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성전, 세워지는 성전 마24:1-2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헤롯은 주전 37년에 로마의 황제에 의하여 분봉왕으로 임명되어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대땅을 다스리면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통치를 잘 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제일 소망하던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을 주전 19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헤롯왕이 죽은 뒤에도 공사는 계속되어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되어 있었고, 주후 63년에, 82년이나 걸리는 대 공사가 마무리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크고 웅장한 성전을 바라보면서 “곧 돌 위에 돌 하나 남김 없이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은 성전이 완성된지 7년 뒤인 주후 7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은 커다란 돌이 쌓아져서 지어졌는데 로마 병사들에 의하여 이 돌 위에 돌 하나 얹혀 있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82년의 노고가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3번 건축되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 임금에 의해서입니다.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 임금은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커다란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나무는 레바논 백향목을 수입하였고, 돌은 채석장에서 무늬를 아로새겨 잘 다듬었고, 성전 이곳 저곳을 황금으로 입혀서 어느 시대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크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정성스럽게 지은 이 성전은 주전 586년 바벨론 나라의 느브갓네살 임금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다 70년 만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520년 스룹바벨 총독의 지휘 아래 다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성전도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시대에 많이 파괴되었고 간신히 성전으로 명맥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헤롯왕 때에 시작되어 82년 걸린 성전도 로마군인들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그 때에 왕궁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합니다. “평안합니다. 안전합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시온성은 결코 이방인들이 짓밟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유독 예레미야 선지자 만이 “하나님의 크고 무서운 심판을 닥칠 것입니다. 북쪽에서 끓는 가마가 엎어질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말합니다. “다른 선지자는 다 화평을 말하는데, 왜 당신만 저주와 심판을 말하는 것이오!” 예레미야가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이 다시 말하기를 “저 사람들도 하나님의 선지자요!”
사람들은 저주와 심판을 외쳐대는 예레미야를 싫어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에 귀를 막았습니다. 바벨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지만, 수많은 선지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곳은 몰라도 시온성은 괜찮을 것입니다. 안전할 것입니다.” 말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으려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하나님의 크고 무서운 심판이 임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시온성이 무너졌습니다. 짓밟혔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진이 불에 탔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제기들을 노략질 하여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바벨론 나라의 임금과 대신들은 잔치할 때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잔을 가지고 술을 따라 마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믿는 마르둑 신이 더 위대하다고 자신의 신을 찬양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그 때 왜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셨습니까? 이방인들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신보다 힘이 약하십니까?
일본 작가 엔도 슈사꾸가 쓴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 신앙인으로, 신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크리스토퍼 페레라 신부가 일본에 선교사로 나갔다가 배교를 하였다는 소식이 포르투갈에 전해집니다. 모두들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진실하고, 경건하고,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였던 페레라 신부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배교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잘못 전달된 이야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페레라 신부의 제자인 로드리고를 비롯한 세 명의 신부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본 선교사를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몰래 일본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감시의 눈길을 피해 선교를 하던 로드리고 신부는 체포되었습니다. 배교를 강요받게 되는데 배교의 절차는 예수님의 상이 새겨진 성화를 발로 밟는 것이다. 검사관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예수님의 상을 밟고 지나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몰론 로드리고 신부는 이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로드리고가 배교하지 않는 대신에 그의 신자들이 참혹한 고문에 처해지고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므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신자들을 보면서도 차마 배교하겠다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드리고는 기도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까? 제가 배교함으로 죽어가는 신자들의 목숨을 살릴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신자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깊이 고뇌하며, 큰 고통 가운데 기도할 때에 그리스도의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로드리고의 말이 이어집니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신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이 음성을 듣고 로드리고는 예수님의 성화를 발로 밟았습니다. 그리고 죽어 가는 신자들을 살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왜 간섭하지 않으십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들이 아파할 때에 침묵하고 계신 것입니까?” 하고 자주 질문합니다. -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 하나님은 모른척 외면하시며, 침묵하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아파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침묵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늘문을 여셨습니다. 스데반에게 열린 하늘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뵙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서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스데반이 많이 아파하는데 가만이, 편안히 앉아 계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응원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 “조금만 더 참아라, 힘을 내라. 너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너의 피를 먹고 교회가 자랄 것이다.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너의 믿음과 신앙이 많은 나의 백성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너는 조금 일찍 나의 나라로 오는 것뿐이다.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너는 죽는 것이 아니다. 영광의 나라로 점프하는 것이다. 어서 오너라!”
