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 받은 칠십인 제자들

파송받은 칠십인 제자들 (1)/눅10:1-6

파송받은 칠십인 제자들 (1)
눅10:1-6





이제 오늘부터 누가복음 10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예수님이 만난 세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선뜻 자원함으로 나섰으나
/ 제자가 되는 값을 치르는 데서는/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주님이 제자로 부르셨으나/ 삶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뒤에 있는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 후에 따르
겠다고 했으나/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고난받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뒤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고난받는 것을 각오
하고/ 하나님나라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한번 들어선 제자의 길에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70명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름에
/ 기꺼이 따라나선 무리들입니다. 사실 앞의 세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꼭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그
들이 예수님을 따랐더라면/ 오늘 이 70인 제자들 축에 끼었을 텐데/ 그
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70명의 제자들을 만나고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습
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세요.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주님은 달리 칠십인을 세우셨습니다. 달리 세우셨다는 말은/ 9장 1절
이하의 12제자의 파송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70인이란 숫자에 대해서/ 다소 논란이 됩니다. 개역성서에서는
70인이라고 되어 있지만/ 공동번역성서는 72인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10장 1절을 공동번역성서로 읽겠습니다.
그 뒤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그럼 어떤 성서가 맞고/ 어떤 성서는 틀리단 말입니까?
우리는 개신교 신자니까/ 개역성서를 편들어야 하고/ 카돌릭 신자는/
공동번역성서를 편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차이나는 것을
/ 신학용어로 \\\'사본상의 차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사본을 원문으로 취했
느냐에 따라서/ 70명 혹은 72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70명이 맞는가/ 72명이 맞는가 하는 문제는/ 별반 중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유대인들은/ 70이란 숫자와 72란 숫자를/
편하게 섞어 쓰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주님이 12제자들 외에/ 70명 혹은 72
명을/ 따로 세우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같이 창세기 10장을 한 번 펴보세요.
어떤 내용입니까?
노아의 족보로 보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을 때는/ 대부분 그냥 넘깁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노아의 족보가 아닙니다.

끝 절인 32절을 읽겠습니다.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
성이 나뉘었더라
세계와 나라를 말해줍니다.
몇 개의 나라가 나옵니까? 70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국의 숫자를 70개로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히브
리어 성경을 나중에 헬라어로 번역을 하는데/ 그 때 72나라로 바뀌었습
니다. 그러니까 70이든 72이든/ 그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열국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부터는 개역성
서를 따라/ 칠십으로 통일하겠습니다.

12 사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위해서 보냄을 받았다면/ 70인의
제자들은/ 열방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12 사도들이/ 예루
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파송을 받았다면/ 70인의 제자들은/ 세계
의 모든 민족에게 파송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머지 않아 세계선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
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70인의 제자를 세우심으로/ 당신의 땅 끝 비전으로 보여준 것입
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
음을 떼고 있으면서도/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는/ 땅 끝 비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전에/ \\\'내가 이들에게 무슨 말
을 할까\\\' 하고 고민하시다가/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너희는 온 천하
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그분은 늘~ 만민
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꾸셨습니다. 그리고 12사도들과 70인 제자들/
그리고 오늘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그 꿈을 물려주셨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이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만민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만민이 구원에 이른들/ 가족이 구원
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땅 끝이라고 해
서/ 꼭 극지방이나/ 우리나라와 맞은 편 나라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
다.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땅 끝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파송하셨습니다.
이건 12 사도들을 파송할 때도/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왜 둘씩 묶어서 보내셨을까요?
서로 돕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유효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전통에 따르면/ 증인으로
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둘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증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서는 전도자의 다른 말로 \\\"증인\\\"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48절을 보세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증인은 본 대로 들은
대로/ 증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증언하기 전에/ 먼저 보고 들어야
합니다. 보고듣지 않은 것을/ 보고 들었다고 하거나/ 보고 듣고도 모른다
고 말하면/ 위증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증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증인이라 말의 어원에
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증인이란 말의 원어가 \\\'마르투스\\\'입니다. 이 \\\'마르투스\\\'는 순교자란 말
이기도 합니다. 증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순교할 각오
가 없이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왜 전도하지 못할까요?\\\'
\\\'우리가 왜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할까요?\\\'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맞죠? 저부터도 그래요.

