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제자들

위기에 빠진 제자들/마14:22-33

위기에 빠진 제자들
마14:22-33





우리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시작된 이 가을에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많은 믿음의 열매와 축복의 열매 맺히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윈드서핑(Wind Surfing)을 해보고 싶은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시작하면 물에 계속 곤두박질을 치겠다 생각하면서도 보드를 타고 물 위를 지나가는 스릴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높은 파도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곤두박질치지 않고 물 위를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에 고대 사람들은 널빤지를 타고 신기하게 쏜살같이 지나다니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윈드서핑이라는 해양스포츠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파도가 세게 이는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봅니다.



또 고대 사람들은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날랐다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건 있을 수 없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하늘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날아다닌다는 것을 압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타고 수백 톤의 짐을 싣고 그 큰 비행기가 공중을 떠다니면서 공중에서 마음껏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007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도 우리는 등에 로켓 벨트만 매면 공중으로 솟아오를 수 있는 과거에는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때로는 이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장면들을 자주 만납니다. 또 그런 장면을 만날 때 마다 성경이 읽기 싫어집니다. 그런 몇몇 장면을 보면서 다른 장면들까지 다 신뢰가 안가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오면서 고고학이 굉장히 발달했습니다. 특별히 성서 고고학은 중근동지방의 성서고고학이 굉장히 발전을 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이 되고 발견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성경에 있는 내용들, 역사적인 내용이던지 어떻든 간에 많은 내용들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이건 말도 안돼 했던 그 부분들이 고고학이 발전하고 많은 자료들이 발견됨으로 말미암아서 성경에 있는 내용들이 하나도 거짓이 없는 다 사실이라는 것이 하나하나 점점 밝혀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떻게 느꼈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서운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이는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오셨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믿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누가 한참을 설명을 해 주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성적인 생각이나 합리적인 사고방식 과학적인 지식 을 가지고 성경을 재단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위에 서핑을 하셨다. 윈드서핑을 하셨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도 아닌 소리입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상식을 넘어선 두 발로 물위를 걸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주님을 향해서 걸어가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물에서 헤엄쳐 오셨다 이러면 사람들이 다 믿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쳐 오셨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 위로 걸어 오셨다고 하니깐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1. 풍랑(위기)을 만난 제자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흔히들 갈릴리 바다라고 하는데 그 갈릴리 바다는 남북길이가 21Km이고 동서의 넓이가 13Km나 되는 큰 호수에 해당됩니다. 지난 봄에 이스라엘을 갔을 때 히푸스(Hippus)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가로질러 40분정도 가서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 주변의 지형을 보니 아주 특이했습니다. 비스듬히 펼쳐있는 구릉지대와 산들이 호수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수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200m나 낮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니깐 지형적으로 푹 꺼진 지역입니다. 사해 바다는 이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요단강을 거쳐서 사해로 들어가도록 이스라엘 남북으로 뻗어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산 쪽에 기온은 낮아지고 바닷물은 낮에 데워져 있기 때문에 기온 차에 의해서 산 쪽에서 바람이 세게 붑니다.



