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고싶어하지 않는 제자의 길 눅14:25-35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가는 사람’(church goer)들은 많아도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Nachfolger, disciple)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한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세상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삶의 태도로 세상적인 복--물질적인 축복과 건강과 성공 등의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교인들의 수는 많지만, 예수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끝내는 목숨까지 내 놓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길로 가신 예수를 따라 가는 제자는 극히 드물다는 말입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신학지망생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후보자로 목사가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서울의 어느 여자대학교가 조사한 남편후보에 목사가 이발사 다음의 순위였습니다. 이 정도의 순위는 인기도로 봐서 하위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가 가는 길이 고생길이고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목사가 되기를, 또한 목사의 사모가 되기를 피하려 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70년대 이후부터 신학지망생이 신학대학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 후보감으로 목사가 상위권에 들 정도로 인기가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신학지망생이 많아지고, 목사의 인기가 높아진 일, 이것은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부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란 기독교가 세상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매력적인 것이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매력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그 매력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학생이 많아지고 목사가 세상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특히 남편 후보감으로 상위권에 든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은 기독교가 세상사람들에게 왜곡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 가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의 뒤를 따라 가는 제자의 수는 적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잴 수 없는 절대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 즉 예수를 믿고 그를 따라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는 분명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예수가 제시한 제자의 길은 사실 ‘아무도 가고싶어하지 않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너무나 힘겨운 감당키 어려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안일한 생각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적인 복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가기를 원치 않는 길입니다. 그 길은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가기를 원치 않는 길입니다. 여러분, 그 길이 도대체 어떤 길입니까? 우리의 본문을 다시 살펴보도록 합시다.
26절의 말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 27절의 말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3절의 말씀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제자가 되는 조건들을 발견합니다. 모두 다 감당키 어려운 조건들입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이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아무도 이같이 어려운 제자의 길을 가고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 번 반복된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부정법으로 사용한 말씀입니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부정법을 사용한 것은, 제자 되는 조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결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첫째는 가족(부모와 형제 자매)들을 미워하는 일입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식구들을 예수님보다 덜 사랑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예수님을 식구들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제자의 삶이란 주님을 우선하는 삶이며, 주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시고 내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우선이 되고,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가족들까지도 포기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다음,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합니다. ‘자기 목숨’이란 ‘자기 자신’, 즉 ‘나 자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덜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이 말 역시 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나의 목숨까지 포기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나의 목숨을 포기할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같은 가족포기와 나 자신(목숨)을 포기하는 일은 곧 십자가를 지는 일이며, 나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일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며”(27절),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절)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세 번째의 조건이며 결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각각 지워진 십자가는 곧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 책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인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 책임을 지는 일은 곧 자기 희생이 따르는 것이고, 때로는 자기포기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소유는 자신을 위한 축적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분배와 나눔을 위한 것입니다(눅12:16-21, 16:19-31, 18:22, 19:8).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재물)는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만일에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지 않고,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선한 목적으로, 즉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 축적하는 일을 한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그의 뒤를 따라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나 자신과 나의 모든 소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또한 우리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전존재를 포기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주님처럼 ‘타자를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가 되는 일이며, 예수의 제자로 사는 삶의 존재양식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같은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은 가족들과 나 자신을 포기하고, 나의 장래를 보장해 주고 지켜주는 모든 소유(재물)를 포기해야 하고, 끝내는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일인데, 여러분, 이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해 낼 수 있겠으며, 누가 이 어리석은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들의 자연적인 인간본성과 그 경향성은 도무지 이 일을 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같은 어려운 길을 피하고 편안하고 쉬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십자가의 길보다는 영광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자연적인 인간의 본성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토록 어려운 제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동안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만사형통 해진다는 기복신앙을 가르치고 선전하고, 쉽게 예수 믿는 길을 제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참으로 ‘값비싼 은혜’인데 ‘값싼 은혜’로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십자가의 종교를 기복적인 무당종교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사형통의 복을 받기 위해서 구름 떼처럼 교회로 몰려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하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그같은 복을 받기 위해 교회로 모여든 것입니다. 마치 배고픈 무리들이 허기짐을 면하기 위하여(빵을 얻으려고), 또한 많은 환자들이 병고침 받기 위하여 예수께 구름 떼처럼 몰려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길인데 말입니다.
이같은 무리들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이들이 주님을 가족들보다 더 사랑할 수 없고,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소유와 목숨을 내 놓을 수 없으며 자기이익만을 바라고 예수께 몰려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결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누가 감히 예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은 ‘아무도 가고싶어하지 않는 이 제자의 길’을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그 길을 갈 수 있는 자는 예수께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베드로처럼 나사렛 예수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주님으로 고백한 자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신 수난의 종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이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만이 그 힘겨운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인간적인 약점이 있고, 모진 박해와 핍박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하기도 하며, 때로는 좌절하고 주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사렛 예수를 고난받는 종으로 고백하고 또한 그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야(구주)로 고백하는 자는 결국에는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부르심을 따랐던 것처럼, 예수의 부름을 받고 나선 우리들,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야로 고백하고, 고난받는 종으로 고백하는 우리들도 감히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선교사여러분, 주님의 소명을 따라 복음을 들고나선 우리들, 비록 예수의 제자로 사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그 길이 그토록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아무도 가고싶어하지 않는 제자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힘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능히 이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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