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마16:21-28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어떤 전기가 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막 1:14)셨고 다가오는 자신의십자가 수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요, 구약 율법 교육과 각종 종교적 의식의 중심지입니다. 율법의 완성으로서 오신 예수께서는 바로 이곳이 당신의 수난의 현장이 될 것임을 언급하고 계신 것입니다.한편 예수께서 당신의 수난이 준비되고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야만 했던 것은 그것이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한 바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26:54;눅 24:26, 46).
예수께서는 예비 된 고난의 잔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심으로써 인류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류의 구원자요 소망이 되실 것이었습니다(막 10:45;요 1:29;고후 5:21).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2) 라고 예수님을 만류함니다 베드로는 방금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했으며 자신이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아마도 이것은 다른 제자들도 수긍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마 16:23) 베드로의 말을 막아버리시며 심한 말을 하셨으니 베드로는 사탄은 아니었으나 순간적으로 사탄의 대변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베드로의 충고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원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반드시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일은 현실적이요 일시적일 뿐입니다. 우리도 사단에게 부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하나님의 목표에 대해 오해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일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주님을 실망시켰습니다.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 됨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자의 길은 어떠해야 할까요
제자의 길은 스승을 따라는 길입니다
\"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면\"(24절)하신 말씀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만일 누가 제자됨은 항상 선택의 문제가 따릅니다. 따른다는 것은 계신 곳을 찾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장소적으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곳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 위험한 곳이라도 달라야 합니다 나오미를 따르는 룻의 경우를 봅니다 어머니의 기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라고 합니다 따른다는 것은 복종을 의미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이를 따를 수 없습니다. 최선의 방법은절대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 전까지는 그리스도를 실제로 따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경과 인도자를 비유로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따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생활 패턴을 주님의 것에 맞추어야 합니다.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찾아온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여지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부자 청년은 깊은 고민에 빠져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치 기준에서 재물은 지극히 귀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더욱이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의 재물에 대한 가치 기준의 변화로 말미암은 그 재물의 포기로 요구되었고. 그 요구를 순종하지 못한 그에게 영생은 주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마19:16-30).
그렇다면 우리가 부인하고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이는 재물을 어떤 이는 지위와 명예를 어떤 이는 승진의 욕망을 어떤 이는 가족을, 어떤 이는 건강과 심지어는 육체적 생명까지를 포기해야 합니다
(1) 가족(마 4:21-22) 가족은 삶에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주를 사랑함이가족에 대한 사랑을 초월하여야만 합니다. 이 사랑은 실제로 가족을 떠나는 것을 요청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딸을 선교사로 보낸 아버지의 절규는 사랑의 배신자 사랑의 약탈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떠나는 딸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8).
(2) 일터(마9:9) 직업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주를 사랑함이 직업에 대한 사랑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직업이나 직장을 실제로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나 마태나 아모스의 경우에서 보게 됩니다
(3)소유(마 19:16-25) 주를 사랑함이 재물사랑을 초월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가진 재물이 그리스도의 제자됨에 방해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나 나귀를 드리는 주인의 헌신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포기하여야 합니까?
우리는 그 대답을 마태복음 13장 44절의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합니다 농부는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자기 소유를 모두 다 포기해버리는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포기하는 대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재물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재능과 지식과 지위와 가족, 그리고 생명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포기되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모든 다른 것으로부터 떠남을 뜻합니다. 제자됨은 따름을 요청합니다.
따름에는 방향 설정, 자기 포기가 그 안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우리 자신의 소유권이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포기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소유권 하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갖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보화를 발견한 자가 자기 소유를 모두다 포기할 때 슬픈마음을 가졌거나 아니면 손해본다는 식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들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포기하는 십자가를 질 때 생색을 내거나. 따져 보거나.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코 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 결단이 쉬운 것은 아닐지라도 그 기본적인 자세는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은 언어보다 더한 희생을 요구합니다.
위대한 관심과 사업에 대해 자신이 장애물이 되지 않게끔 겸비해야 합니다.