지난주에 태신자 작정서를 제출한 사람이/ 몇 분이 되지 않더라구요.
적어낸 사람들도 살펴보니까/ 보통 때는 별로 관심 없다가/ 체면상 적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대요.
아직 태신자를 작정하지 않은 분들/ 꼭 작정하도록 하세요. 그게 주님
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멘입니까?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세우사\\\"의 원어
\\\'아네데크센\\\'은/ \\\'공식적으로 임명하고 선포하사\\\'란 뜻입니다. 열둘을 세울
때와 같습니다. 똑같은 권위로 파송하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제자의 사명을/ 열둘에게만 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소수의 선
택된 사람에게만/ 사역을 일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두
제자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70인을 전도자로 파송하셨
고/ 증인으로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교회에 세우신 모든 직분은/ 복음을 전하는데/ 효과적으로 봉
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직분 자체에 만족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항존직 직분자가 되는데/ 특별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로는 5명 전도해야 하고/ 안수집사와 권사는 3명 전도해야 한다/
뭐 이런 식입니다. 저도 그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에
서 선거 운동하는/ 폐해가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 셀목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통 목
회와 셀목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역의 방법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 목회는 사역을 직분자가 합니다. 그 분야에 대해 잘 몰라도/ 직분자
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러나 셀목회는 은사를 가진 자가 합니다. 사
실 사역은 은사에 따라 하는 것이 성서적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는/ 은사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사역해야 한단 말이 되네요? 교우들 중에/ 올해는 교회 나
오는 사역만 하신 분들이 있는데/ 내년에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일거리를 찾아보면 많이 있습니다.
평일에도 가끔씩 교회에 들러보세요.
하실 일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해 보세요.
그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 70인 제자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
다.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2절을 보세요.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
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주님은 전도하는 것을/ 추수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요즘이 마
침 추수철이고/ 추수감사절을 두 주 앞두고 있으니까/ 본문과 잘 연결되
고 있네요. 추수는 농사에 있어서/ 마무리 일입니다. 성서에서도 추수는
마지막을 상징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그 백성을 모으는 일을/ 추수에 비유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마지막 때에 인자 또는 천사들을/ 추수꾼으로 비유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추수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흩어
진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모으는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추수하는 일이/ 열두 제자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아셨습니다. 그래
서 칠십 인을 따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불러모으는 일은/ 열
둘로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뿐
만 아니라/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 곧 열방을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일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입니다. 며칠만 늦어도 안됩니다.
저희 집 마당에/ 상추와 파 씨를 늦게 뿌렸더니/ 제대로 나지도 않았고/
난 것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뿌리고 심는 것만/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일이 바빠도/ 무르익
은 곡식은/ 농부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전에 농사를 도와보니까/ 때
에 가장 민감한 것이/ 참깨인 것 같아요. 며칠만 늦게 베니까/ 땅에 절반
은 쏟아진 것 같더라구요.
추수는 제 때 해야 합니다. 때를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일은 좀
미룰 수 있어도/ 추수하는 일만은 미룰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님은 더 많은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우리교회는 추수감사절을/ 태신자 초청일로 삼고 있습니다. 태신자 초
청일을 앞두고/ 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가질 것입니다. 영혼의 추수
를 위해/ 우리는 특별새벽기도회에/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내가 영혼을 추수할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 교회에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여러분,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간절하게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70인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하신 것을 보면서/ 영혼의 추수는
무엇보다/ 기도로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대로 추수하고 싶습니까?
주인의 마음에 들게 추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기도하세요.
모든 영혼의 주인이신 분께/ 무릎을 꿇으세요.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영혼의 추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추수의 성패는 기도에 달렸습니다.
기도를 부실하게 하고/ 알찬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더 많은 일꾼을 요청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제때에 추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더 많이 추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많은 전도의 열매를 수확하
기 위해서입니다. 더 많은 영혼들이 주 앞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많은 일
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는 아직도/ 빈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
가 앉는 자리에는/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이 앉아 있으면/ 비켜달라고
하면서/ 비어있는 자리에는 무관심한 것/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자기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교회도/ 서로 앞자리 쟁탈전
이 벌어지면 좋겠어요. 처음엔 앞자리 앉던 사람들도/ 차츰 뒤로 물러가
앉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은혜가 떨어지고 있다는 말일 것이고/ 은
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는 말 아닐까요?

