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으로 아름다운 그 이름들 롬16:3-16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복을 받을 참으로 아름다운 그 이름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 책을 읽는 중에 정말 아름다운 권사님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연세가 80세가 넘으신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는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서는 정말 존경을 받는 권사님이시오, 하나님께는 온전한 헌신을 다하는 귀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아프리카 선교를 하는 그 선교사님께 매달 선교비를 보내드리는데 어떤 때는 $40, 또 어떤 때는 $80, 가끔은 또 $100 이렇게 선교비를 들쑥 날쑥 마음대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님은 처음에 이 선교비를 받으시고는 오해도 참 많이 하셨답니다.
선교비를 이렇게 마음대로 보내시니 생활이 넉넉하지 않으신 분이신가? 아니면 생활에 계획성이 없어서 쓰다가 남으면 선교비로 보내시는가? 하면서 생각을 하였는데 멀지 않아서 곧 그 궁금함이 풀렸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미국 뉴욕에 사시는 분이신데 그 얼마의 선교비를 보내시기 위해서 직접 길거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깡통을 주워 그것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선교비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자녀들이 아무리 선교도 좋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해서까지 선교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렸지만 그 권사님은 개의치 않고 그렇게 묵묵히 그 일을 하시면서 선교비를 마련하여 매달 매달 지구의 한 켠 모통이에서 힘을 다해 한 생명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 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그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서 선교비를 그렇게 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선교사님이 미국에 가서 너무나도 감동적인 선교비를 보내 준 이 권사님을 찾았을 땐 이미 권사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신 뒤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선교사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그 선교사님은 복이 있는 분이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 영혼을 사랑하셔서 깡통을 줍는 것을 수고로 생각하지 않고, 구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행하는 든든한 동역자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이 권사님이 가진 그 아름다운 섬김을 보고 구차스러운 섬김이라고 비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한 생명이라도 더 얻도록 하기위해 스스로 길거리에서 깡통을 줍는 이 권사님의 거룩한 섬김을 보고 주책이라고 입을 삐쭉 거릴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한 영혼을 사랑하여 정말 귀하게 그들을 섬기는 아름다운 이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낮설은 곳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기에 때로는 신분의 문제로, 때로는 살아야 할 주택문제로,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인정 받는 아름다운 이름의 소유자들이 될 수가 있고, 우리의 작은 섬김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서 자유를 맛보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궁금한 것이 왜 바울 사도께서 이 본문을 기록하였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롬15장을 보시면 33절에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면서 이 서신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 대해서 많은 성경 학자들은 바울은 여기서 이 로마서를 끝맺으려고 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왜 바울은 다시 16장의 말씀을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분명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바울은 그의 사역을 위하여 묵묵히 동행하여 온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바울은 저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 하기도 하고 더 많은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일을 위하여 섬기는 동역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알리고 도전을 주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고 의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사역이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으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게 될 사람을 키우는 것이 바울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행한 이 사역으로 정말 귀한 일꾼들이 얼마나 많이 양육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모든 사람들은 정말 아름다운 동역자들이였고 귀한 섬김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그 사역은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권세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물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바울이 이 어려운 일을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정말 좋은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였지만, 때로는 강도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같은 형제들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 사역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기에 그는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었고 결국에는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바울! 그와 함께 한 사람 중에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사람을 꼽아 보라면 우리는 주저함이 없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사람을 꼽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정말 성실한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정말 믿음직한 부부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원래 로마에서 살았으나 로마의 제 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라는 사람이 내린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서 이들이 고린도에 와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2차 전도여행 중이던 바울 사도를 만난 것입니다. 바울과 이들 부부는 직업이 장막을 수선하는 것이었기에 아마 쉽게 만날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막을 수선하고 만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정말 필수적인 직업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절기 가운데 장막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이 절기는 광야 40년 동안에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그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적어도 일주일은 장막에서 지내야 하였기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직업입니다. 