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봉사(2) 대상23:24-32
이는 다 레위 자손이니 그 종가를 따라 계수함을 입어 이름이 기록되고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이십 세 이상 된 족장들이라 다윗이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것이 없다 한지라 다윗의 유언대로 레위 자손이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되었으니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에게 수종들어 여호와의 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케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과 또 진설병과 고운 가루의 소제물 곧 무교전병이나 남비에 지지는 것이나 반죽하는 것이나 또 모든 저울과 자를 맡고 새벽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하며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또 회막의 직무와 성소의 직무와 그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전에서 수종드는 것이더라.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됨에 따라서 사람의 직업들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에 직업의 종류가 약 400여 종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2년 새로 갱신된 직업 분류 표에 의하면 약 35,000종류의 직업으로 직업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998년도 우리 대한민국의 직업의 종류도 통계에 의하면 약 20,000여종의 종류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사회가 분화되고 발전하면서 과거에 중요했던 직업이 소멸되어지고 또 새로운 직업이 등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IT산업이 발전하면서 컴퓨터와 통신과 관련된 새로운 직종의 직업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중세 역사를 보면 중세 교회와 관련해서 교회에 아주 중요한 직분이 있었는데 그 직분이 어떤 직분이냐 하면 파이프 오르간에 바람을 불어넣은 역할을 하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대부분 예배용 악기로 피아노를 사용하지만 원래 전통 기독교 음악에서는 피아노를 예배용 악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라파 교회들을 보면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전부다 천상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 작은 예배당에는 수십개 파이프에서 큰 예배당에는 400개 이상이 되는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파이프오르간으로서 유명한 교회가 독일 퀠른에 있는 퀠른돔인데 퀠른돔에는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는데 무려 30년이 걸렸고 파이프만 400개로 파이프오르간이 구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전부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가 26개가 있었는데 그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될 때에는 2명의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풀무에서 장정 70명이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어야 그 장엄한 음악이 연주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전기모타가 발명되므로 말미암아서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꾼들이 필요 없어지고 전기 모타를 돌려 가지고 바람을 이제 불어넣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파이프오르간이 전자식이 있고 또 기계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꾼들이 필요없지만은 과거에 교회나 성당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수고하는 이런 풀무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역대상 23장 24절에서 32절 말씀은 시대에 변천을 따라서 성막을 중심 해서 하나님을 섬겼던 레위인 들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수냐 진보냐 하는 논의를 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는 보수와 진보의 그 생각들과 사상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킬 때가 참 많은데 사실 이 두 가지의 소중함을 다 알고 잘 조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 구별되었던 사람들과 그 역할들
오늘 이 본문에서는 과거에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맡겨졌던 역할과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레위지파의 역할이 이제 다르게 맡겨지는 그런 장면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원래 구별되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성막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구별되었고 그래서 특별한 역할을 맡겨졌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레위지파라는 말에 의미가 어디에서 생겨났냐 하면 레위지파는 원래 야곱의12아들 가운데 아내 레아를 통해서 태어났던 세 번째 아들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야곱의 세 번째 아들의 이름이 바로 레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레위라는 야곱의 아들에게는 또 다시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고핫과 게르손과 므라리\\\"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세 아들의 후손이 점점 퍼져서 레위지파라고 이렇게 불려졌던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레위는 자기형 시므온과 단짝이 되어서 아버지 속도 썩이고 굉장히 성격이 불같고 포악하기 때문에 사실 악동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근심거리가 되어서 자기 동생의 문제로 말미암아서 세겜 사람을 다 죽이므로 자기 아버지에게 저주를 받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창세기 49장 6,7절에 보면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야곱은 자기에 열두 아들 가운데 이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했었습니다. 다른 아들은 축복을 했는데 이 두 아들은 저주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결국 야곱의 저주대로 시므온 지파는 모세에게 반기를 들므로 말미암아 정말 저주받은 지파로 전락을 했습니다. 