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제자의 길
요8:31-36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며, 삶 속에 실천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스승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줍니다. 지적인 욕구를 채워줍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어떤 인생의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일생이 달라집니다. 작년에 방영되었던 허준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그 뒤에는 유의태 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여 종양을 연구하는 실험용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허준이라는 훌륭한 제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오체불만족> 작가인 오토다께는 손발이 없는 선천성 장애인이었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뒤에는 셀리번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셀리번의 사랑의 수고와 가르침으로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준 헬렌 켈러가 나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만나고, 스승으로 모시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영향력을 준 스승은 누구입니까? 역사적으로 인류를 움직여온 수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만큼 위대한 영향력을 준 스승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삶의 윤리나 도덕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영적 스승으로 모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제자로서의 결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는 제자의 3가지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우선 순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 여러분께서는 주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가지 조건 가운데 한가지라도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셨다면 그만큼 주님의 제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만약 아무런 노력 없이 한 주간을 보내셨다면 여전히 우리는 주님의 길과는 먼 길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한번 제자됨의 3가지 조건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제자의 길에 대해서 역시 3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제자의 길은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8:31-32)
요한복음 8장 31-32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참 자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우쳐주십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율법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율법의 완성자로 예수님이 오셨지만 여전히 그들은 율법의 멍에를 메고 살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네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아직도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그것으로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진리 안에 거할 때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면 참 자유를 얻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찾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행이나 수행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자유를 추구합니다.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습니까? 즉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얻어내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러나 지금 언론이 자유화되었다고 해서 우리들이 더 자유해 졌습니까? 출판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자유를 얼마나 확대해 주었습니까?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자유해 졌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더욱 부자연스럽고 자유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물리적 환경의 자유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내면의 자유, 우리 영혼 속에서 누리는 자유함이 없으면 여전히 부자유함 속에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보려고 자기 머리카락을 움켜 쥐어보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군가 구명보트를 던져주면 그 사람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에 빠진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어떤 진리의 길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과학적인 노력으로 자연의 진리나 상대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도 우리의 영혼을 자유케하는 참된 자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예수님만이 모든 인류를 향하신 길이 되십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생명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힘으로 영원한 자유의 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이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요한복음 14장 21절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자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가 자유를 누리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걷는 비결은 바로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소는 위가 몇 개입니까? 4개나 됩니다. 일단 음식을 꿀꺽 삼키면 4개의 위에 있는 것을 꺼내서 다시 되새김질 합니다. 성도는 소와 같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삶 속에서 다시 꺼내어 되씹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적용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골3:16)\" 권면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활 속에 풍성히 거하는 성도, 바로 제자도의 길에 들어선 자입니다. 9월 마지막 주에 구역별, 개인별 성경암송잔치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10개의 성경 구절을 철저하게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것을 외우지 못하면 밥을 먹지 않겠다는 각오로 암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복음을 제시하는데 꼭 필요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들만 차례로 읽어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누구를 만나도 말씀으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좌우의 날선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바로 제자도의 길에 들어선 제자입니다. 성지가족 모두가 말씀 가운데 풍성히 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제자의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13:34-35)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걷는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절을 함께 읽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사랑은 온 몸으로 보여주신 아가페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라고 본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팔레스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심장이 터지는 절규의 외침이요, 온 인류를 살리는 사랑의 폭탄선언이었습니다.
십자가 사랑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내 제자로 인정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서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기의 고집이나 편견, 이기심을 넘어서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낮추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쉰들러 리스트
우리는 \"쉰들러 리스트\" 라는 영화를 기억합니다.
몇년전에 유대인에 대한 학대와 비극적 죽음을 다룬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시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핍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스카 쉰들러라는 한 사업가가 수용된 유대인들을 이용해서 그릇제조 공장을 만들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런데 돈과 여자만 좋아하던 쉰들러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의 만행을 목격하고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쉰들러는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죽을 운명에 처한 1200명의 유태인을 구하는 대가로 자기의 전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비록 불의하게 번 돈이지만 수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치 간부에게 뇌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1200명의 유대인 생존자들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생존자들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자진해서 뽑은 금이빨로 만든 금반지를 쉰들러에게 선물 합니다. 이 반지를 받아든 쉰들러는 \"내가 좀더 노력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하면서 통곡합니다. 쉰들러에 의해 생명을 건진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후손 6000명은 지금 전세계에 살고 있으며, 실제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쉰들러의 마지막 고백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내가 좀더 노력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할 영혼이 아직도 어둠의 그늘 가운데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 입술을 열어 예수 안에 길과 진리와 생명이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줄 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자도 없습니다. 사랑은 움켜쥐고 있으면 금방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손을 펴서 나누면 그것은 배가됩니다. 점점 풍성해 집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삶 그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두 번째 길입니다.

셋째, 제자의 길은 과실을 많이 맺는 것이다.(요15:7-8)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세 번째 길은 과실을 많이 맺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7-8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비결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반드시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길가의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구했지만 그것은 잎만 무성한 열매없는 나무였습니다. 그 나무는 저주를 받아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한 성도가 되서는 안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속은 텅빈 열매없는 모습이라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좋은 성도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타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힐까요? 그 비결이 요한복음 12장 24절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땅에 떨어진 씨앗이 썩어야 싹이 납니다. 그것이 자라면 30배, 60배, 백배의 놀라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비결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 내 이기심이 죽어야 합니다. 나의 정욕과 욕심이 죽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불타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희생
27살 때에 선교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중국으로 머나먼 바닷길을 건너온 토마스 선교사, 그러나 중국으로 건너오자마자 꽃다운 나이에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그는 중국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한반도에 사는 조선 민족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민족은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고 있으며 복음을 들은 일이 없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말로 된 성경책을 배에 싣고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그 때는 대원군이 한참 쇄국 정책을 펴고, 카톨릭 신자들을 잡아죽이는 살벌한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성경을 전해 주려고 노력을 하다가, 결국 우리 관군들의 공격에 의해 배가 불타게 되고, 그는 강변으로 끌려 내려 칼날에 맞아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하는 그 순간에 그는 자기 목을 치는 사람에게 성경을 던져 주며 \"이것을 읽어보시오.\" 라고 소리치고는 죽었습니다. 그를 칼로 친 사람이 그 성경을 주어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읽고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의 피가 그 강변에 흘렀기에 그 피 값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게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면부지의 이 땅에 와서 쏟은 수많은 벽안의 선교사들의 피와 땀을 먹고 우리의 생명은 싹텄고, 한국교회라는 나무는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기초하고 있는 이 희생의 반석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양화진에 가면 많은 사람들의 비석들이 서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세기 전에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풍토병에 걸리고 적응하지 못해서 죽은 어린 아이들의 무덤과 어떤 선교사 부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명대로 살지 못한 젊은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명의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한국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빚진 감정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희생 없이는 생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희생 없이는 지옥으로 가던 영혼이 천국으로 향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원에 심겨져 있는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는 정원수가 아닙니다. 좀 못생겼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는 유실수, 과일나무입니다.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있으면 반드시 자라게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자가 바로 제자입니다.
사랑하는 성지 가족 여러분!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아닙니까? 더 늦어지기 전에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날마다 죽게 될 때 그 속에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제자도의 길을 동행하려면 3가지가 필요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따라 순종함으로 제자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