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과 제자들 막3:7-19
내용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날벌레들의 생태를 주위 깊게 관찰하던 중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날벌레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앞에서 날고 있는 놈만 따라서 빙빙 돈다고 합니다. 빙빙 돌고 있는 바로 밑에 먹을 것을 가져다 놓아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돌기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7일 동안이나 계속 돌던 날벌레들은 결국 굶어서 죽어간다고 합니다. 강헌구씨가 쓴 \\\'아들아 인생을 머뭇거리기엔 너무 짧다\\\'는 글에는 파브르가 관찰한 날벌레 같은 모습으로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전체 인류의 87%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람은 뚜렷한 목표가 있어도 늘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입니다. 그들 앞에서는 어떤 장애물도 방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주 그들의 가야할 목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축복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목표는 다분히 현세적입니다. 오늘 잘 먹고 살면 끝입니다. 내일은 내일 가 보아야 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니 현실의 노예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아닙니다. 돼지는 식사만 주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치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일주만 주면 당장 \\\"왜 이런 것만 주느냐?\\\"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인생의 뭔가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병들고 사탄의 계궤에 눌린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주님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사람도 있지만, 또 주님을 배척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시면 주님은 제자들과 바다로 물러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쉬러 가신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 물러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주위에는 목마른 사슴처럼 주님의 시원케 하시는 능력을 믿으려 오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주님이 무슨 일을 하나 또는 주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도 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든지 아니면 기적의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았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여하튼 인생은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실재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천국은 실존입니다. 천국은 영원한 안식을 우리들에게 주시고 평안을 주며 기쁨을 주지만 지옥은 영원한 형벌이 있습니다. 누가, 착하게 살라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옥은 구더기 한 마리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차라리 죽어서 아무 기억도 고통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권사님의 친척이 부탄가스가 터지는 바람에 온몸에 화상을 입어 오랜 동안 병원 생활을 하는데 이 분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정신 이상이 왔다고 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젊은 여자 분이 암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약 6개월 정도를 계속해서 취재한 것을 보았습니다. 계속 인터뷰 형식으로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촬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두려움은 죽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죽음 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지옥의 고통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영원한 천국 백성 된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주님이 말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거지로 산 나사로와 부자로 잘 먹고, 잘 산, 부자가 각각 죽어 한 사람은 천국으로 한 사람은 지옥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부자입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물 한 방울만 손에 찍어 자기의 입에 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실재로 나사로와 부자가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사실을 통해서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 존재한 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존재들입니다. 마땅히 지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와야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합니다. 생명 없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귀신들의 고백입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들의 어두운 눈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들의 미련한 생각들이 주님을 채찍에 때렸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은 메시아인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면 이 세상은 평화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전쟁이 그치고 핍박과 착취가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병이 정복을 당하고 귀신들이 쫓겨가는 세상이 온다고 믿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사탄은 영물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서 성경적인 지식을 안다고 해도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믿음은 자신의 전인격을 전폭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창세기에서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의 아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아들이 과연 약속과 같이 오셨고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에게 몰려나온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인생이 뭔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무\\\'다 또는\\\' 공\\\'이라고 말했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 가장 심오한 사상을 글로 써놓은 것이 \\\"반야심경\\\'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록한 글인데 260글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무라는 말은 21자 공이라는 말은 7자나 됩니다. 이 말을 무엇을 말합니다. 실재는 없다, 다 무다, 다 \\\'공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침은 공이나 무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님께 나오면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만납니다. 온 세상은 주님에게 나와야 합니다.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주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초청을 무시합니다.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관찰 기록장 숙제를 내줬습니다. 그 중에 자장 엽기적인 내용입니다. 산에 가서 메뚜기를 잡구 \\\"뛰어! 뛰어!\\\"하니 잘 뛰었다. 이번엔 다리 하나를 떼고 \\\"메뚜기야, 뛰어! 뛰어!\\\"라고 말하니 메뚜기는 뛰지 않았다. 메뚜기는 다리 하나를 떼면 귀가 먹는 다는 사실을 알았다. 싸인 체계가 맞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싸인 체계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싸인 체계는 예수님입니다. 또 세상과 예수님과의 사인 체계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이 땅위에 소망을 주시기 위해 또 교회를 세워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12제자를 택하셨습니다. 13절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순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아닙니다. 오늘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제자들은 주님의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어떤 성도가 이쁜 성도인가요? 적어도 목사가 보기에는 조금은 엉터리 같은 것인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목사의 말이라는 것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늘 순종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12제자들은 구약의 12지파를 생각나게 합니다. 구약의 12 지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완전성을 나타냅니다. 12제자를 통해서 이제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 땅위에 펼쳐나가신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의 역사가 없습니다.
