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막3:13-19

예수님의 제자들
막3:13-19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갓 태어난 인간은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미숙하기 때문에 누군가 돌보아 주어야 하고 가르쳐 주어야만 건강을 유지하고 지혜롭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먹여주고 입혀주는 부모의 도움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깨달아 지혜롭게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빈손과 아무것도 걸치지 아니한 빈 몸으로, 젖을 빨고 배설하고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지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스승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크게 달라지게 되기 때문에 좋은 부모만이 아니라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복중에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육체의 건강을 보살펴주는 부모님이 계신 가정만이 아니라 지혜를 깨우쳐주는 선생님이 계신 학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1/4 일을 가정과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 것도 이 떄문입니다.

1. 제자를 택하심

예수님은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의 짤막한 생애를 사시면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며 십자가를 지신 공적 사역의 기간은 삼 년에 불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간 동안 대 도시에서 대형 교회를 담임하신 적이 없으시며, 멋진 예배당을 건축하거나 서재에 깊이 몸을 묻고 수 십 권의 신학 서적은커녕 단 한 장의 친필 서신조차 남겨 놓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그 이름이 뛰어난 분이 되셨으며, 그 분의 가르침은 진리 중에 진리가 되었으며 그 분의 죽으심은 헛되지 아니하여 만인을 구원하고 살리게 되었으며, 생전에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으나 이제 그리스도는 만인의 구세주가 되셨으며, 세계 만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가 세워져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지고 있습니다.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행하심은 마치 녹음을 하고 비디오로 촬영을 한 것처럼 성경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만인들이 읽고 감탄하고 깨닫고 믿는 진리 중에 진리가 되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졌으니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실 수 있었을까요? 생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사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생전에 그처럼 무명하셨던 분을 사후에 누가 그렇게 높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의 명성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더욱 바빠지셨으며 할 일이 많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시기하는 바리새인들과 적대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키면서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의 제한된 사역의 기간은 점차 시효가 다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막 3: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막 3: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눅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눅 6: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2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누군가 예수님을 도와 그 일들을 해야 할 제자들이 필요하였으며,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라도 누군가 예수님처럼 그 일들을 해야 할 제자들이 필요하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마을 곳곳에 회당이라는 종교 교육기관이 있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무엇보다 후세 교육에 역점을 두면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의해 세상이 더 좋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더욱 악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먼저 하신 일은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일이었습니다.

(눅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 열두 제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막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막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막 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막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2. 제자들의 자격

예수께서 주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열두 명만 사도로 선택함을 받은 것일까요? 그들에게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의 자유로우신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도 같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었으며 또 자기들의 기교나 재주로 이 종교를 전파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고 상당한 지위나 신분에 위치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타인에게 강제적으로 이 종교를 강요할만한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제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꾸밀줄도 몰랐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몰랐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임기응변할 줄도 모르는 아주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선택하여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위선자, 임기웅변을 잘하는 자, 거짓말을 잘하는 자, 소위 세상에서 지혜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솔직하게 신앙을 고백할 줄 아는 진실 된 사람, 잔꾀를 부릴 줄 모르는 사람, 얄팍한 수단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 우직하게 믿고, 십자가 지고 끝까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저 보고들은 대로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정직하고 평범한 상식을 소유한 자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셔서 예수님처럼 가르치는 교사와 전도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는 제자들은 겸손히 주님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모범을 따르려고 하고, 자신이 부족한 만큼 더욱 주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며, 아무리 큰일을 하였을지라도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못하고 겸손히 주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제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명하였던 제자들은 유명하게 되고 무능하였던 제자들은 능력의 사도가될 수 있었습니다.

