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제자입니까? 눅5:1-11
우리가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보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문화적인 차이입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것이 정상인데, 그곳에 가보면 전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충격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은 제일 먼저 문화충격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제가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후배 중 한 명이 유학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영장에 갔다 온 경험을 얘기해 주었어요. 미국의 수영장에는 조그만 사우나 시설이 딸려 있는 곳이 가끔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우나에 가면 남자 여자가 항상 구분되어 들어가지만, 그곳에 딸린 수영장에 있는 사우나는 남녀 혼용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되는데 이 친구가 홀라당 벗고 거기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에요. 조금 있다가 거기에 웬 아가씨가 한 명 들어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했냐?\\\" 그랬더니, \\\"선배님, 그건 묻지 마세요\\\" 정신 없이 뛰어 나왔는데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정상이던 것이 그곳에 가면 문화충격이 돼요.
우리는 사람을 오라고 할 때 손을 위에서 아래로 흔들며 부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손을 흔들 때 가면 안됩니다. 쫓아가서 \\\"왜 날 불렀냐?\\\"고 하면 그쪽에서 굉장히 당황해 합니다. 길 저 건너편에서 사람을 보면 손을 (위에서 아래로) 흔듭니다. 그러면 나도 같이 흔들어 주면 돼요. 그건 \\\"Hi!\\\" 하고 인사하는 겁니다. 사람을 오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밑에서 위로 흔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사람을 불렀다가는 오긴 오는데 와서 뺨따귀가 날아 갈 겁니다. 이건 누구 부를 때 하는 거죠? 예, 강아지 부를 때 하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이 문화차이이에요.
성경도 하나의 문화적인 책입니다. 성경의 문화를 동양적인지 서양적인지 우리가 나눠본다면 당연히 성경의 문화는 동양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의 문화를 서양적으로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버릴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이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이, 서양을 통해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문화가 서양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동양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월드컵 축구 경기를 할 때,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어느 조에 속해 있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속해져 있는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밀리트, 다 아시아 예선이에요. 우리와 예선을 다투는 거예요. \\\"아니 이스라엘은 한번도 못 봤는데요\\\" 하시는 분도 계실 거에요.그 나라는 축구 선수를 안 내보내서 그런 것이지, 그 나라가 다 그 나랍니다. 아랍, 중동, 다 거기가 아시압니다. 미들(Middle) 아시아예요.
여러분이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본다면, 서양 사람들보다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훨씬 더 성경을 이해할 능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자\\\'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제자에 대해서 설교할 것인데, 이 제자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가? 동양적인 차원에서 이 단어를 이해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라는 말이 서양에서는 어떻습니까? 단순히 기술을 전수 받으며, 무엇을 배우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도 서양 문화를 따라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오늘날에는 스승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자녀 가운데 선생을 시키려거든 어릴 때부터 태권도나 유도를 시키셔야 합니다. 왜? 요새 제자들이 선생을 막 폭행하거든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전혀 동양적인 스승의 관념이 아니에요. 제자의 관념이 아니에요. 우리 동양에서 말하는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알잖아요? 옛날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스승님이 앞에 걸어가시면 그 그림자를 밟을까 조심했어요. 얼마나 그 분을 존경했던지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항상 일보(一步) 뒤에 따라갔습니다. 불과 30년 전 얘기예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관, 이 제자도 똑같은 얘깁니다. 단순한 기술과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삶을 함께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알잖아요. \\\'제자\\\' 라고 하면, 적어도 \\\'스승과 제자\\\' 그러면 누구와 누굽니까? \\\'유의태와 허준\\\' 정도는 되어야 그게 스승과 제자 사이 아닙니까? 우리가 다 알잖아요? 성경에서 얘기하고 있는 제자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차원에서 제자라는 단어를 연상하며, 허준을 떠올리시면서 성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다시 여러분에게 해석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 곧 대사명을 주셨어요.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지켜야 할 사명을 주셨는데 우리가 다 외우죠? 함께 암송해 볼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 한국말로 하면 동사가 여러 가지 나온 것 같아요. \\\'가라\\\' \\\'제자 삼으라\\\' \\\'침례(세례)를 주라\\\' \\\'가르치라\\\' \\\'지키게 하라\\\' 그러나 여러분, 헬라어 원어에 보면 예수님은 단 하나의 동사를 얘기하셨어요.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 너희가 나를 믿는 자라면, 적어도 나를 마음속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것 한 가지는 해야 된다고 하시며, 한 가지만 얘기 하셨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제자 삼으라!\\\"
예수 믿는 것은 바로 제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 비극이 있다면 이 등식이 깨져 있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따로 있고 예수님의 제자가 따로 있어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얘기는 하지만, 전혀 예수님을 쫓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잘못된 거예요. 예수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뭔가? 예수님을 쫓아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제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간단합니다. 가짜입니다. 가짜!
