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속에서 나자신을건져낼것인가 [릭월렌목사]

전문가 상담 작성자 릭 워렌 작성일 2005.04.29 주제 인생/기타 제목 나는 어떻게 이 혼란 속에서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가? 삼손은 20년 동안 이스라엘 사사로 통치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안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 자신이 늘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용모가 뛰어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서 역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허송세월하며 온갖 문제들을 자신이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삼손의 삶은 우리 자신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세 가지 일반적인 방법들을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여전히 오늘날 사람들을 망치고 있는 인간의 본성으로 우주적이며, 우리는 같은 올무에 빠지는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삼손은 그의 삶이 온통 엉망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세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가지 함정을 분별한다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미래의 문제들을 피해나갈 수 있습니다. 삼손의 생애에 대한 전체 이야기는 사사기 13장에서 16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그의 삶에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원리들 즉, 왜 삼손이 문제 속에 빠졌으며,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문제에서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 먼저, 우리가 우리의 잘못에서 배우기를 거절한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의 삶에 두 가지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관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체 속에서 이 두 가지 약점이 그에게 화를 불러오게 되었고, 이것이 후에는 그를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의 첫 번째 약점은 좋지 못한 기질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화를 내었고, 자주 분노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의 우선적인 동기는 원수 갚는 복수심이었습니다. 삼손이 옷을 취하기 위해 30명을 죽인 것은 그가 심히 노하였기 때문입니다.(삿 14:12-19). 그는 또한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밭에 불을 질렀습니다.(15:3-5). 삼손은 그가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7절)고 말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그들이 내게 행한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천 명의 남자를 죽인 것입니다. 삼손의 전생애는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것으로 보였고, 그는 이 분노의 문제를 한 번도 절제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의 잘못에서 배우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분노하고 분노한 것입니다. 삼손의 다른 한 가지 약점은 무절제한 육신의 정욕이었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강하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서 한 번도 절제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그를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실, 삼손의 삶에는 실패의 감상적인 순환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코 배우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놀이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어느정도 불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면서 불에 데지 않을까? 내가 어느 정도 벼랑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면서, 떨어지지 않을까?” 삼손은 하나님의 원리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였고, 특히 육신의 정욕의 부분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삼손은 들릴라와 이와 같은 놀이를 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의 힘의 근원을 계속해서 물었고 삼손에게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그는 진리에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드릴라를 가지고 놀면서 시험에 걸려 든 것입니다. 곧 그는 결국 불에 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같은 일을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한 번만이다. 어떠하던 한 번에 상처받을 것이 무엇이냐? 이번만 한 번 염려한 것이다. 이번 한 번만 침체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 한 번만 이렇게 또는 저렇게 노력해 보자.” 우리 누구도 실패를 계획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자연스럽게 점차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실패는 단계적으로 오는 과정이며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체의 삶은 하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수에서 배우기를 거절하는 어느 정도의 시간에 문제가 커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러나 이것은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나는 계속 반복해서 실패만 거듭하였습니다. 나의 삶에는 실패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인 것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나는 너에게 실패의 순환을 깨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삼손이 마지막에는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실패의 순환을 깨시고 그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를 선택하는 것 우리가 삼손에서 배우는 두 번째 원리는 우리가 좋지 못한 친구를 선택하면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일 당신이 독수리와 같이 날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터키와 같이 뛸 수 없습니다.”라고 지혜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결국 당신과 같이 가장 많이 보낸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지혜롭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삼손은 나쁜 친구관계 때문에 패배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역을 위해 선택함을 받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친구관계를 가졌습니다. 삼손은 그의 출생부터가 기적이었습니다. 그가 잉태되기 전에는 그의 어머니는 임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머니에게 이스라엘을 불레셋에서 구원할 특별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시작부터 특별하였지만, 그이 친구들은 그를 곁길로 빠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잘못된 친구를 선택할 때 우리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전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100% 헌시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당신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그들이 당신을 넘어지게 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세워줍니까?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합니까? 잠언서에는 이러한 부정적인 친구들과 관계에 대해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마음가짐과 잘못된 가치관을 계속적으로 보이게 되면 이것은 결국 우리의 삶에 손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을 세우는 것보다는 끌어내리는 것이 언제나 쉽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친구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에게 최선을 가져올 수 있는 친구는 당신을 높이 세워주고, 당신에게 용기를 주고,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삼손의 생애에서 우리가 또 보는 다른 원리가 있는데, 이것은 모든 원리 중에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원리를 그이 전 생애를 통하여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의 영적인 삶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한번도 신중한 관계를 가진 적이 없고, 이러한 사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언제나 그의 일만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기주의자의 삶을 살았고,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이 그의 행동을 명령하도록 하였습니다. 삼손은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만일 그것이 기분에 좋으면, 그 좋은 대로하라.’ 삼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을 휘한 하나님의 계획도 위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지구상에 우연히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삼손의 삶은 전혀 무절제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쓸모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삼손의 생애에서 보는 다른 한 가지는 그는 어떤 것을 위해서도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회장을 무너뜨리는 그 마지막 행동 이외에는 기도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감흥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그는 성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의 방향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리 앞에 가서 그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였습니다. 우리도 미리 뛰어 들어서 우리의 두 발이 곤란과 혼란 속에 빠지기 전에 멈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한다면 우리는 많은 고통과 불행에서 자신들을 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가 오직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을 당신은 참회 기독교라고 부릅니다. “주님, 당신을 위해 평생 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편리대로 부를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어렵고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들은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향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잘되어 나갈 때에는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삼손은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위한 삶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리고 두 눈이 뽑혔습니다. 그는 동물이나 하는 맷돌을 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유의하여 보십시오,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하였습니다(16:28).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에 삼손이 출생초기부터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고 하면 삼손은 어떠한 역사를 이루었을까? 왜 그는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까? 삼손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하고 엄청난 그의 가능성 있는 삶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자유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는 정복했어야 할 민족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삼손은 참으로 그가 심은 대로거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