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전 개혁 마21:12-17
오늘은 20세기에 맞는 10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입니다. 성 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 립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풍요한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형 색색의 단풍으로 조국의 강산에 아름다운 그림을 지금 한참 그리 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정동의 거리도 단풍으로 인 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교회를 오고가는 길에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그 아름다움을 주신 하나님과, 이 아름다운 거리에 우 리 교회를 세우신 신앙의 선조들께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 며 이 가을을 넉넉한 마음으로 보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 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은 쟁기질을 해보셨습니까? 농부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한 겨울에도 쟁기질을 해서 땅을 갈아 엎곤 합니다. 땅을 갈아엎어야 잡초가 죽기 때문입니다. 땅속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햇빛을 받게 해야 병충들이 죽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래야 땅은 옥토가 되어 풍성한 수확을 가능하게 합니 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당의 게시판에 95개 조항을 내걸었던 사건을 종교개혁의 시발점 으로 삼을 때, 오늘은 정확히 482년이 되는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보면서도 농사와 자연의 진리를 생각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가끔씩 뒤집혀야 합니 다. 뒤집히지 않으면 병충해들이 많아져서 부패하고 썩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가끔씩 뒤집혀야 정의로 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쟁기질이 없는 땅은 황폐해지듯이, 개 혁의 쟁기질이 없는 사회는 황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종교개혁은 황폐해진 중세의 교회와 사회를 갈아엎는 쟁기질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쟁기질입니다. 신앙이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는 마음을 쟁기질해서 뒤엎어야 바른 신앙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진리를 \\\"자기를 부인해야 나를 따를 수 있다\\\"는 말씀으로 간략히 요약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도 없습니다. 그것이 가정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혹은 어떤 사상이나 종교적인 체험일지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생각을 늘 갈아엎어서 버려야 합 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개혁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종교개혁자들 은 \\\"교회는 항상 개혁하는 존재\\\"(semper reformanda ecclesia)라 고 했습니다.
오늘 20세기 마지막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여러분과 함 께 읽은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의 의미를 살펴보며, 그 개혁의 정신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본문이 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교회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 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겉모양으로는 학교나 회사 등과 같은 사회 기관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모두가 조 직이 있고, 규율이 있으며, 사람들이 모여서 아옹다옹 사는 모습 이 사회 속의 다른 기관들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 문 13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내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성전 이외의 어느 곳을 일컬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적이 있 습니까? 학교를 일컬어 그랬습니까? 가정을 일컬어 그랬습니까? 병원을 일컬어 그랬습니까? 국가를 일컬어 그랬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오직 성전만이,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집이 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이 세상에서 특별한 곳입니다. 하 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국가 도, 가정도, 회사도 모두가 유한하지만, 교회만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에 거주하시며, 이 교회를 통해서 인류 구원의 거룩한 사업을 계속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른 모습을 세워 지는 것은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사건 은 예수님의 최후의 일주일 중에서 그 첫날 행하신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성전에 들어가서, 그 성전을 깨끗하게 개혁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전의 개혁은 그만큼 중요하 고 절박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사회적 기관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집입니다. 예 수께서 십자가에 이루신 인류의 구원 사역이 이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회 가 바로 서면 세상이 바로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 어 가는 엄숙한 사명을 받았음을 교회의 개혁을 기념하는 오늘 아침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지켜 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 입니다.
본문이 주는 두 번째 메시지는,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집으로 지켜야 하는가 하 는 것입니다.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집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 나님이 거주하시는 거룩한 교회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예 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는 성 전 안에서 제물을 사야 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성전 고유의 화폐 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중의 화폐는 성전화폐로 바꾸 어야 제물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전 안에서 제물을 파 는 상행위는 엄청난 이권사업이었습니다. 독점사업은 폭리를 가 능하게 했기 때문에 장사꾼들과 성전의 제사장들 사이에는 요즘 말로 하면 엄청난 리베이트가 오가는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 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상행 위를 통한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성전과 신앙이 돈으로 오염되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너무도 분명히 보여 주었 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신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돈 바꾸 는 사람들의 책상과 제물을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뒤엎으시는, 평소의 온유하시던 예수님 답지 않은 과격한 몸짓을 하시면서 말 씀하시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 중에서 가장 거세게 분 노하시는 장면입니다.
장사는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교 회에서 사람의 이익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물질적인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의견과 주 장을 관철하는 곳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교회는 기도를 해야 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 면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기도를 인간의 뜻 을 이루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 다. 만일에 기도가 인간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장사를 하는 것과 기도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그리 스도인들은 \\\"주시옵소서\\\" 기도를 즐겨 합니다. 뭐든지 주라고만 기도합니다. 건강도 주시고, 재물도 주시고, 성공도 주시고, 자 식들도 잘 되게 해주옵소서 합니다. 주라는 것으로 기도가 시작 해서 끝이 납니다. 기도가 철저히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기도가 철저히 세속화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타 락하고 무력해져 있다면, 그것은 철저히 기도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 다. 기도는 인간의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이익을 버리는 것 입니다. 기도는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받으옵소서\\\" 입니 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공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입니까? 교회생활에서 무엇 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입니까? 목사의 목회에서 무엇이 성공 이고, 무엇이 실패입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의 곳곳에서 들리는 성공과 실패는 자본주의의 척도에 따른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런 성공주의는 교회를 장사꾼의 소굴이 되게 할뿐입니다.
