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이야기 (3) 마26:36-46
삼국지에 보면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이 세 사람은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본래 이름없는 천민출신입니다. 유비는 돗자리 장수를 하던 사람이고 관우는 서당에서 훈장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칼을 잘 쓰는 장비는 백정 출신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왜 삼국지에 영웅으로 등장하고 큰 업적을 남겼느냐 하면 그 수십명의 영웅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 세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담보하는 결속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강한 우정과 의리와 충성심으로 묶여진 사이였습니다. 이들의 결속력이 서로를 영웅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도움을 준 것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때 상대방이 유익을 얻는 반면에 내가 영웅으로서 칭송받는 자리로 성숙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의 분향단
오늘 성전 이야기는 분향단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전 안에는 향을 피우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에 \\\"책을 취하시며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성전 안에 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성전에 지상성도들의 기도가 향으로서 오늘도 드려지고 있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성도들 혼자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큰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결속이 될 때 성도들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성도의 능력은 남을 능력 있게 할 때 나도 능력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기쁘게 할 때 내 기쁨도 커지는 것입니다. 남을 유익하게 할 때 내게도 더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삼국지의 영웅들은 서로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유비와 관우와 장비의 결속력은 서로 피를 나눈 사람들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서로 기도하는데서 결속력이 일어납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 손님 한 분과 식사를 나누게 됐는데 이런 인사를 하였습니다. 전에 목사님께서 우리 사무실에 오셔서 해주신 그 기도를 제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기도에 많은 힘을 얻었고 목사님의 기도가 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듣기가 좋았습니다.
성도에 관한 별칭이 세 가지 있습니다. 너희는 소금이라. 너희는 빛이라. 너희는 향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향기입니다. 하나님의 분향단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피워지는 향기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기도가 향입니다. 이 향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냄새로서 바쳐집니다. 우리는 이 향이 기도요 기도가 성전 안에 있어야 된다는 성전 이야기에 의미를 한번 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판사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판승은 아주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과 같이 훌륭한 스님들을 가리켜서 이판승으로 구분합니다. 사판승은 사무도 보고 데모할 때 강목들고 치기도 하는 이런 부류의 승들이 사판승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 불교계가 비리가 있고 데모하고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불교가 망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것은 사판승의 세계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이판승들이 불교계를 자리잡고 있는 한 불교계가 건재하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도 이판승의 세계와 사판승의 세계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이판승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로 천주교의 본래 정신을 닦아보고자 하는 수도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지도자들은 이판승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판승입니다. 세속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께 기도하라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이판승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도 사판승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 이판승과 같은 거룩을 보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전에서 기도의 향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있을 때 교회는 보존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 기도의 향이 사라지면 그 성전은 무너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아래 빠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의 향을 드릴 수 있는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내게 기도의 향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약한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향기가 우리에게 풍겨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이 땅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속되어 갈 줄을 믿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가 전도하는 말씀을 듣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해서 베드로에게 능력을 돈으로 사고 싶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꾸중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은사를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느냐.\\\" 그렇게 책망을 해놓고는 사도행전 8장 22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이것은 참 특이한 권면입니다. 앞의 말씀은 아주 격한 저주를 하였는데 뒤의 말씀은 주께 기도하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이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헬라말로 \\\'데오마이\\\'라고 하는데 붙잡아맨다는 뜻입니다. 네가 살고 싶거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가 되어야 네가 산다. 네가 하는 그 마술이 너의 인생을 구원하는 게 아니다. 예수께 붙잡힌 바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주를 붙잡고 네 자신이 주께 붙잡힌 바가 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주께 붙잡아맨다는 의미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내가 입을 열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진정으로 이루어지는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로 결속되어 예수께 붙잡힌 바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가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기도가 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향기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기도일 뿐 아니라 성전적 의미를 우리 앞에 보여줍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마치 큰 자연이 부여된 성전과 같고 거기서 기도하고 있는 주님의 모습은 성전 안 분향단의 향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모습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가장 강렬한 하나님의 재단에 바쳐진 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기도를 통해서 이미 십자가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이튿날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십자가를 이기기 위해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승리가 먼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었기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상징적입니다. 우리는 그저 용기를 가지고 십자가를 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가 없는 자는 그 십자가를 결코 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을 잘 합니다만 그 결심을 이루려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이 기도가 동반되는 신앙생활이 십자가를 가능하게 하는 승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향이 피어져서 밖으로 나오면 그 향을 맡아주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그 향을 맡습니다. 그 향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기도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는 기도하는 나만 있어서는 그 기도가 무효입니다. 기도하는 내가 있는 반면에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셔야만 내 기도가 유효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밤에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허공을 향한 소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상호만남
그러므로 기도는 기도하는 나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상호 만남입니다. 임마누엘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하실 때 하나님만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나와 내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만남으로서 우리의 기도가 유효해지고 우리의 기도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결혼서약도 상호 관계입니다. 신랑만 서약해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가 함께 서약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오게 하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내게 오시게 할 수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어떻게 하나님이 돕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안에 그리스도가 가까이 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까? 여러분이 그 하나님 앞에 향으로 기도하십시오. 그 향이 여호와께 올라갈 때 여호와는 우리 향 가운데 강림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때 필수적으로 거행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양과 소와 염소를 재물로 드릴 때 죽여서 피를 대야에 담습니다. 먼저 피를 따로 구분합니다. 양과 소를 잡아서 재물로 드릴 때 그 양과 소 자체가 전부 피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온통 피에 다 젖어버리는 것입니다. 재물이 되려면 피를 안묻히고 재물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피를 흘려야 됩니다.
그리고 그 피는 흘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양은 자기 몸에 피를 뿌림과 동시에 그 피는 제단에 뿌려지는 또 다른 피가 됩니다. 내가 피를 흘릴 뿐 아니라 내가 흘린 그 피가 남에게도 뿌려지는 것입니다. 재단에 뿌려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있을 때에 제사가 되고 오늘의 예배가 되고 오늘의 기도가 되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립되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쪽만 가지고 자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피를 흘려야 됩니다. 내가 향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향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셔야 합니다.
은혜 안의 만남
오래 전에 상담한 어떤 사람은 예수를 22년 믿었다고 하는데 자기 혼자서 하나님을 찾아다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꿈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이 어느 기도원의 집회를 참석하고 부흥사에게 특별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꿈대로 평생을 헌신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꿈을 자주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 사람의 인격에 하나님의 계시로 딱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오직 그 꿈을 붙잡고 하나님 뜻을 찾고 사는 영적인 병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꿈은 개꿈도 아니다. 그것은 개꿈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 꿈은 아무 꿈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살다가 그 꿈 말고 다른 꿈을 꾼 것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꿈도 꾸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꿈이나 그때 꾼 꿈이나 똑같은 꿈이다. 굳이 꿈 분석을 하자면 허몽이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가 기도하고 그분이 그 기도 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 하나님은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내 뜻이라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의 마음속에 확신시켜 준 것입니다. 그 이튿날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붙잡고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맺는 말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피는 오늘 믿는 사람의 심령에 다 영적으로 피 뿌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유효해진 것입니다. 그와 똑같이 신앙은 상호작용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내게로 모실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기도의 향입니다. 기도의 향을 여호와께 드리십시오. 그 기도 속에 여호와가 우리에게로 다가오십니다. 그 분을 만나십시오. 그 분과 함께 사십시오. 그 분과 함께 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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