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

제자의 삶/막6:7-13

제자의 삶
막6:7-13





열 두 제자

예수를 믿으면 됐지 꼭 제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가지게 되는 생각입니다. 신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많습니다. \"교인\", \"신자\", \"성도\", \"하나님 자녀\", \"천국 시민\" 등등. 이런 용어들은 우리에게 상당한 위안을 줍니다. 그런데 유독 \"제자\"란 용어는 선뜻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제자가 되라\"고 하면 어쩐지 부담스럽습니다. 뭔가는 매이는 것 같고, 무슨 덤태기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왜 제자란 말이 그렇게 부담스러울까요? \"성도, 신자, 하나님 자녀, 천국 시민....\" 대부분이 우리가 누릴 특권을 암시하는 용어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혜택을 암시하는 말들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제자\"란 말은 혜택보다는 의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제자를 disciple이라고 합니다. disciple의 동사형은 discipline인데 \"훈련하다\"(training)의 뜻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축복만 누리는 게 아니라, 뭔가 훈련을 받으라고 하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 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무리들도 주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무리들도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무리들도 주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기적으로 주신 식량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들을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의 삶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혜택은 다 받아들이되,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삶으로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자 청년을 보세요. 그는 예수님을 믿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삶을 바꾸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돈을 의지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율법을 지켰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정한 인간의 계율일 뿐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계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주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삭개오 역시 주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단 한 마디도 재산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삭개오 스스로 자기 재산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삭개오가 이미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봅시다. 그는 과거에 남편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 여인에게 가장 마음 아픈 약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單刀直入적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 오라!\"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전에도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남편다운 남편이 아니었다. 지금 있는 남편도 행복을 주는 남편은 아니다.\" 여인은 즉석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네, 이제는 남편만 믿고, 남편에게서 행복을 얻으려 하는 인생관을 바꾸겠습니다.\" 이것이 이 대화에 담겨진 의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한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을 따라 변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라 가치관이 변하고 사상이 변해야 합니다. 인생관 세계관이 변해야 합니다. 생활이 변해야 합니다.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구조 조정\"이란 말입니다. 구조를 바꾸자는 말입니다. 어떤 구조를 어떻게 바꾸자는 말입니까? 근로자를 대량 해고하는 것이 구조 조정입니까? 강제로 기업을 통폐합 하는 것이 구조 조정입니까?

제가 볼 때에 가장 중요한 구조 조정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입니다. 즉, 제도나 기구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기업 정신을 바꿔야 합니다. 노동 정신을 바꿔야 합니다. 경영자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노동자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데 한 두 가지 구조를 바꿨다고 뭐가 변하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변화요, 마음의 변화입니다. 세계를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정관, 물질관, 직업관, 인간관, 국가관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합니다.

신앙이란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모든 생각, 모든 그릇된 생활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셔야 진정한 신자가 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생 전체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일어난 패러다임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



첫째로, 제자들은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오늘 말씀 7절에 보면 매우 중요한 두 단어가 나타납니다. \"부르셨다\"(call)는 말씀과 \"보내셨다\"(send)는 말씀입니다. 제자란 축복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인 동시에, 축복을 나눠주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정말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이라면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나가야만 됩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주님께 영생을 얻으려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 속으로 용감하게 나아가야만 됩니다.

왜 나가야 됩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세상 사람을 바꾸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천은 좋은 세상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세상이든지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좋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고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 놓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세상이 변합니다. 요셉이 머물 때에 보디발의 가정이 변했습니다. 요셉이 머물 때에 고약한 죄수들이 변했습니다. 요셉이 머물 때에 파라오의 왕궁이 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축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상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19세기 남미 대륙을 스페인 식민지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시몬느 볼리바르\"라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베네스웰라, 콜럼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어디를 가든지 그의 동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가 독립된 것이 바로 볼리바르의 투쟁 때문입니다.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나라 이름까지 볼리바르를 기념하여 붙였습니다. 그는 1783년 7월 24일 베네스웰라 카라카스에서 바스크 계의 귀족 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200년 전에 신대륙으로 건너간 그의 집안은 볼리바르가 태어날 당시 1200명의 노예를 거느린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마드리드로 건너가서 마리아 테레사라는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최상류층 사람으로 생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정부에 의해서 자행되는 식민지 약탈과 노예 계층의 학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4세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810년 일단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군중들 앞에서 스페인 총독을 굴복시켰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 해에 콜럼비아, 칠레, 에콰도르가 식민지 정부를 전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페인 정부의 끈질긴 저항으로 여러 차례 정부가 전복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때로는 배신자에게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로 남미 대륙의 절반을 독립시켰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를 해방한 것이 1863년입니다. 베네스웰라에서 노예가 해방된 것은 그보다 9년 앞선 1854년입니다. 볼리바르는 1819년에 이미 앙고스투라 의회에서 노예 해방법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볼리바르는 스물 네 살에 감히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섰습니다. 그의 생각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삶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제도도 바뀝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제자들 얘기를 합시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열 두 명을 둘씩 둘씩 보냈으니, 2인조 6개 팀에 불과합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로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60억 인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로서의 비젼입니다. 세상을 넉넉히 바꿀 수 있다는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그 비젼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몬느 볼리바르는 혁명가입니다. 혁명가는 사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상으로 감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명색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누굽니까? 전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도 인류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천하 만민\"을 아브라함의 안중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만 쳐다보지 마세요. 나 한 사람 축복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삶에 함몰되고 있습니다. 나 하나 복 받는데 삶을 허비하고 있어요. 시몬느 볼리바르는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특권을 포기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막대한 재산, 귀족의 특권, 보장된 출세의 길....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 모든 특권을 버렸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가 독립 운동을 하는 동안 베네스웰라에서, 콜럼비아에서, 볼리비아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그 대통령 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1819년 베네스웰라 대통령에 추대된 그는 불과 2주일 만에 부통령에게 정부를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나 하나 잘 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 아닙니다.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전한 말씀은 한 마디입니다. \"회개하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들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됩니다.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제자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 어느 집이든지 방문하고, 누구든지 만나세요. 부잣집이라고 오래 머물지 말고 가난한 집이라고 쉬 떠나지 말라는 말입니다.

