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며 사는 삶

섬기며 사는 삶/막10:35-44

섬기며 사는 삶
막10:35-44





사람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고 머리에 서기를 원하며 다른 사람의 대접을 받으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으뜸이 되려는 목적이 무엇이며 그 사람의 사람됨이 어떠하느냐, 즉 첫째가 되어서 무엇을 하려느냐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섬기기 위해서 높아지고 으뜸이 되고 첫째 되는 것은 선한 것이지만, 섬김을 받고 대접 받으며, 영광을 받으려고 첫째가 되려는 것을 악하게 보셨습니다. 인간 역사에 섬김을 받으려고 첫째가 된

사람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며 결국에는 악을 남기고 자기는 망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을 보면 매일같이 가정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나누는 대화는 누가 크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누가 일등하고 반장 되느냐에 관심이 있고, 교회에서도 누가 더 먼저 장로, 권사, 집사가 되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역사는 화살로부터 핵무기까지 누가 더 크냐의 싸움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가시는 길입니다. 인류를 섬기는 최후의 길입니다.

주님은 이 길을 앞서가시면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며 저들이 나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은 나를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 하셨습니다. 이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구하는 바를 들어주시기 바란다며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영광 중에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며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잔과 세례는 고난에 참여하는 고통을 의미하며 견딜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의 잔을 받고 고난에 참여한다 하여도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여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서 첫째가 되는 삶의 비결은 모든 사람의 끝이 되고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을 뒤집어 놓은 가치관이요, 역사상 가장 큰 혁명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큰 것이나, 첫째는 주님의 인생관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주님은 영광을 죽음에서 보았고, 삶의 보람을 섬기는데서 찾았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으로 살고, 버리므로 얻고, 섬김으로 삶의 보람을 얻는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일생을 섬기는 종의 자세로 사셨습니다.



첫째, 섬기는 삶은 주님의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 믿는 삶이고, 제자의 삶이기에 사는 방법이 보통 사람과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땅에서 대접받는 삶이 아닙니다. 사람이 받는 영광은 내가 승리하므로 얻는다고 보는 견해와 죽음에서 얻는다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얻고, 이기고, 누리는데서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반대 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면서 세상적인 영광을 구하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제자로서 바로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하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일 되는 목적은 섬기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섬기는 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다락방에서 친히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인후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선생으로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그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섬김의 삶을 본 받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든 문제가 되는 것은 섬기는 것과 자리 다툼의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서로 자리 다툼을 하면 서로에게 큰 시험을 주게 됩니다. 개척 멤버라하여 텃새해도 안되고 먼저 신앙생활 하신 분이 나중 온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먼저 직분 받은 자가 섬김의 본, 신앙의 본,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나중 온 자도 서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높이고 교회 유익을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여기에 참 평화가 있고 종의 자세를 가지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남,여전도회, 청년회, 각 부서에서 회장을 하다가 임기 끝나면 또 섬기는 자세로 돌아가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했으면 예수님처럼 사는게 최고의 영광이며 그러한 삶은 주님처럼 섬김으로 얻는 삶입니다. 섬기는 자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입니다. 섬기는 종의 권위, 빼앗기지 않는 영광입니다.

남을 지배하는 권위, 인간 정욕의 산물이고 교만입니다. 최후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섬기는 삶은 우리에게 인생 최고의 행복을 얻게 합니다.

섬기는 자의 삶은 행복한 자의 삶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섬김을 받으려하고 겸손한 사람은 남을 섬기려 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섬기는 범위가 넓은 자입니다. 섬김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을 잘 섬기고,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섬기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누구나 다 섬기는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섬김의 질은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겉으로만 섬기는 체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깊은 마음에서 울어난 섬김입니다. 섬김의 높이는 하나님을 섬기듯 중심으로 높여 섬기는 자입니다. 평신도 시절에도 잘 섬기더니 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섬김을 통하여 우리 인격이 성숙해지고 삶이 풍성해지며 행복하여 지는 것입니다. 슈바이쩌 박사는 아프리카 선교시 행복하였느냐는 질문에 최고의 보람있는 삶이였다고 대답했습니다. 보람은 섬기는 정신적 가치의 만족감이며 공허는 육체적 쾌락의 후유증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김으로 보람을 얻은 삶은 후회가 없습니다. 상품은 돈으로 살수 있지만 삶의 보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보람은 사랑, 인내, 희생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열매입니다.

인간의 보람은 행복의 요소이고 섬김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으려 할 때 마음은 빈곤해지고 불평과 불만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사회는 섬기는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입니다. 이런 섬김이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역사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남을 섬기고 간 사람들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조건없이 섬기기 위해 살기로 한다면 이 사회는 낙원이 될 것이며 명성을 생각지 않고 봉사하려 하면 아름다운 사회와 교회가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섬기는 종의 심정을 가진다면 교회는 사회의 빛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서로 섬기려 할 때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섬김의 폭이 넓어지면 우리의 삶은 더욱 넓어지고 행복하고 풍성해 지며 섬김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행복 또한 깊어질 것입니다.



셋째, 섬기는 삶을 살 때 귀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요 12:25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사람들이 존경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섬기며 산 사람들입니다.

돈만 아는 사람들은 부유해 질 수 있으나 남의 존경이나 사랑은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는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남에게 존경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사람들이 크고자 하는 의욕은 있으나 높아지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에게 대접 받기 보다는 우리가 남을 대접하려고 하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마음을 섬기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위대한 인생들은 자신을 위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용할까? 생각지 아니하고 나의 재능을 사용하여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길까 생각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43절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여기 섬기는 자 디아코노스(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말입니다. 청지기인 것입니다. 모두 섬기는 자입니다. 섬기는 자의 직분을 잘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담력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딤전 3:13)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지위는 섬기는 자가

얻는 것이요, 이 사람은 죽은 후에도 존경받고 추앙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최고의 축복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일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사랑,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받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는 알바이트 슈바이쩌 박사를 존경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 이유는 일생을 하인처럼 섬기는 자세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명을 억압받고, 가난한고, 병든자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별처럼 빛나는 사람은 섬기며 산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개인적인 권력, 출세를 위하여 자신의 위치를 높이는 자를 위대하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은 불쌍한 독재자, 허무한 지도자, 죽은 후에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지위는 누릴 때 당당하다가도 지위에서 내려오면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때문에 자살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의 지위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이가 더해 갈수록 천하게 느껴집니까?

인생이 가치있고, 소중하게 느껴집니까? 늙어 갈수록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죽을 때 천해지는 사람이 있고, 더욱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늙을수록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죽을 때 천해지는 사람이 있고, 더욱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늙을수록 귀하게 되는 비결은 섬기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여자는 늙을수록 추해질 수 있으나 일생을 섬기는 자로 사신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한 남편을 잘 섬긴 아내는 위대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은 섬기면 섬길수록 빛이나는 것입니다. 한 일없이 신앙 생활하며 늙어가는 교인은 천합니다. 그러나 일생을 섬기고 종으로 봉사하는 성도는 땅에서나 하늘에서 귀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름만 장로, 권사, 집사, 성도가 있습니다.

구색은 갖추었으나 존경받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충성되어 일하는 일꾼이나 말없이 순종하는 직분자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은 철저히 희생하시며 섬기는 자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섬기며 사는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