반면에 레위 지파는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그들이 다시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성막을 위해서, 제사장들을 위해서 수종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 불행했던 과거 때문에 늘 마음에 눌리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레위지파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레위는 비록 자기 아버지에게 저주받은 아들이었고 또 레위지파는 그 후손들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인생을 역전시켰던 한 지파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자식이 하나님 앞에 다시 쓰임 받고 귀하게 선택되어지고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려지는 그런 지파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얽매여서 너무 고민하고 전전긍긍하고 그 과거가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까 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 큰 문제 속으로 자기 자신을 몰고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비록 나에게 어두운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세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여 레위지파와 같이 귀하게 쓰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꼭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레위지파에게는 맡겨진 역할이 있습니다. 성전을 맡아서 관리하고 그것을 운반하는 것, 예배의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찬송하는 이런 일들을 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을 도와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역할들을 잘 감당해 나갔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지파에 세 족속이 있었는데 게르손 족속과 고핫 족속과 므라리 족속들입니다. 그 중에 고핫 자손 가운데 아론과 그 자손들은 그 중에서도 제사장으로 삼아서 하나님에게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9장 9절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띄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제물을 드리는 일을 이 고핫자손 아론과 그 후손들 제사장이 감당하게 했고 그리고 레위지파가 그 일을 돕도록 특별히 구분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제 땅을 분배받을 때 이 레위지파 사람들은 기업을 별도로 받지 않고 48개 성읍에 흩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함께 그들과 살아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11지파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와 예물을 가지고 그 레위지파의 생계를 유지해 가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조처를 했습니다.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세상에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족속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함 받은 특별히 구별되어진 존재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바로 레위지파의 후손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장 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바로 부름 받은 존재들이라는 는 것과 특별히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2. 레위 인들의 역할 전환
여러분 오늘 본문의 25절과 26절을 한번 주목하시기 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것이 없다 한지라\\\"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를 구분하시고 그 레위지파 가운데 고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을 별도로 그 역할 분담을 정확하게 해서 과거에는 성막을 메다가 움직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에 성막을 쳤다가 다시 그들이 이동을 할 때는 성막을 다 걷어서 그것을 이 레위지파의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을 하도록 했습니다. 고핫 자손은 성막안의 주요 기구들을 운반했습니다. 게르손 후손들은 성막의 모든 휘장과 덮게와 그 줄을 운반했습니다. 그리고 므라리 후손들은 성막의 기둥과 받침과 말뚝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잘 분담해서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한 나라가 건국되어지고 이스라엘이 동으로 서로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평강을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기 때문에 성막을 걷어서 옮기는 일이 없어 졌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걷어서 운반하는 역할을 했던 레위자손들의 이 역할이 이제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26절에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것이 없다\\\" 어깨에 메어서 운반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유언을 따라서 20세이상되는 레위사람을 다시 인구조사를 해서 그들에게 적절한 새로운 직무와 역할을 맡기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자 어떤 직무들이 맡겨졌습니까? 28절에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에게 수종들어 여호와의 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케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과\\\"그랬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수종들며 도우는 일을 했다. 수종드는 일을 했고 섬기는 일을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직분은 다 섬기는 직분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교회 모든 직분은 바로 섬김을 받는 직분이 아니라 섬기고 수종드는 직분이라는 겁니다. 종적인 직분이 아니고 바로 횡적인 직분이요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그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줄 믿습니다. 어느 직분은 귀하고 어느 직분은 천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똑같이 하나님 앞에 소중하게 각자 맡겨진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했고 수종들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 두 번째 29절 다시 봅시다.