돌풍이 불면서 갈릴리 호수에 물결을 심하게 일으킨다고 합니다. 낮에는 잔잔한 봄기운이 감도는 호수 위를 지나갔는데 전날 밤에 호수 가에 가보니 굉장히 높은 파도가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건너편 해변가가 보이는 호수인데도 바다처럼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호수에 비해서 이 갈릴리 호수는 참 변덕스러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돌풍이 불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판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그 사건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우리가 평생 굶어죽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박해와 학대와 수탈 아래 살아가던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과거에 보릿고개를 경험하는 것처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배불리 먹었던 경험으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자하는 분위기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들을 흩어 보내시고 산으로 기도하려 가시고 제자들은 먼저 재촉해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게 했습니다. 이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자료는 자세한 정보가 있고 빠진 자료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닷가를 캄캄한 밤에 건너가고 있었고, 예수님은 모여 있던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고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거부하시고 산에 올라가서 조용하게 혼자서 기도하시기를 원하셔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지만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어서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 알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적외선 망원경을 가지고 살피든지 아니면 레이더 추적을 하던지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거기에 일어난 상황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갈릴리 바다 위로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놀랐던 제자들은 그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어떤 물체가 나타는 것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서 두려워 떨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와서 “내니 두려워 하지 말라.” 너희들이 아는 나니깐 두려워 말라고 안심시키시고 또 베드로가 보여 주었던 돌출 행동을 다 경험하게 하고 배에 올라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내용까지가 오늘 읽었던 본문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인생의 길을 고해와 같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예상하지 못했던 풍랑을 만날 수 있고, 고난을 만날 수 있고, 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24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 있었기 때문에 배가 다시 해변가로 돌아가기도 어중간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중간하고 진퇴양난의 위기 가운데 놓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해변가를 출발했다가 풍랑이 일면 포기하고 해변가로 돌아와 버리면 되는데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난감한 위기 상황에 빠졌고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무능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비라는 태풍이 태평양에서 북상하고 있습니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벌써 태풍의 영향을 받은 어선이 남해 바다에서 침몰을 했습니다. 선원들은 구출을 받았지만 배는 물속에 가라앉았습니다. 미국의 뉴올리언즈와 미국 남부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 고통을 받습니까? 세계 가장 강력하고 무서울 것 하나 없는 미국도 별수 없이 하나님 콧김 한번 부니깐 인간이 이렇게 대책 없는 위기 상황에 빠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항상 위기를 당할 수 있고 항상 고난을 당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닥쳐옵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닥쳐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하면 묻지 마라 할 만큼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굻었고 갈릴리 바다는 그들의 생업의 터전이었고 갈릴리 바다에서 밤배를 몰고 나가서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했던 베드로도 있었고 안드레도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닷가에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몸으로 체험하고 경험했던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과거도 자기의 현재도 자기의 미래도 장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 내가 최고다 베테랑이다. 그래도 우리는 겸손해야 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남 보기에는 체면도 있고 이런 저런 것이 있으니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고 있지만 그 사람의 가정을 들어가서,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어려움과 고난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신 청취자들 가운데서도 인생의 위기 앞에 놓여서 어찌할 바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분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고난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때와 장소를 구분해서 찾아온다면 거기에 대해서 대비책이라도 세울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고난은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해도 찾아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주목해 보시기 바립니다. 22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했습니다. 즉시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갔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 저는 배 멀미 때문에 배 안타고 걸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어부 출신이고 갈릴리 바다에 도통한 사람들은 배타고 가면 빠르니깐 배타고 가자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던 예수님께서 지시하셨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따라 갔는데 풍랑이 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갈 때 믿음 생활 잘하면 고난도 없고, 환란도 없고 늘 순풍에 돛단 것처럼 행복한 것만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또 어떤 고난과 환란과 역경이 닥치면 죄 때문에, 죄를 지어서 고난을 당한다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때로는 죄 때문에 내가 벌을 받아서 고난과 위기와 역경 속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고난과 위기를 주시고 환란과 역경을 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을 때 비난하거나 정죄해서도 안됩니다. 또 우리 자신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때로는 내 자신을 살피고 내 중심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나 살펴야 합니다. 내가 잘못이 있다면 회개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생의 풍랑을 이겨나가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환란과 고난을 당할 때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이겨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두려워하며 무서워하는 제자들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에 풍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자들에게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주님은 비록 제자들과 멀리 떨어져서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지만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제자들의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조금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너무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시고 나는 이 땅에 있는 자가 아닌가 하면서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나의 곁에서 나를 감싸주시고 나를 붙들어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5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 위기 가운데서 구출해 주기 위해서 바다 위를 황급히 걸어오셨는데 제자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니깐 첫 번째는 놀랐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무서워했습니다. 네 번째는 소리질렀습니다. 