저는 때로 우리 교인들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아요. 교인은 늘어나지만 가짜가 많은 것 같아서 그래요. \\\"구원받았습니까?\\\" 하면 손은 다 듭니다. 그런데 그 삶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전혀 아니에요. 예수님을 쫓지 않아요. 예수님의 생각도 닮지 않고, 예수님이 말하는 것도 순종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가짜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예언하셨죠? 앞으로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가짜가 득실거리게 될지를... 예수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폼으로 겉으로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말세가 되면 교회 안에 많이 늘 것이라고 이미 예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두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지면서 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은 신자입니까?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습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셨다면,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럼 당신은 제자입니까? \\\"예!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렇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요. 오늘 우리가 어떻게 가짜가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정말 믿는 자, 참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이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을 단순히 \\\"야!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더니 왕창 고기를 많이 잡았다\\\"라는 기적적인 고기잡이 사건으로 이해한다면, 여러분은 이 본문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뜻에서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어요. 본문 속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눈여겨보아야 할 요점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본문의 전체적인 초점이, 여러 제자가 많이 나오지만 베드로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구에게 이르시되? 시몬에게! 오늘 이 \\\'깊은 데로 가라\\\'하는 명령은 시몬에게 내렸고요, 헬라어 원어에 보면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은 제자 모두에게 내렸어요. 먼저 시몬에게 포인트를 두고 말씀하셨어요. 오늘 본문의 모든 사건이 다 그래요. 즉,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을 불러서 당신의 제자로 만드는 과정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에서부터 출발해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가를, 예수님은 이 본문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베드로가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했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제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발견함과 동시에 내가 누구인가를, 내 모습을 돌아보는 일이 계속되어져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세 번째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요점은, 예수님과 자신에 대해 깨달은 자의 직업의 전환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 예수님을 정말로 믿은 자에게는 전환, 변화가 생긴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 줄 아세요? 죄인을 불러 변화시켜 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예수 믿는 것은 바로 변화 받는 거예요.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변화 받아야 합니다.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것 아니에요. 1년 전의 생각과 5년 전의 생각과, 1년 전의 말투와 오늘의 말투와, 1년 전의 남편 노릇과 1년 전의 아내 노릇과 똑 같다고 하면, 그것은 전혀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매일 매일 만나는데, 어떻게 어제와 오늘이 똑같을 수 있겠어요? 변화 받지 않는 것! 가짜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는 사람들 보면- 가끔 늦을 수 있죠- 그러나 5분 늦는 사람들은 항상 5분 늦게 와요. 10분 늦는 사람들은 항상 10분 늦게 옵니다. 조는 사람들은 1년 내내 항상 졸아요. 진짜일까요? 가짜입니다. 변화가 없는 것! 그것은 전혀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고 주님은 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변화 받아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제자로 남은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제자가 되는 비결 몇 가지를, 이 아침에 나누려고 합니다.
1. 아름다운 순종이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1절의 배경을 보면, 이 사건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일어났는데, 게네사렛 호수는 어디인가? 갈릴리 바답니다. 호수는 호순데 그 호수가 너무 너무 크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라고 부르는 거예요. 거기에 예수님이 도착하셨어요. 혼자 오신 게 아니고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좀더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자를 고치시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왔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갈릴리 바닷가,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니까, 마침 거기에 배가 두 척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배를 지목했어요. 마침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베드로에게 부탁하기를 \\\"나를 싣고 이 배를 약간 뭍에서 멀리 띄워 달라\\\" 고 하셨어요. 무슨 얘기예요? 내가 너의 배를 강단으로 써야 되겠다는 거예요. 바람은 늘 바다에서 산으로 불거든요. 마이크가 없었어요. 여러분 그 당시의 상황을 한번 연상해 보세요. 약간 비탈이 진 곳에 수많은 사람들을 앉혀 놓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뭍에서 약 2,30미터 배를 띄워서 바람을 뒤에 등지고 말씀을 하십니다. 파도 소리가 약간 들리면서..얼마나 소리가 잘 들렸겠어요. 갈릴리 호수니까 파도가 많지 않았겠죠.
