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특권

제자의 특권/막3:13-19

제자의 특권
막3:13-19





I. 당시 지도자들의 모습과 예수님


예수님 당시에는 벌써 유능한 종교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 나라에나, 교회에나, 가정에나, 어디에나 지도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지도자는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쓸만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장 1절을 보세요. 이것을 보면 당시의 지도자가 어떠했는지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에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니까 회당에 들어가셨어요. 회당에 들어가시니까 거기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편 손이 마른 사람이 예배당에 들어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고 보았을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한편 손 마른 사람을 보실 때에 이 사람의 어머니와 같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이, \'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어둡고 답답하고 캄캄할까?\' 하셨어요. 여러분도 병신되어 보셨어요? 병신은 그 병신 때문에 말할 수 없고 해방될 수 없는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보셨을 때에 마음이 안타까우셔서 \'저 사람, 육신의 병뿐 아니라 그 영혼까지 병들었는데 저 사람을 자유케 해 주어야지. 저 사람을 복되게 해 주어야지. 저 사람을 해방시켜 주어야지\' 하셨어요. 우리 예수님은 이와 같은 분입니다.


아, 그런데 거기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있었어요. 이들은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자칭하는 사람들, 종교 지도자들이었는데, 이 손 마른 사람의 마음 상태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이 예수님만 주목하여 봅니다. 왜? 자기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인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이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또 고치시는지 엿보려고. 왜? 2절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면 사람들이(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귀한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이 불쌍한 사람은 도우려 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치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고치면 안식일을 범했으니 예수님을 없이 하여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나오시오.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이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잠잠하니 예수님의 마음이 대단히 슬프셨어요. 그들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시고 한편으로는 노하셔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는데 바리새인들은 나아가서 헤롯당과 결탁합니다. 헤롯당은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올시다.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 원수적인 존재입니다. 바리새인은 국수주의자 또는 애국주의자들인데, 헤롯당원들은 헤롯왕을 리더로 로마 정부에 아부하면서 백성들을 짓밟고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는 원수지간입니다. 헤롯당원들에게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생각이 없어요. 자기 배만 부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인 침례 요한까지도 죽이는 사람들입니다.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자기들과 원수인 정치적 지도자들과 야합를 합니다. 모략을 합니다. 왜?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무엇을 봅니까? 지도자가 된 것은, 종교적이나 정치적인 지도자가 된 것은 불쌍한 민중들,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돌보고 양들을 인도하라고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인데, 이들은 양들, 한편 손 마른 사람과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권모술수만 행하고 약한 자를 짓밟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지도자, 정치적인 지도자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생명의 존엄성이 없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선악의 분별력이 없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안식일뿐만 아니라 선과 악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고 생명의 존엄성이 없어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만, 권모술수에만 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지도자들, 특히 양심이 되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 또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보시고 심히 근심하시고 노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특성을 지닌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요. 예수님의 제자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영접하고,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하는데 요새 예수님의 제자들,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정치 지도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어요. 지도자가 이 모양이니까 소망이 없는 시대올시다.






II.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는 심히 어두운 이때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지도자들을 근심만 하고 염려만 하시고 비판만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1. 병들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7절부터 12절까지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악한 지도자들을 염려하시고 근심하시고 노하셨을 뿐만 아니라, 비관만 하시고 비평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장에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뭡니까? 귀신은 영물입니다. 귀신은 영인 고로, 귀신은 우리를 속여서 우리를 영적으로 부패시키고,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죄를 짓게 합니다. 영과 육으로 상처입고 헤매는 무리를 보시고 마음으로 아파하실 뿐 아니라, 세상이 어둡다고 절망하시지 아니하시고,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이 저렇다고 그 세력에 눌려서 힘을 못 쓰거나 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또 저희들이 잡아죽이려는 위험이 닥쳐온다고 머뭇거리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든지 한 영혼이든지, 한편 손 마른 한 영혼이든지 예수님의 그 사랑과 명성을 듣고 따라오는 많은 무리든지, 이들을 지겹다거나 귀찮게 군다고 피하지 아니하시고, 한 생명에게도 큰 관심을 두시고 많은 무리도 감당하셨습니다. 도우셨어요. 예수님께서는 당장 이 어두운 가운데에 허둥대는, 영육간에 죄악과 모든 슬픔과 절망 중에 헤매는 이 불쌍한 식구들, 그들의 심령을 고쳐 주시고 사랑으로 그들의 육신을 고쳐 주시고 이들을 섬기셨습니다.




