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제자를 택하신 예수님 막3:7-19
오래 전에 영국에 괴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희귀하고 비싼 바이올린을 많이 모으고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느날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 주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다.\\\" 많은 사람들 모였고 그것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하고 환호성을 올리는데 이 바이올린이스트가 갑자기 그 바이올린을 던지고 발로 밟고 부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자 그 사람이 또 다른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와서 연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자 사회자가 멘트하기를 \\\"지금 이 분이 연주한 바이올린은 최 고가품이 아니라 20파운드 짜리 싸구려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이제 지금 가장 본격적인 고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훌륭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습니다. 열광적인 박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20파운드짜리 바이올린 연주나 고가품의 바이올린 연주가 별로 차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기행을 통해서 우리는 한가지의 멧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악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위대한 결과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제자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전략을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열두 제자를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어볼까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어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를 삼는 사역은 예수님께서는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축복을 주신 일이었습니다. 삼년 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람을 택하여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드시고, 그들과 함께 주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고생하셨고 그들과 함께 전도하셨습니다. 이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기 생애 전체를 다 쏟아 불어넣으시고, 그의 인격, 그의 능력, 거의 가르침, 그리고 그의 삶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제자란 세움을 받은 자들, 즉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란 우리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요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서기관이 \\\"주여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나는 당신을 따르겠나이다\\\"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을 거절하셨습니다. 거절이 있어야 선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나 제자로 받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직분을 다 내려놓고 \\\"나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나?\\\"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요 뜻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라는 형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부름심 때문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에게는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부탁입니까? 체면 때문에 하려는 것입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까? 이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름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름과 선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댓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체면 때문에 봉사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면 이해를 시켜 가며 일합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면 화를 견디어 가면서 일합니다. 못하게 하여도 계속 일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1.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와 함께 있으시기 원함이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와 같은 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같이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같이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기대를 전달하시고 주님의 삶을 보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를 주님처럼 살아가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삶을 볼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을 따라갈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훈련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을 가지고 훈련을 시키나요? 두 가지를 가지고 훈련시키십니다. 바로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입니다.
내가 성경말씀을 펼칠 때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 하면서 말씀에 대한 애정이 없다. 성경공부에 관심이 없다하면 이것은 병든자입니다. 교회에 드나들면서 무릎꿇고 싶은 심정이 없다.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없다 이것 역시 병든자입니다. 우리의 말씀 훈련 기도 훈련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일체의 모습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는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말씀은 보는데 기도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도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성경공부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례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한다고 하면 자기의 남의 말도 들어야 하지만 자기의 마음도 오픈 하여서 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의 말을 듣는데 자기의 마음은 열어 놓지 않습니다. 답답하지요. 이런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습니다. 주님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만 나의 말도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있는 기도, 그것은 잘못하면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느냐 말씀을 읽어가면서 기도해야 그 기도가 좋은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다 좋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는 말했습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거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한다.\\\" 왜 우리의 기도 내용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만을위해서 드리는 기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정욕적인 기도 이런 기도는 응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앵무새를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왜 길렀느냐 자기 교회 목사님이 앵무새를 기르니까 나도 앵무새를 기를까해서 기르겠다고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가 꼭 한마디만 할 줄 아는데 그 말이 주인을 얼마나 당황하게 만드는 줄 모릅니다. 꼭 한 마디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키스해 주세요\\\" 시도 때도 없이 키스해 주세요 하니까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얼마나 미안합니까? 잘못하면 오해를 받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앵무새는 경건한 말을 한다는데 제 앵무새를 보낼 테니까 트레이닝을 좀 시켜주세요. 훈련을 좀 시켜주세요\\\" 목사님이 거 문제 없다고 보내라고 그래서 목사님 댁에 이 앵무새를 보냅니다. 목사님 앵무새가 주인이니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사실 목사님댁 앵무새도 꼭 한마디만 하는데 그게 무어냐면 \\\"다같이 기도합시다.\\\" 목사님 앵무새가 주인이니까 먼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그러니 새로 들어온 앵무새가 한 마디 말을 하드래요. \\\"키스해주세요.\\\" 그랬던 목사님 앵무새가 전에 없던 말을 한마디 하더래요. \\\"주님 드디어 내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밤낮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기도하느냐 성경을 보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느냐를 알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균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친해 질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주님의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성경을 펴십시오.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 생활의 연륜이 흘러가는데 아직도 성경을 몰라요. 아직도 성경을 닫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덮어놓고 믿자. 정말 덮어놓고 믿어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주님의 제자가 된다.
