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 받은 70인의 제자들

파송받은 칠십인 제자들 (2)/눅10:7-16

파송받은 칠십인 제자들 (2)
눅10:7-16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특권에는 관심이 있지만/ 소명에는 상대적
으로 관심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았
습니다. 죄악의 도성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짐 받
았습니다. 마귀의 사슬에서 풀려났습니다. 사망의 권세에서 놓임 받았습
니다. 이건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특권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을 함
께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부여받은/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냄받은 소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특권만 알고
소명을 모르면/ 절름발이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열둘을 제자로 불러/ 가르치고 양육하고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열 둘을 불러모아 파송하셨습
니다. 주님 곁에는 열둘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주님께 헌신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70인 제자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주님은 먼저 이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주님이 그들 중에서/ 특별히 70인을 세우셨습니다.
\\\"세우다\\\"란 단어 \\\'아네데이크센\\\'은/ 열두 제자를 세울 때 사용된 단어입니
다. 그러니까 70인 제자들을/ 열 두 제자들과 똑같은 권위로/ 파송하신
겁니다.

주님은 그들이 나가기 전에/ 먼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의 우선을/ 기도에 두는 사람들입
니다. 어떤 일도/ 기도보다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기도부터 하고 시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기도
하는 마음으로 하면 되지/ 이렇게 바쁠 땐/ 기도하는 시간도 아껴야 한
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친을 장사하러 가겠다는 사람에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신/ 그
주님이 먼저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교회는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여러분
이 그리스도인인 게 분명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확실하다면/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태신자 초청을 앞두고 하
는 새벽기도회입니다. 불신자와 낙심자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을/ 목전
에 두고 하는 새벽기도회입니다. 태신자 초청의 성패가/ 이 새벽기도회에
달려있습니다. 그날 참석한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이 새벽기도회에서 결정됩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우리는 새벽기
도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센 동장군도/ 새벽기도하는 우리를
쓰러뜨리지는 못할 겁니다.
아멘입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갈지어다\\\"
세상을 향해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기도주의자\\\' 아니면 \\\'행동주의자\\\'가 되
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행동해야 하는데/ 기도만 하고 있는 겁니다. 기
도했으면 골방에서 나와야 합니다. 계속하여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됩니다.
내게 붙여주신 영혼/ 내가 적어낸 영혼을 위해/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무릎꿇어야 합니다. 그 영혼을 생각하며/ 아버지
께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그 영
혼을 찾아가서/ 사랑의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의 말을 건네야 합니
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이제 태신자 초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일주일은 길지
않습니다. 어쩌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짧지도 않습니다. 그 영혼에 대한 부담을 안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사랑의 수고를 하려고 하면/ 일주일도 결코 짧지 않습니다. 이
번 한 주간을/ 주님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하세요.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라고 한 곳은/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푸른 잔디
와/ 아름다운 꽃들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맑은 호수가 있는/ 정원이
아닙니다. 그곳은 이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리가 떼지어 다니는 곳입니다.
그걸 모르실 리가 없는 주님이/ 어린양 같은 제자들을 향해/ \\\"갈지어다\\\"
라고 하십니다. 어린양이 이리 앞에서 살아남는 것은/ 확률에 있어 제로
에 가깝습니다. 죽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걸 아시면서 가라는 말씀은/ 달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목자
가 되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갈지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어디
로 가든지 지켜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걸 믿질
못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이 땅에서 죽을 줄 압니다. 맞아요. 주님이 없
으면 죽습니다. 이리 소굴에서/ 양이 무슨 재주로 살아남겠어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혹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업하면/ 혹 이문이 적게 남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망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하면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아멘입니까?