제가 우리교회에 부임해서 느끼는 것은/ 재정도 재정이지만/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떨 땐 너무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다
고 계속해서/ 일꾼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일꾼으로는/
교회 밖에까지 봉사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의 사역에서도/ 미흡한 점
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교회에 좋은 일꾼이 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
다. 또한 교회에서 좋은 일꾼을 길러낼 수 있도록/ 더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0인 제자들이 가야할 곳이/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3절을 보세요.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제자들이 가야할 곳이 어떤 곳입니까?
이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너무나 위험한
곳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전도자의 삶이 쉽지 않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
다. 주님이 사마리아의 첫 마을에서 거부당하심으로/ 제자로 사는 것이/
보통 맘먹고는 안 된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마을에서도/
또 다시 배척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
이다\\\"는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주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 알아들었을 겁니다.

전도자의 삶은/ 환영받는 삶이 아닙니다. 거절만 당하지는 않겠지만/
거절당할 때가 많은 삶입니다. 이리 가운데 어린 양은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전도자가 당할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그리 과장된 표현도 아닐
것입니다.
같은 주님의 말씀이지만/ 마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세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
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는 이리 가운데 있는 \\\'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본문은 이리 가운
데 있는 \\\'어린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양이 더 위험합니까? 어린양이 더
위험합니까? 어린양이 더 위험합니다. 그러나 사실 별 차이 없습니다. 이
리 가운데 있는/ 어린양은 말할 것도 없고/ 어미양도 위험하기는 마찬가
지입니다. 양은 수백마리가 있어도/ 이리 한 마리에게 못해봅니다. 주님
도 답답하시지/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리 가운데로 양을 보낸단
말입니까? 이리 포식시키려고/ 작정하셨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실 땐/ 분명히 무슨 대안이 있을 겁니다. 주님
이 무책임하게/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실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상황에서
/ 양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뭐겠습니까?
목자입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면 속수무책입니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합니다. 그러니까 양더러 이리 가운데로 가라고 하실 때는/ 내
가 목자되어 너를 지켜주마 하는/ 목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갈지어다\\\"
도망치는 것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물러서는 것 상상할 수도 없습니
다. 주님은 오직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이웃으로부터 도망다니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벨을 눌러놓고/ 집에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
전도자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다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지만/ 주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
자고 하십니다. 비록 현실이 이리떼가 있는 곳일지라도/ 현실과 맞닥뜨리
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만/ 으르렁거리는 길들여진 호랑이가 되지 않
고/ 밀림을 가로지르며 포효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에서만 큰소리치는/
교회 안의 신자가 되지 않고/ 교회 밖에 나가서/ 당당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빠져나와/ 자기네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를 원치 않으시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가슴을
활짝 펴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뻔히 죽을 줄 알면서/ 거기는 왜 가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
나 주님이 명령하셨으면/ 주님이 지키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 위험
을 아시는 분입니다. 이리 가운데/ 어린양을 보내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
습니까? 주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전도
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끝 장 끝 절 뒷부분이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입니까?

이제 칠십 인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신/ 구체적인 지침에 대해 살
펴보겠습니다.
4절을 보세요.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전대는 지갑을 말합니다. 주머니는 일용품을 넣는 가방을 말합니다. 신
은 여분의 신발을 말합니다.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와 흡사합니다.
9장 3절을 보세요.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일치하는 게 뭡니까? 주머니입니다. 나머지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두가 전도여행에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왜 준비를 하지 못
하게 했을까요?

