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사고

제자들의 사고/눅12:22-31

제자들의 사고
눅12:22-31





오늘의 말씀은 네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이제 매주마다 한 제목씩 선택하여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3월 달은 제자들의 인격(사고)을 다시찾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마음대로 쓰임을 받는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Part Ⅲ:제자의 인격

1. 사 고(눅12:22-31)
2. 대 화(눅24:13-35)
3. 행 동(마 5:38-48)
4. 성 격(막 8:1-10)

-목적

`제자의 인격`이라는 본 주제를 통해 의도하는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생각, 말, 행실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을 알게 하고 자신의 사고, 대화, 행동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 이르도록 성서적 사고, 은혜로운 대화, 관대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있습니다.

오늘 삼일기도회에서 전해 드릴 말씀은 제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인격 중에서 \\\"성서적사고\\\"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인격\\\"이라는 어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격 [ 人格, personality ]

요약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동경향.

어원(語源)은 연극의 가면(假面)·역할·등장인물 등을 뜻하는 라틴어의 persona이며, 독일어로는 Persnlichkeit,프랑스어로는 personalit입니다. 원래 한자의 `人`은 사람의 형상으로, 자기 부족에만 쓰이고 타부족을 지칭하는 말로는 쓰이지 않았는데 공자(孔子)에 의하여 이 개념이 확대되어 모든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또 `格`은 고정(固定) 또는 고정된 중심의 뜻으로서, 자기 자신을 유일한 지속적(持續的) 자아라고 생각하는 개체로 설명됩니다. 요컨대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합니다.

윤리학에서는 여기에 진위(眞僞)와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 및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더해집니다.

I.칸트는 물건(物件:동물도 포함된다)과 구별되는 자아의식으로서의 인격을 말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령·신격(神格)과 함께 이성적 성질을 가진 불가분의 실체로서의 인격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였습니다. 한편 인격이라는 특성을 구체적인 인격과 구별할 때는 인격성 또는 인간성이라는 말이 쓰이며, 일반적으로 인격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입장을 철학에서는 인격주의라고 합니다.

다만 신학상의 인격주의는 신격, 즉 신과의 주체적인 연결 위에 근원하는 실체를 인격주의로 다룹니다. 또 인격을 억압하는 물질·사회·체제·전쟁 등에 대하여 이것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방향으로 인간성이 작용하는 것을 휴머니즘이라 합니다.

*사고 [ 思考, thinking ]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아래와같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유(思惟)라고도 합니다.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어느 대상 ·사태 또는 그러한 것들의 측면을 지각(知覺)의 작용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과 서로 상보적 작용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활동 또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사고(思考)란 항상 누구나 겪는 자명한 행위로서 R.데카르트는 사고를 존재의 첫번째 표시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타당한 판단인 추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논리법칙이 사고의 법칙이라고 보아, 삼단논법의 세 요소인 개념 ·판단 ·추리가 동시에 사고의 요소가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연합주의(聯合主義) 심리학이나 뷔르츠부르크학파에게도 받아들여져 개념 ·판단 ·추리 등은 과거의 연합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란 기득지식의 활용이라는 재생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O.제르츠 및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사고작용의 본질은 전혀 새로운 견지에서 사태를 다시 보는 데 있다고 하여 이 생산적 성격이 강조되었습니다. A.비네는 이것과는 독립해서 창조성을 사고과정의 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행동주의자인 웟슨은 사고는 미소화(微小化)된 발어과정(發語過程)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이 말을 추방해버리고자 했으나 현대의 신행동주의자는 언어적 매개과정 등의 용어를 가지고 사고 과정을 그 체계 속에 부활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게슈탈트나 신행동주의 이외의 현대의 유력한 학파로는 J.피아제에 의한 발생적 인식론 연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고란 완성된 논리 법칙을 목표로 삼고 서서히 진전해 가는 논리적 조작의 체계라 보고, 그 발달의 양상을 취급하였습니다.

또 B.L.호와프는 언어 상대성 가설에서는 인식의 틀이나 논리 법칙은 언어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보논리나 컴퓨터 모델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사고란 정보 처리의 과정이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이 파의 사람들은 사고란 말 대신 인지(認知)라는 용어를 쓰며, 지각 ·기억 등의 제기능을 인지과정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1. 문제해결과정

사고과정 또는 문제 해결 과정에는 게슈탈트학파에 의하여 통찰이라는 특징이 있음이 강조되었습니다. 곤란한 과제에 직면한 인간 또는 동물은 우선 여러 가지 기성수단으로 시행착오적으로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이 때 예를 들어, 담요로 바나나를 끌어당기려고 하는 등, 기능적 해결방법은 옳았으나 수단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좋은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적절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이 과제 해결을 촉진합니다. 또한 과거 경험은 그것이 현재의 과제 해결에 관계가 있습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해결은 갑자기 단번에 나타나며, 그 뒤의 해결행동은 순조로운 과정을 거칩니다.

