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네제자

처음 네 제자 /막1:16-20

처음 네 제자
막1:16-20





마가복음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일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3년 동안 훈련 양육하신 일입니다. 3년 동안의 공생애에서 가장 주력하신 일이 바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신 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난 후에도 남은 것은 이 몇 사람의 제자들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운동이 예수님의 선교 원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는 태어나는 것이지만, 제자는 훈련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훈련받지 못한 교인들이기에 생활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12제자의 이름을 외워야 합니다. 12제자의 이름을 외우시는 분이 있습니까?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 인 시몬, 가룟유다 이상 12명입니다. 이분들은 우리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예수님과 함께 두고두고 생각하고, 알아야 할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도들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교회의 터를 닦아주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전해주신 말씀, 교리, 제도를 가지고 교회를 세웠고,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엡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래도 복음서에서도 사도라는 말이 한 10회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눅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택하시면서 사도라고 칭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사후에 보편적인 이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만 남쪽 가리옷 출신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단히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얼마나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 가담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리해지니까 배신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하여 살았습니다. 예수님 때보다 한 세대가 지나간 후에 저술된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 의하면 갈릴리에는 204개의 도시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 도시에는 적어도 만오천명 이상의 사람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단지 성벽이 있는 도시에만 해당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300만의 인구가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이 마을들을 두루 순회하셨습니다. 매일같이 두 개의 마을을 순회하더라도 안식일을 위한 휴식도 없이 줄잡아 3개월은 걸려야 되는 일수입니다.

유대나라에는 남쪽에 유대, 중앙부에 사마리아, 북쪽에 갈릴리로 되어 있습니다. 중앙부의 사마리아는 혼혈로 인하여 이방인으로 간주되어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갈릴리는 어떠하였습니까? 법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차별 받을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갈릴리는 힘없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였고, 억압과 수탈을 당하였고, 모든 정치적으로도 소외당하였고, 문화의 혜택도 덜 받는 곳이었습니다.

이렇다 한 인물도 나지 않은 곳이어서,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이런 말은 갈릴리를 아주 무시하는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였느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도 나시기만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지, 자라나고 활동하신 곳은 갈릴리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11명이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마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지만, 우리 주님이 오시므로 저들에게 큰 빛을 보았고, 그 빛이 비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로 몰려와서 예수님이 다니셨던 그 길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외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광스럽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구약에서 긴네렛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이 바다는 민물 바다로 아주 커다란 호수로 그 모양이 비파와 같이 생겼다는 뜻으로 긴네렛이라고 불렀습니다. 긴네렛이라는 말이 와전되면서 바벨론 포로 후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갈릴리 바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지방의 이름이 로마의 행정상으로 갈릴리 주(州)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왕이 로마의 디벨리우스 황제를 위하여 디베랴(티베리아스)라는 도시를 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베랴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호수의 길이는 약 20Km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10Km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약 50m 수면은 지중해면 보다 240m가 낮은 바다이며, 주변의 높은 고원으로 에워싸여 있어 돌풍이 자주 일어나는 바다였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 바다는 민물 바다, 담수호입니다. 이 바다에서 사해로 내려가는 강이 요단강입니다. 지금은 흘러가는 물이 많지 못하여 요단강은 아주 협소한 개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바다는 오염되지 아니한 아주 순수한 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에 관계수로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수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 갈릴리 바다는 어족이 많은 고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처음 네 제자는 두 형제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4복음서를 종합하여 보면 이들 네 사람 중에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로 활동하던 중에 예수님을 소개받고 예수님을 따른 가장 처음의 제자들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하루는 세례 요한에게 나가셨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 때 두 제자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예수의 뒤를 따르니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예수님은 이들에게 당신이 있는 곳을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우리 주님을 따르게 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안드레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 복음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나와야할 자리에서는 언제나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는 겸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제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면 그는 사도 요한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하루 종일 우리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안드레는 그의 형님인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때 사도 요한도 함께 찾아갔다고 보아집니다. 안드레 혼자라면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할 것이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오니 예수님이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주경하는 학자들은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사건이 더 먼저 있었던 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처음의 제자는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이며,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시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들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고 하였으며, 헬라어로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은 바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가보니,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17절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는 말씀은 명령이고,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자에 대한 보장이었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랍비들이 제자를 부를 때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었는데, \"나를 따라 오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두 형제 시몬과 안드레는 \"곧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자기의 생업을 다 포기하고, 전혀 앞날이 보장되지 아니하는 한 청년을 따라 나서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들이 그래도 배와 그물 곁에 있으면 생활은 안정될 것인데, 배와 그물을 버리는 결단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감동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사실, 그 당시 제자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믿기 어려운 것이 자기나 다름이 없는 외모습의 한 사람 앞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든지, 그리스도라고 믿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가 퍽 부유한 편이었던 같습니다. 삯군을 두고 고기를 잡을 정도였으면 그래도 큰 부자였는데, 예수님의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이들도 아버지를 떠나고 삯군들과 함께 배에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든든한 직장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영광을 버리시고 내려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너무나 이 세상에 매이지 말고 복음에 매여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쉽게 결단하고 따라나선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따르라고 하신 사람들 중에 거절한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눅9:57-62)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낸다는 핑계, 가족과 작별 인사라도 나누고 따르겠다는 사람, 예수님에게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니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하실 때에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면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네 제자는 한 한마디의 부름에 두 말 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결단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람 낚는 어부라는 말씀을 깊이 상고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고를 때 랍비의 문하생이나, 공부 잘한 사람 중에서 고르지 않고 갈릴리 어부 중에서 선택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는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머리에 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복잡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여 일을 잘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주님은 생활의 현장에서 자기의 직업에 혼을 불어놓고 있던 어부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어부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대체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면 자기의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는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부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점으로 꼽히는 것은 협동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단 한 배를 탔으면 함께 수고하고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고기 잡는 것만이 아니라, 바다에서 무사히 귀환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어부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 믿으며 인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때로 고기를 잡느라고 온 밤을 새우는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했는데, 원문에 따르면 \"알리 에이스 안드로폰\"이라고 하여 \"사람에 대하여\"라는 정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의역을 하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잡는 어부, 그 말도 이상하고,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했는데, 그물을 치는 사람들, 그래서 \"사람에 대하여\"라는 말은 사람에 대한 어부, 물고기를 잡아내듯이 사람을 구원하는 뜻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한 것입니다.