가톨릭의 학자 칼 라너라는 사람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해서 무리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가야 하고 순종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운 목적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먼저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이 본문은 마침 예수님이 부족해서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여기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때로는 포도나무와 가지로 또 목자와 양이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주님의 생명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의 삶과 사역을 나누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후회가 없습니다. 주님의 품은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품으실 만큼 크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밤새도록 기도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를 간과하신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또한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신 것같이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또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뭔가 부족해서 무엇을 채우기 위해서 부르신 것 아닙니다. 나를 부르심은 그분의 풍요함을 나에게 주시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 부르심은 전도하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가장 마음두지 않습니다. 기도는 한 시간도 할 수 있는데 전도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총회적으로 장로는 10명 이상 전도를 해야 자격을 부여합니다. 또 안수집사와 권사는 5명입니다. 원래 장로는 30명 세례 교인이 되면 피택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전도해서 30명을 세례 받게 하고 장로 될 자격이 있다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별로 마음두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입니다.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영화를 우리가 한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입니다. 베드로와 몇몇의 사람들이 불이 타는 로마를 두고 도망 나옵니다. 그때 로마를 향해서 걸어가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묻는 말이 퀴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질문입니다. 내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들어간다는 말씀을 들고 베드로가 주님을 대신해서 로마로 들어가서 순교하는 내용입니다.
전도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욥션의 문제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또 전도는 내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다. 칼빈은 하니님의 나라를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먼저는 주님의 진리가 명확해지는 것을 말했고 또 하나님이 교회가 확장되는 것 또 하나는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교회의 성장은 멈추고 맙니다.
2002년 1월 20일은 우리 교회 창립 5주년입니다. 이날에 우리가 교회 입당예배를 드릴 예정입니다. 이날은 모든 성도님들이 한 사람씩 손을 잡고 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합니다. 이날은 우리들의 기도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날로 삼아야겠습니다. 모두 힘을 내십시오. 우리를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바울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살았던 이유가 바로 선교, 전도입니다.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고 또 우리를 억 만죄 가운데서 부르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귀신은 절대로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귀신은 인격을 파괴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무너트립니다. 평화를 깨트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마귀는 깨고 말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전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의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도 주시고 또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심과 같이 주님이 온전히 우리를 주장하시는 모습입니다.
정치판이 갈수록 난장판이 됩니다. 가만 보니까 요사이 여야 할 것 없이 말을 함부로 합니다. 정치인들이 지역 감정을 없애자고 말하면서 선거가 다가오니까 말을 함부로 해서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유일한 방법은 전도를 통해서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면 세상을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은 좋아하시지만 사탄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꾸 방해를 합니다.
귀찮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겠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서 제일 비극은 전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새 생명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이 땅의 우리들의 삶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제자들입니다. 오늘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제자들의 명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눈에 뛰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란 반석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보아서 반석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이 지으신 이름 속에는 그 사람을 향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뢰는 긍정적으로는 하늘이 보낸 강력한 메신저라는 뜻이 있고 부정적으로는 사물을 파괴하는 벼락의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이들의 성격이 벼락과 같다고 했습니다. 순순한 한국 말로는 \\\"자랄 같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눅가복음 9장에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시려 할 때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주님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벼락으로 쳐버립시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들리자 그들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았고 하늘의 강력한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분들입니다. 또 우리들의 눈에 띄는 사람은 가룟 유다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시험에 넘어진 사람입니다. 매우 똑똑하고 비판적이며 계산에 밝은 사람입니다.
12제자들의 부름은 우리들에게도 희망을 줍니다. 우리도 약점 많고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사용된다면 놀라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의 턱뼈는 불레셋을 3000명이나 죽이는데 쓰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애가 주님의 손에 붙들림 당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재능, 재물, 인격, 지식, 경험, 지혜, 성실, 인내가 주님의 손에 잡혀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사로잡힌 허물 투성이를 변화시켜서 세상을 구원하는 놀라운 주님을 찬양합시다. 또한 나를 붙잡으셔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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