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섬김과 꿈이 있는 교회

사랑과 섬김과 꿈이 있는 교회/행13:1-3

사랑과 섬김과 꿈이 있는 교회
행13:1-3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의 사장이 된 하로 카터스에게는 이런 뒷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미시건 주의 후린트라는 마을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성장하여 똑같은 날, 똑같이 그 마을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둘 다 완성된 자동차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파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형은 65세로 그 회사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그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페인트 공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형을 인터뷰를 하며 “당신은 입사부터 은퇴할 때까지 줄곧 페인트 파트에서 일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페인트 파트에서만 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쫓기는지 그곳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겨서 다른 일을 할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신문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동생은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이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시간과 돈을 벌 수 있었나요?” 그러자 형은 “아! 제 동생은 야심가였으니까요?”라고 가볍게 대답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동생은 날마다 자동차에 페인트를 칠하는 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당당한 인생을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낮에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경리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후에 그는 경리 전문가가 되었고, 페인트 공으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제너럴 모터스의 경리사원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리 파트에서 성실히 일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 때 그는 분쟁을 지혜롭게 해결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높은 목표, 더 귀한 목표를 세우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결국 그는 페인트 공으로 일하던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목표의 중요성입니다. 목표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나 사업계에서나 경제계에서나 정치계에서나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확고부동한 목표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지였다가 30대에 백만장자 세일즈맨이 되었고, 후에는 <성공동기연구원> 원장의 자리까지 오른 폴 마이어는 “97%의 사람들은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떠돌아다닌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열심히 삽니다. 사람들 가운데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삶의 구체적인 목표를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그러다보니 양손으로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보트와 같이 제 자리에 빙글빙글 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배가 앞으로 쭉쭉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고 싶은 목표 지점을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목표를 보고 노를 저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가정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교회도 열심히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9살 반이 되었습니다. 오는 8월7일이면 우리 교회는 만 10살이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새롭게 달려갈 또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2003년도가 우리 교회의 사역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1년이 될 것 같아, 그 동안 교역자 모임, 샘지기 모임, 개인양육, 제자훈련, 남선교회 모임, 등의 자리에서 뿐 아니라, 골방기도 제목으로, 새벽기도의 제목으로 내놓고 중보 기도를 부탁하고 저 자신도 2개월 이상을 이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저에게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으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겠는데, 사실 초대교회라고 해서 다 훌륭한 교회는 아니지 않습니까? 윤리적으로 잘못된 교회도 있었고,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교회도 있었고,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도 있었고,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상실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많은 초대 교회들 가운데 한 교회를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저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가 닮아가야 할 모델이 이 안디옥 교회라고 믿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목표로 하고, 우리가 꿈꾸어야 할 교회라고 믿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며 우리 교회의 모델로 삼으려고 합니다.



1) 모든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교회
오늘 우리가 닮기를 원하는 안디옥 교회는 사랑으로 연합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교회였습니다. 1절을 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제일 먼저 바나바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나바가 누구입니까? 사도행전 4장 36절과 37절을 보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기록된 것을 보니 그는 키프러스라고 하는 구브로 출신의 귀족으로 밭을 팔아 교회에 바칠 만큼 땅 부자였습니다. 두 번째는 니게르라고 불리우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니게르는 라틴어로 니그로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피부색 검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안디옥 교회에는 피부색이 검은 흑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루기오입니다. 루기오는 구레네 출신입니다. 구레네는 오늘날로 말하면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의 중심도시로서 그 역시 흑인 출신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마나엔입니다. 이 마나엔은 육신의 동생은 아니었지만 같은 유모 밑에서, 같은 젖을 먹고 자라난, 헤롯왕의 젖동생이었습니다. 그 역시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또 1절과 2절에 의하면 후에 바울로 개명된 사울과 바나바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울의 나이는 본문이 기록될 때에는 한참 피가 끊는 나이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이미 중년을 넘긴 나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을 정리해보면, 교회 안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귀족들 뿐 아니라 평민들도 있었습니다. 피부색이 검은 유색 인종의 사람들 뿐 아니라, 백색 인종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레위인 출신의 말씀에 능통한 사람 뿐 아니라,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 뿐 아니라, 연세가 지긋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사랑으로 연합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낳은 모교회입니다만, 저는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가자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비해서 벽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함께 떡을 떼며, 교제하고 전혀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로서, 하루에 3,000명씩, 5,000명씩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전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없고 모두 유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전혀 달랐습니다. 