자요, 자기를 부정하고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자리를 얻습니다. 지배자는 살아서 역사를 지배하고 지도자는 죽어서 역사를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지배자의 자리는 다스리기 위하여 위에 군림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위치는 인도하기 위하여 겸손하게 섬기는 위치입니다. 지배자는 통솔력을 갖추어야 하며, 지도자는 지도력을 가져야 합니다. 통솔력은 외적인 조직과 권위로 창출될 수 있으나 지도력은 인격적 감화로 이루어지는 내적인 영향력입니다. 지배자는 명령으로 복종을 강요하나 지도력은 감화로 순종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배자\'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영광을 누리지만 지도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
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도자의 지침으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도자의 영성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배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일관된 자아의식을 갖고 있
었습니다. 죽기까지 잠시도 떠나지 않는 생각,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아 의식이었습니다. 이 자아 의식이 일생동안 하나님의 아들로서 확신과 능력을 갖게 하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큰 변화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예수님은 일관되게 이 정신으로 사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강력한 정치적 메시아로 군림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통하여 이루실 구원과 사랑의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고난받는 메시아, 영원한 왕좌에 오르실 메시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에 영광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달음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와 세상의 지도자는 의미가 다릅니다. 세상 지도자는 자기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자기 사상이나 철학이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마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니 곧 그리스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지도자로 삼고 따라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는 소명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웁니다. 사람이 세우고 사람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고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지도자로 세웠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았기에 보내신 분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자아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소명 의식이 강하고 하나님의 사자로서 자기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군이요 존경을 받을수 있는 자입니다. 섬기는 종의 의식을 가진 사람은 성자가 될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속물의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순교자가 될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종은 존경받는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는 죽어서 영원히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의 지도자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예수님은 지도자로서 분명한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각자 스스로 지도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이 세
운 지도자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도자입니다. 국민이 세운 지도자는 항상 국민의 뜻을 헤아립니다. 여론에 따라 일하는 방향을 세우고 추진합니다. 이런 것은 민주적인 지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헤아려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참으로 위대
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1:1)이라고 고백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지도자는 소명 의식이 분명합니다. 소명 의식은 지도자의 확신, 열정, 목적을 분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지도자는 소명 의식을 가졌기에 하는 교회 일이 쉽고, 즐겁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자기의 하는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굶어도 좋다.\'라고 생각하며 자기 일에 만족합니다. 이 일로 죽어도 영광으로 압니다. 하는 일이 쉽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기르는 것이 어려운 줄 모르고 쉽게 기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힘듭니다. 목회는 쉬운 것입니다. 세우신 분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므로 쉽고 가볍습니다. 목자는 하는 일이 쉽고 삯꾼은 힘듭니다. 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이 일 이상 더 큰 행복과 만족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일에서 최고의 보
람을 느낍니다. 위대한 지도자란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지도자는 될 수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어린 시절부터 자아의식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명 의식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는 어린 시절 웨슬레 형제들에게 분명한 소명 의식을 심어 주었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
느냐?\"\"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하나님이 위대하다 하셨습니다.\"\"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기 스스로를 이 역사의 핵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소명 있는 사람은 무명의
어느 두메 산골 목자일지라도 교회를 섬기는 자기를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웠다는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하늘이 세운 지도자 의식을 가지면 자기 위치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지도력을 갖기 위해서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크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잘못한다고 지적하시
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의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탄식과 고통을 덜어 주는 지도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 백성과 애굽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 민족적 의분이 일어나 애굽인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자칭 지도자가 저지른 죄였습니다. 이 일로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망명객이 됩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호렙 산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 내가 너를 애굽에 보내어 내 백성을 인도하여 내리라.\" 모세가 하늘이 세운 지도자의 소명을 받은 이후에는 이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권능이 차고 넘쳤습니다. 자기 백성이 원망
하고 돌을 들어 쳐죽이려고 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보내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내신 분을 알고 보내심을 받은 줄 아는 지도자는 시시한 것 때문에 싸우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르며 목적이 다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역사의 한 핵으로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핵은 작은 입자이지만 불이 들어가면 폭탄이 되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자기 존재가
비록 미약할지라도 핵이라는 의식 속에 하늘이 감동하는 성령의 불이 들어가면 폭탄처럼 전 인류의 가슴을 깨뜨리는 놀라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께서 지금도 섬기는 자를 찾으시는 음성에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앞장을 서서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자원하는 삼흥 식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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