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0.16 ▒ 금새벽 설교제목:! 성繹뻘?62● 요한1서05:18-21 요약:요약 81101650금새.mp3 (4.8MB )
1981. 10. 16. 금요일 새벽
본문 : 요한1서 5장:18절-21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여기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리라」 하나님께로서 났다 그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살아났다 말입니다. 살아났다.
하나님으로부터 살아난 자는 어떤 자인가?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 영에 연결되고 접선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은 성령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진리가 우리 영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렸습니다. 살린 것이 일시적으로 살린 것이 아니고 영생으로 살렸습니다. 영원히 살렸기 때문에 다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볼 수 없는 자로 살아났습니다. 또 영은 살아났지만 우리의 육이 살아날 것이 지금 살아날 순서입니다.
그러면 육이 살아나는 데는 육의 이 형체가 살아나는 것은 언제 살아날긴가?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 살아납니다. 그러면 지금 살아날 것은 어떤 것인가? 지금 살아날 것은 이 마음과 몸의 심신의 기능이 지금 살아납니다. 이것이 부할 때에 예수님의 재림으로 부활할 때에 부활한 자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권능입니다.
바울은 이 부활의 권능을 얻기 위해서 달음질한다고 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에 이 형제가 부활하는데, 부활한 자의 권능, 부활한 자의 실력, 부활한 자의 실력은 부활할 그때는 실력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죽기 전에 이 부활의 권능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쩌든지 그리스도의 당한 그 고난, 아버지와 진리에 순종함으로 세상에게 고난당하는 그 고난, 바울도 주님과 진리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세상에게 고난당하는 이 고난, 주님이 당한 그 고난과 꼭같은 그 고난에 참여해서 어쩌든지 죽고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죽고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죽으면 죽은 것이 하나님과 진리에 속해서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죽어 하나님의 것이 됐고 진리의 것이 됐고 그 하나님과 그 진리는 자기가 세상이 죽이려고 해도 거기 타협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것과 진리의 것이 되어 하나님과 진리의 것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것과 진리의 것이 됐고 또 그때의 하나님과 그때의 진리는 자기의 하나님과 자기의 진리가 되어 자기는 그에게 속하고 하나님과 진리는 자기를 영원히 책임지고 붙들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된 영도 악한 것이 만지지를 못하고 해하지 못합니다. 또 죄짓게 못합니다. 중생된 영도 죄짓게도 못하고 해하지도 못하고 가까이 오지도 못합니다.
또 육도 이 심신의 기능, 이 기능이 하나님과 진리로 중생하는데 하나님과 진리로 다시 살아나는데 살아난 것은 영생을 가졌고 그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결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합은 세상이 중매를 시켰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 되지 말라고 진리의 것이 되지 말라고 있는 힘을 다해서 해할 때에 온갖 해를 받아서 그들에게 저거 것이 안 됐다고 저거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괴롭히다가 죽여 버렸습니다. 죽여 버렸으면 사망이 붙들고 있는 그것이 이는 사망이 마지막으로 손떼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박해를 주는 것인데 마지막으로 박해주고 손을 뗄 때에 그때에 그는 하나님을 향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서 떨어지고 끊어졌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하는 것은 죽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한 그 부활 그것은 힘쓰지 아니하고 더 안해도 되는데 그것 때문에 죽자 살자 힘쓰는 것 아니라 그 말이요. 응 죽기 전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어 부활하는 것, 재림 전에 세상에서는 죽고 세상에게는 버림 당해 끊어지고 절단 나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나는 그것을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하지 않습니다. 영도 하나님께로 난 후에는 범죄하지 아니하고 이 심신의 기능의 그 요소, 요소 중에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것은 그것은 다시 범죄하지 아니합니다.
