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이 많은 좋은 교회 요13:1-11
요즘 저희 집은 정원을 정리한다고 참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일 정원을 정리하면서 아주 귀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나무의 밑이 위보다 더 두겹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나무일수록 나무의 아래가 더 굵고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느 한 나무도 예외가 없이 모든 나무들의 줄기는 아래가 굵고 위가 작다는 것입니다.
아마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것으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한 것을 뭐 그리 말씀합니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주 당연한 것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잊고 살기 때문에 문제가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래가 튼튼하고 강하여야 합니다.
이 진리를 주님은 몸소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몸으로 보여 주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 사건은 주님께서 이제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이별을 몇 시간 앞두고 행하신 일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제 마지막으로 몇 시간뿐의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어져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가장 확실하게 알아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지 않겠습니까? 이제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 그 동안 2년 반 동안 거의 3년을 동거 동락하던 모든 제자들과 헤어져야 그 시간에 주님은 지금 행동으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13장 1절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같이 읽어볼까요!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제 주님께서 때가 되심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된 이제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는 그 가운데서도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과는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 섬기기는 하지만 그 때는 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내가 넉넉할 때입니다. 내가 힘이 들고 내가 고통스러우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상대방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제자들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에 서로가 높은 자리를 탐내며 싸웠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는 주님을 배신할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땅의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섬김과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좋고 상대방이 잘 할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내게 유리하기에 .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말씀하시고 바로 유다의 배반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끝이 없는 사랑 그러나 그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랑을 가진 그 사랑을 바로 옆에서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주님을 배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요한은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과 유다의 배반을 대조시키며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분개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유다만 생각하면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만히 돌아다보면 우리가 그 유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늘 하나님의 배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 . . .
혹시 여러 직분자들이 교사나 리더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다가 그 사람이 나를 배반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거든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늘 사랑을 받고 살지만 그렇게 그 사랑을 받고 사는 자 같이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그 사람들을 비록 나를 배신하는 자라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다음은 이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행동은 여러 번의 말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어떻게 그들이 살아야 함으로 행동으로 보여 주십니다.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허리에 수건을 두루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풍속 상 식사 초대를 한 사람들이 집에 오게 되면 그 집의 종들이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유대인 종들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낳은 종인 이방 종들이 그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주님은 가장 낳은 자의 자리에서 제자들을 섬긴 것입니다. 더 내려 갈 자리가 없는 그 곳까지 내려가셔서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행동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너희들의 삶을 이렇게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교회가 아름다운 좋은 교회입니까? 밑둥이가 튼튼한 교회입니다. 교인이 많고, 재정이 많고, 큰 건물. . .
섬기는 자들이 많은 교회 낮은 자리에 있기를 즐기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청년부도 학생부 다 낮은 자리에 있기를 즐기는 자들이 많은 단체가 좋은 단체입니다. 튼튼하고 건강하며 자라갈 수 있는 단체입니다.
제직들은 바로 이러한 본을 보이시는 분들입니다.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라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본을 보이며 사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약에 나무가 위가 높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부러지고 꺽여질 것입니다. 자랄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주 당연한 원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이 아래가 섬기는 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자라고 튼튼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이 이제 베드로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왜 저희들의 발을 씻기십니까? 그러니 주님의 대답을 우리가 읽어 봅시다. (요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지금은 네가 내가 하는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네가 알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11장에는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베드로를 비난합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할 수 있는가? 그 당시 유대인들은 복음은 오직 유대인들만의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는데 예루살렘에 이르니 사도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느냐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많지 않습니까? 형편도 되어지는 일도 모르면서 그냥 비난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베드로는 어떻게 다른 이들을 설득합니까? 천천히 그리고 모두에게 자세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겸손한 모습으로 사도 중에 수제자인 자신을 비난하는 모든 이들에게 . .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여러 사람들을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섬김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될 때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늘 하신 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너도 자식 낳아 아 키워봐라. 나중에는 알게 됩니다. 우리의 수고와 섬김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또 다른 섬김들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당장에 우리의 섬김을 너무 기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너무 아이들이 사람들이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당장에 효과가 나고 알아주는 일이라면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지금은 알 수 없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후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 제직이나 리더 여러분! 우리의 작은 섬김으로 언제가 그 때에 그 분이 그 리더가 이렇게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한 것 이구나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이 다시 그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긴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영광이고 우리의 열매가 되지 않겠습니까?
언제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살펴봅시다. 베드로가 그렇게 내가 너의 발을 씻지 않으면 너와 상관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무엇이라 합니까? 그럼 주님 저의 모든 몸을 씻어 주십시오.그러니 주님이 목욕을 한 사람은 다 다시 씻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이스라엘은 먼지가 많기 때문에 어느 집에 초청을 받아 가면 가기 전에 목욕을 합니다. 그러나 목욕을 하고 다시 그 초대를 받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다시 먼지가 발에 뭍어서 더러워지기 때문에 발을 종들이 씻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주님의 말씀은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목욕을 한 사람은 이제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해석을 하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영적으로 더러워진 죄에서부터 목욕을 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날마다의 생활이 그렇게 쉬운 깨끗한 날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발과 같은 것을 씻어야 합니다.
더러워진 마음을 그냥 두게 되면 그것이 쌓여지고 결국은 어두어진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더러워진 발을 날마다 씻듯이 우리의 마음을 죄의 찌꺼기들을 날마다 씻어 가야 합니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저희들이 어릴 때만 하여도 씻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 세수하는 것은 참 깨끗한 아이이고 .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됩니까? 조금만 더러워도 다시 씻고 아침저녁으로 씻습니다. 그리고 손은 수시로 씻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깨끗합니다.
우리가 수시로 우리를 보고 자신을 씻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그만큼 자주 씻는 사람이 외적으로 깨끗하듯이 영적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죄를 씻는 자들이 영적으로 깨끗한 심령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래가 튼튼한 나무가 건강하고 잘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섬기는 자들이 많은 교회가 잘 자랍니다. 오늘 우리가 임명되어진 자들이 바로 이 교회의 밑둥이 들이며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할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보이지 않고 우리가 높아지지는 않지만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이 자라고 다른 이들이 높아 질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섬김의 일들을 합시다. 그러면 언제가 이들이 어느 곳을 가던지 이 섬김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살게 될 것이고 그 때에 우리의 섬김으로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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