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뜰에서 일어난 일 막11:15-19
1. 예수께서는 3년간의 공생활을 주로 소외지역인 갈릴리 지방에서 지내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권력과 돈과 온갖 불의가 난무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빌려온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과 나무 가지를 길가에 깔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곧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손댄 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학수고대하는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실망스럽게도 시시한 종교적 문제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루살렘 성전 뜰을 청소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뜰에는 명절 때가 되면 항상 많은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갖고 올 수 없는 깨끗하고 흠 없는 제물들을 팔았고 지방의 화폐를 당시 표준 화폐로 사용되던 히부리나 티러 돈으로 바꿔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장사꾼이나 환전상 때문에 성전 뜰은 시장 바닥으로 변하였을 것이고 수많은 순례자들과 뒤섞여 북새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그 날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특히 유월절 같은 명절 때에는 항상 있었던 예사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추축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신성해야할 성전 뜰이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었다든지 또는 제물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순례자들이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뜰에서나마 기도드려야 하는데 그 북새통이 그들의 기도시간을 훼손한다는 등의 추측 말입니다. 기도에 방해된다는 것은 마가 11:16절에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는 말씀에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추축은 뜰 밖에도 장사치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제물 값은 쌌고 뜰 안에서 파는 제물 값은 비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뜰 안의 제물은 물건도 좋을 수 있지만 장사치들이 이윤을 많이 남겨서 제사장들과 로마 관리들에게 상납하는 구조적인 사회악과 연결되어 있다는 학설을 주장하는 성서학자들도 있는데 꽤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구조 악에 대한 문제는 인간 역사에 있어서 권력과 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서식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 곧 그의 영원한 사랑과 정의를 이 땅 위에 이르시기 위하여 오시고 선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방해되는 로마의 권력과 그 주변의 앞 자비들에 대하여 늘 비판하시고 도전하셨습니다. 때문에 여기서도 구조적 악에 대한 비판과 행동을 몸소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 뜰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해서 잘못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예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씀하였을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것(11:17-18)을 보면 예수와 당시 권력층 사이에는 구조 악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경전을 버리고 있었지 않나 하는 느낌도 갖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를 꼬집어서 권력층을 자극하고 그들이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도록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처음 행하신 일이 성전 뜰의 청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법궤를 모시고 제사장만 드나드는 지성소(至聖所)도 아니고 예배드리는 성전도 아니라 성전 밖의 뜰을 청소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성전 밖의 뜰을 문제 삼았다는 것입니다. 지성소나 성전이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럽거나 잡상인들이 침입하여 거룩한 곳을 모독한다면 먼지와 사람을 함께 쓰러내도 좋겠지만 성전 뜰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전 뜰은 성전과 세상 사이에 놓여서 성전과 세상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전으로 들어 갈 때도 뜰을 거쳐야만 하고 성전에서 세상으로 나아갈 때도 뜰을 거쳐서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뜰이라는 것은 성전도 되고 세상도 됩니다. 어찌 보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뒤섞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마치 성전 안에서 범한 죄와 마찬가지로 엄히 꾸짖으시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권력자들의 비위를 뒤틀리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성소는 하느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니까 가장 거룩한 곳이고 성소 역시 유대인들이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곳이니까 거룩한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 거름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 암시하시는 것은 성전 밖의 뜰도 거룩한 곳이라는 말입니다. 지성소나 성소 안만이 거룩한 곳이고 거기만이 하느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 성소의 뜰, 곧 세상의 어떤 공간도 하느님이 계시는 지성소나 성소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소명을 받을 곳은 성전이 아니라 양을 치던 미디안 광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그 땅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고 외치던 곳도 광야이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나 거룩한 곳이고 또한 하느님은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어느 곳에도 계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어떤 공간이던지 또는 어떤 사회이던지 간에 그 곳은 지성소나 성전과 꼭 같이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도둑의 소굴이 되지 아니하고 만민이 기도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나는 지난 2월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물론 국내외 정세나 경제문제가 심각하여 죄책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구지하철 참사가 여행 중에 일어나서 마음에 큼 부담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유익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예수께서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신 성전의 뜰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그리고 구라파나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유서 깊은 문화와 경제 발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문화와 전통이나 경제발전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보존하는 자연과 그것을 깨끗하게 지키겠다는 일편단심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두 나라와 그 국민들은 GNP를 성장시키는데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히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일차산업 즉 양, 소, 사슴 등의 목축과 육림만을 고집하면서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려는 차원 높은 목적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10일 동안 두 나라를 다니면서 물은 주로 수돗물을 마셨고 폭포수도 마셨습니다. 어떤 물이나 전혀 오염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구도, 자동차도, 공장도 별로 없으니 공기는 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나라는 모두 섬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병균의 유입을 막기 위하여 음식물, 과일 및 식물의 지참을 공항에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검사원들은 세관 직원들이 아니라 농축산부 직원들이었습니다. 거기서 10일간 다니면서 우리가 마신 물과 공기, 먹은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완전히 무공해 식품이었습니다.