게슈탈트학파는 이것을 통찰이라고 부르고 그 바탕에는 인지 구조의 재구성(중심 전환)이 있다고 말합니다. 창조성이나 발명 ·발견의 과정 등도 준비기 ·부화기(孵化期) ·영감(靈感) ·검증의 네 단계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산적 사고과정에는 어딘가에 비약이나 갑작스런 행동 변화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점에서는 시행착오설을 인정하는 논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사고 또는 인지과정을 크게 확대하여 지식의 획득과정 전부라고 한다면, 물론 기초기능의 습득과정도 그 속에 포함되어 기계적 암기 학습이나 시행착오 학습 등도 사고과정 속에 들어오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기능

기초적인 지적 기능의 획득과정을 일단 별개의 것으로 하면, 사고과정의 중심은 발견이나 통찰 등의 생산적 부분과, 발견 결과의 검증 또는 전달이라고 하는 재생산적 부분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삼단논법이라든가 공식 응용 등의 과정도 사고결과를 전달 가능한 형태로 정식화(定式化)하는 데 지나지 않으므로, 위의 검증과 같은 뜻을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둘로 나누어 보면, 사고기능의 첫째는 창조 ·생산 ·발견이며, 둘째는 사고 과정의 객관화와 정식화 및 그 전달 가능화가 있습니다. 이 때 발견이나 창조기능은 기성(旣成)의 기호체계와는 다른 독자적 심벌로서의 이미지와 결합하기 쉬우며, 또한 객관화와 정식화에 즈음하여 전달 가능성이 높은 기호인 언어와 수식(數式) 등이 쓰기 쉬워진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동기

사고활동을 촉발하는 계기에 관하여는 여러 조건이 지적되었습니다. 게슈탈트학파에서는 주체와 환경의 쌍방을 포함하는 전체로서의 장(場)의 불균형이 균형회복의 활동을 불러일으켜 사고활동도 그 일환으로서 행하여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행동주의자는 과제해결에 대한 행동도 보통 동기와 똑같이 일차적 또는 거기에서 파생하는 요구에 의하여 추진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하여 사고활동에 특유한 동기를 인정하는 논지도 있다.

예를 들면, E.프롬 등은 통일적인 외계 인식(外界認識)에 대한 요구는 인간에게서도 본질적이라고 합니다. L.페스팅거는 모순된 복수(複數)의 정보가 동시에 주어지는 사태를 인지적 불협화(認知的不協和)라 부르고, 이 불협화를 없애는 방향으로 인지적 활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J.브루너 등은 생체(生體)는 환경과의 적절한 정보의 교섭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내발적(內發的) 동기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또한 발명·발견의 과정에서는 H.푸앵카레 이래, 미적인 감수성이 지적(知的) 창조활동에도 필수적 요소가 된다고 지적합니다.


*본문개요

한 인간의 인격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판가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 주위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초기 기독교인들에 비해 안 믿는 사람과의 구별이 잘 안돼 보입니다. 여기서는 제자들의 사고, 대화, 행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하는 점을 다루었습니다.

첫번째
\\\"사고\\\"에서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염려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성서에 근거하여 배양해 갈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대화\\\"에서는 공동체를 이뤄가는 데 있어서 덕을 세우도록 늘 남의 의견을 높혀 주는 언어의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행동\\\"에서는 사랑과 용서의 자세로 관용을 베풀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성격\\\"에서는 제자로서의 좋은 습성을 만들고 성격을 양성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Sermon(설교) 1:사고

-목표

1.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한다.

2.그리스도의 제자는 염려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구하는 자임을 깨닫게 한다.

3.성서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말씀을 표준으로 모든 일을 생각하게 한다.


-본문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느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 12:22-31)


-예배의 부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라(시 139:1-4)

-기원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우리의 속 생각마저 꿰뚫어 아시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또 피하여 숨고 도망칠 수 없나이다.
주여 ! 그런데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삼가지 못했음을 회개하나이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 소원대로 우리의 이익만 찾고 우리 만을 즐겁게 하고 우리 만을 만족시키는 일을 이 시간 주 앞에 예배드릴때 다 집어 던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니다. -아멘-


-본문 연구-

1.관 찰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 봅시다.