우리 모두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하여 아파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김선일씨가 악한 무리들에게 붙잡혀 처첨하게 살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신데, 자신의 아들이 죽음의 자리에 던져질 때에 하나님은 뭘하셨습니까? 예수님의 구주이신데, 자신의 제자가 난도질을 당하는데 왜 침묵하고 계셨습니까?
침묵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파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가슴에 꼭 품어 안으셨습니다. “선일아, 많이 아팠지! 이제 나와 함께 낙원에서 영광을 누리자! 착한 선일이를 죽음으로 내 던질만큼 세상에는 불의한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단다. 조금만 기다려라.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단다. 곧 온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선과 악을, 공의와 불의를, 양과 염소를,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 낼 것이다.”
바벨론에 의하여 거룩한 시온성이 무너졌고,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믿었던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으로 사슬에 묶여 끌려왔을 때에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하나님의 도성이,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 숭배하는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짓밟힐 수 있는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보다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더 강한 것일까?” 믿음에 대한 회의, 의심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일으키셨습니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겔 2:5)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 멀리 바벨론까지 끌려왔지만, 이곳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는 있다.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 웅크리고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이곳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이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일으키셔서 말씀하신다. 시온성이 무너진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능력의 팔이 짧아져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나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나도 너희를 버린 것이다. 회개해라. 다시 나를 찾으라, 훈련과 연단의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로 다시 시온에 이르게 할 것이다.”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게 짓밟힌 것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버렸기에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입니다. 마치 여인이 그 남편을 버리고 정욕에 이끌려 몸을 파는 창기가 되었는데, 어렵고 힘들어지자, “당신이 내 남편입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온갖 음행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시온성이기 안전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이 있기 때문에 평안하다.”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온성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인 것입니다.
82년 동안이나 정성으로 지은 헤롯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져 내린 것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짧아져서가 아니라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모으려 하였고 품으려 하였지만 멀리 달아나기만 하기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성전을 귀하게 여기시지만 성전보다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더 귀히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집과 가정의 차이를 아십니까? 집은 건물입니다. 가정은 집에 사는 식구를 말합니다. 집이 중요합니까? 가정이 중요합니까? 집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더 중요합니다. 허름한 집에 살아도 아름다운 가정, 풍요로운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좋에 집에 살아도 형편없는 황무지 같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좋은 집보다는 아름다운 가정에 있습니다.
요사이 사람들은 가정보다 집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디 사냐? 몇 평이냐? 집 값이 얼마냐? 요사이 아파트 한 채에 45억짜리도 등장하였습니다. 그러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곳에 사는 사람들하고만 논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집에 산다고 꼭 아름다운 가정이 아닙니다. 전세나 사글세 산다고 결코 형편 없는 가정이 아닙니다.
집도 좋고, 가정도 아름답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금상첨하입니다.
크고 아름답고 우아한 성전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성도들이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귀히 여기시지만,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를 더 귀히 여기십니다.
성전에서 경건하게 제사를 드리는 성도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기는 하지만 카인과 같이 믿음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성전을 내려가서는 산당에 가서 우상에게 절을 합니다. 크고 웅장한 성전에서 예배드린다고 하나님이 무조건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헌금을 하였기에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에 따라 구제와 금식을 하여서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신보다 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정죄하고, 어느덧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보다 자기의 의를 세우는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기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거룩한 성전을 네가 속되게 하였구나” 하시며 아예 성전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노히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결국 크게 진노하셔서 크고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 던져 버리신 것입니다.
불순물이 가득한 것을 용광로에 넣고 정금을 뽑아 내듯이 훈련하고, 연단하여 다시 새롭게 하시고, 다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여 그곳에서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당과 구별됩니다. 우리가 새롭게 건축하고 얼마전에 헌당한 것은 교회당입니다. 교회는 이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입니다.
