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려고 오신 예수

섬기려고 오신 예수/마20:20-28

섬기려고 오신 예수
마20:20-28





얼마 전에 우리 사회의 명사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유는 고독이라는 병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에 \\\'아! 고독한 인생이여. 어찌 더 살 수 있단 말인가?\\\'하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를 죽게 한 살인자는 고독이란 놈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봐서 고독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님도 계시고, 처자식도 있고, 친구와 제자도 많습니다. 학원에서는 존경받는 스승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명성 높은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에 이를 만큼 고독했습니다. 과연 그의 고독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사상의 고독이었습니다. 아무도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삶을 나눌 진정한 벗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는데 피에르 케고르는 이 고독을 가리켜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 과연 그게 무엇일까요? 서로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비록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 먹고 한 이불 속에서 뒹구는 관계일지라도 서로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면 피차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에 이르도록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한 번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분이 있다면 그분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그분은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인간적으로 고독한 분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분의 마음과 생각, 인생관과 가치관을 알아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어떻게들 알고 몰려왔는지 수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께 모여와서 환호를 지르고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환호와 열광 속에서 한없이 외로워하시고 우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환호하며 따르는 그들, 과연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어떻게 오셨는지 알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빵을 얻어 먹을까, 기적을 구경할까.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면서 따랐습니다. 어찌 군중들뿐이었겠습니까. 열 두 제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년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배우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과는 동상이몽이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러기에 보십시오. 예수님꼐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십자가 지실 것을 골똘히 생각하고 준비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전혀 엉뚱한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이스라엘 왕으로 군림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한없이 고독해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주목해 보십시오. 오늘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대표적인 실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거기서 되어질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고 계십니다. 원수들에게 붙잡힐 일, 빌라도의 법정에서 억울하게 재판 받으실 일,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일들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두 아들 제자를 데리고 나타나서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자기 아들들을 예수님의 좌우 편에 앉혀 달라는 인사청탁이었습니다. \\\"예수님,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이 나라 왕이 되실텐데 그 때 내 두 아들을 좌우정승으로 벼슬을 제수해 주십시오.\\\"하는 부탁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은 너무도 외롭고 답답해하시지 않았겠습니까?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노치 않으시고 타이르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무슨 뜻입니까? 지금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 것은 너희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희 생각처럼 왕이 되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지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라는 그 말입니다. \\\"너희도 내가 지는 그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하는 물음입니다. 그러나 이 철없는 여인과 그 두 아들을 보십시오. 할 수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시고 말고요. 주님께서 물을 마시면 나도 물을 마실 것이고, 주님꼐서 술을 마시면 나도 술을 마실 것입니다.\\\"하는 그 따위 대답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니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아마 그 때 다른 제자들도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분개합니다. \\\"이 파렴치한 것들. 저희끼리만 다 해먹자는 거냐? 이제까지 함께 수고한 우리는 어쩌라는 거야.\\\"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신 예수님의 심경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외롭고 쓰리셨겠습니까. 정말 화를 내고 분통을 터트려야 할 일은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한심한 제자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간곡히 권하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깨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무슨 뜻일까요? 제발 그런 세속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큰 사람 으뜸 되는 사람이 되려면 남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정말 크고 으뜸 되는 사람이 되려면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으뜸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출세 성공한 자가 되고자 하느냐. 승리한 자, 영광된 자이고자 하느냐. 과연 그가 누구냐, 권력 있어 남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자냐. 돈이 있어 남을 부리는 자냐.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하고 악하고 추한 세속적인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판단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시각과 판단기준은 결코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크고 으뜸가는 사람이라면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여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또 하나의 목적이 분명히 밝혀집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강절 기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대강절기간에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들을 묵상했습니다.

첫 번째 주일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지난 두 번째 주일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러 오신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대강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따르겠습니다. 진실로 성자 예수의 지상생애, 종의 생애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거룩한 종이라 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예수님을 스스로 종이 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졌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늘 영광의 보좌를 비우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평생토록 남에게 대접 한 번 받지 못하시고 오직 남을 섬기며 대접하며 사신 사람들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특히 그분은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섬기셨던 불행한 이들의 종이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까지도 씻겨 주셨던 제자들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죄인들을 위해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죄인들의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같은 종의 생애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누군가? 참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누군가를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참으로 큰 사람, 으뜸가는 사람, 위대한 사람이 누군가를 확실하게 보여 주십니다. 진짜 출세한 사람, 성공한 사람, 승리로운 인생이 어떤 인생인가를 보여 줍니다. 진정 우리가 바라고 구하고 추구해야 할 그 삶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것은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구하고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주랴? 하나만 구하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 주님, 어떤 형편에서든지 겸손히 남을 섬기며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오래 전입니다.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창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는 그런 때였습니다.