무슨 소리를 질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안나와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오 주님 어서 오십시오’ 하지 않고 ‘유령이다’ 무서워 벌벌 떨었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포심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인지 능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겁내야 할 것을 겁내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도 프로이드 같은 사람은 인간이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철들면서 두려움 증을 가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모르는 것은 인지 능력의 부족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너무 겁이 없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겁이 많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확한 인지 능력이 없고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독일의 유명한 카톨릭 신부이면서 파사오 대학의 목회심리학자인 바움가르텐(I. Baumgartener)는 교수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목회심리학(Pastoral Psychologie) 분야의 대가입니다. 그는 인간이 두려움이나 위기와 공포 속에 빠질 때 4가지를 상실하게 되는데 첫째는 분별력을 상실한다. 둘째는 하나님을 상실한다. 셋째는 용기를 상실한다. 넷째는 인생의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도 얼마든지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분별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상실하고 용기를 상실하고 목표를 상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주님이 그들 가까이 오셨지만 그들은 유령이다 하면서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분별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주님을 따라 다니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동거동락 했지만 그들은 그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용기를 상실했습니다. 자기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두려움 속에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고난과 고통과 위기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주님은 우리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위로를 받고 안심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 때 그 위기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지 유령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주님으로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함, 우리의 무식함, 우리의 불신앙을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잘 안믿습니다. 옛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줄타기라고하면 이 사람을 따라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나이아가라 폭포에 줄을 걸쳐놓고 그 위에 줄을 타겠다고 공언을 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폭포 곁에 와서 폭포 위를 줄을 타고 건너가는 묘기를 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이 외줄을 타고 이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갈 것을 믿으십니까? 하니깐 사람들은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외줄을 타고 건넜습니다. 두 번째 여러분 나는 등에 의자를 하나 얻고서 외줄을 타고 건널 것입니다. 내가 건너갈 것을 믿으십니까? 하니깐 다 믿는다고 환호를 했습니다. 그래서 등에 의자를 하나 얻고 건넜습니다. 세 번째 다시 내 등에 한 사람을 태우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하니깐 사람들이 다 믿는다고 환호했습니다. 여러분 내 등에 타실 분 손들고 나오십시오? 아무도 안나왔습니다. 서로 서로 눈치만 보고 안나오면서 다 믿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현대인의 신앙이 믿습니다 하면서 정작 나에게 그 몫을 요구할 때 우리는 뒷걸음을 치는 그런 두려움의 주인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풍랑을 만날 때 위기를 만날 때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과 위기는 축복의 관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3.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유령인줄 알았던 주님을 예수님으로 알게 된 베드로는 특유의 돌출행동을 보였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여기에 단서조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은 바로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유령인줄 알았는데 주님이었습니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게 하옵소서가 아니고 만일 주님이시거든 아직까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인정안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한 주님으로 인정안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현대인들의 신앙의 약점일수 있습니다.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주님께서는 오라 했습니다.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는 물위를 저벅저벅 걸어갔는데 베드로가 눈을 돌려서 바람을 보니깐 무서워 빠졌습니다. 심하게 부는 바람과 이는 물결을 보니깐 베드로는 갑자기 두려움이 확 몰려오면서 발이 물속 빠져 들어 갔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올리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여러분 불신앙과 의심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의 불신앙으로 주님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위기와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다른 어떤 체험을 통해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66권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말씀을 계시로서 주어져 있는 이 성경 말씀을 믿고, 이 말씀대로 사는 것,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가질 때에 비로소 우리가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했을 때 “선생님 우리는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면서 말씀을 의지해서 주님의 말씀 믿고 따랐을 때 갈릴리 바닷가에 도사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잡지 못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어려운 일 당할 때 고난과 환란과 역경과 위기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는 그 파도도 그 바람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물 위를 저벅저벅 걸어갈 수 있는 기적적인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니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물결을 보니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을 바라보아야할 시간에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될 그 시간에 이것저것 두리번거리며 살피면서 인생을 걸어가는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2절에 말합니다. 주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 파도가 잠잠해지고 그들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함께 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주님과 인간적인 생각이나 이익이나, 세상적인 생각이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을 적당하게 나와 거리를 두고 주님과 평행선을 긋고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께 인생을 밀착해서 가고 있습니까? 많은 예수 믿는다는 신앙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간섭자로 생각하고, 멀찌감치 내가 필요할 때만 예수님을 불러가지고 예수님 덕보고, 내가 인생길 살아가면서 세상적인 유익을 취하고 주님의 말씀에 저촉되는 행동을 할 때는 예수님을 못 본 척 할 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생을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밀착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문제는 풍랑이 아니라 의심하는 불신앙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도 수준이 많이 차이가 납니다. 이차방정식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 문제를 풀라고 하면 문제가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의 수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학생, 고등학생에게는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공대생에게 이차방정식을 풀라고 하면 나를 모독 하십니까 할겁니다. 여러분 신앙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 유치원생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고 헤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이차방정식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이런 인생의 위기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척척 풀어내면서 인생의 위기를 잘 극복해 풀어내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힘든 문제 속에서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나의 배에 모시고 내 인생의 항해에 함께 모시고 가는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송가 기억하시죠. 어설픈 뱃사공은 풍랑 때문에 배가 침몰하지만 지혜롭고 능력 있는 뱃사공은 그 바람을 잘 이용하여서 돛과 닻을 잘 이용하여서 배가 더 빨리 가는 하나의 기회로 삼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 고난이 닥칠 때 어려움이 닥칠 때 주님 앞에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 말씀대로 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