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의 축복 (5)

성전 건축의 축복 (5) 기대/마9:27-31

성전 건축의 축복 (5) 기대
마9:27-31





복권을 사는 것은 자유이고, 그것은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기자가 한 시민에게 \\\\\\\"당신도 복권을 샀느냐\\\\\\\"고 물었을 때 \\\\\\\"예, 남들이 사니까 한번 사봤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은 진실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 장을 사든 열 장을 사든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저 사보는 사람이나 또 남들이 사니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장을 사는 사람도 거기에 기대를 품고 복권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시민은 사업에 실패를 당하고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가족들은 자살을 할까봐 전전긍긍하였습니다. 하루하루 비관을 하며 살다가 또또복권에 인생의 승부를 걸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길이 없다\\\\\\\' \\\\\\\'이 길만이 살 길이다\\\\\\\' \\\\\\\'이 복권이 터지면 내 인생은 전환이 된다\\\\\\\'는 생각으로 빚을 내어 백만원 어치나 복권을 샀습니다. 결과는 \\\\\\\'꽝\\\\\\\'으로 끝났습니다.



기대와 욕심은 다르다



여러분, 기대와 욕심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권을 대체적으로 기대를 가지고 사지만 심리를 분석해 보면 욕심입니다. 기대는 그 기대가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하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대는 욕심, 요행, 소원성취도 아닙니다. 기대는 아주 영적입니다. 기대는 믿음의 요건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여러 가지 말씀 중에 특별히 두 가지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와 \\\\\\\"기다릴찌니라\\\\\\\"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이 두 가지 말을 묶어서 보면 \\\\\\\"믿음으로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믿으라는 것이고 기다리라는 말은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소경 이야기는 믿음의 기대를 우리 앞에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두 소경은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병이 진행되고 있는 환자가 아닙니다. 치료도 필요 없고 치료해도 가망이 없는 완전한 소경으로 운명 지어진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안구교체나 대안시술이 없었습니다. 한번 시력을 잃으면 그대로 살다가 가야하는 운명 지어진 사람들입니다. 두 소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나, 두 소경들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두 소경이 있는 앞을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소경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소경은 주님의 뒤를 따라오면서 다음과 같은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시고 계속 길을 가셨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소경들은 그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보통 있을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아닙니다. 소경은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 두 소경은 거지 소경 같습니다. 두 소경의 처지야말로 아무 기대도 없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경이 하는 행동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경에게 남아있는 것



앞은 보지 못하지만 입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렀습니다. 한번만 부른 것이 아니라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더듬거리면서, 비틀거리면서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설령 다리가 건강하다 할지라도 바로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더듬으면서, 비틀거리면서, 장애물을 헤쳐가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힘입니다.

그들은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두 소경은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들은 시력을 잃어버렸고, 인생의 기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서 이들은 남아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들을 수 있었고 비틀거리면서도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었고,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은 아직도 이 소경들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직도 무언가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집착하지 마시고 아직도 하나님이 내게 남겨두신 것을 붙잡기 바랍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는 이 한마디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소경들은 여러말로 예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마디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여기에는 선지자들이 가르쳐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소경들도 유대인입니다. 이 사람들도 마음속에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의 자손이 예수님인 것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야로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고 믿고 기대를 하고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이 한마디에는 믿음이 성립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경을 다 알아야 하고, 세상의 많은 지식을 가져야만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임을 믿으면 믿음이 형성됩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임을 믿으면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으로 형성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배우지 못했어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두 소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메시야임을 믿고 예수님께 자기들을 맡긴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은 \\\\\\\'당신의 능력만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통사람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이신 주님만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의 기대입니다.



기대는 소망이요 능력이다



요셉의 사건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곡식을 사러온 형님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을 피하도록 가나안에 있는 부모님과 형님들을 애굽에 이민을 시켜주었습니다. 애굽에 정착지를 만들고 거기서 편안히 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아버지 야곱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님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요셉은 우리에게 보복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버지로 인하여 우리를 봐 주었지만 이제 아버지가 없으므로 틀림없이 요셉은 우리에게 보복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형님들은 요셉에게 몰려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때 요셉이 한 말은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님들을 벌써 용서했는데 형님들은 요셉의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봐 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별세하고 나면 틀림없이 우리에게 위기가 올 것이다\\\\\\\'라는 마음을 안고 살았던 형님들이 너무 애처롭고 불쌍해서 요셉이 울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본심을 몰라주고 살았던 형님들, 자기가 용서해 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그 형님들을 보고 요셉은 울었습니다.

여러분, 기대가 없는 믿음은 두려움으로 대신합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두려움이 한 가운데 자리잡습니다. 욕심이 자리잡습니다. 기대는 욕심과 구별됩니다. 기대라는 것은 계속 과정에 있는 하나님의 요구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오는 과정입니다.