그 나라들은 자연만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깨끗하고 사회질서도 정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스스로 양심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므로 공동체를 평화롭고 살기 좋은 터전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뉴질랜드는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돼 있는가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의 도전도 없고 무의미를 느껴 자살 율이 세계 제1위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양심이나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으면 알고 모르고 간에 관계없이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시드니에서 만난 가이드 이씨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가 근 10년간 세 들어 있는 집주인 할머니가 자기를 매우 사랑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친구들을 불러 저녁 파티를 벌이고 한참 신나게 떠들며 놀고 있을 때 경찰이 찾아와서 신고를 받고 왔으니 조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 할머니를 만났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하도 시끄러워 밤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경찰에 신고하였다고 하더랍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도 살인이 벌어지거나 천천 지 원수가 될 것 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은 개인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사회질서를 철저하게 지키므로 사회를 정화하는 분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의 뜰인 자연을 본래 모습대로 가꾸고 보존하며 개인적으로는 도덕과 사회책임을 철저하게 지키며 법과 질서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준수하는 등 예수님의 정신에 부합하는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4. 여행하면서 느끼고 얻은 새로운 경험은 자연히 우리나라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비교하라면 천당과 지옥이라는 말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부패공화국이라고 물렀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공해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이 환경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극심한 오염 때문에 고사 직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 뉴스에 의하면 앞으로 서울지역의 공기오염도가 심각하여져서 그것에 의한 사망자가 연 1.700명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공해 뿐만 아니라 이 나라는 자연공해와 도덕적 공해가 혼합되어 자연, 인간, 사회 전체를 질식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가스실이 되었다면 과장된 말이겠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총체적 부패라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그야말로 총체적 공해지대라고 말해서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성전 뜰을 조용히 그리고 철저히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리 교회의 뜰에는 도덕적 불감증에 빠지고 돈의 노예로 전락된 사람들, 작은 범법자들은 접어두고 SK 글로발처럼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국가경제를 도탄에 빠치고도 큰소리치며 행세하는 치한들, 자기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난 다음 그 쓰레기를 길거리와 자연에 버리는 얌체들, 대구지하철 참사를 불러일으킨 사람들과 같은 안전 불감증 환자들, 자연과 양심의 공간을 넘어 전파의 공간인 PC에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와 아이들은 오염시키는 물란 물, PC를 통한 범죄행위, 교육도, 경제도, 사회생활도 모두 평준화해야 한다면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부정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절대평등주의자들의 강압적인 목소리, 이에 더하여 북한에 보낸 불법 송금문제 등 자연적,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공해가 뜰 안에 가득 차서 모두 질식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5.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생각이나 반성 없이 지내면서 하루 세 때 잘 먹고 건강관리나 하면서 날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행복을 느끼고 살지 않으면 어쩔 겁니까? 인간이란 주어진 환경에서 잘 적응하며 살 때 행복하기도 하고 자기 운명을 잘 관리하는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고 있는지에 관해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의식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저질적이어서 생각 조차하기 싫은 문제가 많고 또한 개인적으로나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뒤엉켜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버티다 못해 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과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민을 중단한 상태이고 이민문제에 관하여 여당과 야당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 국민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이민가기를 바랍니다. 인구 많은 좁은 땅에서 공해와 부패로 가득 찬 공간에서 질식해 죽지 말고 보다 넓고 깨끗한 공간으로 나아가서 공부도 많이 하고 적응도 잘하고 대성해서 세계 방방곡곡에서 유대인이나 중국인들 모양으로 그 사회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조국과 세계를 위해 크게 공헌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민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1975년 해직되었을 때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위협과 공포 때문에 이민가고 싶은 생각도 많았지만 법에 묶여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해외여행은 가급적 많이 하고 싶으나 이민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 경험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나는 이북 공산치하에서 5년간 살다가 월남했습니다. 그리고 공부와 군대를 마치고 미국에 유학하여 거기서 도합 7년을 지냈습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이북은 사람 살 곳이 못되고 미국은 내가 살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북의 공산독재는 인간을 동물로 취급하고 미국 사회는 풍요롭고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였습니다. 결국 내가 살고 죽을 곳은 그래도 공해공화국 밖에 없고 하느님이 나를 이 곳의 청소부로 보내셨다는 확실한 결론을 얻은 것입니다. 이 더러운 현실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공해에 찌들려 죽어가면서도 비록 작은 공해라도 줄이는 일에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나의 도덕적 책임이고 사회적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예수께서 현대인이라면 선택하고 살아가실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일행은 이번이 여섯 번째 여행인데 그 중에는 처음 성지순례 때부터 참여한 이용훈 박사라는 영문학자가 있습니다. 그 분은 일단 여행이 시작되면 교수에서 청소부로 직업이 바뀝니다. 버스 안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 그의 임무입니다. 그의 별명은 청소부장입니다. 이번에는 아동문학가인 그의 부인 임인진 선생이 남편대신 청소부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높은 학식과 덕망을 지닌 분들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즐거운 일이면서도 또한 성전 뜰을 청소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먼저 예루살렘 성전 뜰을 깨끗하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함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 뜰은 우리의 마음이고 가정이고 사회이고 자연이며 세계와 우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거룩한 뜰을 더럽히는 장사꾼이나 환전상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제사장이나 로마 권력자가 되어서는 더욱 아니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서 예수님처럼 성전 뜰을 깨끗이 하는 것이 사순절을 맞이해서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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