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하나님께로서 나신자라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누군가? 하나님께로서 온 자라 말입니다. 하나님께로 온 자가 저를 지키시매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하나님께로 온자가 저를 지키시매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 말은 삼위일체의 삼위 중에서 온 일위가 성령이요 또 일위가 성자신데 성자가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다 기울였고 끝났고 성령이 이 일을 지금 맡아 가지고 하시는데 예수님이 다 기울여 하신 것과 성령이 하신 것과 다른 것은 예수님은 인성이 있어 죽음이 있었고 대속을 하시기 위해 그래 됐고 성령은 죽거나 없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누를 지켜? 중생된 영을 지키고 또 중생된 심신의 기능을 지킵니다. 중생된 요소는 지킵니다.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악한 자는 만지지도 못한다 악한 자가 어떤자가 악한자인데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니 그러면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니까 악한 자는 자기 중심대로 사는 자가 악한 자인데 악령이 악한 자요, 악령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은 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악한자입니다. 그러면 여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 그 말은 세상이 그를 만지지도 못하고 세상이 그를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그 일도 하지 못하고 범죄치 못한다 말은 복종시키는 일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만지지도 못한다 다른대로 보면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 꼭같은 사람인데 악의 세력을 보고 어떤 사람은 기절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왜 다 같은 현실을 만났는데 사건을 만났는데 그 두려움의 차이가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 많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 적고 또 그렇게 두려움의 차이가 있는 건 왜 차이가 있는가?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을 만날 때에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자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그 자가 두려워하는가 그 자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세상에게 해를 받을 수 있고 세상이 지금 위협할 수도 있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세상에게 속한 그자가 세상이 위협을 주니까 두려워하는가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된 그 자가 세상이 위협을 하니까 두려워하는가 어떤 자가 두려워하는가 어떤 자가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한번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응 네 악에 속한 자, 아직까지도 악이 해하려면 해하고 고난 주려면 고난주고 죽이려면 죽이고 할 수 있는 그 악한 자에게 소속 되어있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완전으로 중생되고 영원으로 중생되고 영생으로 중생되고 하나님과 진리와 한 덩어리가 된 그 자는 이런 것들이 만지지도 못하고 또 저거가 이것을 부리지 못합니다.
범죄치 못한다 말은 죄짓도록 만들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아직까지 부활되지 못한 것 미중생된 것 그것이 두려워합니다. 이러니까 미중생한 것이 많은 자는 두려움이 많고 그것이 적은 자는 두려움이 없고 그 두려움 그 두려움 거기에 그 두려움에게 위협을 받을 그 요소는 다 부활을 해 버렸고 아직까지 부활 못한 게 있지만 그 요소는 다 부활했고 다른 요소에게는 위협을 당할지라도 그 요소에는 위협당할 것이 다 부활됐으면 그 사건에는 그 사람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렵고 큰일이 닥치면 그 사람에게 부활되지 못한 요소가 있으면 있는 것 만치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게 두려움을 받는 것도 그러하고 침노를 받는 것도 그러하고 세상에게 붙들리고 내 흔들어서 세상이 흔들 때에 흔들리는 그 자도 그러하고 또 그 자는 세상에 속해 부활하지 못한 자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도 어떤 자가 사랑하는가? 내나 미부활 그자가 세상 것을 사랑하고 세상 것을 부러워하고 세상 것을 좋아하고 세상 것을 두려워하고 또 세상 것을 욕심냅니다.
그자는 전부 미부활입니다. 그자는 전부 미부활 자요. 미부활 자요 부활된 자는 악한 자 안에 있는 것은 싫어하고 미워하고 그것을 업신여기고 그것을 멀리하고 이러기 때문에 세상과 아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하는 일이 뭐이냐 부활한 자는 이제는 이 세상에게 해는 받지 않는 자인데 세상하고 싸워서 세상에게 붙들려 있는 자를 뺏으려고 날뛰는 공작뿐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한자는 세상에 뺏으려고 세상에게 삼겨 있는 사람을 구출할라고 세상을 잡아 정복하려고 이러니까 세상은 부활한자를 두려워합니다.