(1)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식주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3, 24, 25, 28, 30절)

답: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까마귀나 들풀도 기르시고 입히시듯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기 때문입니다.

(2)염려하는 대신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24, 27)

답:생각하라고 하십니다.

(3)신자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31)

답: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생활입니다.

(4)제자들이 마음속에 품어야 할 생각들은 어떤 것입니까 ?(빌 4:28)

답:참된 것, 고상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런 것, 명예로운 것,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입니다.


2.해 석

-본문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1)사람에게 있어서 정신과 육체의 바람직한 상호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답:정신이 오른 팔이 되고 육체가 왼팔이 되어서 정신이 육체를 제어해 가야합니다.

(2)모세의 율법적 행위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

답: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생각을 행동보다 더 중하게 보셨습니다.

(3)삶의 현재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눠 보십시오.

답:위대함과 비참함인데 전자는 인간의 허영에서 오고 후자는 인간의 유한에서 옵니다.

(4)염려의 유무는 어디에 기인합니까?

답:우리가 처한 상황(형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5)우리가 연마해야 할 사고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

답:우리의 사고의 원천은 항상 성서여야 합니다.


3.적 용

-본문을 오늘 나에게 적용시켜 봅시다.

(1)당신은 하루 일과 중에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편입니까? 과연 성서적 사고를 얼마나 합니까 ?

(2)제자로서 당신은 항상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살 결심이 되어 있습니까 ?


Sermon(설교) 1:사고

이광수씨가 쓴 \\\"딸 3형제\\\"라는 작품에 보면 \\\"여자가 뭔가를 알기 전에 시집을 가고, 어머니가 뭔가를 알기 전에 애기를 낳고, 인생이 뭔가를 알기 전에 죽는다\\\"는 귀절이 나옵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충분히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실수가 없는데 그러질 못하므로 후회가 따른다는 이야긴줄 압니다.

바꾸어 말하면 생각이 육체보다 앞서 성장해야 할텐데 인생을 생각지 않고 살기 때문에 훗날 후회하게 되고 바른 인생을 살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청소년 범죄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신과 육체가 있어서 정신이 오른 팔이 되고 육체가 왼팔이 되어서 정신이 육체를 제어해 가야 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의 경우 이와 반대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즉 영양관계로 육체는 빨리 성숙하는데 비해 정서는 빈약하여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사고력(판단력)이 빈약하면 육체적인 불행을 초래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생각을 행동보다 더 중하게 보셨습니다. 예컨대 모세가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을 지적하셨고 모세가 간음하지 말라고 한 말씀에 대해 음욕의 마음을 지적하셨으며 모세가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한 말씀에 대해 탐욕의 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바른 생각에서 바른 행동이 나온다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지혜자는 잠 16:23에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생각하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없이 행동할 때 우리는 교양이 없다. 경솔하다. 인간이 되지 못했다. 철이 들지 않았다고들 합니다.

사실 인간은 자연 속에서도 가장 연약한 동물입니다. 적은 미생물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우주를 뒤덮을 수 있습니다. 공간에 의해 우주는 나를 감싸고 있지만 나는 생각을 가지고 우주를 감싸고 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에 보면 \\\"우리는 손도 발도 머리 조차도 없는 인간을 상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고가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돌이나 야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가 인간의 위대함을 만든다. 인간은 한 줄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서도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존경할만한 것은 생각하는 가운데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고(Thinking)가 무엇입니까? `생의 현재를 찾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은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고, 오늘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삶의 현재란 무엇이겠습니까 ? 그것은 크게 2가지 형태입니다. 하나는 위대함이고 하나는 비참함입니다. 전자는 인간의 허영에서 오고 후자는 인간의 유한에서 옵니다. 예를 들면 노예를 착취하여 세워진 희랍이나 로마 제국처럼 위대한 이성이 빛나는 곳에 무수한 비참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곧 그러합니다. 십자가는 비참을 부활은 위대를 생각케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요 인간의 모습이며 실존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비참하고 위대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순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이 모순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비참은 버리고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참해지기 위해 위대해지고 위대해지기 위해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위대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인간은 비참하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비참해도 비굴하지 않고 위대해도 교만하지 않았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봅니다. 마치 어머니는 위대하면서도 어린애의 발을 씻어주고 아버지는 지게를 지면서도 언제나 떳떳한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비참하고, 사랑은 비참하지만 위대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위대할 때는 비참하도록 겸손해야 하고 비참할 때는 위대하도록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비참을 숨겨서는 안됩니다.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를 생각해보세요. 적나라하게 벗은 몸으로 아무것도 가리울 것이 없습니다. 한편 인간은 위대를 자랑해서도 안됩니다. 보십시오. 부활한 예수님은 언제나 흰옷으로 몸을 가리우셨습니다.
제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천하에 폭로해야 하고 자신의 선을 가리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도 모르게 숨겨야 합니다.
선을 숨기고 악을 드러내는 것이 제자의 도리입니다. 악을 드러내고 선을 숨겨두어야 악은 없어지고 선은 영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풍부 속에서나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인 좀 잘 산다고 가난한 자 생각할 줄 모르면 바른 생각이 안 나옵니다. 반대로 가난하다고 이것 전부인양 낙심가운데 빠져도 바른 생각이 안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염려하지 말고(22절) \\\"생각하라\\\"(24절)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5절) 이런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어떤 경고를 하는 것일까요 ?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고 하셨을 때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앞날을 생각하는 것을 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입니까? 그는 우리들에게 내일 일을 위하여 불안한 생각을 갖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는 우리가 애타하고 안달하는 불안한 자세가 아니라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내일 일을 대할 것을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이 말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염려하고 안하고는 여러분이 처한 상황(형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깊이하면 염려가 오히려 용기가 됩니다.