얼마나 가르치셨는가는 모르겠어요. 우리가 생각할 때 한 30분 설교하지 않았나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약 70년 전, 영국의 교회들을 보면 설교만 1시간 40분을 했어요. 제가 오늘 1시간 40분 설교하면 다음 주일엔 아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이 당시에 설교를 얼마나 오래 했겠습니까? 아마 적어도 두 세 시간은 가르치셨을 거예요. 그 말씀을 충분히 가르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우리가 생각할 때 어려운 명령이겠는가? \\\'내가 잡은 고기를 달라는 것도 아닌데, 고기 잡으라고 그물 한번 더 던지라는 건데, 그것 순종 못할 사람이 어디 있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이 본문을 굉장히 오해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나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게 아니고, 그 당시로 돌아가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웠던가를 발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그 당시로 돌아가 보십시오. 먼저 이 명령이 왜 순종하기 어렵습니까? 시간적으로 어려웠어요. 이 때는 밤이 아니고 낮이에요. 부산도 그렇습니다만, 대개 깊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언제 잡습니까? 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서 새벽에 배가 들어옵니다. 얕은 곳에서는 낚시를 낮에 할지 몰라도 밤에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리는 거예요. 도저히 지금은 시간적으로 고기가 잡힐 때가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이 그물은 깊은 데 쓰는, 아주 큰 그물을 가지고 나가 바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다시 던지라는 겁니다.
이 명령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은 피곤에 지쳐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아주 재미있는 단어가 나오거든요.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5절의 뉘앙스를 잘 보세요. 재미있어요. 베드로가 어떤 항변을 은근히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님, 우리가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지마는\\\", 이 단어를 원어로 보면 \\\"우리는 지금 굉장히 피곤해 있습니다\\\" 라는 의미에요. 여러분,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밤에 나가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가 많이 잡혔어요. 그렇다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많이 생겨서 기뻐할지 모르겠어요. 원기가 솟아날지 모르지만 , 그런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렇게 밤새 했는데. 그러니까 얼마나 지쳤겠어요? 지칠대로 지쳤는데 오셔서 배를 좀 내달라 하시더니, 두세 시간 붙잡아 놓고 설교를 하시고... 고기잡이 마치고 집에 가서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가 얘기하는 거예요. \\\"선생이여!\\\" 주님도 아니고, \\\"선생이여! 내가 존경하지만 우리가 밤이 맟도록 수고해서 아주 피곤합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데 전문가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셨어요. 예수님은 목수셨어요. 그러나 베드로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여기서 고기를 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목수 되신 예수님, 고기 잡는 시간도 아닌데 지금 이 시간에, 이 지친 우리들에게 그물을 내리라고요?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불만이 있었던 거예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종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그물을 이미 다 씻어 놨어요. 아침에 돌아온 어부들이 어떻게 합니까? 저는 가끔 바닷가에 나가서 어부들을 봅니다. 새벽에 나가면 어부들이 잡은 고기를 다 꺼내고, 그물을 하나 하나 씻더라고요. 씻어서 말려요. 그물이 대충 마르면 잘 접어놔요. 그래야 그물이 잘 풀리거든요. 그 작업도 쉽지는 않아요. 때로 고기가 많이 잡혔을 때는 어부들이 노래를 하며 접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무 말도 안하고 시무룩하게 접습니다. 그것만 봐도 이미 분위기를 알 수 있어요. 아! 고기를 못 잡았구나!
