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변화산에 체험

제자들의 변화산 체험/막9:2-8

제자들의 변화산 체험
막9:2-8





비버리지 주교가 나이가 많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임종에 이르렀을 때 주위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늘 함께 지내던 전속 사제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하니까 “당신 누구요?” 하며 못 알아보더랍니다. 다음엔 그의 아내가 가까이 와서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니까 역시 “당신 누구요?” 하더랍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금방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 나는 40년간 그 분과 사귀어 왔답니다. 그 분은 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하고 분명하게 말씀하더랍니다.

얼마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참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육신의 건강을 다 잃어버릴 때에도 오직 예수님만은 잊지 말아야 되고 세상 재물, 세상 친구 다 떨어진 때에도 예수님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이 세 제자가 헬몬산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놀라운 체험을 했는데 그 놀라운 영광의 장면 가운데서 마지막 남은 장면은 “오직 예수”만 보였습니다.



1. 변화산의 체험



예수님은 70인의 제자가 있었고, 더 중요한 12제자 중에도 중히 여기는 세 제자가 있었는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입니다. 이 세 제자 중에 첫째는 역시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이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 헬몬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다가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시면서 그 옷이 광채가 나는데 세상 사람이 빨래하는 솜씨로는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게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아마도 곧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된 분으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 살아 있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성도들을 대표하고 모세는 죽어 장사된 분이므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들림받을 성도들을 대표하는 분입니다.

이 때에 제자들은 너무나 황홀한 광경을 보고 정신 나간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다가 너무 좋아서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막 9:5) 하고, 이 산꼭대기에서 세 분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막 9:7)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고 나서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습니다.

후에 베드로는 회고하며 말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고 한 것을 보면 변화산의 체험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요, 이런 체험 때문에 순교하기까지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는데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셨을까요?



① 깊이 기도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려고 자주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시고,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가셔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눅 22:39~40). 엘리야도 갈멜산에 올라가 기도하셨고, 모세도 호렙산(시내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② 제자들이 체험을 갖게 하시려고

어떤 체험을 가져야 무서운 핍박과 환난을 이기고 세상을 복음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이념과 형식으로만 믿던 사람이 성령의 불세례를 받는다던가, 은사를 받는 체험을 하게 되면 더 확신을 가지고 헌신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영적 체험이 꼭 필요합니다.



③ 세상을 멀리 떠나 한적한 곳을 찾기 위해서

복잡한 세상 생활을 하면서 정규적인 교회 출석만 하는 것 가지고 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세상을 멀리 떠나 산이나 기도원에 가서 깊은 은혜받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④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전적으로 하나님만 앙망하고 사모하기 위해서는 높은 산이나 기도원에 가서 간절히 사모하며 특별한 은혜를 받는 것이 꼭 필요함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헬몬산 높은 산에 올라가셨고, 또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금란교회에 부임한 지 32년 만에 처음 갖는 명성수양관 대수련회는 참으로 중요한 행사입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도 다른 곳에 휴가 가는 것보다 10배, 100배 귀중한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문제 해결도 받을 수 있고 놀라운 체험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2. 변형의 의미



①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은 장차 재림하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셨던 목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의 모습,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9장 1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미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자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자이시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입니다.



③ 세 제자들에게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부활에 있고 영원한 영광의 천국의 소망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수제자로서 주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할 사람이요, 야고보는 첫번 순교자가 될 사람이요, 사도 요한은 유일하게 순교는 안 했지만 중요한 성경, 요한복음과 요한 1,2, 3서를 기록할 사람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할사람이기 때문에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에게 일제히 보여주지 않은 것은 같은 제자라도 영적인 수준도 다르고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④ 기도의 산에 올라가야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신령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등산하러 가기 위해 헬몬산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를 하는 것과 기도 훈련을 시키려고 올라간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야 세상 생각과 잡념을 다 버리게 되고, 산에 올라가 깊이 기도해 보지 않고는 신령한 체험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학식 많은 신학 박사라도 무릎꿇지 않고는 진정한 신학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릎학(Kneeology)을 배우지 않고는 진정한 신학(Theology)을 배울 수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를 깊이, 그리고 많이 하지 않고는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깊이 기도에 몰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평생 찰삭거리는 물가에서 형식적인 신앙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가엾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깊은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나 영계의 깊은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명성수양관 성회는 과거에 없었던 큰 은혜를 받는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3. 오직 예수



본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나 율법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촛점을 둔 것이고, 또 예수님에 의해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이 광채가 나며 그 옷이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게 보였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너무 황홀하여 초막 셋을짓고 그 세 분을 모시고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구름이 몰려와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 남았습니다. 변화산의 영광을 붙잡아 둘 생각도 하지 말고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살 생각도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 중심으로만 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신비한 체험을 다 했어도 예수님 중심에서 떠나면 탈선하고 잘못됩니다.



① 중보자는 오직 예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Mediater)는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에베소서 4장 5~6절에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한 말씀대로 참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고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했습니다.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의 모양을 입고 오신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②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셨으므로 신성을 가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고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셨고,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데서는 죄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순교의 피로 의롭게 되는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죄의 대속은 그리스도의 피에만 의존해야 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순교자의 피도 죄의 사함을 위하여 흘린 피는 없습니다. 속죄를 위한 피 흘림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며 이로써 그가 우리에게 주신 속죄의 사랑은 우리가 모방하기 위해 하신 일이 아니며 감사하기 위하여 주신 사랑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 외에 어떤 순교의 피도, 어떤 의로운 행동이나 선행도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5~6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③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세상에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어떤 의로운 행동도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 못 합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④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하신 말씀대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 부활이 있고 부활 후에는 영원한 기쁨의 나라 천국이 있고 또한 영원한 고통의 나라 지옥이 있습니다. 콩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씨앗은 수천 년 만에라도 죽었다 다시 살아 열매를 맺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100년 미만 살다가 끝나겠습니까? 반드시 부활이 있고 영원한 두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단이 없이 고통만이 계속되는 이 지옥의 불못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이 성경은 수백 번이나 지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했습니다. 생명책은 곧 천국 호적인데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고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워져 영원히 슬피 울며 탄식하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이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생명책에 기록될까요?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만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지옥의 형벌을 면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