주님은 전도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제자들의 준비물에 대해 말씀하셨
습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이/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
대 곧 지갑을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머니 곧 일용품을 넣는 가방을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 곧 여분의 신을 지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에 있어서/ 필수품과 최소한의 경비까지도/ 제한하고 있습
니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돈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권력이 있으면/ 권력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아예 빈 몸으로 출발
시킨 것 같습니다.
이 때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전도자의 에티켓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인사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이 집이 평안찌어다\\\"
그 집에서 전도자를 영접하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할 것이요/ 전도자를
배척하면/ 그건 복음을 배척한 것이요/ 곧 주님을 거부한 것이 됨으로/
심판이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영접받았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또 영접받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주님의 말씀
입니다.
먼저 영접을 받았을 경우입니다.
7-9절을 보세요.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
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첫째로 그 집에 유하라고 했습니다.
여러 집에 옮겨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좀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 옮겨 다녀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왜요? 70인 제자들이/ 대접받기 위해 파송받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접을 거부하란 말이 아닙니다. 대접받을 생각도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접받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금하신 것은/ 이 집 저 집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보다/ 좀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에/ 신경쓰는 것을 금하신 겁니다.

오히려 주님은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주는 대로 먹
으라는 말입니다. 8절의 \\\"어느 동네\\\"가/ 이방인 동네까지 포함한다고 보
면/ 음식 문제 때문에/ 전도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술 담배 문제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다
정리하고 나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담배 피우
고/ 술 한 잔씩 하면/ 덕이 안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술 담배 때문에/
예수믿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술 담배 정리하고 나서/ 교회 나오겠다며 핑계대는 사람들에게/ 술 담
배해도 괜찮으니까/ 교회 나오라고 하세요. 어떻게 술 담배와/ 예수 믿는
것을/ 동급에 놓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이 잘 설명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8-13절을 보세요.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
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
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
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특히 8절 말씀은 너무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술 담배는 천천히 끊어도 되니까/ 일단 교회에 나오시라고 하세요. 교
회에 다니다보면/ 술 담배는 자동으로 끊어지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오
시라고 하세요. 예수믿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술 담
배 문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잘 설명하세요.

둘째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라고 했습니다. 치유하
고 선포하라고 한 것입니다. 치유는 효과적인 선포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치유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불치병자가 치유받고/ 귀신들린 자가 고침받
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포에/ 보다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로
불치병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걸 교회가 본연의 사명으로 삼기는 곤란
합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런 사역을 하면 되고/ 대부분은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포입니다. 강단에서는 설교자에 의해 말씀이 선
포되고/ 삶의 현장에서는 전도자에 의해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최고의 사명이/ 말씀 선포에 있음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불신자들과 낙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는
데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이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있음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은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0-12절을 보세요.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영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축복을 선언했다면/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화를 선언했습니다.
9절 끝 부분의 말씀과/ 11절 끝 부분의 말씀을 잘 보세요.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나/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의 나라
가 가까이 온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게/
한 쪽 사람들에게는 복이 되고/ 다른 한 쪽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심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심판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일이 심판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그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축복만 몰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복으로 다가오지만/
그분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이/ 어떤 심판입니까?
발에서 먼지가 떨어져 나가듯/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심판입니다. 하
나님의 긍휼에서 끊어진 심판/ 하나님의 자비에서 잘려진 심판입니다.
죄인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을 거두어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만
남습니다. 영원한 파멸에 이릅니다. 둘째 사망을 맛봅니다. 지옥 불구덩이
에 던져집니다.

주님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의 최후에 대해/ 이런 예를 드셨습
니다. 소돔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소돔이 어
떤 심판을 받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로 심판을 받았
습니다. 성 자체가 하늘의 불로 새카맣게 타서/ 재만 소복하게 남아있다
가/ 그 재마저도 바람에 날려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우리가 은혜의 하나님을 외면하면/ 심판의 하나님을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
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에/ 우리 이웃 가운데/ 은혜의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심판의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무심코 내버려두시렵니까?
심판주의 칼날 아래 놓이도록/ 곁에서 그냥 두고 보시렵니까?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저주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13-15절을 보세요.
13)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뱃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
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어느 동네보다/ 주님의 말씀과 이적을 많이 접한 지
역인/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이/ 심판을 크게 받는다는 말입
니다. 이제 이 세 지역에서/ 주님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를/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고라신에서 주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록상으로는 나와있지 않지
만/ 주님이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셨나 봅니다.
벳새다에서는 주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몇 주전에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기억하세요? 9장에서 나왔습니다. 10절 이하를 보세요. 떡 5개와 물
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곳이 벳새다였습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특별한 일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
습니다.

요한복음 6장 14-15절을 참조해 보세요.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오병이어 이적이 충격을 주었고/ 기대를 갖게 했습니
다.

