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소명 막1:14-20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상을 향한 첫 음성을 발하셨는데 그것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4∼15절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낱말을 발견합니다. 첫째로 \"복음\"이란 말이고, 다음은 \"회개\"이고, 셋째는 \"믿으라\"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면 \"요한 이 잡힌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라고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타락을 담대하게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여자로 만들어버린 헤롯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요한을 잡고, 세례요한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집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좀더 자세하게 기록한 글들이 있습니다만 마가는 아주 간단하게 다루고, 바로 이어서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려는 마가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시고, 나보다는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이 나타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시작은 바로 이 무렵에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는데, 왜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의 가버나움에서 부터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의 예루살렘지역에는 학식과 부귀영화, 권력을 누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릴리는 달랐습니다. 거의 반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습니다. 무지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가셔서 천국복음을 먼저 전하여 주신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안다는 것 때문에 교만하고, 가졌다는 것 때문에 오만하며, 형식화 되어버린 사람들보다 부족하고 무식하지만 순수했던 자들을 더 귀하게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먼저 천국복음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심령이 가난하고, 문제가 있지만 문제 있음을 고백하고,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할 줄 알고, 겸손으로 띠를 띠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천국복음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심령, 이런 교회가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강조점이 무엇입니까? (1)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드라마의 막이 열렸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때\" 라는 단어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의 의미가 아닙니다. \'카이로스\' 라는 말입니다. \'카이로스\' 라는 단어는 \'어떤 특정한 시간, 너무나도 의미 있고 귀한 그 어떤 시간\'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씀은 당시의 상황적으로도 2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 당시의 상황과 종교적인 상황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이 시작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미 전래되어 내려온 율법이 그 기능을 충분히 하였습니다.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와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교육적인 효과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당시에 영적인 기근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던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기본적이고 쉬운 헬라어가 통용되고, 로마가 당시의 패권을 가지고 식민지 지배를 넓게 하였던 시기였기에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달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전달통로와 지역, 언어의 통용이 이루어 졌던 시기였습니다.
2) 당시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일\'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구약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유대백성들을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 직전에 와서 위대하신 분이 오신다고 예고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미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복음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전파되어진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알게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세계에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련된 문명 속에서도 영적으로 갈급하면서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세워질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또 다른 \'때가 찼다\'는 의미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 예수님이 다시 이 땅위에 심판주로, 메시야로 다시 오시는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시간을 헛되게, 준비 없이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강조점은 \'회개하고 믿으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강조하시고 계십니까? 왜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요한1서 1:8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바로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이 불의하고 잘못되었음을 알게 하시고, 바로 이런 면에서 정결함을 얻어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인 줄로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도 \'회개하라\' 하시는 것이요, 오순절이후에 사도 베드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입니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여러분, 회개에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1)첫째는,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되었습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어려운 일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곳에 가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다른 곳으로 숨었습니다. 자신이 행하고 고집한 일이기에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물에 던져지고, 고기뱃속에 들어가서야 무엇이 심각한 잘못이고 죄였던가를 발견하고 스스로 깨달아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아서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나를 내던져 버리시기 전에 내 안에, 우리 안에 모르고 지은 죄, 혹은 은밀하게 내 고집대로 계획대로 지은 죄를 바로 깨달아 아는 복된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둘째로,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22:62절에 보면, 베드로가 죄를 깨닫고 난 후에 나가서 통회 자복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엄청난 죄를 깨닫고 난 후에 그 죄의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하여 통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셋째로, 참 회개는 굳은 의지와 그 위에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큰 도둑이라고 불리우던 조 세형씨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으로 거듭났으며 선교활동을 하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좋은 여인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가서 도둑질하다가 칼부림까지 하고 잡혔답니다. 어떤 경위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의지에 약점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강한 의지로 결심을 하지만, 그 의지를 붙잡아 주시는 성령님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의 강한 의지 위에, 성령의 강권적인 도우심을 늘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라고 불리우던 둘째아들이 돼지가 먹는 밥을 먹어야할 정도로 비참한 삶이 되었지만, 깨닫고, 통회하고, 그리고 새롭게 결심하여 종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 같이 새롭게 결심하여 새 생활을 시작하게 하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또한 \"복음을 믿으라\" 하심으로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복음은 결국 우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예수를 믿으라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의 말씀을 믿으라는 말씀이요,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과 능력을 믿으라는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서 흘려주신 보혈이 내 죄를 구속하여 주심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내 머리로만 이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지하라는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나의 구주로 믿고 깨달아서 그분에게 내 생명 전체를 맡기고 의지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학벌이나, 가문이나, 명예나 부귀정도를 따져서 가는 곳도 아니요, 그런 것에 의하여 차등으로 들어가는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와 믿음으로 가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복음을 누구에게 맡기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강력하게 나타내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이렇게 세우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당시에 종교인들을 제자로 부르셨으면 더 좋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은 종교적인 면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더 좋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당시에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 같은 정치가들을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정치적인 역량과 훌륭한 수준들이 백성들에게 전도하는 일에 더 효과적이고 멋있어 보이지는 않겠습니까?