기도와 실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나와서 처음으로 전쟁을 한 것은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전술이 아주 특이합니다. 지도자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는 동안 여호수아가 전장에 나가 승리를 했습니다. 이 장면은 구약에 나와있는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적군을 무찌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 직접 적군을 물리친 것은 여호수아와 그 군대들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있는 일입니다.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의 전투는 함께 있는 일입니다. 만약 모세가 기도하는 일만 있다면 이스라엘은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세의 기도가 없이 여호수아가 무작정 전장에 뛰어든다 해도 승리가 불가능했던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의 전투는 함께 있는 일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출발점입니다. 미사일 발사대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전투는 과정입니다. 승리를 기대하면서 싸우는 과정이 여호수아의 전투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원만하게 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식구가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는 식구가 있어야 신앙가정으로 바로 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식구는 열심히 나가서 장사도 잘하고 직장에 나가서 직장생활도 잘하는 식구도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기도했다가 또 산에서 내려와서 전쟁하는 것은 혼자서 못합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아내는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남편은 밖에 나가서 일 잘하고 돈 잘 벌고 이렇게 가정이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기도하고, 모두 일하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역할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되고 집안이 되고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했다면 믿음이 이루어지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의 기도 중에 \\\\\\\"내가 아침에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기도는 시작입니다. 기도했으면 이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바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허점은 믿기는 믿는데 기대를 잃어버립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주여!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지만 현관문만 나가면 믿는다는 그 기대를 잊어버립니다. 기도의 흔적이 없이 살아갑니다. 믿음의 흔적이 없이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약점입니다. 믿었으면 믿음으로 사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대입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이 소경들은 예수가 메시야의 자손임을 믿고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외면해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분이 아니고는 우리 눈을 뜰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외치면서, 비틀거리면서,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기어코 그 예수를 향하여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집념과 끈질김과 기대가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집에 들어 가셨을 때 두 소경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주님이 두 소경을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위로의 말씀도 안 하시고 두 소경에게 \\\\\\\"내가 능히 너희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줄 것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하실 때 모든 것을 다 알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는 생각하고 대답하면 답이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믿음으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하고 답하면 맞지 않습니다. 두 소경이 믿는 줄 알지만 주께서 물었습니다. 그 때 두 소경은 \\\\\\\"주여! 그러하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번 더 그 믿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왔던 기대가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대답입니다. 만약 이 소경들이 따라오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 누군가 와서 \\\\\\\'이 사람들아 예수님이 너희들을 오라 한다\\\\\\\'라고 했다면 두 소경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지나갈 때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시고 지금 와서 우리에게 왜 오라 하느냐?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힘드는데...\\\\\\\' 하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소경의 \\\\\\\"Yes Lord\\\\\\\"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기대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열광하는 세상



우리나라에 두 가지 헤프닝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대선개표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한나라당에서는 \\\\\\\'그러면 그렇치, 뭔가 수상했다, 그냥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수개표 하자고 소송을 했습니다. 국민들도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비를 6억이나 들여 재검표를 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글을 올렸다\\\\\\\' \\\\\\\'여당에서 글을 올렸다\\\\\\\'고 서로 분쟁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교사가 한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헤프닝은 인터넷에 \\\\\\\"살생부\\\\\\\"라는 글이 올랐습니다. 이것은 민주당에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민주당 안에서 한 것이라고 서로 반목하고 의심했습니다. 범인을 잡아보니 철공소 직원이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건이 수면으로 떠올랐을 때 여당의원이나 야당의원이 하는 태도를 보십시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사가, 철공소 직원이 그런 글을 올리는가?\\\\\\\' 세상이 변했습니다. 얼마든지 그런 글을 아무나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이 박사학위를 받아야 합니까? 국회의원, 야당인사, 여당인사만이 당 이야기를 합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철공소 직원도 얼마든지 온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기대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전부 탐욕, 이기심, 의심, 불안입니다.

복권으로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주고 열광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엉뚱한데 소모하게 하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국민들의 좋은 정열을 집합해서 좋은 곳에 동역화 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망가지게 하고 허탈감에 빠지게 합니까? 일등 당첨된 사람들은 지금은 좋을지 모르나 내년쯤엔 일등 당첨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뉴스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치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의 모습들은 길거리에 있는 두 소경 처지보다는 육신적으로 더 나은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약점은 기대가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는 껍데기만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믿음이 기대로 충만한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합시다. 그분의 능력을 기대합시다.



맺는 말



예수께서 두 소경의 눈을 만지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대로 되는 믿음, 기대가 있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은 욕심으로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대가 있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금년 표어를 정하면서 \\\\\\\"성전건축으로 새 역사를 기대하는 해\\\\\\\"라고 했을 때 \\\\\\\'기대\\\\\\\'라는 용어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시작하는 해\\\\\\\'로 하자고 했습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만드는 해\\\\\\\'도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가 있는 \\\\\\\"기대\\\\\\\"라는 용어에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새 역사를 기대합시다! 기대하고 살아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역사합니다. 기대가 무너지면 하나님도 잠잠합니다. 기대가 살아 있는 믿음이라야 여호와 하나님이 능력으로 때를 따라 우리의 기대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