\\\"또 진설병과 고운 가루의 소제물 곧 무교전병이나 남비에 지지는 것이나 반죽하는 것이나\\\" 여기에 진설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 그 전에 차려 놓은 떡을 말합니다. 빵을 말합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빵을 만들고 떡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29절에 있는 것은 성전에 제사를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그래서 설익을 음식에 열을 가해서 맛을 내는 역할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익혀 놓고 특히 여름철에는 음식에 열을 가해서 제대로 잘 대어 놓지 않으면 음식이 금방 부패하고 썩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 레위인들의 역할 가운데 지금 남비에 지니는 일 빵을 굽는 일 음식을 만드는 일을 통해서 사실 부패하고 썩는 것을 방지하고 맛을 내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어떤 집단 속에,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그 집단을 썩고 타락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집단과 조직이 더욱더 생기를 얻고 활력을 얻을 수 있도록 맛을 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은 레위지파의 사람들과 같이 바로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 또 봅시다. \\\"또 모든 저울과 자를 맡고\\\" 그랬습니다. 성소 안에는 중요한 자와 저울과 되를 보관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기준과 원칙이 바로 레위인들이 관리하는 성소 안의 도량 기기에 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잘못된 자를 가지고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다. 어디에 잘못된 저울을 가지고 무게를 사기치는 사람이 있다. 되를 가지고 부피를 가지고 사기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이 성소에 보관하고 있던 저울과 자를 가지고 그 기준에 맡는지 안 맡는지 판정을 하는 그래서 원칙을 준수하고 지키도록 하는 사명을 바로 레위인들이 담당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바로 연구단지안에 표준 연구소가 있죠. 그래 모든 기준과 표준 원칙을 정하는 것 이게 참 중요합니다. 원칙이 자꾸 바뀌고 기준이 자꾸 바뀌면 혼란이 생기고 거기에 많은 문제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울이요, 자요, 되\\\"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본받은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이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여러분들도 우리를 본받으십시오. 그래서 정직하게 사십시오. 깨끗하게 사십시오. 순결하게 사십시오. 바로 사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 도인들이 원칙과 기준이 허물어지고 정직성이 상실되고 거짓이 판을 치는 이런 무리와 집단 속에서 오히려 교회가 우리 한국 사회를 계도해 나가지 못하고 오리려 더 타락하는 주범이 된다면 그것은 레위인의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한밭 교회 성도들은 바로 저울과 자를 관리했던 레위인들과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준과 원칙과 본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다음 30절을 보시 면은 \\\"새벽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고 찬송하며\\\" 그랬습니다. 족장과 두령들을 뽑아서 성가대를 만들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도 3개의 성가대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예배 때마다 잘 충성하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성가대는 레위인이 아닌 사람은 성가 대원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가 대원들은 이런 프라이드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서서 설교를 하는 이 목사 직분보다도 어쩌면 여러분들의 역할이 더 중요한 역할입니다. 목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소리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성가대의 역할은 사람의 소리를 모아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드림의 소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성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배에서 그 점을 잘 기억하시고 기분 나면은 성가대 앉았다가 바쁘일 있으면 바쁘다는 핑계되고 성가대 빠졌다가 연습 시간도 소홀히 하고 출석도 소홀히 하는 그런 사람들이 안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정말 이 직분이 하늘의 축복을 통해서 주어진 직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하고 찬송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께 귀한 드림에 소리를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31절 32절을 보시 면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또 회막의 직무와 성소의 직무와 그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전에서 수종드는 것이더라\\\" 수종드는 것이더라는 이 말은 모든 성막과 성소에 관련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역할을 분담해서 다 그들의 손을 거쳐서 감당해 나갔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봉사와 헌신 위에 우리가 이렇게 주일이 되면 하나님께 온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냥 주일날 예배 시간에만 참석하고 예배 시간에만 오는 분들만 계신다면 이 교회는 아마 이렇게 존재할 수가 없을 겁니다. 주중에 와서 교회 청소하고 닦고 쓸고 또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애쓰고 자기 맡은 역할들을 감당하고 준비하고 한 주간 내내 그렇게 하는 숨은 봉사자들이 많이 있게 때문에 이 교회가 주일날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이런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맡겨진 역할들을 찾아서 더욱더 최선을 다해서 헌신하는 레위인과 같이 사명을 감당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레위인은 어떤 자세로 봉사하였습니까? 레위인인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겼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할 때 사명감이 없으면 그 직분에 대해서 만족을 할 수 없습니다. 