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목회(2) 병든마음, 상처난 마음
치유목회특강자료 병든 마음, 상처난 마음
처음 클리닉에 찾아오는 엄마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하는 엄마, 아무 의욕이 없는 듯 아이에게도 무신경한 엄마,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엄마,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소아 정신과를 처음 찾아 올 때 대부분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평가 과정을 거쳐 결과가 나왔을 때 보면 엄마나 아빠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경우가 더 많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의 치료가 시작됨과 동시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는 엄마나 아빠에 대한 평가에 들어가게 된다. 심리검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를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정신치료를 받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 발병한 경우일수록 아빠보다는 엄마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엄마들의 정신치료 숫자가 아빠들보다는 훨씬 많은 편이다. 참으로 많은 엄마들이 병들어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고 때로 건강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저마다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진단명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건강 염려증 등의 환자인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엄마들은 외부에서는 눈치채기 힘든 정도의 문제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이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 영향이 참으로 클 수밖에 없다. 거의 하루종일 같이 있기 때문에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의 문제가 흔히 아이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열등감이 많던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누구에게라도 지는 것이 싫어서 이것저것 모두 다 시키다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는 애늙은이처럼 지쳐버리게 되었다. 어려서 성폭행을 당했던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조금만 늦어도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불안해하였는데 학원 가는 날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아이가 늦게 집에 돌아오자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어이없이 뺨을 맞은 아이를 통해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앞으로도 이 불안감에서 해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누구와도 나누어 보지 못한 숨겨진 마음의 병이 내 자녀들을 또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뭔가 두렵고 뭔가 건드리기 싫어서 클리닉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전문 상담 기관을 찾아오긴 했지만 자신의 문제는 건드리지 말고 제발 아이만 고쳐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엄마들도 간혹 있다. 그만큼 돌아보거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것이 ‘병든 마음’이다.
‘병든 마음’ 중에는 정신분열증처럼 마음이 모두 갈라져 현실감각마저 상실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상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마음 대부분이 건강한 상태이다. 단지 마음의 한 부분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병든 마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몰라도 자신만은 자신의 병든 마음을 아는 경우가 있다. 늘 남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징그럽도록 싫다는 사람도 있고 주체할 수 없는 신경질을 부리고 나면 ‘내가 정상은 아니지’싶은 마음이 들었었다는 사람도 있다. 같은 패턴(pattern)이 반복되는 것을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먼저 발견하여 알려 주는 경우도 있다. 돈을 꿔 주었다가 원금마저 뜯겨서 다시는, 누구도 꾸어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오래지 않아 똑같은 경우를 또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와서 애걸하는 사람을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돈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이런 일이 한 개인에게 계속 반복될 경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이러한 패턴도 병든 마음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아내가 입었을 때 “나를 무시했다”며 엄청나게 화를 내는 남편이 있다. 평상시에는 비교적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남편인데 가끔 한 번씩 이렇게 화를 낼 때면 아내는 어쩔 줄을 모르곤 했다. 몇 년간 지내 오면서 발견한 사실은 남편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격분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지적을 통해서야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에 매우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자신을 사로잡는 이 감정이 가까운 친구와도 갈라서게 했으며 직장에서의 어려움도 야기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나는 이런 패턴 역시 병든 마음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나 감정들은 별 것 아닌 듯 하나 그 정도나 빈도가 심해지면 본인이 우선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 힘들고 오래 지속되면 더불어 병들게 되므로 가능하면 빨리 그 pattern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지혜롭다 하겠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에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어 교회를 통한 내적 치유나 기독 상담의 요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런 병든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대부분 어려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작은 상처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가족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려서 살림이 어렵고 어머니가 식당을 경영해야 했기 때문에 시골 외가댁에 맡겨졌던 경우가 있었다. 그 부모들은 외할머니가 잘 키워줘서 시골에서 편하고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은 외갓집에서 자라나면서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느껴졌다. 시골길에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볼 때마다 혹시 엄마일까 싶어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마다 ‘나는 버려졌다’는 느낌에 휩싸이곤 했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이 계속 쌓여만 갔다. ‘버려졌던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그때에도 알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머니 곁에 돌아 온 후에는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머리로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 마음에는 그 때의 버려진 느낌과 분노가 생생히 살아 있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그 느낌은 항상 남아 있어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언제 나를 배신하고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방의 사랑을 계속 시험해 보거나 조금만 자신에게 소홀한 것 같으면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오히려 먼저 배신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과 걸 맞는 사람과는 사이가 멀어져 버리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서의 마음 속 깊은 상처가 마음에 오래 남아 마음을 병들게 하므로 ‘병든 마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산다.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병든 마음들이 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므로 우리 주변에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은 예상외로 매우 많은 상태이다. 또한 아이로부터 시작된 치료가 엄마를 지나 할머니에게까지 이어지는 예도 있다. 대를 내려 상처를 주어 왔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하겠다.
