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들이 버린 돌

건축자들의 버린 돌/마21:23-46

건축자들의 버린 돌
마21:23-46





오늘 본문은 주님의 권세에 대해 묻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대답 대신 도리어 세
례 요한의 권세에 대해 질문을 던지시는 내용과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게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시는 내용입니다. 내용으로 보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3절로 27절을 보면 주님의 권세에 대해 묻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의 대화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즉각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와서 말하기를, \\\"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너한테 이런 권세를 주었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너는 진짜 하늘로서 온 자냐\\\"하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질문은 주님
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그들의 불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
겠습니다. 마치 가득한 의심 가운데 그러면서도 일말의 불안 가운데 \\\"네가 메시야냐\\\"라고
묻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그들은 주님의 분명한 대답을 듣고싶
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쉽게 답해주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꾸 그들을 더한 불안 가운데 빠뜨리십니다. 왜냐하면 가득한 의심을 가지고는 주님을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와 겸손함과 순전한 신
뢰 가운데 나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들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
지 물어 보겠다. 너희가 먼저 내 질문에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질문을 한 가지 하시는데, \\\"요한의 세례가 어
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하고 요한의 권세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주
님의 이 말씀은 아직도 그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정직하게 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을 지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사역을 보았고 들어 왔습니다. 어쩌면 요한
의 통렬한 책망에 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회개하고자 하는 마
음이 그 안에 거세게 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묵살하였고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불의
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신의 종교적 위치와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온 자임을 암암리에 느끼면서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자신의 권세에 대해 알리실 필요성을 별로
느끼시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메시지도
받지 않는 자들에게 주의 교훈을 준다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과 같아서 별 의
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에 그들이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아주 곤혹스런 표정이었
겠죠? 그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
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고,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 것이니, 이 일
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난감한 가운데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들
은 예수께 대답하기를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 그들이
가진 마지막 기회까지도 저버린 그런 어리석은 대답이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는 대답 주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그것을 짓밟아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두 비유를 들어 그들의 불순종과 악함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한 비유는 서로 다른 행동을 한 두 아들에 대한 비유고, 다른 하나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
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비유를 통해 그들의 현재 모습과 그에 대한 장차의 심판을 경
고하십니다.

먼저 첫째 비유를 보면, 어떤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먼저 맏아들에
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거라\\\" 맏아들
이 대답하였습니다. \\\"예, 아버지.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가서 말하였습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거라\\\" 아들
이 대답하였습니다. \\\"싫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후회가 됐던지 뉘우치고 포도원에 갔습
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둘 중에 누가 아
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세리와 창기는 비록 죄의 삶을 살았으나 결국 회개하였다는 것이고, 이
스라엘의 선생 된 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뜻을 말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내
셨을 때에는 그 뜻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는가\\\"하는 것이지요?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였습니까? 세
리와 창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죄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요한을 보내 회
개를 촉구하셨을 때, 믿고 뉘우쳤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모든 죄의 삶에서 떠
나 의의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
새인들, 소위 백성의 선생이라 하는 자들은 도무지 돌이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
스로를 의롭게 생각하였을 뿐 아니라, 요한을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습
니다. 요한을 하나님의 보내신 종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그들의 종교적 신분과 그릇된 의식이 그들을 그
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러 저러한 신분들이 자신들의 의를 대변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오는 하나님의 심
판을 피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외치기를 \\\"회개에 합당한 열매
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가진 신분
과 위치는 그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그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무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할 수 있는 한 \\\"너희는
선생되기를 구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스라엘의 선생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종을 보내셨을 때, 그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다시 그들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소위
이 비유는 포도원 농부비유인데,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와 망대를 세우고, 그리고는 그곳을 세로 내주고 타국
으로 떠났습니다. 곧 모든 것을 다 갖추어주고 그곳을 떠난 것입니다. 이윽고 결실의 계
절이 되어 그 실과를 받으려고 주인이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이에 농부들
은 어쩐 일인지, 그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습니
다. 이에 주인은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악한 농부들은 그
종들에게도 똑같이 행하였습니다. 이에 주인이 어쨌습니까? 마침내는 자기 아들을 보내
며 생각하였습니다. \\\"저희가 적어도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그러나 농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는 주인의 상속자니, 자,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
의 유업을 차지하자\\\"

이 비유를 하시면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생각에 그 포도원 주인이
다시 온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행하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악한 자들을 진
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를 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비유가 곧 자신들을 겨냥한 비유인줄도 모르고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자신들
의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
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42-4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
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
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인데,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
하고 마치 건축자들이 쓸모 없는 돌을 버린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그 포도원의 상속자를 죽이듯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이
돌은 장차 어떤 돌이 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돌을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모퉁이
의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돌을 시작으로 해서 그 집을 세워 가실 것입
니다. 누구든지 이 돌을 대항하여 일어선 자는 그 몸이 깨어질 것이고, 장차 이 돌이 심
판의 돌이 되어 나타날 때에는 그 모든 자를 가혹히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
실들을 주님께서는 이런 저런 비유를 통해 그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모든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
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이 \\\"가겠나이다\\\" 하고 가지 않은 맏아
들이요, 주인의 보낸 종들을 죽인 악한 농부들이요,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돌을 버
린 어리석은 건축자들이요, 열매 맺지 못하여 그 나라를 빼앗기게 될 비참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난 그들은 주님을 잡아들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러나 둘러 선 많은 무리들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선지자를 잡아드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옛 백성의 대표된 자들에게 자신의 권세에 대해 우회적으로 증거하
시고 그들의 완악함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죄와 잘못에 대해 최후적으로 증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주님께서는 버림을 당하셨고, 그들은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처럼 그 아들
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가혹한 심판을 경고하셨음에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
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기에 도무지 합당치 않은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기
업을 빼앗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업을 세리와 창기들,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로 돌이킨 자들, 자기 죄를 슬퍼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온 이방의 죄인들에게 나눠주셨습
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그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알기 전, 캄캄한 어두움 중에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더러운 죄와 하나님
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이기적인 욕심과 정욕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 돈 욕심으로
가득 찬 세리처럼, 돈을 위해 몸을 판 창기처럼, 우리는 정욕을 위해 세상에 우리 자신을
파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죄를 위해 팔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
질과 생명을 정욕을 위해 사용했던 자들입니다. 도무지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오직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죄의 삶을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삼아주셨습니다. 단지 회개하고 주를 믿었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은
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 때문에 하늘의 기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인하여 도무지 갚을 길 없는 넘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우리를 새로운 의의 나무로 키우시기 위함입니다. 주의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맺는 백성으로 이 땅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땅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간직하며 기쁨과 평강 가운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겸손하고 정직하며, 의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용기가 있으며,
거룩함을 위해서는 철저히 죄와 싸우며, 모든 착한 행실과 선행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런 백성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주님께
서는 모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십자가를 지셨고, 고통스런 죽음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구속하신 뜻을 따라 이
땅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
다. 어느덧 우리가 가진 교회에서의 위치 때문에 우리의 눈이 가리우고 우리의 귀가 막혀
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릇된 의식과 확신 때문에 우리의 삶의 자세가 흐트러
지거나 방종 가운데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복음의 지식을 가졌다는 생각
에 마치 우리가 그리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에 빠져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늘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은혜의 빛만이 우리를 늘 비출 수 있도록 우리는 늘 겸손히 하
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그의 진리의 빛으로 늘 자신을
비추는 삶, 그의 충족한 은혜 아래 거하는 삶, 그리하여 견실한 열매가 가득한 삶을 주
앞에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