2. 새 소망의 일꾼을 부르심


또 무엇을 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지도자가 없는 어두운 시대니까 새 소망의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혼자 하려고 하시지 아니하시고 새 소망의 동역자들을, 일꾼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일꾼을 부르셨어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영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내 앞에 있는 한 영혼에 관심을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신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전 세계 인류에게 관심을 두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차 형제님이 이북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는데, 우리 교회는 이북 동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까운 이북에 있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또한 전 세계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셨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어요? 3장 13절을 보니까, 산에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과 13절을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내려 오셔서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때가 예수님의 생애에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를 저희들이 알 수 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신 그 결과가 뭔가? 기도의 응답이 뭔가? 제자를 선택하는 일이올시다. 무엇 때문에? 양 무리를 사랑하시니까. \'이 양무리를 내가 혼자서 칠 것이 아니다. 얼마 안 있으면 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는다. 이 일을 세상 끝 날까지 계승시켜야겠다.\' 주님의 일은 내 눈앞에 있는 한 마리의 양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무리, 전 세계의 잃어버린 양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III.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1. 나아온 자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부르셨습니까? 3장 13절을 보니까,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했습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란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간들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할 때에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인간 조건을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똑똑한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가정이 어떤지, 인간 조건을 많이 생각합니다. 인간 조건을 보고서 쓸 만 하다거나 쓸 만 하지 않다거나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고 자기의 원하는 자를 부르셨습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를 부르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을 부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란 내가 키우기를 원하는 자, 내가 키울 수 있는 자란 뜻입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란 내가 키울 수 있는 자.




