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 훈련 막3:13-27
제자를 부르심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왜? 전적으로 부르시는 주님이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책임적인 사역을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책임적인 훈련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결정권이 제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원함에 있지 않고 주님의 원함에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제 자훈련입니다. 그 당시 제자훈련은 대부분 훈련의 책임을 제자들이 졌습니다. 제자들은 좋은 스승을 찾아다녔고 좋은 스승을 만나면 따라다니면서 스승에게 배웠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찾았고 제자가 스승을 택했습니다. 그러니 제자가 상당한 부분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현대의 제자훈련? 현대 제자훈련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전적으로 부르심의 원리를 살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서약을 하는 절차가 있다는 것은 제자 훈련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 니다.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혈연이나 지연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한적한 산으로 오르시고 12제자를 불러 세우십니다. 구약 12지파를 연상케 한다.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12명을 특별히 부르시고 그들이 나오니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앞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냥 부르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나온 것이 아니고, 결단을 하고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과거의 삶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예수님만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오가 된 그들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상징으로 특별히 세우셨습니다. 12명으로 한정한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체하는 새로운 12지파의 공동체를 표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 12지파 가 역사 가운데서 사라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소망했습니 다.
이러한 염원을 아셨다는 듯이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회복을 상징하는 12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만드셨습니다. 12제자를 부르시는 이 사건에서 우리는 구약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활동이 예수님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12제자들의 믿음을 기반으 로 세워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제자훈련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1)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있게 했을까요? 마음을 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또 앞으로 예수님의 사도 로서 사역을 해 나갈려면 예수님과 특별한 개인적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게 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경험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해야 합니 다. 예수님으로 물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고를 훈련하고 하나님의 재정원칙을 따라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제자도의 기본입니다. 어떤 사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 예수님과 마인드가 같아져야 비로 소 그들을 파송하여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은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고, 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귀신을 쫓는 권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12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도의 사명과 능력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과 먼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눈으로, 귀로, 그리고 행위와 삶으로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들 이 예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희생과 섬김과 말씀과 사랑과 나눔의 삶이었습니 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의 사역을 수행하려면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말씀 훈련과 기도생활과 성도의 교제와 섬김과 나눔 등을 먼저 경험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능력은 그 때 가서 각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순서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12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치유와 귀신쫓음 등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자로 그분과 함께 했습니 다. 사실은 제자훈련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배워가는 것이 제대로 되어야 나가서 전도도 할 수 있고, 귀신을 쫓는 능력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과 전도하는 것은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사역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입니 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제자들은 이 복음 전파 사역과 귀신쫓는 사역을 제대로 수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두 번째 목적은 2) 보내사 전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사람을 보내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자기를 보낸 사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붙들어 놓는 것은 제자훈련의 정신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떠나 보내야 합니다. 독립시켜야 합니다. 시다바리 노릇만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에게 붙들어 놓는 것 은 제자훈련의 정신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만이 제자훈련의 목적 아닙니다. 사도로 파송하는 것입니다. 제자로 머물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도로 파송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내가 하는 사역을 언젠가는 위임해 주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선교단체가 이 원리를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나 완벽하고 온전하냐 라고 묻는 다면 어슬픈 구석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슬프게라도 시도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완벽하기를 기다린다면 평생에 한번도 제자훈련을 시도해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새가족반에서도 천주교에서 돌아온 자매를 돌봐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새가족반 선배 중에 한 자매에게 그 자매를 돌봐주도록 요청했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한 주에 한번만 만나도 그게 얼마나 그 자매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 가 훈련받은 만큼 나누어 주는 것이 제자훈련의 정신입니다. 완벽하게 섬길 것을 핑계로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세 번째 목적은 3) 제자들로 하여금 귀신들을 내어쫓는 권세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에 있어 필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귀신들이 전도를 가장 방해하기 때문에 능력이 필요합니다.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야말로 복음전도에 꼭 필요합니다. 복음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전도자가 영적인 능력을 가지는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오늘 오후 묵상 본문에서도 사 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가려고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까?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또 들은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 하도록 훼방합니다. 그러니 마귀를 제압하는 능력은 제자와 전도자의 삶에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12제자들을 보면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에 대한 나름대 로의 DESIGN(계획)이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의 생래적인 모습에 변화를 시도 하려고 하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개명한 것이나 야고보 요한에게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의 현재적 모습과 현재적인 특징을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미래적인 모습도 예견하고 계십니다. 가룟 유다에 대하여 \\\"예수를 팔 자러라\\\" 라 고 하신 부분이 바로 그것을 얘기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그들을 제자로 부르셔서 끝까지 감당을 해 나갑니다. 정말 예수님이니까 가능한 일이고 또 예수님의 마음과 능력을 덧입지 않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 제자훈련입니다. 그런데 12제자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13절입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나아온지라(라펠쏜)\\\"라는 단어의 뜻은 \\\"떠나다. 자기 생활방식을 버 리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12제자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입니다. 어 떤 이의를 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원문에는 \\\"예수에게로 나아온지라\\\" 라고 되 어 있습니다.
