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제자

무리와 제자/눅14:25-35

무리와 제자
눅14:25-35





오늘은 우리 교회가 첫 예배를 드린 지 만 2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두 돌을 맞이하였습니다.
저는 첫 예배를 드린 2000년 3월 첫 주일과 지난 해 3월 첫 주일에, 오늘과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며 앞으로 우리 교회가 맞는 창립 기념주일에는 늘 같은 설교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를 처음 설립하며 하나님 앞에서 바른 교회, 즉 사람을 위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자고 다짐하던 것을 잊지 않고 지켜가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란 무슨 일이든지 시작할 때는 좋은 뜻으로 굳은 각오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단의 유혹과 마음의 탐심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유래가 없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외부에서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스스로 교회를 세운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교회의 성장을 보였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와 가장 큰 신학교를 가진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국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하였다고 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처음 예수를 믿고 받았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자기 욕심과 교만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즉 첫 사랑을 잊으면 안 됩니다. 첫 사랑이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답습니까? 그것이 사라진다는 말은 사람이 타락하고 부패해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도 첫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계 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러므로 저는 매년 우리 교회의 생일이 오면 처음 교회를 세울 때의 다짐과 각오를 잊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다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왜 2년 전에 제자교회를 세웠습니까?

한국에 오만 개나 되는 교회가 있고, 우리 교회가 위치한 군포시 당동의 이 블록 안에도 일곱 개나 교회가 있는 데,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는 남의 빌딩 한 모퉁이를 빌려서 한 개를 더 세워야 했습니까? 제가 할 일이 없어서 목사일을 하여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교회를 세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여러분도 주일과 수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에 시간 보낼 곳이 없어서 이 교회로 나오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이 시대에, 21세기를 여는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 땅에 제자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오늘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왜 제자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허다한 무리와 소수의 제자들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1) 허다한 무리먼저 주님을 따르던 허다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숫자가 많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직접 만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자기의 귀로 직접 들었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눈으로 보았고, 자기 몸의 병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치료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무리들은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5,000명을 먹이실 때,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임을 알았습니다.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 선지자란 누구를 말하는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선지자\\\'란 신명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한 메시아입니다. 신 18:15-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교훈을 잘 기억하고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그의 말씀을 듣고 주께서 모세가 예언하던 그 선지자, 즉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1.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유는 육신의 필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셔다가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는 것, 경제적인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였고 예수님의 능력을 본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경제문제는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왕이 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피해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에 돌아오시자, 거기까지 주님을 따라온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그들은 영적인 것, 하나님의 거룩한 것,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먹고 배 부르려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즉 오직 자기 육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2. 그 허다한 무리들에 대한 주님의 태도.
주님을 따르는 그 허다한 무리를 주님은 별로 신뢰하지 않으셨습니다.

요 2:23-2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이 말씀과 같이 허다한 무리의 속성을 잘 아시는 주님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그들에게 주님은 자기의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원치 않으셨습니다.

마 13:10-13,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주님은 그들을 믿지도 않으시고, 기대하시지도 않으셨던 것입니다.