민족과 국가와 인종과 나이와 모든 문화의 벽을 무너뜨린 교회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배경과 상관없이 함께 사랑으로 연합되었고, 계속해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전하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1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이 안디옥 교회의 모델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모이는 예루살렘교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안디옥 교회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립 이래 1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을 둘러보면 창립이래로 계속적으로 주님의 전을 위해 섬기시는 분들도 계시고 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또 삶의 터전을 완전히 이주하여 뉴질랜드로 이민 오신 분들도 계시지만, 자녀나 본인의 학업을 위해 유학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또 올해 76세 되신 연세 드신 분부터 나이가 적은 청년, 학생,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나 뉴질랜드에 있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우리 교회에는 매우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모습이 우리에게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만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처럼, 소수의 타민족 형제들이 있기는 있지만, 아직도 우리 교회 안에는 대부분 한국사람 들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한국인만을 위한, 한국인의 교회가 되는데 반대합니다. 적어도 성경에 근거한 교회는 소수 집단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만민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줄로 믿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유대인 뿐 아니라 헬라인, 이방인 등,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처럼, 교회는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 한국 성도들 뿐 아니라 뉴질랜드 성도들과 중국 성도들과 일본 성도들, 대만 성도들, 하다못해 북한 성도들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오리 형제들이나 흑인 형제들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을 뿐 아니라, 만민이 서로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10주년을 맞이하는 새해 2003년에는, 아니 앞으로 새롭게 10년을 시작하는 올해에는 우리 교회가 지역과 계층과 인종과 나이와 세상의 편견들을 허물고 만민들에게 문이 열려있는, 만민을 위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역방향 중에 2부 예배를 더욱 활성화 시키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부터 2부 예배에서는 한국말을 모르는 형제들을 위해 통역기를 사용하여 영어 통역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2부 예배에서는 말씀 요약을 한국말 뿐 아니라 영어도 함께 스크린에 띄우고, 찬양 가사도 한국말과 영어를 동시에 스크린에 띄우는 것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일본어나 중국어로 통역하는 문제도 검토하려고 합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한국말로만 설교하지 아니하고 영어를 섞어 설교를 하고, 좀더 발전이 되면 영어권에서 훈련받은 영어 설교가도 초빙하여 말씀을 전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를 Korean Church라고 부르지 말고, Christchurch Full Gospel Church라고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모 지역처럼 구파와 신파가 따로 따로 물과 기름이 되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아름다운 섬김이 있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만민이 모여 사랑으로 연합되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섬김이 있었습니다. 2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여기 2절에서 ‘섬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는 worship the Lord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의미에서의 섬김을 말합니다. 그리고 KJV에서는 minister to the Lord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미에서의 섬김을 말합니다.
먼저 ‘예배한다’는 의미에서의 섬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예배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냥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먹을 것 먹지 아니하고 마실 것 마시지 아니하고 주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예배에 목숨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 현실은 어떻습니까? 예배 시간이 10시30분인데도 자리를 돌아보면 1/5도 차지 않습니다. 금요일에는 이미 7시30분이 되었는데도 앞자리에 겨우 7~8명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앉아서도 예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도록 큰 소리로 잡담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새 학기 들어 학교 갔더니 어리벙벙하다, 이사 간 새집이 어떠냐, 한국 잘 다녀왔느냐’, 별의별 이야기를 하면서 잡담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예배시간에 들랑 달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무슨 피크닉 가듯이 티셔츠나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 질질 끌고 오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이제 이러한 모습이 올해에는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의 은혜는 준비된 사람이 받습니다. 예배의 성공은 이미 준비단계에서 좌우됩니다. 요즈음 프로 야구선수들이 스프링 캠프에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프링 캠프에서의 준비가 1년 동안의 시즌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스프링 캠프에서의 훈련 결과에 따라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고 나쁜 성적을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성공은 예배시간에 있지 않고 예배 시간 전의 준비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예배 전에 부부싸움을 하든지, 자녀와 티격태격하든지, 과속을 해서 경찰에게 딱지를 떼이고 나서 예배에 참석했을 때,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예배의 성공을 위해서, 주일날에는 부부싸움이 일어날 것 같으면 가급적으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을 위해서 예배 전에는 자녀들을 야단치지 마시고 꼭 필요하다면 예배 후에 야단을 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예배의 성공합시다”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최소 예배시작 10분전에 자리에 앉아서, 드릴 예배를 위해, 찬양팀을 위해, 주실 말씀을 위해 중보하며 준비함으로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짧은 목회경력이지만, 예배 시간에 늦게 오고, 예배시간에 딴청 피우고, 예배 시간에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1주일 내내 예배를 사모하지도 않은 채 세상일에 쫒기 듯이 살다가 주일이 되어 먼지 쌓인 성경책 끼고 오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조그마한 일에도 시험 들었다느니, 시험보고 있다느니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예배를 위해 금식하고 예배를 위해 중보하고, 1주일 내내 예배를 사모한 사람이 은혜 받지 못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기대하며 사모하고 기도로 준비하는 분들은 꼭 예배를 통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예배에 목숨 걸었던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을 아름답게 예배하는 섬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타나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봉사한다’는 의미에서의 섬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을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섬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 교회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내 집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를 다른 교회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교회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손님은 밥만 먹고 갈 수 있습니다만, 주인은 밥만 먹지 못합니다. 