\\\"예수에게(프로스)\\\"라는 전치사는 예수님이 그들의 인생에 새롭고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하필이면 예수에게로 나아왔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세상에 자기들의 목적을 걸만한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에게로 방향을 돌린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 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따라 나설 수 있는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간에서 어정거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 의 유혹과 욕심을 가지고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자기 생활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따라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사역의 원리에는 세계 복음화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계 복음화 전략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보게 하고, 따라하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품은 비젼을 함께 품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방식을 이어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부르심에 응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받아 야 할 훈련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성 령의 능력을 받고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제자를 부르신 것과 예수를 붙잡으러 온 가족들과 서기관들의 공격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요? 마가는 왜 본문을 이런 식으로 배치했을까요? 가족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곧 제자들을 사역의 동반자로 세우는 사역인데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 지 못 하는 가족들은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고, 예수님의 사역을 시기 질투하는 서기관 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이 스승을 택하게 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제자들을 택하여 부르실까요? 제자들이 주도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도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에 의해 주도되는 삶의 방식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 예수님의 가족들과 서기관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주도하는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 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계시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죠.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집 밖에 있다는 얘기는 예수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자기들의 생각을 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는 얘기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도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족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가족 질서를 따라 살겠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변화되는 삶의 방식을 원치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변화되는 삶은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의해 변화되고 싶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주 도하시는 삶의 방식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주변에 둘러앉아 있 죠.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시는 정신과 정 반대의 정신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보다 더 심각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22절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 라고 터무니없는 모함을 뒤짚어 씌웁니다. 이 사람들도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하 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생 활방식을 포기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삶의 변화와 개혁을 원치 않는 사 람들입니다.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실험정신으로 무엇을 시도해 보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훈련을 통해 본격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자 누가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하고 나섭니까? 가족들과 서기관들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가장 협조적으로 나와야 할 사람들입니 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면 가장 협력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방해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제자훈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정신으로 제대로 물들어 보자는 시도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시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연습을 제대로 해 보자는 시도입니다. 참으로 좋은 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의 제자훈련이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따라가 지 못한다 할지라도 흉내라도 내어보려는 시도는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계명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죠. 복음을 전하는 것도 부족하고 귀신을 쫓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입 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의 성품을 배우고, 그분의 인격을 배우고,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분의 사역을 배우다 보면 부족하지만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제자로서의 삶을 살려고 할 때 본문에서와 같이 육신의 가족들의 오해와 서기관 같 은 사람들의 모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부요 로써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면 얼마나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부요로움을 무엇과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된 제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는 얘 기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면 정말 좋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 밤에 이 예배에 나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 2003년 한 해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부요로움을 정말 만끽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봉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 과 함께 하고,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는 부요로움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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