그럼 예수님께서 내가 키울 수 있다고 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나아온 자들입니다. 용감히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셨을 때에 이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기를 많이 잡으면 기뻐하고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으면 슬퍼하는, 고기잡이에만 열심이었던 사람들입니다. 고기잡이가 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만났어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는데 하나도 못 잡았지요? 하나도 못 잡았어요. 고기를 못 잡고 그물을 걷는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어요? \'내 인생이 무엇인가? 밤낮 고기 잡는 일, 똑같은 일, 그물을 던지고는 잡아당기고, 그물을 던지고는 잡아당기는 밤낮 그 일이야. 밥 먹고 일어나면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고는 잡아당기는. 집에 와서 자고는 또 그거야. 고기 좀 많이 잡으면 좋고, 고기를 조금 잡으면 섭섭하고. 내 삶이 뭔가?\' 하지 않았겠어요? 대학에서 좀 가르치고. 또 집에 오면 밥 먹고 또 가르치고. 연구도 좀 하고. 무엇 때문에 가르치고 무엇 때문에 연구하는가? 베드로가 그 전에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에도 자기 인생을 생각하게 되면 또 어때요? 고기를 많이 잡았어도 허전하기 짝이 없는 거야. 내 삶이 찢어진 그물 같애. 무엇을 잡아당기고서는 또 빈 것. 고기 잡았어도 사실은 빈 것 아냐? 허무해. 인생만 찢어지고 마음만 찢어지고, 이게 뭔가? 정말 우리가 매일 돈 벌겠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내 삶을 보면 인생의 그물만 찢어지고 마음만 상하고 뭔가 정말 영원히 보람있고 남는 것 있는가?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할 때는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셔서 베드로의 빈배를 타시고 베드로에게 \"너, 깊은 데로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봐라.\" 베드로가 뭐라고 했어요? \"어제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예수님이 뭐 종교 선생이지, 고기잡는 일을 아나? 고기잡이는 우리가 선수지, 일생동안 고기잡이만 했는데, 예수님이 뭐 어류학을 공부했나? 해양학을 공부했나?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아는가? 어디 고기가 있는지 아시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반신반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순종했습니다. 이상해요. 사람들이 반신반의로 교회에 나오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여기에 진리가 있어요. 많은 고기가 잡혔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알게 된 것이에요. 용서받은 탕자의 심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어요.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나는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그랬더니 베드로는 그렇게 애착이 많던 그물도 배도 다 내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였습니다.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아오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용서받은 탕자의 심정이 된 사람이에요.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나면 부르심을 받아요. \'이젠 예수님을 위하여 일해야겠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이것은 불가항력이에요. 거절할 수가 없어요. 베드로도 고기잡이가 제일 중요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니까 다 버리고 나아갔어요. 여기 마태라는 사람이 있는데, 마태는 수전노입니다. 돈 버는 일을 위해서는 동족도 다 배신하고 모리하는 사람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니까, 옛날에 그렇게 좋던 돈이 아무 것도 아냐. 삭게오도 그랬지요. 그렇게 좋아하던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눠주고 자기가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아 주었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이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그는 애굽 궁전의 영화를 다 누렸어요. 궁전에 살았어요. 얼마나 호화로웠겠어요? 손가락만 까닥 하면 다 되는 거야. 얼마나 호화판이었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에 모세는 그것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께 나아왔어요.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부르심을 받아서 갈대아 우르의 편안한 자리, 본토 친척 아비의 집, 그 편안한 자리를 버리고 나아왔어요. 예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림을 받아서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아오는 것이에요. 정말 이들은 예수님께 끌려와서 예수님의 사랑에 붙들려서 나아왔어요. 우리 교회에서도 정말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주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남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예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다 하고도, 다 바치고도 부족해서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끌려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어떻게 합니까? 훈련을 받아요. 나오기만 하면 됩니까? 훈련을 받아야지. 배우는 것입니다. 제자예요. 먼저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려면 먼저 어떻게 해요? 시간을 내야지요. 시간을 내고 배웁니다. 훈련을 받습니다. 이들은 어때요? 용감해요. 어떻게 용감한가? 세상을 향해서도 용감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용감해요.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누추하고 부족한지 알게 돼요. 그러나 실망치 않아요. 믿음으로 용감해요. 또 자꾸 실수합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어요? 요한과 야고보는 또 얼마나 신경질이 많아? 여기 보세요. 열 둘을 세웠는데 별명을 다 지었어. 야고보는 우레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니\' 하면서 시간도 내고 생명을 바칩니다. 더구나 이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있던 때였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지도자와 충돌하면서 미움을 받으시면서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면서 돌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정말 알게 되면, 예수님께 꼭 붙들리면, 진정한 의미에서 선을 위해 용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워요. 제자들은 배우는 것입니다.




2. 부르신 목적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물론 이들을 훈련하시는 것인데 14절과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는데,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둘째는 보내시기 위함인데, 함께 하시고 보내시는 목적이 뭔가 하면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왜? 예수님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공동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의 인격을 배우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자. 예수님과 진정한 코이노이아를 갖자. 예수님의 말씀이 이들의 마음과 이들의 인격과 삶에 새겨져서 이들이 예수님의 산 메시지를 입으로, 삶으로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게 하시려고.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잔데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뭡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제하면서 같이 있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기도로써 교제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게 바로 Q. T. 지요?




또 예수님께서 함께 있게 하신 목적은 뭔가 하면 전도하기 위해서, 보내시기 위해서. 예수님께 배우는 것은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보내심을 받는 것은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열 두 사람만 사도가 아닙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 배워서 주님의 특성을 지는 사람.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 전 세계, 각 마을, 각 직장에 보내심을 받은 자. 우리 팔로 알토(Palo Alto) 교회에 김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은 선(sun) 이라는 큰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언데, 이분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sun에 취직시키신 것은 밥 벌어먹으라는 것은 이차고 여기에서 전도하라고 보내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제자 훈련을 시켜요. \"이 sun은 내 전도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회사를 그만 두고 어떤 은행에서 컴퓨터 관계로 일하고 있는데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 몰라요.




