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로서의 신분 눅9:57-62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8:19-22)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세 사람의 이야기는 다 같은 시간, 같은 상황에서 생긴 사건은 아닙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본문은 세 사람에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직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자진해서 예수께 와 \\\'어디로 가시든지 자기는 예수님을 따르겠다.\\\'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이 사람이 서기관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 관원이었지만 예수께 대단한 매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께 어떤 조건이나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얼마를 가시다가 다시 다른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명예스럽게도 예수께서 먼저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은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다시 얼마를 가시는데,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진해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조건이란 \\\"먼저 그의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서기 전에 먼저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마태, 누가 다 이 세 사람의 그 이후의 동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기록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하건데 세 사람 모두 예수를 따르는데 실패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사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매우 감성적인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유대 관원이었지만 예수께서 보여주신 특출한 지혜와 능력에 이끌리어 예수를 따르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는 그 시대의 관원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생활의 안정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안정된 기반을 그대로 유지해 가면서 예수로부터 어떤 지혜와 지식을 배워가기를 원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그러한 의도를 파악하시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그의 잘못된 계산을 여우와 새들의 예를 들어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여우와 새는 자신들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그들의 집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철저히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안정과 보호의 거처로 삼습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현실에서 그가 보호받고 편안하게 살아갈 삶의 자리에 깊이 집착하면 할수록 이웃에 대해 방어적이 되고 닫혀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닫히게 됩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 자기가 반드시 수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생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생의 계획이 \\\'아버지의 장례\\\'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생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없는 생은 매우 무미건조 합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중요한 자신의 생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뛰어들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생각이 있는 사람은 주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특출한 사람이 그러한 제안을 했다고 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그러한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신의 생의 계획이 우선 일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해가는 사람이라야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의 경우 그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지난날의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내면의 상태가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의 마음의 상태를 파악했습니다. 그를 사로 잡고 있는 것들이 지난날의 그의 업적이 될 수도 있고, 그의 내면의 어두운 상처도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할 때 우선적인 것은 그러한 데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했던 두 사람, 그리고 초청 받았던 한 사람, 세 사람 다 그들의 개인적 이유가 그 시대 관습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 잘못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유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들이 예수를 따르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예수를 따르는데 왜 그렇게 큰 장애물이 되는가? 하면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예수의 방식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따른다고 할 때 그의 삶의 방식을 받아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의 보호와 안정된 처소를 현실에 두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미래에다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서에 나오는 훌륭한 믿음의 선현들의 공통점은, 그들은 이 세상에는 영원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미래에서 그것을 찾아나섰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 11:1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며 (히 11:13)\\\"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 11:16a)\\\"
예수께서 산상수훈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고 그들을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생의 안정된 처소를 이 세상에 두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항상 그의 삶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생의 여정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끝날 수 없습니다. 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그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 그러해야 합니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제자직에 대해 다른 복음서에서 보다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의 안정과 보호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서 찾아야 하며, 자신의 생의 계획보다 언제나 하나님 나라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지향적이 아닌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 지향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자직의 필수 요건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야가 길을 가다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로 다가가서 그에게 그의 위에 겉옷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 때 엘리사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소를 잡아 그 고기를 구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엘리야를 따라 나섰습니다. 엘리사가 그의 소를 잡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모든 옛것을 뒤로하고 오직 부르심의 새 삶으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왕상 19:19-21)
지금까지 말씀드린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 요인이 된, 현실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 현실에서 자신의 삶의 계획을 갖는 것, 지난 일에 대한 집착, 후회 모두 자연스러운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데 큰 핸디캪(handicap)이 됩니다. 이러한 핸디캪을 극복하지 못할 때 그 누구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 불가능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모험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험의 성공·실패는 이러한 핸디캪의 극복에 있습니다.
어느날 저녁 늦은 시간에 믿음의 공동체를 하고 있는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사연은, 어떤 형제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어떤 한 형제가 그의 공동체에 들어와서 삶의 많은 변화를 나타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가 아직도 정리해야할 삶의 문제들을 정리하지 않고 있으면서 그 공동체에서 자기에게 새로운 일을 맡겨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께 그 분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를 도피처로 살아 안정된 기반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먼저 그 공동체에 들어와서 비로소 지난날의 모든 어두운 삶을 정리하고 이제부터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형제분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어서 그 일을 먼저 결단케 하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새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계산을 올바르게 해야합니다. 예수를 따르는데 필요한 계산 방법은 이 세상의 경제 방식에 따른 계산과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계산 방식으로 예수를 따르고자 할 때에는 거듭거듭 낙심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 따름에서 얻어지는 이윤이나 소득의 가치를 이 세상적인 것과는 다른 데 두어야 합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다름아닌 신(神)이었습니다.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묻자 신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여인은 한참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인은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이 가게에선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마음의 평화·사랑·지혜·행복·자유를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안정의 기반을 더 잘 다져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것들을 팔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씨앗을 주십니다.
예수를 따르는 그 궁극적인 이유가 드러나 있는 어떤 성인(聖人)의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제는 제가 당신이 저에 대해서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생명이시요, 당신은 저의 소망이시요, 당신은 저의 삶의 기쁨이시요, 당신은 저의 사랑이시요, 당신은 저의 모든 것이시요, 당신은 저의 전부이시요, 당신은 저의 삶의 의미 그 자체이시요, 당신은 저의 삶의 목적이십니다. 당신은 이 같은 분으로 저에게 오고 계십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찬송시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높은 산에서도 아니며,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쟁터에서도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나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는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길로 나를 부르십니다. 나는 사랑하는 주님께 손을 내밀어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나는 당신이 원하는 곳에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그곳이 산, 평야, 바다 어디든지. 사랑의 주님, 나는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있기를 원하는 곳에 있겠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죄의 길에,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어떤 방황자를 위한 것입니다.
오 구주여 만약 당신이 나를 인도하신다면, 비록 어둡고 험난한 길일지라도 나의 목소리는 아름다운 메시지로 방향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말하기를 원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매우 낮고 천한 곳에서라도 그곳이 추수하는 일꾼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나는 나의 짧은 생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위해 땀을 흘리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심을 압니다. 나는 마음을 다해 당신의 뜻을 행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내가 될것입니다.\\\"
- 메리 부라운(Mary Brown) -
제자의 길은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때때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얘야! 너 이제 그만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지 말고 나를 따를 수 없겠느냐? 나를 학문적으로만 연구하지 말고 나를 따르거라. 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아무리 논해봐야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한번 따라 나서보면 그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우리의 미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의 미래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발견되기 위해 그를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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