그렇게 했더라면 좀 더 쉽게 전도되었을 것이요,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따랐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면 당시 종교의 최고 지도자이던 대제사장 같은 사람하나를 제자로 부르셨다면 말할 수 없이 좋지 않겠습니까? 정치와 종교를 통 털어서 아주 영향력이 큰 인물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을 보면 별로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16절과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 형제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16절에도, 19절에도 \"보시니\"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것을 보셨고, 야고보 형제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원어를 살펴보면 \'보셨다\'라는 말은 그냥 지나가는 눈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유심하고 자세하게 살펴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예수님이 그렇게 자세하게 관찰하고 살피시고도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제자들을 선택하셨다면, 아마 우리 예수님이 제자를 삼으셨던 기준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었겠습니까? 21세기를 살아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실 만한 일꾼, 예수님의 좋은 제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1) 자기일에 충실했던 자들이었습니다.(16절) 예수님께서 \"보셨던\" 사람은 근면하고 열심히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불평이 많고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며, 무관심하고 책임성이 없는 일군을 주님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한결같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던지는 열심을 \'보셨고\', 야고보 형제가 가족과 함께 그물을 깁는 협력과 순수성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셨는 가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 그들의 고유한 생활의 충실함 가운데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모스 7:14∼15절은 아모스를 부르실 때의 그의 모습입니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는 선지자나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고 뽕나무를 배양하며 양을 키우는 목자였으나 어느날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불렀습니다.
열왕기상 19:19절은 엘리사를 부르실 때의 그의 모습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부름을 받을 당시, 두 선지자의 모습은 자신의 생업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명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소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질병 중에서, 어떤 이는 교육 현장에서, 또는 노동자, 농민, 상인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은 역시 전도자로서의 임무도 성실히 수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는 내 자신의 주어진 일부터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자신에 충실하고, 내 가정에 충실하고, 내 생업에 충실하고, 내 교회를 섬기는 작은 일부터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겨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 안에 자주 일어나는 일 중에 한가지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가정도 직장도, 주변의 인간관계도 다 망가뜨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우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종종 보게 되어집니다. 가정을 깨뜨리고 주의 일을 한다는 것, 직장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분주 하는 것,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으면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바쁜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도 잘 해야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과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도 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바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지혜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일에 만나는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달려가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는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부터 충실하고 열심히 행하다가 하나님이 크게 들어 사용하시는 좋은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6절과 19절에 나오는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깁는 일은 \'생계\'에 관한 일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인 것입니다. 솔직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순종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망설이거나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더해 보입니다. 아버지까지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 같습니다. 부모를 버리고 도망간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모의 일보다, 자신의 일보다, 우리 예수님에 관한 일을 우선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렵니까? 우선순위가 바르게 된 사람이라야 감당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가정, 형편, 자식, 직장 등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일을 더 우선으로 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 되기가 어려운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3) 협력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형제였고,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물을 던지고 깁는 일에 모두가 협동하는 모습을 보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서로 사랑할 줄 알고, 공경할 줄 알고. 협력이 되고, 화목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의 제자로서 적합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깨달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원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이 협력과 화목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게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4) 과감하게 결단하고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들의 제자됨을 인정하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마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다가 인생을 끝냈을 이름 없는 어부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결단하고, 포기하고 순종하고 헌신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기에 결국 그들은 이 땅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들이 된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쓸모 있는 일군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 속에 한번 엄청나게 써먹는 일군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늘도 주님은 우리 모두가 다 당신의 좋은 제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제자됨의 모습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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