전도,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을 갖지. 전도가 뭐야? 가르쳐야 돼. 배우는 것이 전돕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전돕니다.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왜 배워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가르치는 일입니다. 왜? 사람들이 다 똑똑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지하거든.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다 무지하니까 문제예요.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선악의 분별력에 대해서도, 가치관에 있어서도, 무엇이 중요한 지 몰라요. 무지해요. 무지하니까 엉터리로 인도하고 망하는 것 아닙니까? 리더들이 무지하니까 일반 백성은 말할 것도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무엇이에요? 말씀이야. 말씀이 뭡니까?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진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성품을, 이 너무나 복된 진리를 전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에요. 말씀, 하나님의 말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예수님에게서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우지도 않고 어떻게 가르칩니까? 가르치려면 똑똑히 가르쳐야지.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나아왔어요. 배우기 위해서 나와야 돼. 예수님이 좋아서 나아와야 돼. 미쳐야 돼. 첫째는 전도하는 것,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치기만 하면 되나?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심이라. 이때는 모든 병이 귀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귀신은 영물이니까 우리의 마음을, 영을 흩뜨려 놓는 것입니다. 믿음을 없이하고 마음을 악하게 만드는 거야. 자, 예수님께서 열 둘을 세우셨는데 전도도 하고 병도 고쳐주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으로 키우시려고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셨어요? 여기 보니까 우리 인간적으로 볼 때에 하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없어요. 뭐,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베드로는 얼마나 실수가 많아요? 요한과 야고보도 실수가 많고, 빌립은 아주 쩨쩨한 사람입니다. 마태는 세리. 아주 특수하거나 유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나아오라고 하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아왔어요. 그물도 다 버리고 나아왔어요. 여러분들 중에 \'그럼 나도 직장을 다 버려야 하는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직장을 버리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진짜로 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도 버리는 것이에요. 내게서 떼어버리는 것이니까. 베드로는 고기잡이를 버렸어요. 그것은 직장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텐트 메이커였는데, 텐트 만드는 것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바침으로 버렸어요. 텐트를 만들어서 돈을 마련하고, 그것을 전도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자기 조수들까지 다 먹여 살렸어요. 바쳐서, 이것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도구로 쓰자는 것입니다.




또 이 사람들을 보니까 모두 다릅니다. 고기잡이도 있고, 세리하던 사람도 있고, 테러주의자도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이 바로 테러주의자입니다. \'열심당\'이라는 테러당의 당원으로 국수주의자, 로마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다 다른 사람들을 부르셨는가? 그것은 다 다르게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베드로에게 어부들에게 전도하라고 하면 잘 했을 것이에요. 사실 세리인 마태는 부르심을 받자 누구를 불렀어요? 자기 친구들인 세리를 불러서 그들을 전도했어요.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람을 부르신 이유는 여러 가지 모양의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목적의, 여러 모양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하시려고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또한 예수님께 부르심을 당하니까 어떻게 됐는가? 이들이 다 같은 형제가 되었어요. 성격이 다르고 백그라운드가 다르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코이노이아를 이루었어요. 물론 성격도 너무나 다르고 배경도 달라서 맨 처음에는 서로 잘 났다고 하면서 암투가 많았어요. 그러나 예수님께 나와서 정말 배우니까 이기적이던 사람이 변화되었어요.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예수님께 배우니까 그게 아니로구나. 예수님만이 높아져야겠구나\'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암투하던 제자들이, 모든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동지가 되고 하나가 되었어요. 참 코이노이아를 이루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어요. 예수를 믿으면 가정에도 교회에도 사회가 참 코이노이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IV. 권 면


