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정화

성전 정화/막11:15-19

성전 정화
막11:15-19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 속에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린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가 삽입됐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열매 맺을 때가 안 돼서 과실을 맺지 못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열매를 열수 없는 불임나무였습니다. 불임나무가 괜히 잎만 무성해 가지고 배고픈 나그네들을 현혹시켰습니다

. 그런 나무는 차라리 없는 게 더 낫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주하셨고 즉시 뿌리로부터 말라버렸습니다. 겉은 거룩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데 그 속에서는 온갖 추악한 짓들이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영혼을 구원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교회가 영적 능력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갈급해서 찾아온 하나님의 양 떼를 울리고 부담주고 괴롭히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영적 능력을 상실한 오늘날 우리 교회를 향한 주님 예수님의 분노인 줄 믿습니다!

II. 본문 내용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다음 날입니다. 아침에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바로 그 날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바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은 지금의 교회하고는 좀 달랐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돼 있는 본당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본당 밖의 뜰은 넓었습니다.

그 뜰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그리고 이스라엘인의 뜰로 구분됐지만 오늘 사건의 현장은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본당의 성소는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만 들어가서 제물을 바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차례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은 성전 경내 즉 성전 뜰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뜰은 완전히 시장바닥이 돼있었습니다.

유월절이 내일 모레, 사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세 이상 된 유대인 남자들은 누구나 성전 세를 내야하고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성전 세는 반드시 유대인들의 화폐로 내야 하는데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가 모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온 순례자들은 외국 화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 돈을 유대인 화폐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뜰에는 돈을 바꿔주는 환전대가 여기저기 설치됐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넉넉한 사람들은 송아지나 염소, 양으로 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 피 뿌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때 바쳐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제물을 검사했습니다. 만약에 검사에 불합격되면 다시 흠이 없는 것을 사다가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뜰에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물을 파는 곳도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제도가 변질됐습니다.

성전 안에서의 모든 일은 오직 대제사장의 절대 권한입니다. 그래서 돈 바꿔주는 환전이나 제물 파는 것을 대제사장이 독점했습니다. 전부 대제사장의 하수인들이 돈을 바꿔주고 제물을 팔았습니다. 겉으로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대제사장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 됐고 횡포가 아주 심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원을 바꾼다하면 9000원쯤 주고 1000원만 수수료로 받아도 지나칠 일인데 수수료를 3000원 4000원 씩 받았습니다. 속칭 왕창 ‘와리 깡’했습니다. 제물을 검사하는 제사장들도 흠 없는 제물도 무조건 불합격시켜 제물을 저희들이 파는 곳에서 다시 사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시중가격보다 30배나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순례자는 억울했지만 별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피 뿌림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왔는데, 제물을 바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잖습니까? 성전 세를 내야 제물 봉헌이 허락되니까 돈을 바꾸지 않을 수도 없잖습니까? 그러니 환전상들과 제물 파는 자들의 횡포가 날로 더 심해졌습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강도였습니다. 강도도 그런 강도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1절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그 날, 예수님은 제일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거기서 강도의 소굴이 돼버린 현장을 이미 목격하셨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을 때 기뻐하셨습니다.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내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6).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짓밟혀지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주의 종이라는 자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우리 주님,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러나 참고 참으시면서 그냥 베다니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 문제 때문에 밤새 기도하시면서 마음 아파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추악한 세상 것이 성전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의 마음을 상처내고 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찢겨지고 짓밟혀지는 것을 참을 수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노하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리고 채찍으로 내좇았습니다.

III. 본문 강해와 적용

1. 15절입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셨습니다.

자 여러분,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무척 분노하셨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처럼 분노하신 모습을 처음 봤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다른 것은 다 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만은 결코 참지 못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내 이름을 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곧 자기 자신입니다.