다음으로 염려해 보아야 아무 쓸데없기 때문에 이 경고의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염려하는 일보다 쓸데없는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염려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주는 법이 없습니다. 염려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염려해서는 아니될 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해서 염려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그런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중력의 법칙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과는 시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유는, 중력의 법칙은 우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으나 피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는게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은 아무런 염려를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해서는 안 되는 두번째 일은 우리 힘으로 해 낼 수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염려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에 몰두하여 염려할 시간이 없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염려는 너무나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경고가 필요합니다. 염려는 염려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을 해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잠시동안의 염려로도 우리는 무덤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이 추악한 죄(염려)는 만병의 원인입니다. 염려로 인해 악화되지 않는 병이 없을 정도입니다.

염려가 이와 같은 추악한 적인 이상 우리는 염려를 하게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는 적극적인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염려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염려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

첫째로 염려병은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람도 염려병을 지니고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세상에 태어나면서 곧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염려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염려하는 일을 거듭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얻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익힐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릴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염려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평화로우려면 우리는 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일을 지시하여 주시는 듯이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이에 순종하지 않는 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다\\\"고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과 싸우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면 우리는 생각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게 여기는 일들을 생각해야지 우리가 나쁘게 여기는 일들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 속에 품으십시오\\\"

우리는 모든 생각을 바로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10:5) 여기서 우리는 성서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Biblical Thinking)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의 원천(Source of thinking)은 항상 성서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lire-changing power)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삶의 성공과 실패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것이다.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우리는 모두가 우리의 생이 평탄하고 형통하길 원합니다. 그럴려면 먼저 생각(Meditation)하고 행동(Action)하면 번영(prosperity)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고의 변화가 일어나면 이 사고의 힘을 통해 성공적인 제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하십니까? 만일 생각이 눈에 보인다면 그래도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하는 말씀을 따라 우리가 예수의 생각을 내 마음에 품고 예수처럼 행동하고자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끝으로 염려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적극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의식주 문제에 빠져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신자답지 못합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먹을 것 입을 것이 필요하다면 아니 주시겠습니까? 까마귀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옷입히시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셔서 자녀 삼은 자들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의 나라까지 주시기를 기뻐하고 계십니다(32절).

이와 같은 분을 알고 영접하게 될 때에 염려보다는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염려는 설치 동물입니다. 염려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비밀스러운 곳\\\"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염려는 기도로 생기가 도는 분위기에서는 숨 쉴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우리의 생이 다 할 때까지 침착함을 잃지 말라. 우리 영혼으로부터 긴장과 갈등을 제거하라. 그리하여 우리의 질서있는 삶으로 하여 주의 평화의 아름다움을 고백하게 하라\\\"


-기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
오늘도 저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셔서 저희들도 그것을 생각하고 구하게 하옵소서.
불신자들처럼 우리의 의식이 의식주의 영역 안에 묶여 있지 않게 하옵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높은 차원으로 옮겨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의 형식에 위대와 비참을 직시하게 하시고 성서적 사고로 이것을 판단할 수 있게 하옵소서.
교만도 비굴함도 없게 하시고 항상 참되고, 고심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영예롭고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 만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주셔서 그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으로 행동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도록 거짓되고 추한 생각들을 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바로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생각을 갖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의 위탁

지도자: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원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세로 생각하고 행동하십시오.

제 자:아멘. 나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인간의 비참과 위대를 생각하고 항상 성서적인 최상의 사고를 바탕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 성서적 사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이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