늘 불평을 하고 늘 원망하고 다른 사람의 직분이 더 크게 보이고 더 귀하게 보이고 그래서 자기가 맡은 직분에 대해서 소홀히 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뿐만이 아니라 직장 생활 사회생활을 통해서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셨다.\\\" 이 직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셨다는 그 믿음 가지고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과 잘 협조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과 봉사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섬기는 직분 자들, 레위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모든 직분 자들은 경쟁 관계로서의 섬김이 아니라 협력 관계로서의 섬김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교회를 섬기는 많은 직분 자들이 서로서로 하나님 앞에 봉사하면서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경쟁 관계를 만들고 교회를 섬기는 그런 경우들이 가끔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서로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더 존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더 귀하게 세우면서 협력관계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 직분을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톱니바퀴가 서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서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돌아가는 것처럼 자기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혼자서는 무엇을 잘 하고 봉사를 잘하는데 집단과 조직 속에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팀웍을 이루게 하면은 제대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는 똑똑하고 머리도 좋고 학벌도 좋고 사회적인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팀웍을 이뤄서 함께 사역할 수 없는 사람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사회에서는 그 사람이 정말 인정받을지 모르나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단독 플레이를 하는 사람보다는 팀웍을 이뤄서 서로 협력을 잘하는 사람, 약간 무능해도 약간 좀 부족해도 서로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될 때 전체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 다음 레위인은 자신의 재능에 따라서 충성하며 봉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의 각 족속들을 고핫과 므라리지파와 그리고 또 게르손 지파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겨서 감당하게 했습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이제 그들의 직업이 직분이 갱신되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각각 다른 역할들을 맡겨서 감당했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음악적인 달란트가 좀 있는 분들은 성가대를 하는 것이 참 바람직하겠죠. 나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교사를 한다던 지 각기 다양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 은사에 맡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자꾸 성가대에 간섭을 하고 뭐 이래라 저래라 그 좀 문제가 있습니다. 성가대 지휘자가 목사 설교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각기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자기 역할은 충실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과 다른 사람의 사역에 대해서 간섭하고 문제로 삼고 목사가 설교하는 것에 만족을 하고 항상 감사하고 이것이 축복인지 알고 해야 되는데 뭐 성가대 지휘자를 밀어내고 자기가 올라가서 한번씩 이렇게 지휘를 하고 내려온다면 그것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각각 따로 맡겨진 역할들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두드러진 은사를 통해서 봉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고 바람직한 봉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20C에 가장 위대했던 과학자 한사람 이였던 아인슈타인 박사가 상대성 원리를 발견함으로 20C 과학계에 하나의 획을 긋지 않았습니까? 아인슈타인 박사가 유명해 지니까 유대인들 협회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를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하기 위한 운동이 전개됐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모아서 아이슈타인 박사들에게 유대인들이 찾아갔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의 명성이 온 세계를 통해서 가장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박사님을 우리 유대인의 최고의 지도자 되는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슈타인 박사가 얼굴이 활짝 피면서 그 직을 수락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슈타인 박사가 아주 심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일생 동안 숫자만 가지고 살아왔고 이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과학자로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에는 전혀 문외한이니 나로서는 그 직을 수락할 수 없습니다. 수락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런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학자들을 보면 텔레비전에 몇 번 출연하고는 장관이다 뭐다 하면은 혹시나 안 불러 주는가 싶어서 고개를 빼 가지고 두리번두리번하고 개각이 있다 하면 온갖 추태를 부리는 학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은 자기 직분에 충실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할 때 그 사람은 거기에서 가장 빛나는 것입니다. 있어야 될 자리에 있어야 그것이 고귀하지 있어서는 안될 자리에 그것이 있다면 그것은 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내가 있어야 될 자리가 어디고 내가 맡아야 될 역할이 무엇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레위인들과 같은 믿음의 직분 자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