제5공화국의 비리의 주역들이 재판을 받을 그 때였습니다. 저는 그 TV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그랬더니 한 아이가 서슴없이 유명한 의사가 되던지 법률을 공부해서 정치가가 되던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냐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의 대답은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유명한 의사가 되야만 돈을 많이 벌게 되고 또 정치가가 되어야 신나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래서 기도햇습니다. \\\"오! 주님. 이 죄인의 집에서 장차 5공 비리의 주역이 또 나오게 생겼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세요. 공부 왜 합니까? 왜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까? 왜 반드시 출세성공 해야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가치입니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인생입니다. 공부를 해도, 돈을 벌어도, 출세 성공해도 궁극적으로 남을 섬기는 종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매우 초라하고 하잘것없는 소인의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말 큰 사람, 위대한 사람, 성공적인 인생, 잘 사는 인생,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인생 외에 그 어떤 인생도 없습니다. 이것이 참 예수의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와는 너무 먼 거리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보십시오. 저들은 메시야 민족으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메시야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메시아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메시아가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영광의 왕으로 오실 것만을 생각하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이 아닌 영광의 왕의 모습으로만 예수님을 믿고 바란다면 우리는 절대로 예수를 참되게 만나고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확실히 병들고 죽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영광의 왕이십니다. 저 영원한 천국에서 예수님은 영광의 왕으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사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지상 생애를 살 동안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2천년 교회사가 말해줍니다.