병든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나름대로의 애를 쓴다. 소위 여러 방어기전(defense mechanism)을 사용하여 자신을 지켜 나가려 하는 것이다. 대부분, 어렸을 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경우가 많다. 무시무시하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대항하기보다는 속으로 꾹 참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 두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적절한 자신의 의사 표현마저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대화를 하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 속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며 마음의 답답함은 그대로 남아 혼자 술을 마시며 풀어 버리려 한다. 이제는 얼마든지 이야기해도 될 뿐 아니라 자신의 건설적인 의견을 오히려 반가워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윗사람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할 말을 가슴에만 묻어 두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억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전을 쓰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한 가지의 방어기전만 쓰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면서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의 방어를 겹겹이 둘러쓰게 된다. 이런 껍질들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자유롭게 살아가기가 어렵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껍질들이 필요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치료는 이 양파 껍질들을 하나 하나 벗겨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껍질들을 벗기고 들어가 보면 가장 핵심에는 병든 마음이 있다. 오래도록 싸여 있어 곪을 대로 곪아 진물이 질질 흐르는 병든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곤 그 속에서 상처받았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게 된다. 정신 치료의 과정은 병든 마음을 가진 사람이 80%이상 직접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치료자의 역할은 적절한 질문을 통해 이 껍질들을 벗겨 나가는 작업을 도와주고 그 핵심에 들어있는 상처와 병든 마음을 함께 바라보며 공감해주는 길동무일 뿐이다. “내 상처와 내 병든 마음을 안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느냐?”고 물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마음의 상처를 인식하고 그로 인해 병들었던 마음의 상태, 나를 엄습해버리는 감정을 이해하기만 해도 반 이상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제대로 알기만 하면 불필요한 방어기전을 쓰지 않게 되고 자신에게 반복되는 감정이나 행동이 나타날 때에는 재빨리 자신의 병든 마음과 연관을 지어보게 된다. 이를 통해 쉽게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엄습하는 감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신치료가 한참 진행되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배어 있는 병든 마음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이 깨달음이 횟수를 더해 갈 때 이제야 눈이 뜨이는 것 같다거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세상이 바로 보인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그 과정동안에는 일시적으로 아프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나 자신도 정신치료를 통해 내 문제를 더욱 잘 직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과정은 정신치료나 상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정신치료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용서’의 문제이다. 머리로나 마음으로나 내 상처도 알고 그로 인해 생겨난 병적인 방어기전들도 이해하게 되어 많은 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끼던 때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정신치료에 포함되지 않는 용서의 문제를 하나님은 다루어주셨다. 정신치료의 한계라고 느끼고 마음을 접었던 치유의 마지막 단계를 용서를 통해 마음을 온전히 치유시키신 것이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기독교신앙(Christianity)과 정신치료(psychotherapy)의 접목을 위한 신학 공부로 나를 인도하셨고 감사하게도 4년만에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일하게 되었다. 병든 마음,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정신치료는 매우 유용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훌륭한 도구이므로 이를 통해 마음의 꺼풀들을 모두 벗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드러난 상처 위에 용서의 놀라운 기적으로 새 살이 돋아 날 때 참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정신치료의 완성은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