‘내 이름을 거기에 두겠다’는 말씀은 바로 내가 거기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 세상 어느 곳인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있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하나님은 성전을 거룩한 곳으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계신 하나님의 전을 시장잡배들이 아우성치는 돗대기 판으로 만든 것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거늘, 아니 글쎄 거룩한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으니, 우리 주님이 통분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작자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온 순례자들은 다 하나님의 양 무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먹여 기르시는 하나님의 양들인데, 어찌 감히 하나님의 양 무리를 울린다는 말씀입니까? 그 양 무리들을 잘 돌보며,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라고 세운 목자들이 오히려 양 떼를 못 살게 굴고 그 양을 잡아먹고 있으니 어찌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일찍이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양을 잡아먹는 목자들을 향해 분노의 채찍을 내려쳤습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며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 도다’(미3:2-3). 양 무리를 맡겼더니 오히려 그 양을 잡아먹는 목자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만이 아니잖습니까? 지금도 양의 가죽을 벗기는 악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양의 살을 먹는 악한 자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니라’(마7:15)고 하셨습니다.

2. 16절입니다. 악한 자들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 같은 짓을 하는 무리들을 내 좇았습니다. 그리고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직역을 하면 물건 파는 도구들을 가지고 성전을 왔다 갔다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만 실제로 이 말씀이 내포하는 의미는 더 깊습니다. 세상적인 생각, 세상적인 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단호히 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부흥시켜보겠다고 세상적인 발상을 해서는 안 되고, 세상적인 제도를 적용해서도 안 된다 이 말씀입니다. 요즘 교회 안에 상업주의가 막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케팅 전략을 교회에 접목 시키려고 들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물건 팔아서 수입 올리는 식으로 부흥되는 게 아닙니다. 전도 특공대니, 100일 기도 대 작전 같은 용어들도 교회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가 사용돼야하고, 하나님 나라의 제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가 아니고 세상의 언어가 난무하는 곳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리가 아니고 세상적인 원리가 중요시되는 곳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정치 집회장도 아니고 대중 연설장도 아니고 친목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구원의 방주가 되려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영적 능력이 없느니까 우리 교인들도 너무도 영적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습니다. 교회나 교인이나 영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영적 능력을 상실하면 강도의 굴혈이 될 수 있습니다. 교인이 영적 능력을 상실하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해질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인지 악령이 잡아먹는 곳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미가서 2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3. 17절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이사야서 56: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자지를 통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전을 만들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곳으로 성막을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셔서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셨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예배가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서로 교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실상을 낱낱이 고하면서 죄의 용서를 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듣습니다. 강단에서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응답이 됩니다. 그러니까 정신 바싹 차리고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데 딴 생각하다가 그 응답을 놓치면 누가 손해입니까? 물론 각자가 삶 속에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날에는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전체가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막제도를 주셨습니다.

성막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됐습니다. 그러니까 겉이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편하고 실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막이 솔로몬 왕 때 변질됐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고정된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겉이 화려했습니다. 이동성이 있을 때에는 겉이 요란스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정 될 때에는 외형적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의 거룩함은 내면적인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 외형적으로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성막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고착되고, 겉이 화려해지면서 제사장들도 따라서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지금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대왕이 인위적으로 만든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려고 만든 성전이 아니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만든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BC 586년 바벨론에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느혜미야가 나중에 재건했습니다만 아주 왜소했습니다. 그 볼품없는 성전을 헐고 헤롯이 아주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헤롯은 원래 유대인이 아닙니다. 에돔사람 입니다. 야곱의 후예가 아니고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 헤롯이 권력을 잡았지만 백성들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전혀 없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성전을 지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전을 섬긴다는 제사장들도 겉만 거룩한 척 했지, 속은 완전히 세상적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제사도 형식적이었습니다. 잎만 무성했지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임나무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성전은 그렇게 형식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깊이 소통하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IV. 맺는 말

여러분, 성령시대의 성전은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성령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집입니다. 성전입니다. 겉만 거룩해서는 안 됩니다. 속이 진심으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진실함과 신령함도 함께 포함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서는 반드시 거룩의 열매가 열려야 합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시기 때문에 오늘도 여러분들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열릴 줄 믿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령이 여러분들을 주장하고 인도하시는 축복된 오늘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