뒷정리를 합니다. 만년 손님의 자리에 있지 말기를 바랍니다. 1주일이 지나고 1개월이 지나는데도 구경꾼이 되어 구경꾼만 있으면 교회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다보면 교회가 사랑스러워지고 자기 자신의 믿음도 좋아집니다. 부족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자신의 신앙도 성장합니다. 비록 음치지만 계속해서 1년 동안만 찬양팀에 서 보십시오. 아무리 음치라도 1년을 찬양으로 봉사하면 찬양실력이 엄청나게 늘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의 유익입니다.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아름다운 섬김의 손길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을 위한 봉사는 교회 안에서만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밖에서도 주님을 위한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삶입니다. 삶이 무엇입니까? 밥 짓고 일하고 빨래하고 운전하고 공부하고 이런 것들이 다 삶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는 삶의 현장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가 교회 안에서만 주님을 위해 섬겼는데 교회 밖으로도 눈을 돌렸으면 합니다. 뉴질랜드 사회에도 깊숙이 들어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섬겼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주중에 교회 안에 영어 강좌를 개설하거나, 컴퓨터를 모르는 성인들을 위해 주중에 교회에 컴퓨터 단기 코스를 개설하는 등의 문화사역을 통해, 불신 유학생 부모님이나 청년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접촉점을 마련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물질로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바로 앞에 있는 Woolston Primary School이나 Linwood High School 같은 학교에 교회 이름으로 장학금이나, 성적이 좋은 졸업생들을 위한 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은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는 장학금이라고 해봐야 겨우 수백불이면 되고, 우수 졸업생을 위한 상도 100불의 가치도 되지 않은 조그마한 트로피와 5~60불짜리 선물 정도면 충분합니다. 또 올해에 우리 교회 출신이 5명이나 학업하게 될 BCNZ, 즉 뉴질랜드 바이블 칼리지에 교회 이름으로 기부금을 보냄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일꾼을 양성하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뉴질랜드로부터 빚을 많이 졌습니다. 개척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받기만 많이 하고 주는 것은 고작 세금 내는 것에 불과 했습니다. 이제는 1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찌하든지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섬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을 위한 비전을 주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주님을 위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예루살렘 교회는 현실만을 보는 교회였습니다. 물론 저는 예루살렘 교회의 축복과 영광스러움을 잘 압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인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에 능동적으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은 알았지만, 더 이상 밖으로 뻗어나가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땅 끝까지 복음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작전을 벌이셨는데, 그것이 바로 핍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명령에 능동적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달랐습니다.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께서 한 번 말씀하시자 곧바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파송했습니다. 비록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의 핵심 멤버였지만, 주님을 위해 그들을 따로 세워 파송할 만큼 그 교회는 주님을 위한 비전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이러한 비전을 주는 교회였습니다. 사실 비전이 없으면 지도자도 아니며, 그런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비전이 없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며 비전이 없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주님이 우리들에게 이미 비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비전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평생 동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까? 헬렌 켈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평생 동안 부를 노래가 있는 사람, 생명 걸고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는 사람, 목숨 걸고 달려갈 목표가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주님을 위한 비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처럼 주님을 위한 비전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비전을 나눠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과 같이 눈앞에 있는 풀을 뜯어 먹는데 급급해하지 말고, 멀리에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는 목자와 같은 비전을 갖기를 바랍니다.
저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사역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로 1.5세들이나 2세들, 그리고 평신도들과 같은 차세대일꾼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둘째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민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2부 예배에 예산도 대폭적으로 지원하며 후원하려고 합니다. 셋째로 소그룹 모임인 샘모임을 활성화하여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넷째로 미션 2001과 미션 2002를 다녀왔지만, 지속적으로 단기선교를 파송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성전증축이라는 프로젝트를 <비전센터 건립>으로 바꾸어 우리의 비전을 위해 준비하고 훈련하는 비전센터를 건축하고자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올해에 끝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리의 사역 목표로 계속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비전과 사역목표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를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제도와 교회라는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가 건강해야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목회자들에게 목표이기도 하지만, 모든 성도들에게도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나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회를 통해서 영적인 갈증을 해결하고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교회를 사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나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나의 영혼과 인생을 위해서도 좋은 교회를 사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까? 안디옥 교회입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와 같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주님을 위해 예배하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섬김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비전 있는 성도 주님을 위한 비전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