3. 예수님에 대한 무리들의 태도
주님이 떡을 주실 때에는 구름같이 따라다니던 무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어렵자, 그 교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요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그리고서 그들은 떠났습니다.
요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무리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가 불리할 것 같으면 제자인 것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요 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사도 요한은 그들에 대하여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에게 붙잡히시고 빌라도의 법정에 서시자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들로 변했습니다. 왕으로 삼으려던 사람을 죽이려는 폭도로 변하는 것이 무리들의 속성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무리들이란 주님에게 무엇인가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구름같이 따라다니다가도, 자기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자기들에게 손해가 될 것 같다면 쉽게 주님을 배반하고 제 갈 길로 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2) 제자들
제자들은 무리들과 똑같이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기적을 목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리들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① 그들은 주님이 택하신 자들이었습니다. 눅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②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마 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의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오실 메시야를 보고자 하였으나 그 은혜를 받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메시야를 보고 알았다. 성경에서 알았다는 말은 연합, 즉 완전히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③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들이 주님을 떠날 때,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 6:67-69,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주님에게 영생의 말씀이 계심을 아는 사람은 떠날 수 없습니다. 제자란 주님에게서 영생을 얻으려고 따라온 사람입니다. 배가 고파도, 고난이 닥쳐와도, 오직 주님에게만 영생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④ 무리들에게는 아무 것도 원하시지 않고 자기 몸을 의탁하시지도 않았던 주님이 제자들에게는 요구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주님은 제자가 되려면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 가족을 미워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또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경은 어떤 곳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해 놓고, 또 여기서는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했으니 성경은 합리적이지 못한 틀린 곳이 많은 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하고 비난해도 안 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책입니다.
이 말씀은 마 10:37-38,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사람에게 하나님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이 우상숭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제자란 주님을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3) 제자의 조건-자기를 부인함.
자기를 부인한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 그것은 자기의 생각,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본문 28절부터 32절까지에서 주님은 세상 사람들의 사고를 설명하십니다. 집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전쟁을 하려면 군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배부르게 먹으려면 떡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떡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내 것으로 남을 도우면 내가 가난해지므로 구제는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높아지려면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야 하고,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 한다. 내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그것과 반대가 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이와같이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반대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아야 주님의 뒤를 따르는 데에 좋은 줄로 알지만, 주님은 너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세상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반대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 수가 많고, 큰 건물을 가지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교인이 몇 명 되지 않아도, 건물이 없어도, 그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아무리 큰 건물을 지었어도 떡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려고 나온 무리들로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인간의 본성을 부인하라는 명령입니다.
인간은 원래 완전하게 지어졌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부패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자기를 높이고 싶어합니다. 육체의 안락함과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명령은 이러한 자기의 본성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높아지고 싶지만 주님이 낮아지라고 명령하셨으므로 겸손하려고 애를 쓰고, 나의 본성은 육신의 정욕을 따르려고 하지만, 주님이 거룩하게 사셨으며, 성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충성하셨으므로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신앙인이 된 지금도 우리가 가진 본성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심하게 죄로 오염이 되어 있는지 신앙 생활까지 그 부패한 본성에 따라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예배와 봉사에 참여하는 일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 일에 열심히 하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과 봉사를 혹시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분은 안 계신가요? 교회에서 주신 직분을 명예나 어떤 지위로 착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혹시 이 중에 내가 빨리 집사나 장로가 되고 싶은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빨리 버십시오! 지위를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닐 필요 없습니다. 자기의 성취를, 출세를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시간과 재물이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에 나가십시오. 그쪽이 훨씬 빠를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섬기셨고 자기 목숨을 나를 위해서 내어 주셨기 때문에 나도 주를 위해서 살며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가 아닌,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동기로 교회를 다니는 분은 주께서 내치실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므로 제자란 자기의 모든 소유와 목숨까지 주님께 바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사형대를 의미합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아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라는 명령입니다. 즉 이제까지 나를 위하여 살아왔던 사람이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다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죽으라는 말씀입니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하셨습니까? 허다한 무리들처럼 떡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려고 오셨습니까?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무리와 제자로 구별된다고 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 배를 불리려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 교회 안에는 대부분이 그런 무리들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은 자기 배를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부모나 형제나 이웃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싸고 잠만 잡니다. 이런 어린아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람 구실을 하지는 못합니다. 집안에 이런 어린아이만 있으면 가정이 설 수 없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이 없이 아이들만 모여 있으면 시기와 분쟁이 그치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3:1-3에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젖을 먹고 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어린아이로 태어나지만 성장해 가듯이 신자들도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히 5:12-13,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면 자라지 않듯이 신자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귀한 자녀가 태어났는 데 자라지 않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가 자라지 않으시면 근심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에 이런 성장의 장애를 보이는 신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을 낳아 10살이 되어도 대소변을 못 가린다면 얼마나 큰 일입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자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품안에서 울기만 하는, 기저귀를 차고 있는 수준입니까? 내가 빨리 자라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도록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 위하여 말씀과 경건에 열심을 내고 있는 아들입니까? 아니면 매일 매일 게으르고 열락만 즐기는 근심거리 자식입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는 주여, 주여 하기 위해서 제자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우리는 5만 개나 되는 한국 교회에 똑같은 모습의 교회를 하나 더 하기 위해서 제자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제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식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

렘 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임을 깨달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래 죄로 오염되어 있는 데다가 사단이 우리가 주님을 순종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싸움이 아닙니다. 오직 끊임없는 경건의 연습으로만 가능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계속 운동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기의 육신의 건강을 위해 바치는 시간만큼 영적인 건강을 위해 투자하시기를 권합니다. 골프 치시는 분은 그것이 매우 좋은 운동입니다. 계속하십시오. 그러나 그 시간만큼 하나님의 말씀도 읽으십시오. 등산을 하시는 분도 좋습니다. 열심히 등산을 하십시오.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 바치시기 바랍니다. 딤전 4:4-8,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우리는 이제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신앙 생활도 그 말씀대로 합시다. 내 생각에 좋은 대로 교회를 이룰 생각을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금년에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 이전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 생각대로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합시다. 교회는 물론 예배드릴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한 예배당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며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심으로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존재가치를 상실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여러분은 호화 아파트에 살면서 하나님은 초라한 집에 모실 수가 있느냐? 우리 정성을 다하여 성전을 세우자\\\"고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수법을 미워합니다. 우리가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공부하며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공간만 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아무리 초라하든지 저는 만족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모든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적당한 예배당을 주시기를 간구하기를 바라지만 이를 위하여 따로 건축 헌금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자적인 건물을 주시면 그것도 감사하고, 아니면 천막을 치든지,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상가 건물의 한 귀퉁이를 빌리든지 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배만 드릴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건물을 구하거나 짓거나 사는 일은 집사님들이 하실 일이지 목사인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고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제 일입니다. 교회의 살림과 모든 일을 이미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일도 잘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예배당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일전에 소년원 아이들을 돌보시는 김경자 전도사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많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또 변종길 형제도 우리가 도울만한 단체를 소개한 것으로 압니다. 어느 곳이나 좋습니다. 어떤 단체를 돕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난한 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에 열심인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병든 자, 소외된 자, 악한 세력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좀 더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한 주도 빼지 않고 청계천 판자촌과 남양만 간척지를 다니며 무료진료를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으면 우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도울 자가 없을 것이라고 잠언 기자가 기록한 것을 보셨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힘이 들고 생기는 것도 없지만 얼마나 보람있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자기 욕심을 만족시키는 일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사랑하고 돕는 일은 진정 큰 기쁨과 보람을 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제자들의 마땅한 의무임을 잊지 마시고 더욱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는 큰 교회, 돈 많은 교회나 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위임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돈이 있든지 없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교 또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돈을 보내고 선교했다고 자부해도 안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하찮고 더러운 것이 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목숨을 주어야 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본래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주님은 그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을 믿으며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롬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제자 되어 제자 삼자\\\"가 우리 교회의 모토입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지 말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제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