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의 문제

성전세 문제/마17:22-27

성전세 문제
마17:22-27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두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두가지는 서로 비교되거나 경시될 수 없는 두 기둥이다.
이것에 대한 내용은 사랑과 봉사와 희생이다.
예수님의 이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통해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도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며 이 땅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현대의 잘못된 성도들의 양상은 십자가를 외치면서 봉사와 희생이 가지는 고난은 외면하고 부활과 함께 부각되는 영광만을 추구하는 비신앙적인 경향이 짙다.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고난의 십자가가 있어야함을 잊지 말아야한다.
본문의 문맥이 메시아의 공적선포에서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으로 넘어가는 전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성전세를 내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단락은 이러한 문맥 가운데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언뜻 보면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 이 중요한 자리에 차지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중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1. 세금이 어떻게 고지되었습니까?
24절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고지된 세금은 당시 지배받고 있는 로마 관원들에게 직접 바치는 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적인 세금은 세리들에 의하여 엄격한 징수체계를 통해 징수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세금은 회당세로서 반세겔(영국 화폐단위로는 15펜스)이다.
이 세금은 유대인이면 20세 이상된 자는 누구나 다 내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그 돈은 성전 예배 비용을 충당하였다.
그것은 출30:12∼13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함이라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세겔을 낼찌라 ··· 그 반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라고 했다.
이 반세겔은 또한 \\\\\\\"생명의 속전\\\\\\\"으로 불리워졌다.
이 세금은 종종 그러했었지만 지금은 엄숙하게 징수되지 않았었으며 특히 갈릴리의 지방에서는 징수되지 않았었다.
또한 이 성전세는 로마 통치하에서 전통적인 성전을 위한 예배 비용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로마인들은 이 성전세를 거두어 로마의 제우스 신전을 짓는데 사용하려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던 가버나움에서 성전세를 공개적으로 요청받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곤경에 빠질 수 있었다.
이교도 성전을 짓는데 세금을 낸다면 이는 매국적인 것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도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세금을 내실 결단을 내리셨다.
비록 하나님이 아들로서 세금이 면제되는 특권이 있지만 이방인과 충돌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세금을 낼 것을 베드로에게 지시한다.
세금을 내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세금 문제 때문에 큰일인 천국전파의 본질을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하늘나라가 이 세상 나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것임을 암시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금 告知에 매우 정중하게 처리하셨다.
왜 그렇게 예수님께서 정중하게 처신 하셨을까요?
. 그는 율법아래 나셨기 때문이다(갈4:14)
그러므로 그는 생후 40일이 되었을 때 이 법을 따라 세금을 내셨다(눅2:22)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죄 아래 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땅에 보내어졌다.
롬8:3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고 하시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서 \\\\\\\"죄의 모양으로 나타나기 위하여\\\\\\\"
구속해야할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세를 바쳤다.
. 예수님이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셨기 때문이다(마3:15).
이일로 인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곳에서 공적
예배의식을 위해 봉헌하는 본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영적인 열매를 얻게 되면 우리는 마땅히 물질의 열매를 되돌려 갚아야한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장사꾼들의 장터가 되었고 도적의 소굴이 되었으며 또한 성에서의 예배는 대제사장들의 가르침이나 교리와는 정반대로 겉치레뿐이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금을 바치셨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자기의 탐욕과 악의를 가리우는데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금을 바치셨으니 누가 감히 예외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면세의 특권을 누리셔야할 주님은 자신의 왕되심을 뒤로하고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인성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의무를 다하신 것이다.
오히려 주님께서 납세의 의무를 솔선하심으로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할 모든 성도들에게 삶의 방법을 제시하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모든 성도는 예수님께서 세금에 대한 본을 보이신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인식하여 더욱 교회안과 밖에서 모범적이며 빛된자로 살아가야 한다.