힘없이 다 접어놓은 그 그물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해 줄 수 있어요. 고기를 잡느라 배 위에 있는데 예수님이 오시더니 \\\"야! 왼쪽에 한번 더 던지거라!\\\" 하시면 까짓 것 못 던질 거 있나요. 순종할 수 있어요. \\\"오른쪽에 한번 더\\\" 까짓 것 두 번인들 못할까? 해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미 일을 다 끝내고 나서 그물을 씻어 놓고, 이제 집에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는데, 이 때 나가서 다시 시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순종하기 어려운 일을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치에 맞거나 내 마음에 절반만 들어도 순종하기 쉬워요. \\\"아! 뭔가 될 것 같다. 그곳에 가면 고기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반만 들어도 베드로가 순종하기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내 의견에 맞지도 않습니다. 이치나 사리에 맞지도 않아요. 과학적으로 맞지도 않아요. 이런 것을 순종하라고 하면 이것은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이 순종이요, 이것이 믿음이라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순종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믿음은 이성(理性)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가능한 것이다!\\\' 무조건 내 상식을 버리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무조건 이성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말씀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다가왔을 때에, 그것이 내 이치와 내 상식과 내 경험과 내 지식에 맞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여러분, 베드로가 어떻게 이 어려운 일을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두시간, 세시간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거예요. 은혜를 받았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그 말씀을 믿었던 건 아니에요. 나중에 회개하는 걸 봐서도 그렇고. 보이는 상황으론 도저히 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아요. \\\'아이고,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뭘 모르시는구먼!\\\' 고기 잡을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지만 나가서 그물을 던졌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자입니다. 여러분이 참 주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들려온 말씀, 깨달아진 말씀이 내 경험과 이치에 맞지 않아도 그 말씀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하셨어요. 누가 설교를 잘 듣는 사람인가? 예배드리고 가서 잊어버리는 게 아니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붙들고 순종하는 사람을, 성경은 참 말씀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를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 분을 보아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 안될까? 이로울까? 해로울까? 이치에 맞는가? 안 맞는가?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내가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러한 자세를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인물이 다 그래요.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어디로 갑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그 당시에는 국제적인 법도 없었어요. 누구 하나 나를 보호해 줄 사람도 없어요. 이웃 동네에 가서 내 아내를 뺏기고 내 제물을 다 빼앗겨도 나는 할말이 없어요. 나를 죽여도 할말이 없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떠났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이스라엘에 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죠. 아랍군대가 이스라엘을 다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아랍 국방장관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어요. 고민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한 여종이 얘기를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을 고쳐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선물을 잔뜩 짊어지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무엇을 기대했겠습니까? 자기가 가면(오늘날로 말하면 미국에서 온 국방장관이니까), 이스라엘의 한 조그만 선지자가 나와서 안수하면서 자기의 병을 고쳐 줄 걸로 기대하고 찾아갔어요. 그 집 앞에 갔더니 엘리사가 문도 안 열어 주고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어라\\\" 고 했어요. 이 사람이 화가 너무 너무 났어요. \\\"야! 우리나라에 이 낙동강 같은 강이 없는 줄 아느냐? 3급수 낙동강! 우리나라에 가면 1급수 강이 있어!\\\" 그러면서 화가 나서 돌이켜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따라온 종이 얘기하는 거예요. \\\"아, 주인님!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인님보고 물구나무서서 세시간 있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성경에는 없음) \\\"아, 그런 어려운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물며 요단강 가서 일곱 번 씻는 거, 한번 해 보시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요단강에 갔습니다. 한번 씻고 두 번 씻고, 세 번, 네 번, 여섯 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그런데 일곱 번 씻고 올라오니, 문둥병이 나은 정도가 아니라,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치에 맞지 않아요. 어떻게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는다고 문둥병이 낫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요구합니다. 때로 말씀합니다. 우리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말씀대로 살라고 얘기합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순종인줄 믿습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순종이 없기 때문이에요. 말씀을 알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을 보면 다 내 경험으로 살고, 내 이치로 살아가요.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오늘날 이 교회 안에 적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뭐라고 얘기하십니까? 안식일, 주일 하루를 하나님 앞에 바치라고 얘기합니다. 많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고민해요. 아니, 일주일 내내 사업해도 안 되는데 하루 가게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는가 따지며 가게문을 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주위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 보셨나요? 어떤 자들은 순종합니다. 그런데도 사업은 똑같이 돼요. 아니, 더 잘 될지도 몰라요.
