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막3:3-19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
막3:3-19





어떤 사업가가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죠..?\"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그럼..나에게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또 묻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죠?\" 예수님이 또 遊鄂絿苛求? \"그래 나에게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예수님께 재차 확인합니다. 예수님 분명하죠? 분명히 그렇죠....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의심하지 말아..그렇구 말구...\" 그랬더니 그 사업가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그럼 저 100억만 주세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그래 1초만 기다려.....!!\" 아직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 사역 외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것을 위해 열두 명의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열두 명 이었을까요? 열 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표 수의 개념을 갖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파들로 나누셨을 때 몇 지파를 세우셨습니까? 열두 지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12지파 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사람들을 세우시는데 몇 명을 세우시죠? 12명입니다. 이것은 이제 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혈통과 인종과 국적과 학식을 초월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교회의 초석을 세우실 것이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서 주님이 완성된 천국,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비전을 보여주셨을 때 그 영광스러운 천국의 12개의 문 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고 12개의 성곽 기초석에는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주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12명의 제자는 바로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로 세우실 때 그들을 통해 주님이 기대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그 주님의 기대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천년 전에 제자들을 부르셨던 주님이 지금도 여전히 그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고 있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불러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과의 교제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전도입니다. 영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가장 먼저 그들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해 신적인 영광을 경험한 제자들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 변화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복음에 헌신하는 그런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3절에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고 할 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을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 그 첫 번째가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자기와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과 교제하며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무슨 일꾼이나 종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인격적 교제의 대상. 사귐의 대상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감동되지 않으세요? 나 같은 사람. 내가 생각해도 더럽고 추한 사람, 이 허물 많은 사람. 이 약점 많은 사람. 그런데 그처럼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존귀하신 주님이 나와 더불어 함께 있고 싶어하신다. 나와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세요? 그분은 인생이 아니십니다. 무엇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무엇이 없으면 부족함을 느끼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그 신성의 충만함이 무엇으로도 손상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나같이 연약하고 무능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우리가 없으면, 우리와 교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늘 제가 말씀을 준비하며 받은 그 감격과 감동을 여러분에게 다 전달 못하는 이 안타까움을 아셨으면 합니다. 말에 어눌한 저의 말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이 감격적인 말을 도저히 다 표현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게 되면, 그 영광스러운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과 함께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비로소 나를 부르시고 나를 세우시고 나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깨달아 알게됩니다. 나를 불러 주님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 안에 그분의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분의 비전이 맺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꾸는 꿈을 나도 꾸게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놀라운 권세도 은혜로 받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주님은 부르신 열두 제자들을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까지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분과 함께 하며 신적인 교제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축복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면서 그분과의 그 풍성하고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편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 주께서 성령으로 기록하게 하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펼치고 묵상하면서 우리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나아가며 주님이 허락하신 그 놀랍고도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느끼며 말씀 속에 계시된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놀라운 신적교제를 갖게 되면 내 삶을 향한 그분의 기대를 알고 그 기대에 내가 믿음으로 헌신하면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환경을 뛰어 넘은 강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때는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부르신 것입니다.

고후4:7-9절과 6:9-10절을 보십시오. 특별히 고후6:10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 말은 \"슬픔으로 짓눌려 있으나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강한 이미지의 제자상입니까? 환경을 뛰어넘은 강한 존재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좌절스러운 환경을 경험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실패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낙심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도 슬픈 일이 있을 수 있고 예수 믿는데도 근심거리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 아직도 예수 믿으면 무조건 하는 일이 잘되고 고통이 없고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는 분이 있다면 빨리 그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누가 사업에 실패했다....누구자식이 대학에 떨어졌다..그러면 그 집사님 요즘 기도 안 하더니........이런 말과 생각들을 이제는 고쳐야 합니다.
슬픔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예수를 잘 믿어도 올 수 있습니다. 근심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예수를 믿어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근심이 우리를 사방으로 우겨 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은혜와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됩니까? 그 슬픔과 좌절과 낙심으로 짓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슬픔과 낙심과 좌절을 넘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삶을 살면서 나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깨닫게 되면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귀신을 쫒는 권세를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보내어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를 부를 때 사명을 위해 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고후6:10절의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동일한 모습을 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그저 내 한 몸 편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인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 없이 저주 아래 살아가던 우리들이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어 주님의 자녀가 되고 제자가 된 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사명적인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이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자됨의 의미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목적과 기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면서 그 신적인 교제의 영광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내가 지금 위기를 만나고 내가 지금 비록 가난해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내 삶의 존재 이유는 나보다도 더 어렵고 더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도우고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위로하고 축복하고 부요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존재 이유이요 내 속에 주님이 함께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를 믿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이런 주님의 기대 속에서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대대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대로 산다면 이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내가 독차지 않고 타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학생들도 사업자들도 직장인들도 그런 의식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돈벌어서 남주고 은혜받아 남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은혜로 불러주신 그 기대를 알고 이런 의식을 갖고 살면 내 삶의 만족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한 비록 내가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확신하며 삽니다. 행복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많이 가지고 많이 누려야 행복한 삶이라는 사단의 말에 속지 않게 됩니다. 가난해서 나는 불행하다고 남들보다 건강하지 않아서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우리를 세상에 나가 전도하는 사람으로 부르실 때는 바로 이런 기대를 가지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담대하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주의 제자들로 사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12제자들의 명단을 보십시오. 변변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분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와 성령의 능력을 받기만 한다면 우리도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서 영혼을 건지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 영광스러운 교제를 맛보고 그 기쁨과 평안으로 나를 살리신 그 복음의 감격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상처, 그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전해줄 복음을 가지고 찾아가는 손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런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목적으로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영광스러운 교제의 축복을 통해 우리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복된 부르심에 응답할 자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