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조건 눅14:25-35
우리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명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감당했는지 두 주전 설교에서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뒤집어 놓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강하거나 수가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탁월한 전략가나 장사꾼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목적에 저들의 시선을 맞추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았던 증인들이요 참된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이 요구되는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 속에서 제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우리도 예수의 참된 제자로서 세상을 바꾸어 놓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에서 당시 장면을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5절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당시에도 엄청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청중들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기는 점점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시 종교의 거품을 빼신 것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드러내신 것에 대해서, 그러면서도 말 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베푸신 기적을 보았고 모든 사람에게 열린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대해서 그들은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모인 허다한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지않고 귀담아 열심히 들을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우리 대부분은 아마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 모여들게 하는 새로운 집회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컴퓨터에 입력시켜 정기적으로 우편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뒤집는 스타일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흠모하는 청중들을 향하여 물론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하여 매우 어려운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2> 내 제자가 되어야 나를 따라올 수 있고 또한 나의 일을 너희들이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제자가 되는 조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말씀을 듣고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옆에 있던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선생님은 뭘 몰라1 저러면 사람들이 다 떠날 갈건데라고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러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듣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실컨 먹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시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내어 놓고 기적적인 역사로 해결되기를 갈망했을 것입니다. 좀더 수준 있는 의식을 갖고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무리나 개인적인 인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가운데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참된 제자가 몇 사람인나? 여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갈 것을 아시면서도 가던길을 멈추고 돌이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듣는 말씀이라 그냥 너어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당시 예수님의 펜들에게는 아주 도전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제자가 되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제자가 되려면 1.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26절[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속에 예수님은 그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동안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돌보아 줄 것을 지시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마태는 이 진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2:46절 이하에 <3>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하실 때에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찿아 왔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 선생님 밖에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습니다.] 고 하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인냐? ] 하시며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하시는 말씀이 [ 나의 모친과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 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 무엇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 즉 설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중요한 교훈을 하시기 위하여 기회를 포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도착하여 그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고 게시는 일을 방해할 소지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떤 원칙을 밝히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은 내 가족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최우선 순위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면 왜 예수님은 미워한다는 단어를 사용했습니까? 26절의 의미는 [ 만일 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너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하나님보다 우선적일 수 없어 하나님의 향한 너의 사랑이 너무나 열정적이고 너무나 깊은 나머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미움같이 보이는 거야 ] 우리가 자식을 키우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작은 애가 태어나면 큰 애가 시샘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엄마는 동생만 사랑하고 나는 미워하잖아 ] 어찌 엄마가 같은 아들인데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형의 마음에는 엄마의 동생에 대한 사랑이 마치 자기를 미워하는 것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것이 제자의 조건입니까? 그것도 첫 번째 조건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즐겁게 하고 싶은 욕망과 친한 인간관계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헌신에 장애가 될 수가 있다는 점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4>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려깊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욱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10:34-36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니라 ]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실제적인 예로서 설명을 드립니다. 아주 상류층 가정에 서울대학 다니는 딸이 수학여행 갔다가 친구한테 전도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아주 열심있는 친구로부터 전도를 받았으니 처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로부터 지독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래도 신앙을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만류하다 못한 어머니가 타협안을 내어 놓았습니다. [ 그럼 주일날 교회 예배 드리러 한번만 나가고 그기에 빠지지는 말라 ] 그러나 딸은 예수님께 빠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조차도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된 것 있지요. 만약 일시적인 불화가 없었더라면 진정한 화평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쉔키비치의 쿼 바디스> 라는 작품 마지막에 보면 로마의 귀족 청년 비니키우스가 기독교인인 리기아라는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는데 리기아는 자신은 주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거절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비니키우스가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지만 예수님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귀족 청년의 청혼을 거절하는 리기아의 신앙 바로 미워하는 마음이요, 불화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2. 