빈부 귀천을 물론하고 누구든지 만나세요. 그리고 회개하라고 용감하게 외치세요. 환영치 않는 사람에게 대접받으려고 억지로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미련 없이 떠나면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정책입니다.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10-11절) 오늘 우리는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용감하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 외에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라



제자의 삶을 위해서 하나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주님 외에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의 여행 용품을 보세요.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8-9절) 지팡이와 신발만 준비하면 끝입니다. 지팡이는 들짐승을 쫓는 도구요, 신발은 발등이 드러난 샌달입니다. 다른 물품은 갖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여행자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양식을 가지고 다닙니다. 여행 용품을 담기 위해서 배낭 같은 \"주머니\"를 찹니다. \"전대의 돈\"이란 부자의 휴대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동으로 만든 값 싼 동전 몇 푼을 넣어 허리에 칭칭 감고 다니는 \"푼돈\" 주머니입니다. 긴 여행을 위해 옷 두 벌 쯤은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여행 용품은 화려한 휴대품이 아닙니다. 통상 여행자들이 지니고 다니는 정도의 필수적인 휴대품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것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거지 꼴로 살라는 말씀인가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도는 \"소유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부자 될까봐\"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자기 꾀를 의지합니다. 부모가 잘 사는 사람은 부모를 의지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의지합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양갑\"이란 말이 종종 나옵니다. \"양갑\"이 뭡니까? 무슨 성냥갑입니까? 털장갑입니까? 알고 보니 대통령 측근에 \"갑\"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두 분이 계시는데, 이 두 분이 요즘 사이가 안 좋답니다. 그래서 신문에서 두 분 이름을 한꺼번에 \"양갑\"으로 부른 겁니다. 양갑이든 장갑이든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큰 문제는 양갑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사람을 의지합니까?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참으로 이상하게도, 무엇이든지 가진 자일수록 신앙에서 멀어집니다. 특정한 사람만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기 가진 것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죄인의 속성입니다.

불신자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 잘 믿어서 복을 받았으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복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 대신 가진 것을 의지합니다. 돈 벌면 돈 의지하고, 사업 잘 되면 사업 의지하고, 자식 잘 되면 자식 의지하고, 권력 얻으면 권력 의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재미가 있으시겠습니까? 축복을 주시면서도 경고를 하시지요.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牛羊이 번성하며 네 銀金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2-14, 17-18)

제자로서의 삶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을 얼마나 의지하는가에 달렸습니다. 12 제자들은 주님을 의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졌습니다. 내가 가난해졌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힘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능력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지속적으로 의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넉넉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 됐다고 돈 의지하지 마세요. 힘 좀 얻었다고 권력 의지하지 마세요.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공적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변화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 들린 환자 한 사람을 놓고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병고치는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내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안될까요? 여러 제자들이 돌아가면서 시도해 보았지만 병자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마17:17) 그들에게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잘나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주님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나 당당한 능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문, 학력, 로마 시민권, 능력, 재능...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진정한 복음의 전파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수 많은 도시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로마의 천부장, 벨릭스, 베스도 총독, 헤롯 아그립바, 추장, 공회, 귀부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믿음 때문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자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의 믿음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돈 의지하고, 권력 의지하고, 유명세 의지하고, 가진 것 의지한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제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지신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제자들의 삶에 대해서 주님이 책임지신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돌보는 자는 남이 돌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일하는 자는 남들이 돌봐 줍니다. 신앙 원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내 삶을 돌아본다면 주님이 돌봐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위해 일한다면 주님이 돌봐 주실 것입니다. 양식 문제든지, 의복 문제든지, 안전 문제든지 주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7,13) 첫째는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이고, 둘째는 병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첫째는 정신병을 고치는 능력이고, 둘째는 육신의 병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제자들은 최고의 정신과 의사요, 외과 의사들입니다. 그들이 만일 현대에 존재했더라면 틀림없이 엄청난 부자들이 됐을 겁니다. 상상해보세요. 암 환자 한 사람 당 일억 원씩 받는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백 명 고치면 백억 원이고, 천 명 고치면 천억 원입니다. 요즘 정신병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울증, 노이로제, 대인공포증, 공황 장애 고쳐주는 데 일인 당 1000 만 원 씩 받는다 해도 얼마나 많은 돈을 벌겠습니까? 돈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맨 손으로 어디를 다닐지라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10:10)

그러므로 여러분, 의식주 때문에 일하지 마세요. 주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는 한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보장받을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입니다. 무리는 축복은 원했지만 변화는 거부했습니다. 제자는 다릅니다. 기꺼이 주님을 따라 자신의 삶을 바꿉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을 모으실 뿐만 아니라, 도로 세상으로 내 보내셨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세상 제도를 바꾸기 전에 마음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오직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어떤 특별한 조건도 의지하면 안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할 때 지속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건강도 책임지십니다. 의식주 문제도 책임지십니다. 가정도, 자녀도 다 책임지십니다.

제자로서 세상을 바꾸는 비전을 가지세요. 지속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세요. 그래서 세상 속에서 필경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