우리 교회 온 지 1년쯤 되는 한 집사님이 있어요. 제가 그 분 가게를 심방했습니다. 중국 식당을 하시는 분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셔요. 제가 성함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식당을 얼마나 깨끗하게 하시는지,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제가 감동 받았어요. 그 집사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알아요? 자기가 이사와서 중국집을 차렸을 때, 그 동네에 중국집이 여러 개가 있었대요. 자기가 주일날 문을 닫자- 원래 중국집은 거의 연중무휴잖아요- 그런데 주일날마다 문을 닫으니까 다른 중국집에서 \\\"저 집 문닫고 나갈 날 얼마 안 남았네!\\\" 라고 했어요. 중국집은 언제가 대목이에요? 주일이 대목이거든요. 그러나 가게문을 주일날 닫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집사님이 \\\"목사님, 우리 주위에 있던 중국집들 다 문닫고 이사 갔어요. 우리만 남았어요\\\"라고 했어요. 그 집사님이 음식을 정성스럽게 하니까, 단골들이 짜장면은 일주일에 한번 먹고 싶은데, 주일날 문 닫는 거 아니까 토요일에 다 배달시켜 먹는데요. 할렐루야! 주일 하루 쉬고, 교회 와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 봉사했지만 전혀 수입은 줄지 않았어요. 가게문을 닫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 다 망해 나가도 그 집은 잘 경영되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것 하나를 순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네 수입의 10분의 1을 나에게 바쳐라\\\" 10분의 1을 잘라내라는 거예요. 내 경험으로 볼 때, 타당합니까? 지식으로 맞습니까? 안 맞죠. 10분의 10 가지고도 살기가 어려운데, 저축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10분의 1을 바치고 나서 내가 생활을 하는가? 그러나 여러분,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10분의 1을 잘라내고도 얼마든지 부(富)를 누리며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나를 시험해 보라는 겁니다. 왜 10분의 1을 바치라고 하셨어요? 하나님이 돈이 없습니까? 믿음을 보시려는 거예요. 순종하는가 안 하는가를 보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10분의 10 갖고 살지 모르지만 나는 10분의 9 가지고도 그 사람보다 하나님이 나를 잘 살게 하실 수 있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줄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 고백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10분의 10 가지고 살면 잘 살 것 같습니까? 열심히 10분의 1을 모읍니다. 자기 것을 삼아 둡니다. 제가 보니까 \\\"덜컥!\\\"하는 날이 와요. 사고 나서 빠져나가고, 세금 때문에 빠져나가고,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어떻게 가져가도 가져가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내가 자발적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느냐 아니냐 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십일조 생활 철저히 하면서도 얼마나 놀랍게 물질적인 부를 누리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까? 보세요. 문제는 순종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순종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순종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놀라운 결과를 말씀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에 되었더라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순종했더니 그물이 어떻게 됐다고요? 찢어질라 했습니까? 찢어졌습니까? 막 찢어지기 시작했어요. 툭툭툭 끊어지는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옆에 있는 두 배를 막 불렀어요. 동무를 불렀어요. 그래서 두 배에 그 고기를 나누어 실었더니, 그물은 다행히 안 찢어졌는데 그 다음엔 그 배가 가라앉으려고 했어요. 거의 잠기게 되었어요. 여러분, 이 말씀이 사실임을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순종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교회 나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제자예요.
2. 아름다운 회개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오늘 본문에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를 소개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회개입니다. 자, 여러분 이 기적을 보고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했어요? \\\"얼씨구나 좋다! 얼쑤!\\\" 하며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난리가 났습니까?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예수님 말씀대로 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에구, 말씀하니까 어떻게 하냐\\\" 하며, 하기 싫은데 가서 그냥 그물을 던졌어요. 말씀하시니까 순종했다고요. 내 상식에 이해가 안 가지만, 기대 하지 않고 던졌어요. 그런데 뭐가 묵직해요. 그런데 그물을 보니까 물고기가 가득 잡혔어요. \\\"으윽, 대박 터졌네!\\\" 이렇게 해야 하는데, 베드로의 반응이 어땠어요?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따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금 이 본문에서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하나는 나를 떠나 달라는 거예요. 두 번째로 나는 죄인이라는 겁니다. 무슨 죄입니까? 베드로가 어젯밤에 다른 배에서 고기를 몇 마리 훔쳤던가요? 그런 항목적인 죄를 회개하는 게 아니라, 오늘 이 베드로가 드리는 말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 무엇을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발견한 그 순간 나의 부족을 하나님 앞에서 발견한 거예요. 나의 추한 모습을 발견한 거예요. 여러분, 이 회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발견!