제자의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십자의 의미는 고난과 수치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의미와 직결됩니다. 누가는 \"날마다\" 십자가를 질 것을 덧붙이고 있습니다(눅 9:23). 당시 죄수가 제 십자가를 지는 일은 당연지사였습니다. 가장 천한 차원의 고통수단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메시야가 가야 될 길이라는 사실을 밝히신 주님은 이제 자신의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져야 한다는 대 원칙을 밝히고 계십니다(24절) 예수님의 제자 된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지신 십자가에 스스로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지라고 명령하셨으니 언뜻 보기에 지게나 배낭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짐처럼 생각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십자가는 짊어지고 다니는 짐이 아니라 죽음의 도구를 의미하였습니다. 그것도 흉악한 범인을 처형하는 사형 틀로서 최대의 수치를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따라서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그리하셨듯이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죽음의 자리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된 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자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자아의 죽음은 곧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 가능케 됨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 즉 자아의 일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단의 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여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든지 아니면 사람. 곧 사단의 일을 생각하든지,하나님의 뜻을 좇든지 아니면 사단의 뜻을 좇든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든지 아니면 사단의 다스림을 받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지 이 둘 사이의 중간지대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둘 사이의 선택을 요청 받는 긴장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고 말씀하셨고 이러한 삶의 원칙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 기도에서 그 절정을 이루시게 됩니다. 겟세마네 기도와 결단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기에 동일한 기도를 세번이나 반복하였고 기도하는 중 그의 이마와 손등에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너무 힘든 것이었기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면케 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인간의 뜻이 죽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엄청난 결단의 일이기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 지이다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뜻대로. 혹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말을 하기에 앞서 우리의 겟세마네 기도와 결단이 선행되었는가를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한 표현들은 내 자신의 철저한 부정과 죽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자기 죽음의 현상과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요? 고난과 영적 투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던 것들이 내 자신이 죽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주관하게 됨에 따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는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주고받던 불의한 물질이 십자가를 진 다음부터는 결코 마음 편한 물질이 되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뱉던 어떤 말들도 이제는 결코 유익한 것들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전에는 무감각하게 넘어갔던 사회적 불의 함들도 십자가를 진 다음부터는 나를 괴롭히는 요소들로 바뀌게 됩니다. 이전에는 그냥 먹었던 어떤 음식들이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진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적. 가정적. 사회적 고생과 고난의 현상들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왔노라 (마10:34)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한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전과 동일하게 불의한 세상과 화목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진 후 감수하고 있는 투쟁과 고난이 무엇인가?만일 우리의 삶이 세상일들과 관련해서 너무 무사태평하다면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악한 일들과 관련해서 아무런 번민도 없다면. 우리의 영혼상태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그러나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한 이래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역경과 싸워 오셨다면.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이 결코 안이하고 편안한 사건이 아니었고. 엄청난 수치와 고동과 고난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수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를 지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이는 세상법칙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역설적인 언급이지만 이는 십자가의 비밀이요 기독교 진리의 신비스런 측면인 것입니다. 자기 부정과 죽음의 십자가를 진 결과가 우리가 포기한 소유들이나 우리가 당한 고난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값지고 고귀한 그리고 영원한 대가인 하나님나라 즉 영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도 먼저 십자가를 지는 자기 죽음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결코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4:17-18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내 가 그리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바울 사도는 용기 있게 고백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 사도처럼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못 박힌 십자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십자가에 우리 스스로를 계속 못박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 옛사람과 새사람이 항상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일 죽는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5:31).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요구하시는 우리의 십자가가 당장에는 어려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그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에게 보장된 약속은 그 십자가를 짐으로 당하게 되는 그 어떤 고난이나 손실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좁고 협착 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지기에 쉽고 가벼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촉구하십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그로 말미암아 당하게 되는 고난과 수고를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우리가 얼게 될. 그리고 이미 얼은 영광스런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인데 이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 19:27)라고 질문을 드렸을 때 예수 님께서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29)고 하신 복이 주님을 따르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모든 심령에 임할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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