2천년 교회사를 조명해 보세요.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사는 교회와 성도들, 참된 신앙을 보존했습니다. 살아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종의 모습을 버린 교회와 성도들 어떠했습니까? 다 타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역사 앞에 심판을 받고 맙니다. 그렇기에 신학자 슈바이처는 이런 간증을 합니다. 그는 한때 신학자로서 예수가 누구신가 예수전을 쓰기 위해서 연구실에 처박혀서 펜을 들고 열심히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 한 마디의 글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펜을 내어 던졌습니다. 연구실을 박차고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직접 예수님이 걸으신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종의 길이었습니다. 저 암흑의 땅 아프리카 람발이라는 곳으로 달려가서 거기서 불쌍한 흑인들을 섬기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예수를 알았습니다.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예수전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전은 종이에 쓴 예수전이 아닙니다. 인류역사의 가슴에 쓴 예수전이었습니다. 이렇듯 기독교는 말의 종교가 아니요 행동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예수님의 종의 도를 몸소 실천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종 되기를 거절하고 상전되기를 원하는 이들 있습니까? 남 섬기기를 거절하고 섬김 받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그는 참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적 그리스도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성자 예수도 일생을 남을 섬기는 종으로 사셨는데 누가 섬기기를 거절한단 말입니까? 진실로 예수님과 함께 겸손히 남을 섬기며 살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예수 안 믿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예수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르게 살 길은 없습니다. 예수를 따라서 겸손히 남을 섬기며 사는 그 길 박에는 다르게 사는 길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겸손히 헌신하며 봉사하는 삶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삶, 복되고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나라 안팎에서 떠뜰석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 봉사한 자가 받을 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의 노벨상일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돌아가셔서 누가복음 7장을 읽어보십시오. 거기 보면 창녀 마리아라는 버림받은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는 한 때 환락의 거리에서 욕정을 불태우면서 추하게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에서 온 것은 허무와 환멸뿐이었습니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쓰디쓴 인생이었습니다. 이 불행한 여인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때 마리아의 인생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놀라운 삶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때 마리아는 지난날 잘못 산 것을 후회하고 청산합니다. 이제껏 잘못 투자했던 자기의 몸과 마음과 사랑을 주님을 위해서 바칩니다. 자기 생명처럼 아끼던 그 귀한 옥합을 깨트려서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립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십니다. 머리카락으로 씻어 내립니다. 그 발에 하염없이 입을 맞춥니다. 절대사랑, 절대 헌신을 맹세하는 뜻입니다. 이 때 예수께서 그 여인을 향해서 말씀하시지요. \\\"진실로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내 복음이 전파되는 그곳에서 너의 행한 일도 전파되어 이를 기념하리라.\\\" 드디어 이 버림받은 여인이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초대교회사에 빛나는 거룩한 성녀가 됩니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복되게 만들었습니까. 주님께 바친 그 사랑과 헌신이 만들어 낸 걸작품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일찍이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은 그 어떤 인생 투자도 다 헛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대 인생은 한판 도박이다. 단 한번밖에 투자해 볼 수 없는 한판 도박이다. 그대 인생 그 어디에 투자해도 다 헛될 뿐이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 투자해 보아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겸손히 이웃을 섬기며 살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사람들, 이웃도 사랑하며 섬길 줄 압니다. 그리고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흑백 차별이 아주 극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성 시온교회라는 흑인 교회에서 수난절에 세족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예식입니다. 그 교회에 올리버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흑인교회 장로가 된 것입니다 .그는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판사였고 차기 대법원장에 내정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올리버 장로님이 큰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 세족식에서 자기집 하녀인 흑인 여종의 발을 씻깁니다. 그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발을 씻겨 줍니다. 발 뿐만 아니라 그 입에 입을 맞춥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백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백인 망신시켰다고 돌을 던질 일입니다. 그렇기에 교우들은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버 장로님은 그 만류를 뿌리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나같이 미천한 자를 위해서 당신의 몸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의 발을 좀 씻겨 주는데 무슨 허물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분은 평생토록 우리 집에서 우리 자녀들의 발을 씻겨주었던 고마운 분입니다.\\\" 그리고 발 씻기는 일을 계속합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백인들이 분노했습니다. 내정된 대법원장 자리는 물론이고 판사직에서도 축출해 버렸습니다 .그때 그가 판사직을 물러나면서 위로하기 위해서 몰려든 교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판사직도, 대법원장직도 죽음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는 그런 먼지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귀합니다.\\\" 이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체험한다면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역마차가 다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 역마차 좌석은 1등석, 2등석, 3등석으로 나뉘어 졌다고 합니다 .그 역마차가 언덕에 오를 땐 차장이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합니다. 1등석 손님은 그대로 앉아서 가십시오. 2등석 손님을 내려서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3등석 손님은 이 역마차가 언덕 위를 오를 때까지 뒤에서 밀고 가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누구일까요? 이 3등석 일꾼들입니다. 마치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혼자만을 위해서 걸어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마차를 밀고 가는 사람입니다.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겸손히 남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대접받을 사람 없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부모도 자녀를 섬겨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섬겨야 합니다. 남편도 아내를 섬겨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섬겨야 합니다. 성도도 목사를 섬겨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섬겨야 합니다. 어른도 아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자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섬김을 받을 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섬기는 자의 삶속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섬기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재능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미소와 정다운 언어로 눈물의 기도로 섬기는 이 소중한 섬김도 있습니다. 어떤 시인이 고백을 했습니다. \\\"님께서 달라시면 나의 가장 소중한 것 나의 눈물을 드리리이다\\\"했습니다. 맞습니다. 눈물이야말로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가장 소중한 섬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날 톨스토이가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까 그날 따라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톨스토이는 그에게 말합니다. \\\"형제여. 마침 가진 돈이 없어서 그대에게 줄 수 없어 미안하오.\\\" 그때 그는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돈이 문제입니까? 저는 이 순간 선생님으로부터 돈보다 훨씬 더 값진 선물을 받았는걸요. 선생님이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신 바로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값진 선물, 고귀한 선물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섬김입니다. 이 절망의 25시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복음이고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복음을 통해서만 이 시대와 역사를 구원하고 황폐해진 민족의 가슴속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섬김의 삶속에 축복이 넘칩니다. 풍성한 삶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생이 주어집니다. 아무리 소유가 많고,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아무리 지위와 명성 높을 지라도 겸손히 남을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유치원생보다도 더 유치한 인생입니다. 비록 남보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있는 그것 가지고 남을 섬기며 산다면 천사도 흠모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결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닙니다. 그 소유를 가지고 얼마나 가치있게 살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놀라운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5년전 권위 있는 갤럽조사에 의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를 4가지 면에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행복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삼의 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가정생활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한 가정은 그렇지 못한 가정보다 훨씬 더 평안하고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인격과 성품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너그럽게 살았다고 합니다. 네 번째는 생활의 풍요도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한 가정은 그렇지 못한 가정보다 시간과 돈을 훨씬 더 많이 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워너 메이커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진짜 거지는 돈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대접만 받으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패니라는 미국의 백만장자가 있습니다. 그의 체인스토어만 해도 2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는 58살 때 파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신앙으로 재기해서 성공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가장 많은 헌금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파산한 후에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때 사업의 목적이 하나였습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느냐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남을 섬기는 기업이라는 이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기업을 운영해서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말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전에 파산한 이유를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피 땀 흘려 번 돈이니 그 돈이 내 돈이라고 착각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사업에 성공한 그 이유도 내가 분명히 압니다. 아무리 내가 피 땀 흘려 벌었을지라도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움켜쥐는 기쁨보다도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큰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힘이 어디 있다고 봅니까? 우리교회의 힘, 우리 그리스도인의 힘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봅니까? 헬라사람들은 그 힘이 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사람들은 그 힘이 무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 힘이 돈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사람들은 그 힘이 정신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힘이 프로레타리아 혁명 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그 힘이 과학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섬기는 봉사의 힘입니다. 종의 도에서 나온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님의 힘입니다. 참되고 영원한 힘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남을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