1) 어부가 변하여 사도가 되는 신분 변화가 일어났으며
2) 주님과 함께 하셨던 성령이 함께하시는 내주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3)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기도의 응답과
4)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는 능력이 동반되어 그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널리 확산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무능력해 보였으나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선택하셔서 온 세상이 깜짝 놀랄만큼 일을 한 훌륭한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미련하고 배운 것이 모자라고 또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것 때문에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3. 제자를 세우신 결과

그들 가운데 4명은 어부였고, 또 한 명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던 세리요, 또 한 사람은 과격한 독립 운동을 벌이던 열심당원이었다. 나머지 6명 제자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 열 두 제자들은 모두 평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설교가도, 성경에 대한 전문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였던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1) 열두 명 가운데 가장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신실한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로 활약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는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나 전설에 의하면 바벨론까지 선교 활동을 하다가 말년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달려 순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2)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당함으로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행 12:2, A.D. 44년).

3)도마는 \\\'디두모\\\'(Didymus, 요 11:16; 21:2)라고 불리우는데 그는 회의론적 신앙인의 대명사로 통할만큼 의심이 많았지만, 그와 더불어 용기있고(요 11:16), 바른 신앙 고백자로도(요 20:28)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와 파르티아에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고(\\\'성 도마 교회\\\'가 인도에 현존)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합니다.

4) 마지막 제자 가룟 유다는 옥에 티처럼 주님을 팔아 먹은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주님에 제자가 된 후에 도 물욕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신뢰를 받아 12제자 중 회계를 맡고 있었으나 지나친 물욕(物慾)으로 인해 정직하지 못하였고(요 12:6; 13:29), 그 결과 그는 스승인 예수를 완악한 대제사장들의 손에 넘겨주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우리 주께서 당신의 제자들로 선택하신 12명의 사람들은 오늘의 교회 역사를 지구상에 놓은 기초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2 사도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위대성이나 탁월한 봉사에 주목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그들을 사용하셔서 교회를 세우고 세계 복음화를 주도해 가시는 예수의 초월적인 권능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인물들 가운데 누구보다 하나님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그렇게 많지 못한 가운데 제일 먼저 바울 사도가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남다른 일을 한 사람의 공통점은 남다른 기술이나 능력이 전에 남다른 인생 철학과 비전이 있기 때문이라면 바울 사도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남다른 바울의 인생 철학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것이 바로 채무자의 심정으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며 많은 일을 하고서도 항상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누가 성공을 했다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좋으신 부모님과 선생님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누가 예수를 잘 믿고 있다면 누군가 그 사람을 위해 전도하고 기도해준 사람이 있었기 떄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빚진 자의 심정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더 좋은 부모가 되고 더 좋은 스승이 더 좋은 사회인이 되고 더 좋은 전도자가 되어 오늘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내일에 하나님과 사람앞에 사랑받는 인물들로 자라게 하는 일에 부모와 교사와 전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오늘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 삼기를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결 론

오늘의 교육을 위기라고 합니다. 교실이 위태롭고 학교가 난장판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한 교육의 위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이 과거보다 훨씬 더 순해지고 선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오히려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 갈수록 인간들은 더욱 사악해지고 있다는 것은 교육이 결코 만능이거나 절대가 되지 못함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교육에 마지막 기회를 거는 것은 현실 사회에서 인간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교육 이상의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과 자기를 가르친 스승과 자기를 낳아 기르신 부모님은 모두 다 존귀한 분이라는 군사부 일체라는 말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 교육 현장에서 그와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신하가 왕을 구데타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하고,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고 고발하는 배은 망덕한 풍조가 한국 교육계에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날 때부터 무신론자이며 내적으로는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때로는 동물보다 더 무자비하고 욕심스러울 때가 많이 있지만, 인간은 성령의 역사와 영원한 진리인 성경 교육을 통해서 죄성이 해결되고 새롭게 재 창조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인간의 죄성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오늘 성경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같은 교육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자의 인격적 주고받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교사의 자질과 인격과 사명감이 중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이가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지식에까지 새롭게 변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되어야 만 합니다. 주님의 좋은 제자가 주님의 좋은 제자를 삼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사도를 세우시고 지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주일학교와 교사들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무려 제자라는 말이 317 번이나 나오고 있는데 주님의 마지막 부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 2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를 위해 먼저 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고 어른이 된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다음 나도 가서 그 사랑, 그 은혜, 그 능력을 가지고 제자를 삼는다면 나의 변화와 더불어 자녀들과 제자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