전에 세 가지로 말씀드렸는데/ 기억이 삼삼하시죠?
첫째로 보내는 자가 보냄을 받은 자를/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둘째로 이런 것 저런 것 챙긴다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주님의 일이니까/ 주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일만 잔뜩 부려먹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면/
또 그의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주님은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아는 척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람이 그러면 되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 전하는 것이/ 그만큼 긴급
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만난 세 사람 중/ 두 번째 사람에게 하신 말씀
을 기억해 보세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우리는 정말 급한 일에는 여유를 부리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부산을 떱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급한 일을/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건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
할 것 다하고/ 시간 남으면 그 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뭐가 안 맞는 거죠.

예람이가 학교 갈 때면/ 저나 아내 중에 한 사람은/ 큰소리를 내곤 합
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여유가 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아주 느려 터
졌어요. 다른 아이들은 8시 30분쯤이면/ 학교에 도착해 있는데/ 우리 애
는 급하게 서두르는 기색이 안보여요. 화가 나서/ \\\"그렇게 다니려면 차라
리 학교 가지 말라\\\"고 하죠. 처음엔 그 말이 통해서/ 울면서 간다고 하더
라구요. 요즘엔 얼마나 능글 맞는지/ 그 말에 대꾸도 안해요. \\\'암만 잔소
리해봐라/ 나는 나대로 한다\\\'는 식이예요. 그래서 \\\'야 이거 악써서 될 문
제가 아닌가\\\'보다 하고/ 이런 말로 타일러보기도 합니다.
\\\"너에게 있어 학교 가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어. 아침부터 너한테
큰소리치고 나면/ 엄마아빠는 하루종일 기분 상해.\\\"
그렇게 말해도/ 그 때 뿐인 것 같아요.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아무리
잔소리해도 그 때 뿐이죠.

주님이 70인 제자들에게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했습니
다. 문안하지 말라는 말은/ 인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 동양 사회에
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참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러분, 특히 귀한 분을 만났다가 헤어질 때/ 몇 번이나 인사합니까?
말로 인사하고/ 고개숙여 인사하고/ 악수하며 인사하고/ 차에 타면 손을
흔들어 인사합니다. 최소한 3-4번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
성이 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인사말조차 나누지 말라
고 한 것은/ 우리가 맡은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긴급한 것인지를 일깨
워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의 말씀을 한군데 찾아보겠습니다.
열왕기하 4장 29절을 보세요.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왜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너는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도 말고/
인사받지도 말라고 했습니까? 그 일은 생명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입니
다. 인사 주고받는 시간도/ 아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투는 일에
는/ 조금도 여유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그건 여유가 아니라 살인방조입니
다. 그렇담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영혼들을 보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
히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우리가 살인방조죄를 짓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전도자가 집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6절을 보세요.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
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길에서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집에 들어가서는 먼저 인사하
라고 합니다. 어떤 말로 인사하라고 했습니까?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인사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즉
전도자는 친절하고 공손해야 할 것을 요구하신 겁니다. 당시 70인 제자
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믿고/ 교만하게 굴 가능성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도자는/ 교만하게 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복음을 구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도자의 태도는 친절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투는 공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낮
추어서는 안됩니다. 잘 들으세요. 복음은 선포하는 것이지/ 구걸하는 것
이 아닙니다. \\\"제발 예수 좀 믿어 주세요\\\"가 아니란 말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하면 설교요/ 불신자에게 선포하면 전도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최대한으로 친절하세요. 공손한 말투로 하세요. 먼저
평안을 비세요. 그리고 그와 그 가정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세요.
그 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여러분에게 하늘의 상이 생길 것입니다.
만약 그 들이 복음을 거부하면/ 빈 평안이 여러분에게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까 전도자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손해가 없습니다.

에필로그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이/ 여러분에게 복을 보장하지 않습니
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파송받은 70인 제자들에 대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들만 전도자로 파송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 전도자로 파송받았습니다.
70인 제자들에게만 추수의 사명을 주신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추수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추수는 때가 있습니다. 영혼을 추수하는 기회
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추수감사절에/ 우리에게 정말로
원하시는 건/ 곡식 단이나 감사헌금보다/ 한 사람의 영혼일 것입니다.

작정하신 태신자를/ 눈물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를 통해/ 그날 주의 몸
된 교회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