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자

주님의 제자/눅14:25-33

주님의 제자
눅14:25-33





어느 수도사가 도를 닦고 있었다. 한 나그네가 수도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수도를 계속하고 계십니까?\\\" 수도사가 대답하기를 \\\"그럼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가 묻기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수도사가 대답했다. \\\"나는 시장할 때 밥을 먹고, 피곤할 때 잠을 잡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는 것과 범인(凡人)들이 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수도사는 힘주어 답하기를 \\\"아니오, 세상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밥만 먹지 않고 여러 가지 사념(邪念)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잠을 잘 때에도 잠만 자지 않고 수천만 가지 꿈을 꿉니다. 그것이 차이점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시장해서 밥을 먹을 때에라도 먹는 일에만 열중하지 못하고 음식물의 유해성(有害性)에 대하여 걱정한다든지, 나와 함께 앉아서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상대방의 거동을 평가하거나, 아니면 그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사념에 정신을 씀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정말로 밥만 먹지 못하는, 그 결과 참된 밥맛을 음미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띠고 있다. 이것은 잠을 잘 때에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잠을 설치기도 하며 꿈자리가 사나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위의 대화를 인간관계에 적용시켜 본다면, 우리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다는 어떤 목적이나 요구도 없이 인간관계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여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관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단순히 만나기만 하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질 수 있는 순수한 심정에서 만날 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대방을 의식하거나, 이기적인 욕구 충족이나, 행복 추구에 집착한 나머지 상대방을 도구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근본적인 목적 및 태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적극적이고 진실된 관심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이기적인 욕구 충족이나 자기 중심적인 행복 추구를 위한 노력에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순수함에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참되고 행복한 신앙인이 되려고 한다면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아야 한다. 순수해야 한다. 이기적인 욕구 충족이나 행복에 집착한 나머지 신앙을 도구화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된 관점에서 신앙을 가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많은 무리가 함께 따라왔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그 많은 무리들은 여러 가지 동기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병이 낫기를 위해서, 어떤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따랐을 것이다. 그런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제자도에 대하여 명확히 하실 필요가 있음을 느끼셨다. 먼저 이 두 가지 비유를 이해하는데 있어 주의해 볼 구절이 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7)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여기서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cannot be my disciple)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말씀이 나오는 가운데 부분에 이 비유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샌드위치를 연상케 하는 그런 구조이다. 처음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만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비유를 마친 후에도 역시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중간에 두 가지 비유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망대를 세우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망대를 세운다는 것은 농장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사를 할 때에도 사람들은 얼마를 투자하여 얼마를 남길 수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일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망대를 세우려면 그것이 완공되기까지의 비용이 충분한가를 먼저 예산해 본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은 채 기초만 쌓고 중도에 포기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해 놓고 끝을 보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왕이 다른 왕과 싸울 때에는 먼저 자기의 군사 1만으로 상대의 군사 2만을 대적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길 힘이 없다면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자고 화해를 청할 것이다. 이 두 비유를 마치신 다음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셨다.

이 두 비유의 공통점은 탑을 짓는 자나 왕 모두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필요한 것을 사전에 계산해 보았다. 필요한 조건을 올바로 파악한 후 신중한 결단을 내렸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런 두 가지 예를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인간은 자기 일에는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손익 계산을 따져서 반드시 이익을 보려고 하는 본능을 가진 죄인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이 예수님을 좇으려고 한다면 오히려 예수님을 그들을 거부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인데 자기 목숨을 버리는 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과 즐거움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는 모습이다.

이 두 비유의 공통점은 제자의 조건에 대한 것이다. 즉,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비유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으로 하고 자기가 책임져야 할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며 예수님만을 따르기로 한 자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헌신의 대가를 신중히 고려하여 결단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을 올바로 파악하고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 그 조건을 받아들인 자들로 구성된다. 제자가 되려면 전적으로 주님을 따를 희생이 각오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환상에 젖어, 또는 기분에 따라 주님을 따르겠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27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오려는 망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감상과 소리치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따르는 희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미워해야만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하다\\\'와 \\\'미워하다\\\'라는 단어의 유대적 관용어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관용어가 있다. 예를 들면, \\\'돌아가셨다\\\'는 말은 실제로 \\\'돌아서 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많은 경우 \\\'죽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사랑하다\\\'와 \\\'미워하다\\\'를 \\\'감정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경에서는 \\\'의지의 결단\\\'을 의미한다. 즉 \\\'사랑하다\\\'라는 말은 \\\'선택하다\\\' 또는 \\\'복종하다\\\'의 의미이며, \\\'미워하다\\\'는 \\\'거부하다\\\' 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하다\\\'라는 의미이다.
단지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거나 또는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제자도(Discipleship)의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먼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를 깨닫고 그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 즉, 예수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의지 앞에 순복시키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주님의 관점에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진정한 제자들을 찾고 계신다. 그럴 때에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

진정한 행복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밥을 먹을 때 밥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으며, 잠을 자고싶을 때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그런 것처럼, 제자는 다른 것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자는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쉼의 방법은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나누어짐 없이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진정한 쉼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지게 된 짐이 예수님 때문에 지게 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순할 때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사이에서 나누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진정한 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평화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관계없이, 그리고 어떤 일을 당하는 관계없이 그리스도만을 사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