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다녀와서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작성일: 2008/03/16, 14:39:02
수정일: 2008/03/16, 15:24:46
작성자: 김재복
최근,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를 4박6일 동안 여행하게 되었다. 여행경비를 줄이려고 기내에서 2박을 하고 직항로가 있으나 버스로 12시간동안 이동하는 때로는 힘들고 지루한 여정이었으나 보람 있는 여행으로 회상된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부에 있는 나라로,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 일본에 점령되었고 일본 패전 후 1947년 5월 프랑스연합 내의 한 왕국으로 독립을 획득하였으며, 1953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정식명칭은 캄보디아왕국(The Kingdom of Cambodia)이며 평원국가로, 북동쪽으로 라오스, 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 북쪽과 서쪽으로 타이에 접하며, 남서쪽으로 시암만(灣:타이만)에 면한다. 국명은 프랑스어(語)인 \'Cambodge\'를 영어로 음역(音譯)한 것으로, 고대의 깜부자(Kambuja; 앙코르) 왕국에서 유래했다.
이 나라도 우리와 같이 공산주의에 의한 만행의 경험이 있는데 1975년에 폴포트(Pol Pot)가 이끈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 시절에 잔인하고 무자비한 반대파 학살이 이루어져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잔악상은 킬링필드(Killing Field)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의 실상은 우리의 육이오사변 당시 빨갱이들의 만행과 유사하며 양민들을 학살할 때 기준이 안경을 착용하거나 뚱뚱하거나 금이빨을 한 사람 이였다 하니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참혹한 것을 경험한 민족인지도 모른다. 수도 프놈펜의 “쯔응아익”에 위치한 이 킬링필드는 인근의 “뚜얼쑬랭”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처참하게 양민들을 사살한 곳이라 많은 해골들을 모아둔 건물과 공산군 만행의 생생한 사진기록들을 직접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어 그 잔악상은 이루 글로 다 묘사할 수 없고 점심 식사가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곳 캄보디아를 관광하는 주된 이유는 “앙코르 왓”이라는 오래된 사원을 관광하기 위함인데, 캄보디아에는 유명한 돌로된 사원이 127개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 “앙코르 왓”이다. 앙코르라는 말은 수도(capitol)라는 뜻이고 “왓”이란 말은 사원(temple)리란 뜻이라 한다. 5개의 탑과 그 구조물로 이루어진 사찰로 돌에 세겨진 각종 모양의 정교함이 매우 뛰어난 이 사찰은 현지 주민들은 두려워서 접근을 하지 않다가 불란스인에 의하여 발견, 복원, 관광지로 개발되어 이곳에서 나오는 관광수입만 캄보디아 국민 총생산의 1/3에 이른다고 한다.
“앙코르 왓”으로 가기위해서는 수도 “푸놈펜“에서 버스로 6시간을 달려야하는데 그곳 이름은 “씨엠립”이란 도시이다. 이곳도 땅값이 폭등하고 빈부 격차가 증대되는 등 개발붐을 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인천공항에서 직항로가 개설되어 인천에서 직접 씨엠립으로 갈 수 있어 한결 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캄보디아는 우리 보다 수배도 넓은 면적의 국토를 자지고 있고 우리처럼 산악지대가 아닌 평지로 이루어졌고 3모작을 할 수 있는데 반하여 우리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인구라서 매우 유리한 자연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어 한국전 직후에 우리가 어려운 시절에 “알랑미”를 보내와 경제원조를 한 국가 였으나 오래 동안의 외세에 의한 지배에 따른 부작용, 내전, 정정의 불안 등으로 국민소득 500불을 넘지 못하는 빈곤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린아이들과 젊은 여자아이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앵벌이와 성 상품에 내몰려져있고 소비전력의 40%이상을 인접국인 태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며 국도 주변의 민가를 보면 전기 없이 사는 집도 허다하였다. 이와 같은 절대빈곤은 외적인 요인에서 기인하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무엇보다 이 나라가 오래 동안 사탄의 지배국으로 살아오다보니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리 떨러져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언어는 뱀의 형상을 닮은 산스크릿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민속춤 또한 한 쪽 발을 뒤로 구부려 들고 엉거주춤한 선 자세에서 손가락들의 첫째 마디들과 발의 마디들을 뒤로 구부리고 추는 춤은 뱀의 임직을 흉내 내는 것이 분명한 것 같고, 건축물에도 이를 반영하듯이 지붕위에는 뱀의 꼬리 같은 장식물을 붙여 치장하였고, 줄 당기기 에 사용한 줄을 왕뱀으로 묘사한 것, 나무 뿌리도 뱀 모양이요, 팔찌도 뱀 모양, 발목에 거는 장신구도 뱀 모양이요.... 한 마디로 전신만신에 뱀 형상이 난무하는 꼬부랑 천국 즉, 이 민족이 일지기 사탄의 영향아래 있었음이 분명하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그러나 이곳 캄보디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서히 전파되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수도 “푸놈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도중에 한 한국인 상점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한국에서 온 중년 부부였다. 이곳에 온지는 1년 되었는데 먼저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한국에서 목사님 가정을 포함하여 6가정이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이중에 2가정은 가장이 전기기술자라고 하였다.
또한 “앙코르 왓”이 있는 씨엠립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러진 곳에 우리의 경상북도면적만한 크기에 동양 최대 호수인 “톤레삽”호수가 있는데 너무 넓어서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와 같은 느낌 이였다. 이곳에는 물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수상촌이 있는데 수상학교, 수상병원, 수상교회 등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수상교회와 수상학교는 한국에서 온 선교사가 운영하고 있고 태극기와 수상교회라는 우리말 팻말을 보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또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도로변에 우연히 최일도목사님의(?) “다일 공동체”라는 우리말 팻말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예인 중에서 최수종과 하희라씨가 이곳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 주 하나님에게 또한 감사드렸다.
다녀 온지 수일이 지난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잔영과 잔성은 관광지 입구에 지뢰로 인하여 발과 팔을 잃은 사람들의 그 나라 민속악기로 구걸을 위하여 연주하는 아리랑~ 아리랑~~ 우리 민요연주소리....관광객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원 달라! 일 달라!” 하며 애원하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애절한 까만 눈동자와 힘 없는 목소리....... 그들은 눈이 참 크고 맑으며 속눈썹이 무척 길었으며 그 눈망울 깊은 곳에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아픔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 여행의 필수 코스가된 발마사지 전신마사지에 사용하는 유에스 달라들(20불, 40불)은 더욱 콘트라스트가 되었다. 사실이지 물가고와 실업 등 우리도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안 입는 옷가지(특히 아이들 옷)를 준비해가면 경제적으로 작은 사랑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이러한 준비 없이 그냥 방문한 것이 못내 아쉬움과 미안하고 죄스런 감정으로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