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새벽기도회 말씀) #14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온 축복-2”
■ 오늘의 읽을 말씀 : 이사야 53:5,6
■ 오늘의 찬송 / 489장, 85장
질문] 축복이 뭡니까? 문자적으로 ‘복을 빌어준다’는 뜻입니다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신다’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복을 내려주신 답니까? 그렇습니다. 구원의 복, 영생의 복, 영혼의 복입니다. 이 복은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복입니다. 이 복이 누구를 통해서 왔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왔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다리삼아 우리에게 건너왔습니다. 어떤 고난입니까?
징계라는 고난입니다.
징계란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나무라며 경계하는 것’. 법적으로 말하면 ‘부정이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허물이 있습니까? 무슨 잘못을 저지르셨습니까? 부정한 행위, 부당한 행위를 하셨습니까? 그런데도 허물이 있다고, 잘못이 있다고 인정되셨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 있는 인간으로부터 뉘우치도록 나무라고 경계하는 말을 들으셔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행위, 부당한 행위를 하신 것처럼 제재를 받으시더니 급기야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되는 판결을 받으시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사람이나, 재판을 한 빌라도나, 못 박은 로마 군병이나, 조롱하던 사람들이 모두 죄인이었지만 의로우신 예수님을 사형시켰습니다. 이들은 바로 우리를 예표(豫表)합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징계하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버린 겁니다. 따라서 그 징계는 내가 받아야 할 징계지만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므로 우리는 평화라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믿는 순간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죄악의 포박 줄이 끊어지고 사탄은 더 이상 우리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채찍이라는 고난입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채찍으로 맞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첫째, 노예입니다. 노예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주인은 노예를 채찍으로 때려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주었습니다. 둘째, 죄인입니다. 죄인이 죽을 정도의 죄가 아닐 때 재판관은 채찍 형벌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노예입니까? 죄인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창조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아기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까지 예언했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자기 땅에 오신 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예처럼, 종처럼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되어 사형시키라는 군중들의 요구를 묵살하려는 빌라도의 판결에 의해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그냥 십자가 형벌에 처해졌으면 채찍은 맞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묘하게 예수님이 채찍에 맞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나음을 입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질병에서 나아야지요. 죄의 질병, 영혼의 질병, 마음의 질병, 몸의 질병에서 낫도록 예수님이 대신 채찍으로 맞아주신 겁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감사할 일입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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