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부르신 예수그리스도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막1:16-20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막1:16-20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메시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방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제자양성(discipling), 가르치심(교육, teaching), 복음전파(preaching), 치료(구제사업, healing)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자마자 힘있게 복음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일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양육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복음전파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처음부터 제자를 양육하셨습니다. 제자양육은 책임감 있는 전도자를 양육하므로 복음전파의 효과와 역사적 계승면에서 대단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당시대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아니라 세상의 종말 때까지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사역이기 때문에 후계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교육시키고 양육시키는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이나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사역의 초기부터 제자를 양성하셨음을 의미심장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역사와 초대교회사를 참조해 볼 때 이 제자양육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의 바람이 불고 있음은 지난 과거의 양적팽창과 질적인 수준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제자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4명의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제자로서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 부르신 4제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어부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분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재산이나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인물들이 없어서일까요?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회당장들 등등의 종교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부들을 부르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성경은 설명에 덧붙여서 이렇게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4-25)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인간의 힘이나 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여러분은 혹시 자신의 배경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의 일에 걸림돌이 된 적은 없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 인해 자신이 초라하다고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또는 사회적 위치나 신분 등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적은 없습니까?
주님의 일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로 되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이든지 외적인 조건으로 제자의 부르심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감시함으로 순종할 때에 역사는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16절)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는 어부였습니다.
\\\\\\\"그물\\\\\\\"(암피발론타스)을 던진다는 말은 \\\\\\\"투망\\\\\\\"을 던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큰 그물은 \\\\\\\"어인망\\\\\\\"(예인망, 사게네)이 아니라, 손 그물인 투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작은 손 그물로 갈릴리 호수를 누비고 다니면서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19절) 주님이 오셨습니다.
\\\\\\\"깁는다\\\\\\\"(카탈티존타스)라는 말은 \\\\\\\"정돈하다\\\\\\\", \\\\\\\"손질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의 출어를 위하여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준비가 끝나면 곧 바다에 배를 몰고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어부라는 직업의 공통점 분만 아니라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은 어떤 종교적인 분위기나 헌신의 순간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의 부르심은 같은 시간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고기잡이는 저녁 이후 시간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낮에는 그물을 수선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는 시간에 부름을 받았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수선하는 시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달라도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부르셨다는 공통점은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삶에는 얼마나 충실하십니까?
우리의 헌신의 의미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교회 일을 하는 것만을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직업은 소명(부르심)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서 주님의 일에는 일등이라는 공식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의 안식일의 규례에서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출 20:8,9)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새사람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여러 부류의 삶들을 권면하면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 12:7)

그러나 일을 핑계삼아 주의 일에 소홀히 하면서 이 말씀을 악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하여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주의 일에도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의 천국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동일하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묵혀 둔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했습니다. 또한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비유에서도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은 쉽게 드러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여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 부름받은 4제자의 자세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점은?


주님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자신의 이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것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고 주님을 따르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경우를 예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 8:19-22)

첫째로, 베드로와 안드레의 경우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18절)
어부들에게 있어서 그물과 배는 생존의 도구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와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좇으니라\\\\\\\"(아콜루데인)는 말은 \\\\\\\'일치\\\\\\\', \\\\\\\'닮은\\\\\\\'이란 의미의 접두어 (아)와 \\\\\\\'길\\\\\\\'이란 뜻의 (켈류도스)의 합성어로서, \\\\\\\"같은 길을 함께 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님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20절)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경우보다 좀 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마 10:2).
살로메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아 자매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요 19:25).
예수님과 야고보 형제는 외사촌 형제지간이었습니다.
사촌 형제지간에 스승과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시 친척들이 예수를 보는 눈은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예수님을 보고 친척들은 이런 반응을 마가는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집안의 식구들이나 친척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오늘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를 보고 도전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친척들도 결국에는 모두가 신앙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결과를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 또 다른 결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20절)

아버지를 삯꾼들과 함께 두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삯꾼들은 임금을 받고 고용된 일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삯꾼들을 고용할 정도면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유한 삶을 청산하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한 젊은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눅 18:22,23)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물질적인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마 6:24).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물질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그 어떤 것도 우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긴급한 부르심과 제자들의 즉각적인 순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부르심의 순종에 \\\\\\\"곧\\\\\\\"(유뒤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표현하고 있는 이 단어는 긴급하고도 생생한 장면을 강조하는 특별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의 표현도 \\\\\\\"곧 부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긴급하게 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긴급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멘으로 순종하십시오.
모든 삶 속에서 복음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십시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는 중\\\\\\\"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는데\\\\\\\"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순한 목사는 이 내용을 \\\\\\\"그물을 던저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셔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의 어부\\\\\\\'를 삼으신 일과, 아울러, 그물을 잘 정비하여 이미 잡은 물고기들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질하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사람을 양육하는 지도자\\\\\\\'로 삼으신 일은 특이할 만하다. 그것은 전도하여 사람들을 많이 구원해 내는 일도 중요하나, 또한 구원한 생명들을 잘 간수하고 그들을 성숙한 신도들로 교육하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직접 현장에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잘 관리하고 양육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나 나타나는 법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역할에 부름받은 어부들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4. 결론 및 적용 : 나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을 보면 어부에서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누구든지 그의 부르심을 받고 새생활을 출발한 사람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결단한 사람들은 인간의 조건과 형편에 상관없이 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초청(부르심)에 결단하고 응답하기만 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 즉, 죽이는 일에서 사람(영혼)을 살리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가족을 남겨둔 채로 주님을 좇았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아두고 주님을 좇아야 할지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아닌 그 누가 네 명의 어부들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그물을 놔둔 채 자신을 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내가 치르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나를 따라오너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믿고 따랐습니까?(아멘)


-참조-
본문에서 살펴본 [예수님의 제자 양육의 방법론]
*시기 : 사역초기, 처음부터 제자양육
*장소 : 일터, 어디서나 제자양육
*대상 : 어부,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제자양육
*방법 : \\\\\\\"나를 따라오너라\\\\\\\", 함께 먹고 자고 살면서 삶 속에서 제자양육
*목적 : \\\\\\\"사람을 낚는 어부\\\\\\\", 영혼을 건지는 전도자로 제자양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