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개 외로움을 이길것인가 [릭월렌목사]
작성자 릭 워렌 작성일 2005.04.29 주제 인생/기타
제목 어떻게 외로움을 이길 것인가?
분리
고독의 첫 번째의 원인은 분리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당신의 가정(경력, 군대, 또는 다른 이유)에서 고립될 때 이러한 고립은 외로움을 가져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친구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와 같이 과거에 선교 여행을 한 바울의 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는 어디든 혼자 가는 법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와서 분리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모두 다른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당신은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바울은 연락할 수도 없고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친구들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두 번(9,13절)이나 디모데를 “오라”고 부탁하고 있고, 다음에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2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디모데야,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 나는 진정으로 너를 보고싶다. 어서 와서 나를 보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시간이 있을 때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어떤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도록 하십시오.
반대
외로움의 두 번째 원인은 반대입니다. 바울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나는 감옥에서 홀로 앉아 늙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공격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어떻게 해를 보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바울을 반대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해’라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반대한다’ 또는 ‘저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반대가 심할 때에는 참으로 외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장 야비한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아이들이 패거리가 되어 당신을 반대하였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쉬는 시간에 인기의 변덕스러운 손가락질을 하고 모두가 당신을 반대하면서 “너는 이제부터 우리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당신을 홀로라고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과하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홀로 배척을 받는 것은 바로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오해받는 것, 당황하는 것, 수치스러운 것도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어날 때 받은 유혹은 자신을 속으로 감추고 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더욱 당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척
고독의 세 번째 원인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부분의 가장 큰 고통이 이 원인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척에서 오는 고독입니다. 당신이 배신을 당했고, 당신이 저버림을 당했고, 당신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기에 버림을 받은 것처럼 느낄 때 배척의 외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의 그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16절). 당신은 바울의 음성에서 그의 고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일들이 어려워질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떼었습니다. 배척은 인간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혼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간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성실한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며, 저버리는 것이고, 이것은 심한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요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고, 이 요구가 위배되면 이것은 심각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길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좋은 방법과 자신을 좌절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기를 좌절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계속 일하는데 다 사용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완전히 침대에 녹초가 되어 떨어질 때까지 계속 하루 종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당신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희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주의를 시도합니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구매합니다. “만일 내가 많은 것들을 내 주위에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섬에 떨어졌고, “당신은 인간과의 접촉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은 과연 얼마 동안이나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질은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호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외관계를 가집니다. 그들은 결혼생활에서 다른 애인을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 중독이나 마약에 빠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설을 읽고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면서 자신을 환상의 세상에 빠뜨립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자기 동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외로움과 싸우기 위해서 네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의 외로운 날들을 지날 때에 이 네 가지를 사용한 것같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선용하는 것과 시키는 것과 인식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입니다.
선용하십시오
고독을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당신의 시간을 지헤롭게 선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당신의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고독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앉아 있다고 하면 당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을 물리쳐야 합니다. 당신의 기분전환의 부족을 유익하게 쓰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하십시오.
만일 삶이 당신에게 레몬(불만족스러운 것)을 준다고 하면, 레몬 쥬스를 만드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한 것입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2절). 그리고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13절). 바울은 그저 앉아서 우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쌍한 나야, 불쌍한 나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것이 30년 동안 사역한 후에 내게 주는 보상입니까? 이것이 내가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퍼지게 하는 가장 책임 있는 자로서 많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주시는 보상입니까? 로마의 습기 찬 옥에서 고독하게 죽는 것이 내가 얻는 보상입니까?” 라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는 자기 동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대신에, “내가 만일 홀로 있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마음의 편안함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이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겠다. 나의 겉옷을 가져오면 적어도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한 것들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을 가지고 오라. 나는 이 간섭이 적은 시간들을 선용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에 다른 차원의 큰 변화였습니다. 그는 활동적이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감옥에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원형극장에서 복음을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만일 바울이 원형극장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복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신 그를 옥에 가두어 두셔서 신약성경의 부분을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최소화 시키십시오.
외로움을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외로움을 최소화 시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거것을 과장하지 말고 그 외로움을 계속 반복하여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고독하다. 나는 너무도 외롭다.” 외로움으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의 삶에 증오를 쌓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바울은 “나와 함께한 자도 하나도 없고……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절).
바울은 그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었지만 그에게 시간을 낼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증오하는 일이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더 외롭게 만들고 당신의 삶의 벽을 더 높이 쌓게만 만든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자기 감옥에 넣고 잠그고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냉소하고, 언제나 마음에 증오심을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 주위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나는 더 고통받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선용하고 나의 상처를 최소화시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식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세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17절) 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 바로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14:18) “내가 너희를 위로함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KJV)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과 항상 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이해하는 한, 당신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기도는 외로울 때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고독의 놀라운 해독제가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도 외롭습니다. 사울이 나를 쫓고 나는 동굴에 외롭게 숨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임재를 피하여 어디를 가겠습니까? 만일 하늘에 올라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땅에 어디를 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나는 당신을 피하여 숨을 곳이 없습니다”(시139편에서). 다윗은 외로움이 우리와 하나님이 더 가까운 관계를 가져야 하는 좋은 시간의 표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애미 그란트(Amy grant)는 위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외로운 날을 좋아하네. 그날은 나에게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기회를 주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바울이 행한대로 하십시오. 우울하게 그저 앉아 있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안하는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시 을 선용하십시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공감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네 번째 방법은 사람들의 필요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만을 위하여 내적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외부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당신 자신만을 보지 말고 밖의 다른 사람들을 보십시오. 외로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하십시오. 바울이 바로 이렇게 하였습니다. 삶 속에서 그의 목표는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즉 자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딤후 4: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외로움 가운데 있었고 생애의 마지막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의 목표, 즉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잊지 않았습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젊었을 때에 그는 한 젊은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 남자에게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녀의 가까운 친구와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제치고 다른 사람이 선택을 받는 이 배척보다 더 큰 상처는 없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우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코리야, 너의 사랑은 끝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니. 이제는 그 끝난 사랑에 대해 두 가지 할 수 있는 일밖에 없다. 너는 그 감정을 속으로 억누르고 안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너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 감정을 바꾸어 다른 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너는 사랑의 삶,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녀는 당신 아는 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아기를 가지기 이해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가진 그 사랑을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아기를 가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부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벽 쌓는 일을 중단하고 다리를 놓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는 너무도 외롭습니다.”라고 불평하는 일을 그만하고, “하나님,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벽을 쌓는 대신에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은 고독의 해독제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다시 풍성한 것으로 당신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공백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것은 “나는 이해한다. 나는 참으로 이해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기 전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제자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를 심문하기 위해 붙들려고 왔을 때 그의 모든 제자들은 피하여 달아났습니다. 베드로도 곧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때에,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고 도와주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아가며, 주님께서 당신의 고독을 당신이 정복하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