교회의 정의는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교회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장로교 헌법에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 믿음으로 죄를 용서함 받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장차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참여할 사람들을 말합니다.
가끔 교회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당에 지갑을 훔치기 위하여 나온 것입니다. 총각 때는 열심히 다니다가 결혼하고는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교회 다녀야 결혼한다고 하기에 교회에 나온 것이고, 결혼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어져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민 교회에는 주일날 예배를 드린다음에 김치 된장찌개를 놓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데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을 만나 한국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음식 먹고, 한국 사람들과 교제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 다 빼고 -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들 - 이러한 구원 받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교회, 무형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세상에 속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에는 큰 소리도 나고, 다투기도 하고, 나뉘이기도 합니다. - 이렇게 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합니다. 보이는 교회는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살아 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경건합니다. 경건의 모양 뿐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을 아름답게 부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정한 헌신과 섬김이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참 성전이 아닙니다. 참 성전은 하늘에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의복처럼 낡아집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영원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보이는 교회였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보이는 교회였습니다. 헤롯 성전은 보이는 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아시아의 7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과 권면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자에게, 환난과 궁핍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킨 자에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을 말씀을 지키고 배반하지 아니한 자에게, 주님께서 주신 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게 주님께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귀한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한 발람의 교훈을 지킨자에게,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자에게,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하지 못한 자에게, 차지도 덮지도 않은 자에게, 부유하다 하지만 실상은 가난한 자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며, 회개하지 않을 때에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내 촛대를 옮기겠다, 은혜를 거두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변질된 복음을 용납하고, 흰옷을 더럽히고, 행음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신, 은혜를 거두신 현장에는 예전에 주님의 교회였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자리, 눈물뿌려 기도하던 자리,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던 자리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교회는 이렇습니다. 그러나 촛대는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오세아니아로, 아시아로, 아시아 가운데서도 한국으로 옮겨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나라가 말씀이 가장 흥왕한 곳, 복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이렇듯, 흥왕하다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영원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 앞에 있는 촛대가 옮겨갈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성전, 교회당은 이러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합니다.
고전 3:16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므로 내 몸은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주님이 거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기에,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사랑, 주님의 겸손, 주님의 섬김으로 내 몸을 채워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전이기에 더럽고 추한 것으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후 4:16 이하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이 무너졌듯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도 곧 무너질 날이 올 것입니다.
30대가 되면 20대를 앞에 놓고, 몸이 옛날같지 않아 하고 말하고 40대가 되면 10년만 젊었어도 하고 말하고 50대가 되면 내가 네 나이 때에는 날아 다녔어 하고 말하고 60대가 되면 앉아서 허리 두드리고 다리를 두드리고, 시간만 나면 눞습니다. 70대 이상 되면 이제 죽어야지 말하면서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는가 아닌가를 아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 하고 말하면 젊은 것이고, “이 꽃 줄기는 혈압에 좋고, 뿌리는 관절염에 좋고, 껍질이 당뇨에 좋다” 하고 말하면 늙은 것입니다.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 세월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 육체는 늙고 병들고 그리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낙심하지 않는 것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인 육체가 무너지면,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영광의 장막집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집보다 가정이 소중하고 교회당보다 교회가 소중하고 육체의 장막인 우리몸보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우리의 영혼이 소중하고 육체의 장막이 거하는 이 세상보다, 우리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할 하늘의 장막, 영광의 나라, 신령한 나라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썩어질 육체를 붙잡고 안타깝게 발버둥을 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영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귀 영화라도, 높은 권세라도,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보물을 움켜 쥐고 있더라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더라도 다 놓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빈손으로 왔듯이 빈손으로 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놓지 말고 하늘에 쌓아 놓아야 합니다. 곧 사라질 세상의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굳게 잡고 살아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 헤롯의 웅장한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새롭게 지은 이 교회당도 세월과 함께 낡아질 것이고 언젠가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집인 육체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입니다. 성전은 무너졌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교회당은 무너져도 성도 영원하고 우리의 육체가 무너져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것 심고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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