여러분, 신앙이 뭔 줄 아세요? 신앙은 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예요. 나와 아내의 관계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아내의 관계, 하나님과 자녀와 이웃의 관계를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비판하게 되고 교만하게 돼요.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매일 매일 하나님을 발견하고 나를 발견하는 거예요. 이와 비슷한 결말을 우리는 욥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이 어떻게 했습니까? 욥은 아주 의인이었어요. 어느 날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인가 하면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열 명의 자식이 다 죽고, 아내가 떠나고, 몸은 병들었어요.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원망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꽉 참았어요.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셨어요. 더블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재산을 두 배로 주시고, 자녀는 스무 명 주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니까 열 명을 그대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다 축복한 다음에 욥의 반응은 \\\"얼쑤, 좋다! 축복 받았으니까\\\" 그렇게 반응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욥기 42장 5,6절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공할 때 교만하다가, 실패할 때 회개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종종 봅니다. 건강할 때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회개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봅니다. 그러나 일이 잘 될 때, 회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러나 기적 앞에서 회개하는 사람, 하나님이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실 때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사람, 이 회개가 참으로 귀한 줄 믿습니다. 내 일이 잘 될 때, 내 몸이 건강할 때, 하나님이 나를 무더기로 축복해 주실 때,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나의 부족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제자예요.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에게는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른 제자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물고기를 실어 담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순간, 베드로에게는 물고기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건강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이 다 고기를 담고 있는 그 순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님 앞에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회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을 만난 이후 내 마음속에 부족함을 느끼고, 내 존재적인 부족함을 느끼고, \\\"주님, 나는 죄인이에요\\\" 고백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3. 아름다운 헌신이 있어야 한다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아름다운 순종입니다. 두 번째 아름다운 회개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베드로가 외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라고 말씀드렸더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반응이 놀라워요. 10절을 보십시오. 10절 하반 절에 보면,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이제 후로는\\\'에 동그라미 치세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나오는 \\\'이제 후로는\\\' 이 단어의 뜻은 과거와 달라졌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결코 과거와 같을 수가 없죠?
그 비슷한 용도로 쓰인 예를 제가 하나만 들어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48절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마리아가 지금 임신을 하고 나서 찬양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아주 비천한 사람이었대요. 그러나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후로는\\\' 언제입니까? \\\'천사가 나를 찾아 와서 예수님이 내 몸을 통해서 나실 것이라고 하는 이제 후로는, 하나님을 만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내가 사람을 취하리라! 지금까지는 네가 단순한 어부에 불과했지만, 천박한 직업을 가진 것에 불과하였지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변화입니다. 어부에서 사람 낳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직업이 바뀌는 것이에요. 의심에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만했던 데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얻은 결론은 무엇입니까? 11절에 놀라운 결론을 얘기합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여러분, 이것이 중요해요. 뭘 버려 두고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바로 헌신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예수를 믿고 하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에요. 예수님께서 어떤 비유를 말씀하셨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얘들아! 너희가 남의 밭에서 어느 날 삯을 받고 밭을 갈다가 뭐가 덜커덕 했어요. 뭐가 걸려서 땅을 파보니까 옛날 해적이 그랬는지 상자에 다이아몬드랑 보물이 가득 있는 거예요- 그러면 너희가 어떻게 하겠느냐?\\\" 도로 묻어 놓고 가서 재산, 차, 있는 대로 다 팔아서 그 밭을 사지 않겠느냐? 안 살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사지 않겠느냐?\\\"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해요. \\\"천국이 이와 같으니라!\\\"
누가 천국을 발견한 자입니까? 가치관이 바뀐 자예요.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참 제자가 되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명예가 중요하지 않아야 돼요. 세상의 건강과 장수가 나에게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아야 돼요. 참으로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 받은 사람이요, 이러한 헌신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줄 믿습니다.
제가 얼마 전 공주 침례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왔어요. 그 교회는 공주에 있습니다. 부산도 아니에요. 교인이 청년과 합쳐서 500명이 되지 않아요. 청년이 한 200명 되고, 어른들이 한 300명 되는 것 같이 보였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놀라운 얘기를 했어요. 예산 얘기를 하는데 저희 교회 예산의 거의 두 배였습니다. 우리는 교인이 800명이에요. 청년들 가운데 얼마나 헌신하는 사람이 있던지, 앞으로 선교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어요. 어떻게 헌신하는가? 목사님이 얘기해 줬어요. 어떤 청년이 직장생활 하면서 앞으로 3년 후에 선교사로 나갈텐데 봉급을 교회 통장으로 온라인으로 넣어 준대요. 그리고 교회에서 용돈을 타다 쓴다는 거예요. \\\'어차피 앞으로 선교해야 되니까, 교회에서 나를 도와야 되니까, 내가 지금부터 훈련받겠습니다, 헌신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교회에 내가 헌신하고, 교회에서 내가 지원 받겠습니다\\\' 라는 의미에서. 이런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가 돌아오면서 기차 안에서 생각했어요. \\\"나는 가짜 목사로구나! 우리 교회는 가짜로구나!\\\" 얼마나 제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누가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까? 헌신된 자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오늘 교회 안에 먼저 자기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내 몫 다 챙겨놓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누구 하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자기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쫓으려고 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적다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가 힘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년, 10년 믿어도 변화가 없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아마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순종이 부족한지도 모르겠고, 회개와 헌신이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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