성공제일주의, 물질제일주의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교회만은 그런 것들과 상관없는 거룩 한 곳, 쉼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로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이익 을 추구하며 살면서, 경쟁으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그 모든 인간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쉴 수 있는 곳으로 지켜져야 합니 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개혁 이란 나를 버리는 행위인데, 요즘 개혁, 개혁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생각을 관철하고자 합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생각을 버리도록 강요만 할뿐입니다. 그런 개혁은 개혁이 아닙니다. 며칠 전 영국 의 귀족들로 이루어진 상원은 800년 이상이나 된 귀족들의 상원 의원 세습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 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개혁의 모습인 것입니다.
기도란 사람의 소리, 사람의 힘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리, 성령 의 능력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개혁 입니다. 신앙은 곧 개혁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기도의 집, 개 혁의 도장이어야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십 니다.
정동교회의 성도 여러분, 우리 정동교회는 과연 인간의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는 기도의 집 이요 개혁의 도장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주장과, 사람의 생각 과, 사람의 소리가 떠들썩한 장사하는 집, 인간의 이익집단입니 까? 이 종교개혁 주일에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 부정, 자기 포기, 자 기 개혁을 통해서 우리 정동교회를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으로 가 득 찬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본문이 주는 세 번째 가르침은, 교회는 소경과 저는 자들이 고침을 받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사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 는데 급급할 뿐, 소경이나 저는 자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습 니다. 그들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들이었을 뿐 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다가가셔서 고쳐주셨 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행위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 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차별 받 는 곳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이루어진 하나님나라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강한 사람들만의 모임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신체적, 신분적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님 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소경과 저는 이들이 교회에 올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들을 만 들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와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외로운 나그네, 외국인들도 우리 교회에 와서 고향 같은 쉼을 얻 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시설을 갖추 고 있는 것은, 우리 땅에 나그네로 와서 사는 외국인들을 위한 우리 교회의 최소한의 배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과연 소경과 저는 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교회입니까? 장애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 는 시설 하나, 장애인을 위한 주차 공간 하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교회의 개혁은 엄청나게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만 모인 교회 는 절름발이 교회입니다. 건강한 사람과 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리 는 교회야말로 예수님의 치유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힘있는 교회 가 될 것입니다. 우리 정동교회는 이 땅에서 소외되고 설움 받 는 이들을 찾아가서 함께 함으로써 예수님의 치유하는 능력이 살 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찾는 네 번 째 가르침은, 교회는 어린아이들처럼 소리질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곳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과 16절을 보면, 성전에서 어린이들이 소리질러 호산 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목청을 돋아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히 여겨서 어린아이들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두둔하시면서 16절에 이르시기를 하나님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 미를 온전케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어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아이들의 교회이기도 합니 다. 점잖은 지식인들만 모여 거룩,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곳이 아 닙니다. 교회에서는 찬양의 소리가 좀 소란하다 싶을 정도로 울 려나야 합니다. 장사하는 소란은 없어져야 하지만, 찬양하는 소 리는 높을수록 좋은 곳이 교회입니다. 인간의 자기 주장을 내세 우는 소리는 잠잠해져야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찬송소리는 하늘 을 찌를 듯이 드높아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동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에 의하면, 우리 정동교회와 성도들에 게는 예배와 찬양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회의에는 열심히 참석하면서도 찬양과 예배에는 소홀히 하 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주장을 내 세우는데는 열심인데 반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버리는데는 인색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준 높은 사교 생활을 잘 하면서도 목소리 놓아 마음껏 찬양하 는 것은 어색해 하고, 인색해 하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찬양의 문턱도 너무 높습니다. 수준 높은 고전적인 찬송가나 성 가제는 하면서도 대중적인 가스펠 찬양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 은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주일에 한번 나와서 점잖게 앉아 예배를 드리고 훌쩍 교회를 떠 나는 교인들은 많아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어린아이들처럼 눈물 콧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구원받은 감격을 표현하는 사 람들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체면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것은 혹시 아닌가 반성해 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속히 찬양과 예배의 개혁을 통해서 어린 아이들처럼 춤추며 구원받은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교회가 되 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20세기 마지막 종교개혁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러므로 다른 어느 해의 종교개혁주일보다도 오늘은 그 시대적인 의미가 한층 더 큰 것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천년을 어떤 모습으로 맞을 것인지를 우리 모두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생 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19세기 이 민족의 등불로 태어난 우리 교회가 단순히 전통과 역사의 전시장으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합니 다. 이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 그래서 다시 타오르는 등불이 되어 서 이 민족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북 한 땅을 너머 땅 끝까지 확장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 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과거 의 영광에만 머무는 자는 미래를 잃어버린다\\\"는 영국 수상 윈스 턴 처칠 경의 말을 이 아침 우리는 다시 한번 음미해보아야 하겠 습니다. 신앙은 쟁기질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묵 은 땅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으로 우리의 삶과 교회를 갈아엎 는 개혁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 의 가정, 그리고 우리 정동교회 위에 한없는 은총을 내려주시기 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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