2. 세금이 어떻게 지불되었습니까?
27절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1). 왜 예수 그리스도는 면세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세금을 바치셨습니까?
그것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베드로 외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적은 문제인 세금 내는 것을 가지고 아직은 감추인 비밀인 그 진리를 경솔하게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그 큰 진리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깊이 생각할 것은 지각 있고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보다는 내일의 더 큰 진리를 위해 차라리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두려워하여 해야할 의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2) 예수님은 이 세금을 바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으셨습니까?
주님은 \\\\\\\"낚은 물고기의 입\\\\\\\"에서 돈을 얻어내어 세금을 바치셨다.
여기에는 몇가지 사실이 나타나있다.
(1). 그리스도의 곤고함이다.
그는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지만 세금 지불하는데 필요한 반세겔(15페스)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주님은 무료로 병자들을 치유해주셨기 때문이다.
Paul은 고후 8:9 \\\\\\\"그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다.
주님은 회개를 맡은 가룟 유다에게 명령하여 이 세금을 지불하도록 하시지 않았다.
그 돈은 생계비를 위한 것이요, 제자들을 포함한 공동체를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특별한 사정을 인하여 지출하도록 명령하지 않으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그의 능력은 물고기 입에서 세금에 충당시킬 돈을 꺼내실 때 나타나셨다.
그의 전능하심이 그 돈을 그 물고기의 입에 넣어두었든지, 아니면 그의 전지하심이 그 돈이 그 물고기 입에 있는지를 알았든 지간에 결국은 한가지 즉 그의 능력에 귀결된다.
즉 그것은 주님의 식견과 능력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3) 베드로는 낚시질을 하여 물고기를 잡아야만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지전능의 능력을 행하실 때일지라도 근면과 노력과 희생을 장려하기 위해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셨다.
베드로는 이 문제를 위해 무엇인가를 자기 힘으로 해야만 했다.
낚시하는 일을 주님이 도우시지 않으셨으며 베드로 혼자 나가서 낚시질을 해야했다.
그것은 그의 소명이요 그만이 해야할 일이었다.
이 사실은 오늘 여기 주님 앞에 나와 앉으신 우리에게 교훈 하시는 바이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 받고, 책임 받은 직분을 교회에서 받았으며, 직장과 사업장에서 나의 직분을 부여받았으며, 국가와 사회의 일원이요 특히 그리스도인의 시민으로 직분을 부여받았다.
이 직분에 대해 부지런하며, 근면하며, 노력해야하고 희생해야할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해 주실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되며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일을 행해야만 한다.

. 어린아이가 예수님 앞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덩이를 가져오는
그일 말입니다.
이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이것으로 5천명이 먹고도 남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이 꼭 해야할 일을 하고져 한 것뿐이었다.
우리 주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일하기 싫어하는 자에게는 먹게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4). 물고기 입의 돈은 주님과 베드로의 세금만을 낼 수 있는 금액이었다.
베드로가 낚아 올린 물고기는 입에 돈을 물고 올라왔다.
이것은 일하고 희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넘치는 보상이요, 순종할 때 주어지는 순종의 보상을 뜻한다.
주의 명령을 지킬 때나 그것을 지킨 후에는 반드시 큰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불순종의 사람이나 선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기회와 축복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시19:9∼11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꿀송이 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했다.
마음 문을 열고서 주님의 말씀을 거리낌없이 기꺼이 받아 순종할 때 그의 손길은 그의 순종하는 종들을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
本文 27절 下 \\\\\\\"너는 한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셨다.
주님은 얼마전에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셨다.
그 능력을 주님은 지금 갖고 계신다.
동전 한 닢으로 손쉽게 한 자루의 돈을 만드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현재 쓸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여길 것과 또한 그날 그날 벌어먹고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기 비탄에 빠져 불신앙에 떨어지지 말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스도는 그 물고기를 그의 돈 맡은 자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의 창고로 삼아야하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나의 보배로 삼고 미래의 보장으로 삼아야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6:34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하셨다.
주님은 당신 자신과 베드로를 위해 세금을 온전히 지불하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반드시 그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며 그와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지불한 것은 빚으로 간주되었으며 또한 베드로를 위해 지불한 것은 그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 성도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이 세상의 재물을 많이 모아 가지고 의롭게 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빚,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감사함으로 갚는데 쓰고 의롭게 살뿐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곤고하고 힘든 인생 길을 걷는 자들, 전도와 선교에 헌신하는 자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호의를 베푸는데 다 쓰여진다면 성도로서 가장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은근히 자랑하면서도 보다 많은 선을 행할 수 없다면 그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디에 쓰다가 죽는다는 말입니까?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임을 잊지 말고 나그네로 있을 때 더욱 경건히 살며 선을 행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고 살기 바라며 베드로처럼 주님의 조력자로, 동반자로 자기 직분과 사명에 근면, 희생, 노력합시다.
명령에 순종한 베드로는 신앙의 성숙을 얻었으며 새로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너희는 오직 예수의 말을 들으라\\\\\\\"는 하늘의 음성,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조력자와 순종의 사람으로 살아서 그와 함께 영광의 자리에도 나아가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