네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27절[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십자가를 지라는 말 당시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오늘날 우리가 받는 충격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367장을 부를 때 좀 은혜되면 박수를 치면서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로마 군인들이 무거운 십자가를 진 사람을 <5> 처형장으로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이 죽으러 간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죽으러 가면서 박수 치며 찬송을 부를 사람이 있습니까? 그 당시 십자가에 처형 당하는 것은 대단히 수치로 여겼으며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위해 준비된 오랜 시간의 고통스러운 죽음 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상상했을 모습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진다는 상상은 몸서리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바로 <기꺼히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 메달려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기꺼히 죽을 준비가, 기꺼히 우리의 생명을 드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는 죽음에 대해서 신학자 A.W.Tozer(토져)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는 십자가와 왕좌가 하나씩 있다 그런데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그 십자가에 매달을 때까지는 줄곧 그 왕좌에 내가 앉아 있다] 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이 죽음은 바로 영적인 죽음으로써 자신의 욕망 그리고 모든 육신적 소욕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제자의 조건인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 더 사랑하다보니 당하는 모든 불이익이 바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야 한다고 말씀을 드릴 때 우리 중에 많은 교인들이 왜 그토록 불이익을 당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느냐? 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 당당하게 4복음서 전체에서 <6>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다르라] 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을 따르는데는 그 만한 댓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8-32절 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먼저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합니다. 28절 이하에 [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데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31절 이하에서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서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 비유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읍니다. 1) 충동적으로 나를 따라올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가끔 충동적일 대가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 결코 충동적이 되엉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 앞에 제자가 되는 두 가지 조건에 대한 댓가를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게서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씀 하시는가? 그리에는 그만한 댓가가 있기 대문입니다. 막10:29-30절에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 그리고 예수님은 아주 의미있는 말씀 한마디 하십니다. [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즉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어도 이 십자가를 지는 신앙에 눈이 뜨여지지 않으면 나중 되고 예수를 믿은지 얼마되지 않더라도 이 십자가의 신앙에 눈이 뜨여지면 먼저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에 대해 죽고 예수에 대해 눈이 뜨여진 자가 되어 <7>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다라가는 예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자가 되는 첫번째 조건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조건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세 번째 조건은 3. 자기 소유를 다 버리는 것입니다.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제자가 되는 조건 가운데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가장 어려운 관문이 새번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너무 크고 엄청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감을 잘 못느끼지마는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실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눈 앞에 문제가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는 말 무슨 말이겠습니까? 만약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자기의 소유를 다 버렸다면 예수님 어떻게 대접을 했겠으며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어떻게 몰약과 침향을 가져 왔으며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어떻게 예수님께 새무덤을 내어 드렸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가지 소유를 버리라는 말은 가진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읍니다. 어느 목사님이 비행기를 탈려고 공항 대기실에 기다리는 중 무료해서 매점에서 과자 한봉지를 사서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서 한 손으로 과자를 봉지에서 집어 먹는데 옆에 앉아 있던 한 신사가 아무 말도 없이 자기 과자를 쓸쩍 집어 먹습니다. 그래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보니 싱긋 미소를 지우며 여전히 자기 과자를 집어 먹습니다. 그러더니 언제 남의 과자를 먹었냐는 듯이 일어나 가버립니다. 목사님은 어처구니가 없어 참 무뢰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하는데 세상에 자기 앉은 자리에 자기 과자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의 과자를 먹으면서 자기 것을 먹는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8>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비일비재 합니다. 우리는 우리집 우리식구 우리차 우리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6:19-20절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왜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합니까? 왜 예수님은 네 소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라고 합니까? 내 것이라 생각하면 아까워서 헌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발과정 401반 은사배치 사역을 가르치다가 중요한 것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구제의 은사를 가진 사람의 특징 중 한가지가 [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내가 얼마의 돈을 하나님께 드릴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데 얼마의 돈이 드는가?를 자문한다 ] 무슨 말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돈이라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구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맡아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구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맡은 부자가 될려면 먼저 청지기 정신부터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그토록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는가? 바로 맛을 내는 소금이 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오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3-34절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어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소금은 짠 맛으로 맛을 내며 부패를 방지합니다. 바로 이점이 그리스도인의 맛입니다. [ 만일 우리가 짠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면 우리의 생활방식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유발시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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