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 마16:21-24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입니다. 나날이 늘어나는 군중을 보는 제자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서 예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고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 확신 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은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울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 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간하여\'라는 말은 \'꾸짖다\', \'경고하다\'라는 강한 의미 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있으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 죽기는 왜 죽느냐는 것입니다. 이제야 말로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 으셔야 할만큼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 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의 문자적인 뜻은 \'분리자\', \'반대자\'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 사단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 는 생각을 하는 세력이 사단입니다.
제자의 삶은 주님이 택한 길을 내가 따르는 것이지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주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 예수님은 모 든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 는 \'자기\'는 \'자아\'를 뜻합니다. 나의 못된 자아가 부인되지 않 으면 예수를 좇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은 적군 열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하여야 합니 다. 그것이 제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편리 앞에 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쉽지 않은 일을 우리는 해야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의미를 새기는 이 사순절에 자 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을 장애인과의 관계에서 생각하였습니다. 누가 장애인입니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 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장애인의 정의가 그렇게 쉬운 것이었습니까? 진정한 장애는 사랑이 상실된 마음입 니다. 한 장애아 엄마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초등학교 2학년이된 자식을 특수학교로 전학할 것을 종용받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자기 자식이 다른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말을 하 자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장애아들은 정상아들과 함께 있어야 좋아 진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상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 고 교사에게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 앞에 그 장애아의 어머니는 복음과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제민이가 세상과 한데 섞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아들도 제민이 같은 아이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장애 아들과 함께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부인할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37세의 한 부인은 대학 전산과를 졸업하고도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취업을 할 수 없어서 다시 장애를 극복하고 숙대 약학부 에 입합하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약사가 되어 장애인을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인데 \"사람을 어떻게 외모로 판단하느냐, 인간의 고귀한 부분은 외모가 아니다\"며 그 녀와 결혼을 하였고 11년 동안 아내와 같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고 합니다. 어느 토요일 남편이 퇴근해서 집으로 오니 아내가 울 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문구점에 편지지를 사러갔는데 주 인이 \'아침부터 장애자가 와서 재수없다\'며 물건을 팔지 않더라 는 것입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가게에 가서 따지고 같이 울었다 고 합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정말 재수가 없는 사람은 그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장애자 아닙 니까? 도대체 얼마나 장애가 심했으면 이른 아침에 찾아준 고마 운 손님을 박대했을까요?
제 아내가 이번에 서울여고로 발령을 받아서 일학년 담임을 맡았 는데 그 반에 지능장애 학생 두명이 편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데 입학식을 한지 며칠 안되어 그 장애인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 생겼는데 번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가나다 순으로 정상적인 명렬로 반편성을 하였는데 고사관리 등의 편의 를 위해서 다시 맨 뒤로 보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들의 번호는 다시 맨 뒷번호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지 금까지 학교에서 늘상 번호가 맨 뒤였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자신들의 번호가 중간에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하였다고 합니 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원래 자리(?)를 확인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아내는 그 사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 파서 반 학생들에게 말하여 그들의 번호는 뒤로 갔지만 자리는 바꾸지 말자고 하여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번호대로라 면 지능장애 학생끼리 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 로 두니까 정상인 학생이 그의 도우미가 되고 그에게는 봉사학점 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당신이 교장이 된다 면 고사행정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장애학생들의 번호를 차별하 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불편을 감수해야합니다. 불편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그 마음을 부인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민족시인 윤동주 님의 \'십자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사순절 에 가슴을 열고 들으시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