좋은 리더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좋은 부모나 좋은 친구를 가지는 것도 심히 행복한 일인데, 하물며 나의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귀한 스승을 가지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입니다. 이 귀한 스승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좋은 지도자의 기근이 들린 이 시대에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우리의 스승으로 모셔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복된 특권이올시다. 우리는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훈련을 받기 위해서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시간을 바치고 훈련받고 잘못해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시대의 형편을 살피면서 그 시대는 진실로 암담한 시대인 것을 보았습니다. 지도자의 모습을 볼 때에 암담하고, 도탄에 허덕이는 무지한 불쌍한 백성들을 볼 때에 암담했습니다. 이 시대도 암담한 시댑니다. 그러나 이때에 저희들은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암담한 시대를 보시고 그 악한 지도자들을 보시고 분하게 여기시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소망의 일꾼을 부르시고 키우시고자 열 두 사도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배울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방법이올시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방법이 무엇인가? 옛날 아브라함 시대도 어둡고 암담한 시대였는데,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구원하신 방법은 무엇인가? 일꾼을 키우신 것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일흔 다섯 살 먹은 다 늙어빠진 노인을 부르셨어요. 소망이 없습니다. 아브람은 일흔 다섯살, 그의 아내 사라는 예순 다섯살, 다 늙어빠졌어요. 아기도 없어요. 정말 소망이 없어요. 한 사람을 불러서 무엇을 하시겠는가? 그러나 아브람이 응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람을 몇 년 동안 훈련시키셨어요? 25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아브람\'이라는 말의 뜻은 \'고상한 아버지\'입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버지였습니다. 한 가정의 좋은 아버지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가정의 좋은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셨어요. 이 아브람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셔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고쳐 주셨어요. \'아브라함\'은 뭔가? \'열국의 아버지.\' 모든 사람을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는 사람,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는 사람.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마음에 품으세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시고 축복하시기 원하세요. 도탄 가운데 있는 이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예수님의 방법은 제자를 키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제일 큰 일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키우는가?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제자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특성을 지닌 사람. 예수님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한 개인 개인에게 관심을 두실 뿐 아니라 무리에게도 관심을 두시고 제자를 키우는 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무엇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면 무엇이 될까?\'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럴 때에 많은 일을 하시려고 하지 않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심어주시고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내 주변에게 있는 사람에게 이것을 실천하고 열 두 제자를 부르셨어요. 제자를 부르시는 데에 전념하셨어요. 많은 관심을 두셨어요.




한 가정의 소망은 우리의 자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돈 때문에 자녀를 바로 키우는 데에 소홀히 한다면, 또 남이나 교회만 의존한다면 소망이 없는 가정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만 생각하고 큰 예배당이나 생각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큰 예배당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큰 예배당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오늘 자리가 너무 많이 빈 것을 보니까 좀 이상해요. 여러분들, 정신차려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결국은 인재를 키워야 하는데 인재를 키운다고 원자폭탄이나 잘 만들고 컴퓨터나 잘 만드는 사람만 키우면 되나요? 그것도 필요지요. 그러나 어떤 인재를 키우는가? 예수님의 특성을 지닌 인재를 키우자. 제자들을 키우자. 예수님의 특성을 지닌 사람은 예수님의 특권을 가진 사람인데 이 제자를 키우자. 여러분,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볼 때에 근심이 되지 않습니까?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어두움을 보고 어두움을 저주하지 말고 성냥개비 하나라도 켜자.\' 우리는 성냥개비 하나를 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 나와서 우리 서로가 제자가 되고 제자를 양성하는 일, 이 일에 힘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심히 답답함과 어두움 가운데 있는 세계를 보시고, 더욱이 이 도탄 가운데에서 헤매는 불쌍한 양들을 보시고, 더욱이 진리와 비진리의 분별력도 없고 가치관도 어둡고 양들의 대한 사랑도 없이 도리어 권모술수에만 능한 지도자들을 보시고, 아버님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을 저희들이 압니다. 예수님으로 내려오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염려하시고 분해하시고,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시고 여러 가지 답답한 가운데 핍박 가운데 계시면서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우리를 친히 도우실 뿐 만 아니라 더 영원히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응하는 자들을 양육하시며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새누리 교회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또 하나의 교회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저 많은 양들을 데려다가, 아버지, 저희들을 뜯어먹고 이용하는 교회가 되지 않고 정말로, 아버지, 이 귀한 양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특성을 가진 자로서 양육하는, 그래서 이들이 모두 작은 예수가 되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같이 한편 손 마른 그 영혼, 그 심령, 그 육신, 아무리 원수들이 뭐라고 해도 고쳐주는 그의 편이 되는, 또한 많은 무리들에게 관심을 갖고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이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바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정말로 전도도 하고 이들의 병도 고쳐주는, 사랑이 넘치는 작은 예수들이 다 되는 훈련을 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정말로 지금부터 30년 40년 후에는 여기에서 훈련받은 식구들이 전 세계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놀라운 역사, 새로운 초대교회가 되고, 새로운 안디옥 교회가 되는 우리 교회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가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교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