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제자의 길 /막8:27-38

제자의 길
막8:27-38





다빈치가 43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3년간의 노력 끝에 초본을 완성하였습니다. 초본을 완성한 후 그림이 어떤지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그림이 어떤가?\" 친구가 그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보더니 \"참 좋은 그림이다고 하면서 특히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린 잔을 가리키며 이 잔이 너무 인상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일 수가 있느냐\"고 감탄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다빈치는 안색이 변하더니 붓 통에서 붓을 꺼내더니 그 잔을 싹 지워버렸습니다. 놀란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다빈치가 대답하기를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다른 것이 더 드러나서는 안되네. 이 그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하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합니다. 오랫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도 있고 이제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각각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있습니까? 여러분 삶 가운데 예수가 가장 잘 드러납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어떤 요소들이 예수님보다 더 들어납니까?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 예수가 생명이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가 여7러분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얼마동안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2년 넘게 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두 번째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는 두 가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

첫째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는 질문은 보통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의 질문이었습니다. 보편적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세 가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라 합니다. 엘리야라 합니다. 선지자라 합니다였습니다.

먼저는 예수를 세례요한으로 불렀습니다. 세례요한은 당시 놀라운 설교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 설교를 들으려고 광야로 몰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황금의 입을 가진 세례요한! 놀라운 말씀의 증거자 세례요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놀라우신 말씀들을 듣고,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다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재판쯤 되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세례요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스승, 위대한 정신가 이런 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아니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능력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보면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하늘이 열려 비를 주기도 하고 불을 내리시도 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능력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맛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한번 말씀하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한번 탓취하니까 벙어리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는가 보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초능력자라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특별한 기를 받아서 특별한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외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뉴 에이지 운동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선지자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앞선 두 가지 견해보다 훨씬 더 정답에 가까운 견해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그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언하고,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예언들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잘못된 사회를 꾸짖으며 사람들이 바른 길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선지자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지자로서만 계시기를 원치않으셨습니다. 선지자 이상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질문을 합시는 것입니다. 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고 하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위대한 스승, 위대한 능력자, 위대한 선지자라고 부른다고 하자. 그런데 너희들은, 교회 안에 있는 너희들은, 예수를 믿겠다고 따라온 너희들은 정말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느냐?

여기서 강조된 말은 \"너희는\" 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는 것입니다. \"이제 2년이 지났다. 2년 동안 너희들은 나와 피부를 맞대고, 삶을 맞대고 살았다. 지난 2년 동안 나와 그렇게 살았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벙어리를 말하게 할 때, 풍랑을 잔잔케 할 때 그 자리에 너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본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지나간 여러 세월 교회당 안에서 찬송을 부르며, 말씀을 들으며, 교회 봉사를 해 오며 예수님께 익숙했던 여러분은,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 합니까?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 질문에 수제자인 베드로가 다가와서 아주 쉽게 단순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정답이었습니다. 그 대답이 29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볼까요?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이시니이다.\" 이것이 정답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다 같이 해보십시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가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만큼 주님을 높이는 찬양이 없습니다. 이보다 더 멋진 표현, 더한 찬미는 없습니다. 잘 모십시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예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베드로만 유독 주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를 축복하시고 그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메시아\"란 의미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선지자가 그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왕들도 그 직무를 행할 때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간 사람들입니다. 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속죄의 제물을 준비하여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려,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화목케 함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바로 그 제사장이십니다. 당신이 바로 우리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므로 우리를 죄 가운데 구해줄 구주이십니다. 당신이 바로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분, 바로 구주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시키는 제사장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란 말에는 또 다른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 일 뿐만 아니라 나를 다스리고 나를 통치하고 내 운명을 주장하시고 내 삶을 날마다 인도하시는 왕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을 통치하고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나를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나의 왕이시다. 나를 섭리하시고 나를 보호하시는 왕이시다. 그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왕이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고백을 베드로가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이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이 나의 구원자이시오 나의 인도자이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원자시기고 인도자이심을 믿습니까?

이 고백이 있자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31절입니다. 다같이 읽어봅시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서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받아들이고 난 후 이때 비로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그 위대한 생애의 목적, 기독교의 엄청난 크라이막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 그리고 삼일만에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합니까? 그 분은 제사장이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되 특별한 제사장이셨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나가셨는데 다른 짐승을 잡아 가지고 나가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직접 제물로 드려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시고 거룩한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 분은 한 민족의 제사장이 아니라 인류의 제사장이 되시기 위하여 그 분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그 분은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왕으로서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기 위해서 살아나야 할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고 거기서 끝난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지 못한다면 현재 예수를 믿는 우리의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 믿음에 의미가 있고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내 기도를 들으세요.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내 인생을 주관하셔요.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를 다스리셔요.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하세요.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를 인도하세요.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나의 왕이 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십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듣자마자 예수님은 지금까지 감추어 두었던 기독교의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그는 구주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그는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주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고백을 들으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즉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처럼 되시기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요?