바울과 함께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부부가 바로 이런 장막을 만들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를 오늘 본문에서는 표현하기를 “바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을 아까 와 하지 않고 버릴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15: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면 곧 나의 친구가 되고 내가 친구가 된 너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이 끝이 난 뒤에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마26:35절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께 고백한 그들의 각오였습니다. “내가 어떤 경우이던지, 내가 죽을 경우라고 할지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그들의 각오를 내 보입니다. 친구가 되었고 사랑하는 관계가 된 주님을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며 모른다고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병들을 피하여 제자들은 자기 살자고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하였으며 대 제사장 집의 여자아이가 베드로에게 “너도 갈릴리 사람이다 네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그는 주님을 저주하며 맹세하며 나는 그를 모르노라고 부인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의 목을 내어놓고 그를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울 자신을 위하여 목을 내어놓는 사람,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는 바울을 돕기 위하여 그가 전도하여 세운 빌립보 교회에서 에바브로다도라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생활을 뒷바라지 하면서 바울을 도와주게 하였던 것, 또 늘 건강문제로 고민하면서 이것이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의 가시라고 알고 있던 바울을 위하여 누가라는 의사 동역자가 한시도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건강을 지켜 주었던 것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던 디모데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가 있는 바울을 정말 정말 복 있는 전도자이고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동역자. 이들은 바울을 도와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였지만 오히려 은혜와 복은 바울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함께 협력하여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운 것을 새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는 이 구절을 주의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막15:21절에 보시면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기록된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똑 같은 이름인 루포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 사람, 수많은 구경꾼 가운데 지명 당하여 사형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던 그 사람.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들이 알렐산더와 루포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이들을 표현하면서 하는 말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이라고 합니다. 즉 이 말은 “다른 사람들 보다 그리스도안에서 봉사와 충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면서 왜 하필이면 내가 지목을 당해야 하나, 참 재수가 없네 라고 구레네 시몬이 그렇게 말을 하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원하지 않았지만 주님을 일을 감당하고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었던 그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자손들에게 전달되어서 그 아들 루포가 “다른 성도들 보다 더 뛰어나게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 하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이런 어려운 사역을 감당하는 외로운 바울을 위하여 그 루포의 어머니는 자상한 돌봄과 위로를 가지고 격려 하였기에 바울이 그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자기의 어머니로 여길 정도 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섬김이 그 대를 잇고 있는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섬김을 다한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자녀들은 반드시 또 아름다운 섬김을 하되 부모님의 대를 이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귀한 사람들이 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왜요!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였던 그 믿음의 고백 위에 아들 이삭이 믿음을 이어갔고, 또 아버지 이삭이 하였던 그 믿음의 고백 위에 아들 야곱이 믿음을 이어갔기에, 그들은 한분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들의 부모들이 하였던 그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나의 것으로 믿고 그보다 더한 섬김을 다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제나 같은 하나님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있습니까?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그 이름들이 있습니까? 정말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할 진정한 동역자들이 있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16장을 통하여 그와 함께한 아름다운 동역자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만도 대략 26명 정도의 이름이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전도자였지만 그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그들에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섬김으로 아름다운 그 이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이름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드니 복음화에 정말 두고 두고 기억될 아름다운 이름의 주인공들이 꼭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늘 예배 마지막에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라는 찬양을 함께 부릅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의 마음,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라고 우리는 찬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진 것 모두다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라고 더 힘주어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로서 헌신하겠다는 다짐의 찬양입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때는 정말 헌신하는 마음으로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니 주님 저를 사용하시되 아름다운 섬김을 다하는 사람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라는 고백 위에 우리는 이 찬송을 늘 불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을 행함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지는 아름다운 그 이름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에든지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 시드니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도시가 될 때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들의 이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격려를 주는 귀한 이름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약한 자를 최선을 다해서 섬긴 아름다운 귀한 이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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