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4) 왕따 당하신 예수님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말씀) #11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말씀) #11

“왕따 당하신 예수님!”

■ 오늘의 읽을 말씀 : 이사야 53:3

■ 오늘의 찬송 / 330장,141장




질문] 왕따 당해보신 적 없지요? 감사하세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혼혈아동들이 왕따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지요? 왕따란 ‘왕 따돌림’이란 뜻인데요, 예수님도 이 왕따를 당하셨음을 성경은 증언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멸시(蔑視)란 “업신여김. 몹시 낮추어 봄. 깔봄”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이는 교만한 마음에서 예수님을 낮추어 보고 하찮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이 싫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하고 버렸다고 기록했습니다(참고 요1:10,11절). 한 마디로 왕따를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슬퍼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왕따 당하심을 당연히 여기시고 환영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2:25).”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간고(艱苦)란 “가난함과 곤궁함” 또는 “가난하고 고생스러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평생 한 벌 옷과 간단한 음식으로 살아가셨으며 머리 둘 집도 없으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준비된 자기 무덤이 없으셔서 다른 사람이 준비한 무덤에 잠시 묻혀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메시야란 재산도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대에 부자 청년에 대해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21,22).” 그러나 예수님이 가난하고 곤궁하게 되심은 우리들을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심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질고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질고(疾故)란 “병고, 곧 병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겪는 질병이 무엇 때문인지를 잘 아십니다. 사단에게 속아 넘어가 사단의 편에 들어갔던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오는 원죄(原罪original sin) 때문에 빚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만병의 대의사(大醫師)이시기 때문에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진토요, 약한 존재임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각종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주신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얼굴을 가리고 예수님을 보지 않으려 하였고, 온갖 모멸과 조롱으로 멸시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주의 종들 ; 우리도)들까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왕따를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삶을 배워 실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걷기를 원하고 예수님 만나는 삶을 최고의 영광으로 압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