1. 자기를 부인하여야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은 자기 부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자들은 신앙의 서론에도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모든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맺어왔던 것과 단절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것들, 더러운 것들, 정욕적인 것들, 세속적인 것들을 단절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경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합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의 옷을 입고, 내가 죽어야 하나님이 살아나고, 내 꿈이 좌절되어야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입니다. 우리 속에는 선한 모습이라고는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습니까? 육의 몸이 죽지 않고 옛 사람이 죽지 않고 어떻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육신이 죽어야합니다. 옛 정욕이 죽어야 합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욕심, 탐욕, 교만 이런 것들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아픔을 달게 지는 것입니다. 이 아픔은 결코 내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죄, 악함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번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오늘 나의 현실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오해를 받고, 손해를 보고,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의 고난과 고통을 대신 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진노의 심판을 대신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흘리는 것입니다.

가정에 고통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그 가정에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대신 다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그 가정 속에서 10년, 20년,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가슴속에 품고 몰래 기도하며 그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직장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그 직장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새롭게 되기를 구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나라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아픔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 나라의 아픔이 바로 내 아픔인 것을 깨달으며 내 나라의 아픔을 안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잘못된 것을 탓하고 욕하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은 내 가슴에 안고 그들을 용서하며, 그들에게 위로를 주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더 사랑하는 모습,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3.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였던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라고 아무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예수님에 손에 붙잡힘을 받았을 때, 갈릴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갔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름도 없이 갈대아 더운 사막 지방에서 살다가 죽어야 할 사람이 모든 인류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신학교에 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시켜 나가야 할 제사장 같은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이 나라 이 사회 속에 왕 같이 일할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자녀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드려야합니다. 안됩니다. 이 아이는 공부를 해야합니다. 우리 아들은 돈을 벌어야합니다. 이렇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거룩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 세상의 다스림을 위하여 우리의 자녀들을 부르실 때, 저는 오늘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젊은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럴 때 순종하십시오. 여러분들을 말씀으로 부르시기도 할 것입니다. 좀더 말씀에 따라 살아가라. 그러면 말씀 따라 살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기도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중보기도해 보아라. 그러면 이웃을 위해서 부담감이 사라질 때까지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전도자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1000명의 전도를 위하여 전도인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역자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10/2000사역의 일군으로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헌신하라 하실 때 헌신하십시오. 세상의 왕으로 여러분들을 부르실 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터어키에서 지진이 일어나 수만명의 사상자가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수년전에 구 소련에 속해있던 아르매니아에 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무려 5만5천명이 죽었습니다. 굉장한 참사였습니다. 그때 9층 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천근과 콘크리트 속에서 한 어머니와 딸이 철근과 콘크리트의 삼각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수산나라고 하는 이 어머니는 네 살먹은 딸 가인안이라는 딸과 함께 그 틈새 속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갑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네 살 먹은 딸 가이안은 그 큼새속에서 엄마의 곁에 누워있으면서 한가지 음성만 토해냅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엄마, 목말라! 엄마 목말라! 그러나 가가스로 몸을 눕힌체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에게는 딸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 엄마의 머리속에 테레비에서 보았던 어떤 광경이 생각이 났습니다. 조난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없었을 대 피를 나누어 마셨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캄캄한 어두움에서 엄마는 손을 더듬었습니다. 더듬다가 갑가기 깨어진 유리 조각하나가 잡혔습니다. 지체없이 엄마는 그 유리 조각을 주어서 엄마의 팔둑을 그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아 이 딸을 옆으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팔에 흐르는 그 피를 자기 사랑하는 딸 가이안에게 먹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 목말라요 이 목소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엄마는 유리조각을 들어서 자기의 팔을 더 깊이 깊이 그어대며 딸에게 엄마의 피를 먹였습니다. 이러다가 두 주일이 지났습니다. 이들을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이 딸 가인안은 엄마의 보살핌 그리고 엄마의 피흘림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이 딸이 자라서 성년이 되었을 때 엄마의 이 희생적 보살핌과 피흘림을 기억하면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이안 딸에 있어서 엄마의 피는 유일한 희망, 유일한 대답이었습니다. 2000년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시는 살길이 없고 다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는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심, 그리고 다시 사심 그것이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모든 인생, 세상 역사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 구주께서, 그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따르라. 나를 따라서 살라. 옛것을 버리고 날마다 새 사람이 되어라.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세상을 구원하고, 주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이루라\" 이 역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