전에는 고기를 잡거나 낚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을 찾아내고, 사람을 불러내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낚시질에서 대상을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뿐이지, 방법은 그리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낚시질에 비교하고, 고기 잡는 것으로 비유하여 좀 이상하고, 모양이 좋아 보이지 않지만, 어부들에게는 잘 이해하고, 어울리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어부들에게 더 고상한 말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공연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용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어부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사람의 힘을 빌리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한 분이 건설하여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동역하여 건설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갈릴리의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지만, 우리 나라는 모병제가 아니라, 의무 군인입니다. 자기가 자원하는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권위와 뜻과 계획에 다라서 지명하여 불러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원하여 선택한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주님이 원하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고, 주의 일꾼들로 선택하시고 보내셨다면 주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 더 많은 것입니다. 주님이 일을 주십니다. 주님이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이 보상해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아무나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지명하여 부르고 세우시는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차출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는 직분이 아니고, 때로는 굶을 때도 있고, 매를 맞을 때도 있고, 말로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할 경우도 있는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형극의 길입니다. 자원한다고 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선정을 받아야 비로소 주의 종이 될 수 있고,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자원하는 길이 아님에도 주님께서 차출하시면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부르실 적에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사람들, 세관에서 세금을 수금하고 있던 사람들이나 여러 모양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을 주님께서 부르셨는데 그들이 제자로 부르심을 입었을 때에 사양하거나 거절한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고 주님이 부르시자 그물도 던져 버리고 배도 던져 버리고 부모 형제도 떠나서 순종하고 주의 뒤를 따라 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생각해 보겠다, 못하겠다 그렇게 거절한 사람이 없었고 부르시기가 무섭게 \"예\"하고 순종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하여도 자원하는 순종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임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나 거절하거나 사양하지 않고 비상한 각오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이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쾌락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할 것을 결심하고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순종해서 헌신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즉시로 \"예\", \"아멘\"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라는 말 한 마디 듣고 나귀를 내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한 청년이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따라 나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서 영광 받으시지 않으시고, 학문이 없는 범인들을 불러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을 따라 나선 처음 네 제자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남은 생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헌신하여야겠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던 베드로나, X형 십자가에 달려 죽은 안드레, 헤롯왕에게 목 베임을 받아서 제자로서는 가장 먼저 순교하신 야고보, 마지막 천수를 누리면서 순교적인 신앙을 견지하였던 사도 요한 그들의 좋은 면모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네 제자는 처음 제자답게 활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그 첫째는 사도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교회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주님에게 부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광스럽게, 감격스럽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