가버나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주님의 주
활동무대가 바로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주님에게 있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으로 이사를 해서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은/ 말씀에 헌신하지 않
았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권능을 구경하는 것에 의
미를 두었습니다. 그릇된 삶에서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옛 생활에
서 돌아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세 지역을/ 두로와 시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이 어떤 곳입니까?
번영과 쾌락과 퇴폐의 이방 도시입니다.
아스다롯이란 우상을 숭배를 하는 도시입니다.
아합의 부인 이세벨의 고향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우선 순위에/ 1번 2번을 서로 다투는 도시입니다.
주님이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두로와 시돈에다 비유하는 것
은/ 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 기준
은 달랐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이들이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볼 때는/ 두로와 시돈이/ 이들보다 더 악한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관심도 없고/ 우상숭배에 열을 올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에 반
해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두로와 시돈에 비해 덜 악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든지 못섬기든지/ 그래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도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주님이 기분 내키는 대로 말씀하셨을 리는 없고/ 분명한 기준이 있었
을 겁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은/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두로와 시돈에 비
해/ 덜 악하고/ 죄도 덜 지었지만/ 말씀을 받고도 그랬기 때문에/ 말씀을
알고도 그랬기 때문에/ 더 큰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나/ 말씀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것도 복입니다.
우리가 교회만 오면/ 설교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
는 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을 듣는 자에게/ 선택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복음을 듣는 자마다/ 결단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듣고 지나가는 것을/ 듣고 흘려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분명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게
모두에게 복된 소식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말씀
을 듣고 순종한 사람에게는/ 복으로 다가오지만/ 말씀을 듣는데 만족하
고/ 말씀대로 사는 것에는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화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고개 끄덕이는 것으로/ 복받을 걸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들은 것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 두로와 시돈
보다 더 큰 심판선언을 당한/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자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어떤 책임이 따릅니까?
말씀에 순종해야 할 책임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고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조 1조는 이렇습니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
일의 법칙이다.
말씀을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으면/ 우리 삶과 부딪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말씀의 표준에서/ 미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말씀의 표준에서/ 크게 빗나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이
말씀의 표준에서/ 미달하거나 빗나갈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회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언제나 회개가 따릅니
다. 일부러 회개를 촉구하지 않아도/ 말씀 자체에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삶의 표준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말은/ 삶의 표
준을 확실하게 제시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들에게 따라야 할 것이
뭐겠어요?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 말
씀을/ 두로와 시돈에서 전했더라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
하였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차이가 있지/ 사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면 함량미달입니다.
하나님의 표적에서 빗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다 심판의 대상인 겁니다. 그
래서 구원받을 장치를 마련해두었습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13절로 볼 때/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베옷 입기를 싫어했고/ 재에 앉기를 거부했습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말씀의 요구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
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무시해버렸습니다. 마음의 성전을 깨
끗케 하라는 말씀을 외면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혹시 여러분이 설교를 너무 자주 접함으로/ 말씀을 경히 여기지는 않
습니까? 말씀을 자주 들음으로 인해서/ 말씀에 대한 설렘임도 없고/ 기
대도 없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오늘 못 들으면 내일 들으면
되지 뭐/ 그런 식의 생각을 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나라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향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
가왔을 때/ 복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인 16절을 보세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되 귀담아 듣고/ 그 말씀
대로 사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매일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말씀을 수용할 자유도 있고/ 거부할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결과를 선택할 자유는/ 여러분에게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전한 복음을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복음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행동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에필로그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전도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
고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전도 나가라는 말도 아
닙니다. 주님은 먼저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기도입
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이/ 한 주간 동안 열리는/ 특별새벽기
도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그럼에
도 한 주간의 새벽을/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잠시도 미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유 부려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영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도
록/ 친절하고 공손하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은/ 다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하면/ 그렇지
도 않은 것 같습니다.
멍하니 1시간 보내고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 내 졸음과 씨름하다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 공중의 메아리가 되어/ 교회당 문을 나서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아니 말씀이 귀에 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말
씀이 우리의 심비에 새겨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순종 여
부가/ 저와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의 생활화를 이루는데/ 혼신의 힘을 쏟는 한 주
간/ 아니 일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