2. 주님이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4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친교와 훈련을 넘어서서 그 다음에 행할 모습은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여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내가 좋은 위치, 좋은 자리에서 행복하게 안일하게 살고 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가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는 곳이 동시에 흩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 의하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마가복음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누가복음 20:48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요한복음의 결론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 들어가자 마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제자와 교회의 최대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통하여 변화를 시킵니까? 전도만이 인간을 바꿀수 있습니다.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전도만이 세상을 바꾸고 온 역사를 바꿀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살려야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살릴 수 있습니까? 전도만이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대의 비극이 무엇일까요? 그 교회 안에 전도하는 교인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최대의 비극입니다. 전도하기를 원 하는데 도무지 전도할 줄을 모릅니다. 이것은 이런 이런 이야기입니다. 한 군인이 총쏠 줄 모릅니다. 군인들이 싸울 줄 모릅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전쟁할 줄 모른다. 총을 쏠 줄 모른다. 전도할 줄 모른다 이것은 큰 비극입니다.
전도란 간단한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하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그가 예수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전도자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3. 능력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제자의 요건은 지식이나 재력,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특별히 귀신을 제압하는 영적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제자로 부르셨다면 우리에게 반드시 이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안 받은 것 같이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탄을 물리칠 능력이 있습니다. 보혈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귀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 능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속에 있는 귀신부터 쫓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보혈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이 특권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데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귀신을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저들은 피해나갈 것입니다.
귀신을 좇고 제압하는 능력이 생기면 다음에 하나님은 더 놀라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것을 병 고치는 능력입니다.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육신의 병만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것도 치유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남을 믿습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에게 전도와 사명을 주셨다면 그들에게 귀신들을 제압하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제압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심방 가서 기도해주십시오. 치유하는 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 영혼이 치유 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육신의 치료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소유한 초자연적인 영적인 권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의 권위나 세상의 권위나 재력의 권위나 사회적인 권위를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명을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별로 없습니다. 학력도 높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덕적인 종교적인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어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인지 몰라도 그들은 아주 사나왔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교만했습니다.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한번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제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 이런 자들이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능력도 헌신도 부족했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던 베드로, 말고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 그러나 예수의 죽음 앞에서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예수님께 훈련을 받고 보냄을 받고 능력을 받으니까 점점 변화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능력을 행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마다 회심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를 하니 삼천명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은 줄 아십니까?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를 피해 나가려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똑바로 못박혀 돌아가셨으니 자기는 거꾸로 죽어야 한다고 거꾸로 십자가 형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하셨습니다. 요한게시록을 쓴 요한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아서 밧모 섬으로 귀양을 갑니다. 거기서 계시록을 씁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의 마드라에서 X형 십자가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합니다. 바돌로매는 알메니아에서 피부가 벗겨져 참수를 당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다대오는 메소포다미아에서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돌과 몽둥이로 맞았으나 다시 살아 톱으로 잘려 순교하였습니다. 시몬은 페르시아만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단지 가롯 유다만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하였습니다.
이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이처럼 영웅적으로 죽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찮은 인물들이 예수님의 손에 잡히니 이처럼 순교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부여 받으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순교자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에 붙들리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영웅적인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가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는 영웅적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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