부활한자를 두려워하고 부활한자는 세상에게 털끝만치도 해 받을 그런 우려성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지 못한 그 자가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악령이 세상을 안준다 이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세상은 세상이 안 줄라고 하니까 돈을 안줄라 한다 권세를 안줄라한다 뭘 안줄라 한다 하니까 위협을 당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이 저 좋아하는 것 안줄라하니까 위협을 당하고 제가 아직까지 두려워하는 그것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세상이 두려워하게 하니까 세상을 두려워할 그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탐하는 것도 부활되지 못한 요소들이 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도 부활되지 못한 요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아직까지 변화를 받지 못한 것이고 안 믿을 때와 꼭같은 그 요소기 때문에 그 요소가 지금 세상을 두려워하게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욕심내기도 하고 그러니까 세상이 욕심내는 걸 안줄라 이러면 갖다가서도 위협을 당하고 세상이 또 두려워하는 이것이 세상이 있다가 위협을 주면 또 두려워하고 그 순전히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고통이든지 고통을 느끼는 그것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세상에 속한 그 자의 노름입니다. 세상에 속한 그 자가 세상에 속한 세상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그를 갖다가서 자유할 수도 있고 흔들 수도 있고 고통을 줄 수도 있고 위협을 줄 수도 있고 또 기쁘게 할 수도 있고 이렇지만 부활 된 것은 세상이 기쁘게도 못하고 슬프게도 못하고 근심되게도 못하고 평안하게도 못하고 욕심나게도 못하고 그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1서 4장에 ‘온전한 사랑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졌다’ 그 말은 부활된 자는 세상이 붙들래야 붙들기 없어. 붙들 끄내기가 없어 응 이러니까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지 그것을 가지고 세상 것은 이것 다 주마 꼬아도 천하 영광을 다 주마 꼬아도 하나님만 경배하지 그런 것은 싫다 이러니까 자 세상 것 가지고서 꼬아도 안되지, 위협해도 안되지, 이기 좋다고 암만 해봐야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더럽다고 보지도 아니하지 이러니까 세상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부활한자는 벌써 하나님과 진리가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저의 힘이 있고 진리가 저의 힘이 됐고 하나님과 진리도 살아난 하나님과 진리가 자기에게 실력이 됐기 때문에 벌써 피조물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피조물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에 이 악한 자 안에 있는 세상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그를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부활은 언제 되느냐? 주일날 됩니다. 어떤 때 되느냐? 자기의 마음, 목숨, 힘, 뜻 다 할 때에 됩니다. 다 할 때에 됩니다. 그러면 어떤 때 됩니까? 다 할 때에 되는데 제가 스스로 다 할 수 있고 다 하지 아니하는 자는 세상이 이것을 도와서 세상이 이것을 도와 서 다 하느냐, 안하면 세상 것이 되느냐 죽인다 이럴 때에 안 죽을라면 진리와 하나님과 배반해야 되겠고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지 않으려면 생명을 내놔야 되겠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세상이 협동을 해서 협조를 해서 죽인다 이러니까 어라 생명 내놓고 하나님과 진리 차지하자 이래 가지고 그 순간에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이것을 위해서 고대하고 있고 협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활이 문제입니다. 부활되지 않은 것은 그것은 지금 부활하여야 할 것은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남반에. 기능 그러면 심신의 지식, 지혜, 선, 사랑, 진실, 거룩, 의 그런 것 다 모든 그것이 심신의 기능입니다. 그것이 뭐 잘못 되어 있소. 지식도 다 죽어 있소. 잘못 되 있기 때문에 죽어 있다 말이요. 죽은 지식을 살리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바른 지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바른 지식을 바꾸는 것은 자기가 지식을 세상 지식을 가지고 있다가 세상적으로 지식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 지식과 대립이 대립이 되는데 하나님의 지식도 아니고 세상 지식도 아니니까 그 지식을 바꾼 것인줄 압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이냐 세상 지식이냐 어느 것이냐 하는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꼭 부인을 하고 이제 갖다가 하는 그 어려움을 통과해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쇠가 용광로에 들어가야 잡철이 녹아서 새 쇠 가지되지 그 전에서는 암만 갖다 두드려봤자 항상 헌쇠요, 그 그놈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면 이 녹진 헌쇠가 팡 녹아지고서 물같이 되서 새 쇠로 되어 나와 버립니다. 용광로에 들어간다 들어가야 된다 그 말이요 이것이 시험이요 어려움입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부활이 문제입니다. 부활한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것을 다른 말로 말해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 짓는다, 내나 예수님을 몇십년 믿어도 그 사람이 심신의 기능 가지고 있는 것은 안 믿을 때의 기능 그거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 십자가를 싫어서 십자가가 뭐인데 어려움 하나님과 진리 놓지 아니하려고 하나님과 진리대로 할라고 하다가 죽어지는 것이 십자가라 말이요. 고난당한 게 십자가라 말이요. 사망 안에 있는 것이 깨지는 것이 십자가라 사망 안에 있는 것이 깨졌으니까 생명 안으로 옮겨지지. 이것을 여러분들이 잘 깨닫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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